하나님은 남루한 옷을 입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긍휼로 품으셨다. 우리가 베푸는 긍휼은 먼저 긍휼을 받은 사람이라는 증거다.
神沒有轉身不顧衣衫襤褸的我們,而是用憐憫將我們擁入懷中。我們所施予的憐憫,正證明我們是先蒙了憐憫的人。
야고보서 2:13
하나님은 남루한 옷을 입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긍휼로 품으셨다. 우리가 베푸는 긍휼은 먼저 긍휼을 받은 사람이라는 증거다.
神沒有轉身不顧衣衫襤褸的我們,而是用憐憫將我們擁入懷中。我們所施予的憐憫,正證明我們是先蒙了憐憫的人。
야고보서 2:13
말씀을 들었으니 됐다고 여기는 것이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심으신 말씀은 세상이 외면하는 이를 돌보는 행함의 열매로 드러난다.
以為聽了話語就夠了,這是在欺哄自己。神所栽種的話語,會在行為的果子上彰顯出來,就是去關顧那些被世界忽視的人。
야고보서 1:22
욕심은 죄를, 죄는 사망을 낳지만 변함없는 빛들의 아버지는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 우리는 세상을 새롭게 하실 일의 첫 열매다.
私慾生出罪,罪生出死;但那永不改變的眾光之父,用真理的道生了我們。我們是祂更新世界之工的初熟果子。
야고보서 1:18
시험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나뉘지 않은 온전한 사람으로 빚는다. 두 마음을 내려놓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부족한 그대로 나아가자.
試煉將我們塑造成在神面前不分裂、完整的人。放下二心,帶著本來不足的樣子,來到不斥責人的神面前吧。
야고보서 1:4
사람의 맹세는 지키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버렸고, 그 결과는 하나님 탓으로 돌렸다. 오늘은 내 소견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내 자리로 돌아가기를 소망한다.
守住了人的誓言,卻丟棄了神的話語,最後還把結果歸咎於神。今天,我盼望不再照著自己的意思,而是順著話語回到我該在的位置。
사사기 21:25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일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다를 수 있다. 붙들고 있던 내 말과 결정을 내려놓고, 잘못을 잘못이라 말할 용기를 구한다.
奉神的名所做的事,和神所喜悅的事,可能並不相同。我願放下一直緊抓不放的話語和決定,求主賜我勇氣,承認錯了就是錯了。
사사기 21:3
하나님이 주신 승리가 그 뒤의 모든 일까지 정당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멈추신 자리에서 함께 멈출 때 정의가 복수로 변하지 않는다.
神所賜的勝利,並不會讓之後的一切作為都變得正當。當我們在神停下的地方與祂一同停下,公義才不會變成報復。
사사기 20:48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내가 정한 일의 승인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옳다고 확신하는 일까지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며 주님 앞에 내려놓는 것이다.
求問神,不是為自己已經決定的事尋求批准,而是連自己確信是對的事,也要問「我可以上去攻打嗎?還是不可以?」,把它放在主面前。
사사기 20:28
정의를 향한 분노라고 해서 곧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편집된 이야기보다 먼저 하나님께 묻고, 들을 땐 판단을 서두르지 않고 말할 땐 나를 감추지 않기를 소망한다.
為公義而發的怒氣,不一定就是神的旨意。盼望自己在聽信被剪裁過的故事之前,先求問神;聆聽時不急著下判斷,說話時不隱藏自己。
사사기 20:7
형식은 남고 말씀을 잃은 세대에서 샬롬의 땅은 소돔이 되었다. 오늘 다시 말씀 앞에 서서, 형식보다 말씀의 본질을 붙드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한다.
在只剩形式、失去話語的世代裡,平安之地成了所多瑪。今天我再次站在話語面前,禱告我們能成為一個不拘泥於形式、緊緊抓住話語本質的群體。
사사기 19:27
하나님 백성의 성읍에서도 나그네에게 문을 열어준 이는 타향살이하던 노인뿐이었다. 우리도 나그네였음을 기억하며 먼저 문을 여는 공동체가 되기를.
即使在神百姓的城中,願意為旅人開門的,也只有一位客居異鄉的老人。願我們記得自己也曾是旅人,成為一個率先敞開大門的群體。
사사기 19:20-21
말씀을 맡은 자의 진실함은 강단이 아닌 가장 가까운 이의 마음에 말하는 자리에서 드러난다.
承擔話語之人的真實,不是在講台上,而是在對最親近之人說話的場合中顯露出來。
사사기 19:1-10
성공과 결과는 하나님의 뜻을 증명하지 않는다. 물어야 할 것은 '잘되었는가'가 아니라 '말씀 앞에 서 있었는가'이다.
成功與結果並不能證明神的旨意。我們該問的不是「順利與否」,而是「是否站立在話語面前」。
사사기 18:31
미가와 단 지파, 레위인 모두 여호와의 이름을 빌려 자기 마음에 좋은 것을 택했을 뿐, 하나님께 진짜로 무엇이 좋은지 묻지 않았다.
米迦和但支派、利未人都只是藉耶和華的名,選擇自己心裡認為好的,卻沒有真正求問神什麼才是好的。
사사기 18:19-20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예배를 만든 미가처럼, 교회도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복만 구하면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
就像米迦一樣,雖然口中呼求耶和華的名,卻按照自己眼中看為對的方式製造敬拜,教會若不尋求神的旨意、只求福氣,也可能淪為偶像崇拜。
사사기 17:6
삼손이 하나님을 잊어도 하나님은 그를 놓지 않으셨다. 밀린 머리털이 다시 자라듯, 무너진 자리에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은 계속된다.
即使參孫忘記了神,神也沒有放手讓他離開。就像被剃掉的頭髮會再次長出來一樣,即使在崩塌的地方,信實的神所做的工作仍然持續進行。
사사기 16:22
삼손은 들릴라를 사랑함으로 거룩한 것을 조금씩 내어주었듯,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생기면 그것이 곧 우상이 되어 우리를 삼킨다.
參孫因為愛大利拉,一點一點交出了聖潔之物;同樣地,當我們心中有比神更愛的對象時,那個對象就會成為偶像,吞噬我們。
사사기 16:1-14
승리의 노래엔 '내가'만 남았지만, 목마름의 자리에서 삼손은 '주께서 구원하셨다' 고백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한계를 통해 '내가'를 '주께서'로 바꾸신다.
在勝利的歌聲中只剩下「我」,但在乾渴的境地裡,參孫卻告白「是主拯救了我」。神藉著我們的極限,將「我」轉變為「主」。
사사기 15:18
삼손은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했지만, 그 실패와 욕망 속에서도 하나님은 자기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셨다.
參孫按自己眼中看為對的去行,但即使在他的失敗與慾望之中,神仍信實地成就祂自己的應許。
사사기 14:3
이름을 묻는 마노아에게 하나님은 설명 대신 기이한 일로 응답하셨듯, 두려울 때는 이미 베푸신 은혜를 하나씩 세는 것이 믿음의 시작이다.
就如神面對詢問名字的瑪挪亞,並非用解釋、而是用奇妙的作為來回應他一樣,當我們感到懼怕時,一一數算神已經賜下的恩典,就是信心的開始。
사사기 13:15-25
자녀를 위한 구별된 삶은 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품은 부모에게서 먼저 시작된다. 자녀는 부모의 말보다 삶을 보고 자란다.
為兒女而活出的分別為聖的生活,並非從孩子開始,而是先從懷抱孩子的父母開始。兒女不是聽父母的話而成長,而是看父母的生活而成長。
사사기 13:12-14
작은 억양 차이가 형제를 가르는 칼이 되었듯, 공동체는 다름을 '틀림'으로 삼을 때 무너진다. 성령이 이루신 하나됨을 서로 용납함으로 지켜가야 한다.
正如微小的口音差異曾成為分裂弟兄的利刃,群體一旦將「不同」視為「錯誤」,就會走向瓦解。我們應當藉著彼此接納,持守聖靈所成就的合一。
에베소서 4:2-3
하나님은 거래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라 먼저 은혜로 찾아오시는 분, 내가 아는 하나님이 성경의 하나님인지 문화가 만든 하나님인지 돌아보게 된다.
神不是靠交易來行動的那位,而是先以恩典來尋找我的那位。這讓我反思,自己所認識的神,到底是聖經中的神,還是文化所塑造出來的神。
사사기 11:29-40
입다는 옳은 말과 바른 신앙고백으로 심판을 여호와께 맡겼으나, 바른 지식이 삶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우리도 그와 같은 실수를 범할 수 있다.
耶弗他用正確的話語與正直的信仰告白,將審判交託給耶和華,但若正確的知識沒有延續到生活當中,我們也可能犯下和他一樣的錯誤。
사사기 11:27
입다는 승리를 하나님께 맡기면서도 머리의 자리를 함께 챙겼다. 사명이 자리가 되지 않도록, 머리 되신 주님 아래 섬기는 자로 살기를 소망한다.
耶弗他將勝利交託給神,卻同時謀求了首領的位子。求主幫助我,不讓使命變質為地位,願我能在元首基督之下,活出一個服事者的樣式。
사사기 11:9-10
이스라엘의 회개보다 앞선 것은 그들의 곤고를 차마 견디지 못하신 하나님의 긍휼, 그 은혜가 있기에 이제 평안할 때도 먼저 하나님께 여쭙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한다.
在以色列的悔改之前,是神無法忍受看見他們的困苦而生出的憐憫,正因為有這樣的恩典,我盼望自己即使在平安的時候,也能過著先向神詢問的生活。
사사기 10:16
아비멜렉과 세겜은 서로의 악행으로 함께 무너졌고, 하나님은 그들을 찾지 않는 이들을 그 택한 길에 내어 두셨다. 샬롬 없는 시대에도 말씀대로 사는 작은 룻기 같은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亞比米勒和示劍因彼此的惡行而一同崩潰,神將那些不尋求祂的人,任憑在他們所選擇的道路中。願我們在沒有平安(沙龍)的時代裡,也能成為一個按著話語而活、如同小小路得記般的共同體。
사사기 9:56-57
사람의 셈으로 맺어진 연합은 하나님이 갈라지게 하시어 심판하시니, 내 계산 속에 하나님이 계신지 먼저 물어야 한다.
憑著人的算計所結成的聯合,神會使其分裂並施行審判,因此我應當先問問:在我的計算之中,是否有神的同在?
사사기 9:22-23
그늘 없는 가시나무가 '내 그늘에 피하라' 말하듯,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 대신 마지막 피난처로 만들 때 목회자도 가시나무가 된다. 사람을 붙잡지 말고 하나님의 그늘로 안내해야 한다.
如同沒有樹蔭的荊棘卻說「請到我的蔭下躲避」,當人把自己當作神以外的最終避難所時,牧者也會變成荊棘。不要抓住人不放,而是要引導他們前往神的蔭下。
사사기 9:15
기드온의 입은 다스림을 거절했으나 삶은 왕처럼 살았고, 그 말과 삶의 틈이 다음 세대엔 형제 살육으로 벌어졌다. 선포한 말을 실제로 살아내고 있는지 돌아본다.
基甸口中拒絕了統治,但生活卻活得像個王,他言語與生活之間的裂縫,到了下一代竟演變成骨肉相殘。我反思自己所宣告的話語,是否真實地活了出來。
사사기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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