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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이사야 11:1–16

    今日默想:以賽亞書 11:1–16

    한경우··조회 47

    제목 : 이새의 줄기에서 난 싹

    어제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마지막은 벌목 장면이었다. 하나님이 도끼를 들어 앗수르의 삼림을 베셨다. 그래서 하늘을 찌를 듯 높던 나무들이 남김없이 넘어졌고, 그 숲은 다시 자라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첫 절에도 베인 나무가 하나 등장한다. 하지만 이 나무는 다르다.

    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기서 '줄기'라고 번역된 말은 베인 나무의 밑동, 즉 그루터기를 뜻한다. 그런데 이사야 6장을 보면 하나님이 이사야를 부르시며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가 된다"고 하셨다. 그때 하나님이 심어 두신 그 한마디가 오늘 여기서 싹이 되어 돋아난다. 그래 앗수르의 숲은 베여서 그것으로 끝이었지만, 이 그루터기에서는 새 생명이 나온다. 같은 벌목인데 결말이 정반대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왜 '다윗의 줄기'가 아니라 '이새의 줄기'인가.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다. 즉 왕이 되기 전, 베들레헴에서 양 치는 막내아들을 두었던 평범한 농부다. 그러니 하나님은 왕조의 영광이 시작되기 이전 자리까지 거슬러 올라가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화려한 왕궁에서 시작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다 잘려 나가고 밑동만 남은 자리,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 자리에서 새로 시작하신다.

    그렇다면 그 싹에서 나온 이는 어떤 왕인가.

    사 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이 왕은 자기 지혜로 다스리지 않는다. 위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다스린다. 그런데 이 대조를 잘 보아야 한다. 우리는 지난 며칠 동안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자들을 계속 보아 왔다. 이사야 5장에서 화 있을진저 하는 외침을 들은 자들 가운데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가 있었고, 어제 심판을 받은 앗수르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다'고 자랑한 자였다. 그러나 이 이새의 줄기에서 오실 왕은 정반대다. 자기 지혜를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을 받아 다스리는 왕이다.

    그럼 그 다스림은 어떤 모습인가.

    사 11:3-4上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이 본문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신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던 재판관들을 계속 만나 왔다. 뇌물을 사랑하여 고아를 위해 신원하지 않던 고관들이 그랬고, 불의한 법령을 만들어 가난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던 자들이 그랬다. 그들은 힘 있는 자의 얼굴과 그들의 모습을 보고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 왕은 눈과 귀에 의지하지 않으신다. 그렇기에 이 나라에서는 가난한 자가 마침내 공정한 재판을 받는다. 그리고 여기서 정의와 공의라는 두 낱말이 다시 등장한다. 5장의 포도원 노래에서 하나님이 그토록 바라셨으나 끝내 찾지 못하신 그 두 가지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맺지 못한 그 열매를 이 왕이 맺으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왕이 다스리는 나라의 모습을 6절부터 9절에서 비유를 통해 보여 준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는다. 송아지와 어린 사자가 함께 있는데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이끈다.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고,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을 한다. 즉 잡아먹는 자와 잡아먹히는 자의 관계가 사라진 세상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마치 창조의 형상을 회복한 모습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의 에덴동산과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나라가 될 수 있을까? 본문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 11:9下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렇다. 이사야 1장에서 하나님이 탄식하신 것이 무엇이었는가.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내 백성은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5장에서는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혀 간다고 하셨다. 그래 이사야서를 처음부터 관통해 온 문제가 바로 '하나님을 알지 못함'이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듯이 충만해진다.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것, 하나님의 창조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는 자들이 충만하여 이 온 땅에 퍼질 때, 서로를 잡아먹던 관계가 회복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10절에서 그 왕은 만민의 기치, 곧 깃발이 되신다. 5장에서 하나님이 깃발을 세워 심판의 군대를 부르셨는데, 이제 그 깃발이 열방을 불러들이는 구원의 신호가 된 것이다. 이어지는 11절 이하는 두 번째 출애굽의 그림이다. 애굽에서 자기 백성을 건지신 그 손을 하나님이 다시 펴시고, 여러 나라에 흩어진 백성을 다시 모으신다. 그리고 그때 에브라임과 유다가 더 이상 서로 시기하지 않는다. 서로를 뜯어먹던 형제가 화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마음에 한 가지 물음이 떠오른다. 이 말씀은 메시야를 소망하게 하는 예언의 말씀이다. 그리고 이 말씀은 메시야를 통해 이루어 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미 메시야로 오셨는데 왜 세상은 여전히 이런가. 이리는 여전히 양을 물고, 재판은 여전히 굽으며, 형제는 여전히 서로를 시기한다.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 이루신 일이 있다. 성령이 임하신 그 왕이 오셨고, 십자가에서 죄의 권세가 깨어졌으며, 그 깃발 아래로 열방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가 그 증거다. 그러나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눕는 세상은 다시 오실 때 완성된다. 죽음 자체가 없어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이에 살고 있다. 왕은 오셨으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사람의 죄악됨은 여전히 그대로다. '이미 그러나 아직' 그러니 지금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그 싹이 거짓이었다는 뜻이 아니다. 싹이 아직 나무로 자라 가는 중이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오늘 나는 이 왕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깊이 묵상한다. 눈에 보이는 대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나라, 가난한 자가 공정하게 대우받는 나라다. 나는 그 나라가 속히 임하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이 나라는 싹으로 자라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자라남이 시작되는 자리는 어디인가. 나는 그것이 우리가 함께 모여 있는 이 교회 공동체여야 한다. 우리 공동체를 떠올려 본다. 한국에서 온 지체와 대만 지체가 나란히 앉아 있고, 나이도 배경도 삶의 자리도 다 다른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함께 예배한다. 생각해 보면 이것 자체가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사는 그림의 작은 조각이다. 그래서 나는 이 조각이 더 자라기를 바란다. 우리 안에서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기를, 목소리 큰 사람이 아니라 목소리 작은 지체의 말이 들리기를, 힘없는 지체가 우리 가운데서 존귀하게 여겨지기를 바란다. 물론 그 나라를 내가 만들 수는 없다. 세우시는 분은 그 왕이시다. 나는 다만 그 왕이 다스리시는 방식대로 살아 보려 애쓰는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하나님,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시는 그 나라가 속히 임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날까지 우리 공동체 안에 그 나라의 모습이 조금씩 자라나게 하옵소서.

    中文 AI翻譯

    題目:從耶西樹幹所長出的嫩芽

    昨天我們所讀的經文,最後是一幕伐木的場景。神舉起斧頭,砍伐亞述的森林。那些曾高聳入雲的大樹,無一倖免地倒了下來,那片森林再也無法重生。然而,今天經文的第一節,同樣出現了一棵被砍伐的樹。但這棵樹截然不同。

    賽 11:1 從耶西的殘幹必發一條,從他根生的枝子必結果實。

    這裡譯為「殘幹」的字,指的是被砍伐後留下的樹墩,也就是樹根。然而,回到以賽亞書第六章,神呼召以賽亞時,在最後說了這樣一句話:「橡樹和聖樹雖被砍伐,樹墩子仍留著;這聖潔的種類在國中也是如此。」那時神所埋下的那一句話,如今在這裡破土而出,成為嫩芽。亞述的森林被砍伐,就此結束;但這樹墩卻生出新的生命。同樣是伐木,結局卻截然相反。

    在這裡,有一件事值得我們細細留意。為何是「耶西的樹幹」,而不是「大衛的樹幹」?耶西是大衛的父親,是一位在伯利恆牧羊、有個么兒的平凡農夫,是在王朝榮耀開始之前的人物。由此可見,神追溯到的,是王朝光輝尚未開始的那個起點。神並不從人們所期待的華麗王宮中起始,祂偏偏選擇從那個被砍得精光、只剩樹墩、看似一無所有的地方,重新開始。

    那麼,從那嫩芽所出的,是怎樣的一位王呢?

    賽 11:2 耶和華的靈必停在他身上,就是使他有智慧和聰明的靈,謀略和能力的靈,知識和敬畏耶和華的靈。

    這位王不以自己的智慧治理,而是以從上而來的神的靈治理。這裡的對比,我們必須仔細看清。過去幾天,我們一再看見那些自以為有智慧的人。在以賽亞書第五章那連串的「禍哉」呼聲中,有「自以為有智慧、自以為有聰明的人」;昨天受審判的亞述,也是那誇口說「我憑手的能力和智慧行了這事」的人。然而,從耶西樹幹所要來的這位王,卻截然相反。他不誇耀自己的智慧,乃是承受神的靈而治理的王。

    那麼,他的治理是何等模樣?

    賽 11:3-4上 他必以敬畏耶和華為樂;行審判時不憑眼見,斷是非時不憑耳聞。4 卻要以公義審判貧窮人,以正直判斷世上的謙卑人……

    這段經文說他行審判時不憑眼見,這意味著什麼?事實上,我們一路走來,不斷遇見那些憑眼所見來判決的官長——那些喜愛賄賂、不為孤兒申冤的首領,那些制定不義法令、剝奪貧窮人權利的人。他們看著有權有勢者的臉面,做出判決。然而這位王卻不倚靠眼和耳。因此,在他的國度裡,貧窮人終於得到公正的審判。在這裡,「公義」與「正直」這兩個詞再度出現,正是第五章葡萄園之歌中,神如此渴望,卻始終未能尋見的那兩樣。也就是說,神的百姓未能結出的果子,這位王必要結出。

    於是,第六至九節以比喻描繪了這位王所治理之國度的樣貌:豺狼與羊羔同住,豹子與山羊羔同臥;牛犢與少壯獅子同處,小孩子牽引牠們;獅子吃草如牛;吃奶的孩子玩耍在毒蛇的洞口。這是一個吞噬者與被吞噬者之間的關係不復存在的世界。而那樣的景象,彷彿是創造形象的恢復,如同神起初創造這世界時伊甸園的樣貌。那麼,怎樣才能成為這樣的國度?經文如此說明其緣由:

    賽 11:9下 因為認識耶和華的知識要充滿遍地,好像水充滿洋海一般。

    正是如此。以賽亞書第一章,神所發出的嘆息是什麼?「牛認識主人,驢認識主人的槽;以色列卻不認識,我的民卻不留意。」第五章又說:「我的民因無知識就被擄去。」可見,從以賽亞書一開始貫穿全書的問題,正是「不認識神」。然而在這個國度裡,認識耶和華的知識,要如水充滿洋海一般充滿其中。當真正認識神、完全明白神創造之旨意的人充滿、遍及全地時,那互相吞噬的關係就得以恢復。

    第十節說,那位王要成為萬民的旗幟,成為標竿。第五章中,神豎立旗幟召來審判的軍隊;如今,那旗幟成了召聚列國的救恩信號。接下來第十一節以後,是第二次出埃及的圖景:神再次伸出那曾拯救自己百姓出埃及的手,將分散在列國的子民重新聚集。那時,以法蓮與猶大不再彼此嫉妒,曾經互相撕咬的弟兄得以和好。

    然而,此刻我們心中會浮現一個問題。這段話語是激發我們對彌賽亞盼望的預言,說這一切將藉著彌賽亞成就。但耶穌既已作為彌賽亞降臨,世界為何仍是如此?豺狼依然撲咬羊羔,審判依然偏曲,弟兄依然彼此嫉妒。

    耶穌初次降臨時,有些事已然成就:那位有聖靈降臨的王來了,十字架上罪的權勢被打破,列國也開始歸回到那旗幟之下。事實上,我們自己就是那見證。然而,豺狼與羊羔同臥的世界,要等到祂再來時才得完全成就,因為那是一個連死亡本身也消失的世界。而我們,就活在這兩者之間。王已經來了,但國度尚未完成,人的罪性依然如故。「已然,卻尚未」——因此,今日世界的混亂,並不意味著那嫩芽是謊言,而是說明那嫩芽仍在長成大樹的途中。

    正因如此,今天我深深默想這位王所治理的國度——一個不憑外表判斷人的國度,一個貧窮人得到公平對待的國度。我切切等候那國度的快快降臨。然而,經文說那國度是從嫩芽中生長出來的。那麼,那生長的起點在哪裡?我相信,那正是我們一同聚集的這個教會群體。我想到我們的群體:來自韓國的肢體與台灣的肢體並肩而坐,年齡、背景、生命處境各異的人,在同一個地方一同敬拜。細細思量,這本身就是豺狼與羊羔同住圖景的一個小小縮影。因此,我盼望這個縮影能繼續成長——在我們當中,不以外貌判斷人;讓那聲音微小的肢體被聽見,而不只是聲音洪亮的人;讓軟弱的肢體在我們中間被視為尊貴。當然,那個國度不是我所能建立的,建立它的是那位王。我不過是一個試著按著那位王治理的方式而活的人。因此,今天我仍然禱告:神啊,願那以公義和正直治理的國度快快降臨。在那日來到之前,願那國度的樣式在我們的群體中一點一點地成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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