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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 시편 8:1-9

    今日默想:詩篇 8:1-9

    Kyoung Woo Han··조회 59

    제목 :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시편 8편은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시편이다. 이 시편으로 부른 찬양도 내가 좋아하는 찬양 목록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 시편을 해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시편 8편의 표면적 의미와 신학적의미를 잘 살펴보려고 한다.

    시편 8편은 사람을 노래하는 시다. 하나님의 창조 가운데 가장 놀라운 작품인 사람, 그 사람을 향한 찬양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찬양은 조금 이상한 방식으로 짜여 있다. 왜냐하면 사람을 실컷 높이는 이 노래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이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시 8: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9절은 이 문장을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되풀이하며 끝난다. 사람을 노래하는 시인데, 그 시작과 끝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한다. 그렇기에 이 틀을 놓치면 시편 8편을 오해하게 된다. 사실 이 시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자랑하는 노래가 아니다. 사람의 존엄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노래하는 시이다.

    다윗은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주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달과 별들을 본다. 그 광대함 앞에서 다윗은 문득 자신이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그는 묻는다.

    시 8: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여기서 다윗이 쓰는 '사람'은 힘세고 대단한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히브리어로 에노쉬, 곧 흙에서 나서 언젠가 흙으로 돌아갈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다. 다윗은 그 티끌 같은 존재를 하나님이 굳이 생각하시고 돌보신다는 사실 앞에서 놀란다. 그렇다. 이것이 놀라운 일이다. 우주는 이렇게 큰데, 나는 이렇게 작은데, 하나님이 그 작은 나를 기억하신다.

    그런데 다윗의 놀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 작은 사람을 기억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상상도 못 할 자리로 높이신다.

    시 8: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관을 씌우셨다. 그 관은 '영화와 존귀'라는 관이다. 그런데 이것은 본래 왕에게 쓰는 말이다. 더불어 관을 씌운다는 것은 대관식의 장면이다. 하나님은 티끌 같은 사람에게 왕의 관을 씌우시고, 지으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어 다스리게 하셨다. 이것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시고 땅을 다스리라 하신 바로 그 장면을, 다윗이 시로 다시 부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이 모든 일의 주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사람을 생각하시고, 하나님이 돌보시고, 하나님이 관을 씌우시고, 하나님이 다스리게 하셨다. 그렇다. 사람은 이 관을 스스로 쟁취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존엄은 자격이 아니라 선물이고, 은혜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우리 눈앞의 사람들은 이 노래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사람들은 왕의 관을 쓴 존재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하고 너무 자주 무너진다. 죄 아래, 죽음 아래,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혼돈 아래 있는 모습이다. 말씀에는 만물을 발 아래 두었다고 하시지만 정작 사람들은 자기 자신 하나를 다스리지 못한다. 그렇기에 타락 이후의 모습으로 이 시를 읽으면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진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주신 그 영광은 어디로 갔는가?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시편 8편을 인용한 뒤, 아직 만물이 사람에게 복종한 것을 우리가 보지 못한다고 솔직히 인정한다. 그래 약속은 분명히 있는데 현실은 미완성이다. 하지만 히브리서는 거기서 절망하지 않고, 시선을 한 분에게 돌린다.

    히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 다윗이 사람에게 씌워졌다고 노래한 그 관을, 히브리서는 예수께 그대로 씌운다. 아담으로 시작된 죄 때문에 사람이 잃어버린 그 관을,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께서 죽음의 고난을 통과하며 다시 쓰신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그래서 시편 8편의 사람 찬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참이 된다.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잃어버린 소명을 회복하시고, 그분 안에서 나 같은 사람도 그 형상으로 다시 세워진다. 그러니 이 시는 사람 예찬이되, 오직 메시아 안에서만 참되게 부를 수 있는 사람 예찬이다. 그렇기에 이 노래를 오늘도 예수 안에서 힘차게 불러본다. '사람이 무엇이관데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돌보시나이까'

    최근 로마서를 설교하고, 고린도전서를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았다. 그 말씀들을 준비하면서 나를 돌아보면 참 부끄럽다. 나는 별것 아닌 일에 마음이 훅 달아오르고, 분노가 먼저 튀어나온다. 그러고 나면 밤에 그런 나의 연약함이 자꾸 떠올라 이불킥을 한다. 이런 내가 무슨 왕의 관을 쓰겠는가. 그래 나는 그 관을 쓸 자격이 없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 고백 앞에서 이 시가 나를 붙든다. 그래. 애초에 이 관은 자격으로 얻는 것이 아니었다. 은혜로 씌워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관을 참으로 쓰신 분은 내가 아니라, 죽음의 고난을 지나 관을 쓰신 예수시다. 그러니 나의 부끄러움이 마지막 말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 창조의 형상을 이미 회복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여전히 죄 많은 나는 그 창조의 형상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걸음씩...

    中文 AI翻譯

    題目:人算什麼,祢竟顧念他……

    詩篇第8篇是我個人非常喜愛的一篇詩篇。以這篇詩篇譜成的詩歌,也在我最愛的讚美清單之列。然而,詮釋這篇詩篇並不容易。因此,我想仔細探討詩篇第8篇的字面意義與神學意涵。

    詩篇第8篇是一首歌詠人的詩。它看似是在讚美人——那在神的創造中最令人驚嘆的傑作。然而,這首讚美詩的結構卻有些獨特,因為這首從頭到尾盡情頌揚人的詩歌,始終被神的名所圍繞、所框限。

    詩 8:1 耶和華我們的主啊,祢的名在全地何其美!祢將祢的榮耀彰顯在天上。

    詩篇就這樣開始。而第9節則一字不改地重複這句話作為結尾。這明明是一首歌詠人的詩,其開頭與結尾卻不是讚美人,而是讚美神的名。因此,若忽略了這個框架,便會誤解詩篇第8篇。事實上,這首詩並非在誇耀人有多麼偉大,而是在歌詠人的尊嚴從何而來。

    大衛仰望夜空,凝視那祢用指頭所造的月亮與星星。面對那無垠的廣闊,大衛忽然感到自己是如此渺小。於是他問道:

    詩 8:4 人算什麼,祢竟顧念他?世人算什麼,祢竟眷顧他?

    「人算什麼。」大衛在此所用的「人」,並非指強大顯赫的存在。希伯來文是「以挪示」(enosh),意指從塵土而出、終將歸回塵土的軟弱有限之人。大衛面對這個如塵埃般微小的存在,竟然被神特意顧念與眷顧這一事實,感到無比驚奇。是的,這正是令人驚嘆之處——宇宙如此浩瀚,我卻如此渺小,神卻記念這渺小的我。

    然而,大衛的驚奇並不止於此。神不僅記念這渺小的人,更將他提升到難以想像的地位。

    詩 8:5 祢叫他比天使微小一點,並賜他榮耀尊貴為冠冕。

    神為人戴上冠冕,那冠冕是「榮耀尊貴」的冠冕。而這本是用於描述君王的語言,戴上冠冕更是加冕典禮的場景。神為如塵埃般渺小的人戴上王冠,將所造的萬物置於他腳下,使他治理管轄。這正是創世記第1章中,神按自己的形象造人、並吩咐他治理全地那一幕——大衛以詩歌重新詠唱了那一幕。然而,在這裡有一件事必須牢記:這一切事的主詞不是人,而是神。是神顧念人,是神眷顧他,是神賜他冠冕,是神使他治理。是的,人從未憑自己奪取過這頂冠冕。因此,這份尊嚴不是資格,而是禮物,是恩典。

    然而,我們都太清楚地知道,眼前所見的人們,與這首詩所歌詠的並不相符。人若說是戴著王冠的存在,卻顯得太過狼狽,太過頻繁地跌倒。他們活在罪之下、死亡之下、連自己也無力掌控的混亂之下。話語說萬物都服在他腳下,人卻連自己都管治不了。因此,若以墮落之後的眼光來讀這篇詩,心中便會有一絲沉重。那神所賜予的榮耀,究竟去了哪裡?

    正因如此,希伯來書的作者在引用詩篇第8篇之後,坦然承認:我們如今還不見萬物都服在人的管轄之下。是的,應許明明在那裡,現實卻尚未完成。但希伯來書並未就此絕望,而是將視線轉向一個人。

    來 2:9 惟獨見那成為比天使小一點的耶穌,因為受死的苦,就得了榮耀尊貴為冠冕,叫他因著神的恩,為人人嘗了死味。

    「得了榮耀尊貴為冠冕的耶穌。」大衛歌詠中為人所戴的那頂冠冕,希伯來書將它原封不動地戴在耶穌頭上。因亞當所起的罪,人所失去的那頂冠冕,作為第二個亞當而來的耶穌,穿越了死亡的苦難,重新戴上了它。而且是藉著神的恩典,為所有的人……

    因此,詩篇第8篇的頌人之歌,在耶穌基督裡才真正成為實。身為第二個亞當的基督,恢復了人所失去的使命,在祂裡面,像我這樣的人也得以按那形象被重新建立。所以,這首詩是對人的頌讚,卻是唯有在彌賽亞裡面才能真正唱響的頌讚。正因如此,今天我也在耶穌裡,大聲唱出這首歌:「人算什麼,祢竟顧念他……眷顧他?」

    近來在講道羅馬書、默想哥林多前書的過程中,我省察了神對我們所要求的生命樣式是什麼。在預備那些話語的時候,回顧自己,實在感到羞愧。我會因為芝麻小事而心頭火起,憤怒往往搶先衝出口。事後,到了夜裡,那份軟弱又不斷浮上心頭,讓我在被窩裡懊悔踢腿。像這樣的我,怎配戴上王的冠冕?是的,我沒有資格戴那頂冠冕。然而……然而……面對這樣的承認,這首詩緊緊抓住了我。對了,這頂冠冕從一開始就不是憑資格得來的,而是藉恩典被戴上的。而真正戴上那頂冠冕的,不是我,是那穿越了死亡的苦難、得了冠冕的耶穌。所以,我的羞愧不能成為最後的定論。因為耶穌已經恢復了那創造的形象。因此,今天,仍舊滿身罪污的我,朝著那創造的形象,再邁出一步。就從那跌倒的地方,儘管如此,依然一步一步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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