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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 시편 12:1-8

    今日默想:詩篇 12:1-8

    Kyoung Woo Han··조회 68

    제목 : 내가 이제 일어나

    시편 12편은 다윗이 입술의 말이 무너진 세계 한복판에서 부르는 노래다. 앞의 시편 11편에서 시인은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라고 물었다. 그리고 12편은 바로 그 질문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다만 이번에 무너진 터는 활과 화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입술에 의한 것이다.

    시편 12:1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시의 첫 단어는 "도우소서"라는 부르짖음이다. 시인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믿을 만한 사람을 하나도 찾지 못했다. '경건한 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에 붙들려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단수로 쓰였다. 결국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론 이것은 탄식시 특유의 절규이니 사실로 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다윗이 느낀 고립감만큼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이 무너졌는가? 다윗은 그것을 입술의 문제로 진단한다.

    시편 12:2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아첨하는 입술'은 히브리어로 '매끄러운 입술'이다. 걸리는 것이 없다. 듣기에 좋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그런데 그 매끄러운 말이 나오는 자리가 '두 마음'이다.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마음과 마음으로"가 된다. 마음이 두 개인 것이다. 하나의 마음으로 말하고 다른 하나의 마음으로 계산한다. 그래서 말은 매끄러운데 사람은 믿을 수가 없다. 이 사람들이 자기 입으로 자기 정체를 드러내는 장면이 4절이다.

    시편 12:4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이것은 단순한 거짓말쟁이의 말이 아니다. 이것은 주권 선언이다. 말로 현실을 만들고 말로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것이며, 결국 "우리를 주관할 자가 누구냐"라는 반역이다. 시편 2편에서 열방이 "우리가 그 맨 것을 끊자"라고 외쳤던 그 목소리와 같은 계열이다. 혀가 왕이 되면 하나님은 왕이 아니게 된다.

    그러니까 1절부터 4절까지, 세상은 온통 사람의 말로 가득 차 있다. 거짓말, 아첨, 자랑, 그리고 반역. 시인은 그 소음 한가운데 서 있고, 붙들 만한 말이 하나도 없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입을 여신다.

    시편 12: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이 한 절이 시편 12편의 핵심이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이 일어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본문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가련한 자들이 무엇을 잘했다는 말이 없다. 그들이 의로웠다는 말도 없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는 칭찬도 없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오직 하나, 그들의 '눌림'과 '탄식'뿐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 그저 신음했을 뿐이다. 여기 쓰인 '탄식'이라는 단어는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의 신음을 들으시고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할 때 쓰인 말이다. 신음은 자격이 아니다. 신음은 그저 신음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일어나시는 근거는 그들 안에 있지 않다. 그 근거는 하나님 자신 안에 있다. 1절에서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탄식했던 그 언약적 사랑이, 5절에서 하나님 자신에게서 터져 나온다. 사람에게서 헤세드가 끊어진 세상에서, 하나님이 친히 헤세드가 되신다. 그래서 "내가 이제 일어나"이다. 우리가 일어선 다음에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저앉아 신음할 때 하나님이 먼저 일어나신다. 그리고 이어지는 6절이, 이 시편 전체의 구조를 완성한다.

    시편 12: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2절과 6절을 나란히 놓아야 한다. 사람의 말은 '매끄러운 입술'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일곱 번 단련한 은'이다. 매끄러운 것과 단련된 것은 다르다. 매끄러운 말은 듣기에 좋지만 두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 불순물투성이다. 단련된 말씀은 일곱 번 불을 통과했으니 섞인 것이 하나도 없다. 일곱은 완전수다. 더 걸러낼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시편이 붙잡은 복음은 이것이다. 믿을 말이 하나도 없는 세계에서, 믿을 수 있는 말이 딱 하나 남았다. 그 말씀이 무너진 터 위에 남은 유일한 기둥이다. 다윗이 붙든 것은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였다.

    시편 12:8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

    그리고 시는 이렇게 끝난다. 악인들은 여전히 곳곳에서 날뛴다. 비열한 것이 여전히 높임을 받는다. 1절의 상황과 8절의 상황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나님이 일어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눈에 보이는 세상은 그대로다. 그런데 다윗은 노래를 멈춘다. 무엇이 달라졌기에 멈추는가. 상황이 아니다. 그 사이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 그것 하나가 달라졌다. 즉 이런 죄악의 세상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가겠다는 믿음의 선언이다.

    내 삶에도 8절 같은 자리가 있다. 대만에 처음 와서 보낸 초기의 몇 해가 그랬다. 말이 서툴러 하고 싶은 말의 절반도 하지 못했고, 사람들의 매끄러운 호의와 진심을 구별할 눈도 없었다. 기도했고, 기다렸고, 그런데 상황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하셨는데, 내 눈앞의 세상은 어제와 똑같았다. 그때 나를 붙든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사실 하나였다. 그래 우리가 붙드는 것은 바뀐 상황이 아니다. 우리가 붙드는 것은 일곱 번 단련된 말씀이다.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일어나." 그래 우리 공동체와 나는 아직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환경과 삶의 자리에서, 오직 그 말씀 하나를 붙들고 오늘을 살아간다.

    中文 AI翻譯

    題目:我如今要起來

    詩篇第12篇,是大衛在言語崩壞的世界中心所唱的詩歌。在前一篇詩篇11篇,詩人問道:「根基若毀壞,義人能做什麼呢?」而12篇,正是站在那個問題的延長線上。只不過這一次,崩壞的根基不是弓箭所造成的,而是人們的嘴唇所造成的。

    詩篇 12:1 耶和華啊,求你幫助!因為虔誠人斷絕了,世人中間的忠信人沒有了。

    詩篇的第一個字,是「求你幫助」的呼求。詩人環顧四周,卻一個可信之人也找不著。譯為「虔誠人」的希伯來文,指的是活在神聖約之愛中被緊緊握住的人,這裡用的是單數。意思就是,連一個人也不剩了。當然,這是哀歌詩篇特有的呼喊,不必視之為字面事實。然而大衛所感受到的那份孤立感,卻絲毫不是誇張。

    是什麼崩壞了?大衛將其診斷為嘴唇的問題。

    詩篇 12:2 人人向鄰舍說謊;他們說話,是嘴唇油滑,心口不一。

    「油滑的嘴唇」,在希伯來文裡是「光滑的嘴唇」。沒有任何阻礙,聽起來悅耳,滑順地流過去。然而那光滑的話語,卻出自「兩顆心」。希伯來文直譯是「以心又以心說話」。心有兩個——用一顆心說話,用另一顆心算計。所以話雖光滑,人卻無從信任。

    這些人用自己的口親自暴露自己本相的場景,出現在第4節。

    詩篇 12:4 他們曾說:我們的舌頭必得勝;我們的嘴唇是我們自己的,誰能作我們的主呢?

    這不只是謊言者的話,這是一份主權宣言。他們要用言語創造現實,用言語統治世界,最終高喊「誰能作我們的主」——這是一種悖逆。這與詩篇第2篇中列邦所喊的「我們要掙開他們的捆綁」,出自同一脈絡。當舌頭成為王,神便不再是王。

    因此,從第1節到第4節,世界充滿了人的聲音——謊言、諂媚、誇口,以及悖逆。詩人站在那片喧囂之中,找不到一句可以抓住的話。就在這時,神開口說話了。

    詩篇 12:5 耶和華說:因為困苦人受欺壓,貧窮人唉哼,我現在要起來,把他安置在他所切慕的穩妥之地。

    這一節,是詩篇第12篇的核心。在這裡,有一件我們必須緊緊抓住的事——神起來的原因是什麼?

    無論如何細讀這段經文,都找不到任何說這些困苦人做了什麼正確之事的話。沒有說他們是義人,也沒有稱讚他們堅守信仰到底。本文所說的,只有一件事:他們所受的「欺壓」與他們的「唉哼」。他們什麼也沒有做到,只是呻吟而已。這裡所用的「唉哼」一詞,正是出埃及記中神聽見以色列人在埃及呻吟、想起祂聖約時所用的那個字。呻吟不是資格,呻吟就只是呻吟。

    既然如此,神起來的根據不在他們身上,而在神自己裡面。在第1節中,詩人哀歎那聖約之愛已從世上消失——而在第5節,那愛從神自己身上迸發出來。在人與人之間慈愛(hesed)已斷絕的世界裡,神親自成為那慈愛(hesed)。所以才說「我現在要起來」。不是我們先站起來,神才來幫助我們;而是當我們癱倒在地、只能呻吟之時,神先起來了。

    緊接著的第6節,完成了整首詩篇的結構。

    詩篇 12:6 耶和華的言語是純淨的言語,如同銀子在泥爐中煉過七次。

    必須將第2節與第6節並排來看。人的話是「光滑的嘴唇」,神的話語是「煉過七次的銀子」。光滑的與精煉的,截然不同。光滑的話雖然悅耳,卻出自兩顆心,滿是雜質;精煉的話語已歷經七次火煉,沒有一絲雜質摻入。七是完全數,意思是再沒有任何需要過濾的了。

    因此,這首詩篇所抓住的福音是這樣的:在一個沒有任何話可以信任的世界裡,還剩下唯一一句可以信賴的話。那話語,是傾頹根基上唯一剩下的柱石。大衛所抓住的,不是環境的改變,而是神的話語本身。

    詩篇 12:8 下流人在世人中升高,就有惡人到處游行。

    詩篇就這樣結束了。惡人依然到處橫行,卑劣之事依然被高舉。第1節的景況與第8節的景況,絲毫沒有改變。神說祂要起來,然而眼前可見的世界一如往昔。

    然而大衛停止了歌唱。是什麼改變了,讓他能夠停下?不是環境。是在這期間神已經說話了——就是這一件事改變了。這是一個信仰的宣告:在這樣罪惡的世界裡,仍要信靠神、繼續前行。

    在我的生命中,也有像第8節一樣的時刻。剛來台灣初期的那幾年,就是如此。語言不夠流利,想說的話有一半都說不出口;也沒有能力分辨人們光滑的善意究竟是真心還是表面。我禱告,我等候,然而環境卻遲遲不改變。神說祂要作工,可我眼前的世界與昨天沒有兩樣。那時抓住我的,只有一件事——神已經說話了這個事實。

    是的,我們所抓住的,不是已經改變的環境,而是那煉過七次的話語。神已經說了:「我如今要起來。」就這樣,我們的群體與我,在那還沒有任何改變的處境與生命的位置上,單單抓住那一句話語,活過今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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