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목록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시편 9:1-20

    今日默想:詩篇 9:1-20

    Kyoung Woo Han··조회 58

    제목 :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시편 9편은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지어진 시다.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를 따라, 각 연의 첫 글자를 첫째 자모, 둘째 자모, 셋째 자모… 이렇게 차례로 맞추어 쓴 시다. 우리로 치면 "가, 나, 다, 라" 순서로 글머리를 맞추어 짓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 알파벳 배열이 9편에서 끝나지 않고 10편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원래 시편 9편과 10편이 한 편의 시였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70인경(헬라어 번역 성경)에서는 이 둘을 한 편으로 셈하기도 했다.

    이렇게 글자 순서를 먼저 맞추어 짓다 보니, 시의 내용이 하나의 논리로 촘촘히 이어지기보다 여러 장면을 나란히 나열해 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시편 9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 여러 이야기가 한자리에 모여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전심으로 드리는 감사가 있고, 원수가 물러가 넘어지는 장면이 있고, 영원히 보좌에 앉으신 심판이 있는가 하면, 뒤로 갈수록 다시 "일어나소서" 하고 부르짖는 간구로 옮겨간다. 그리고 그 부르짖음은 10편에서 더 깊고 간절해진다. 그러니까 9편은 감사로 시작해서 부르짖음으로 넘어가는 다리 같은 시인 셈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 여러 장면을 다 붙잡으려 하기보다, 그 가운데 가장 깊이 흐르는 한 줄기만 붙잡아 보고자 한다.

    시 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여기서 '주의 이름을 안다'는 말은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 속에서 그분을 안다는 뜻에 가깝다. 그리고 주님을 알기에 주님을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를 의지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내가 주님을 얼마나 신실하게 붙들었는가에 있지 않다.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라는 고백에 있다. 그래서 무게중심이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간다. 내 손이 약해도, 나를 붙드시는 그분의 손이 나를 놓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백은 17절과 18절로 이어진다.

    시 9:17-18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이 두 절에는 "잊다"라는 같은 낱말(히브리어로 '샤카흐')이 정반대 방향으로 놓여 있다. 한쪽에서는 악인이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스올로 돌아간다. 여기서 스올은 죽은 자들이 내려가는 자리, 곧 생명에서 끊어진 어둠의 자리다. 하나님을 잊은 자의 끝이 그러하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하나님이 궁핍한 자를 잊지 않으신다. 여기서 '궁핍한 자', '가난한 자'는 힘없이 눌리고 밀려난 사람들, 즉 세상이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세상이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 그래 연약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소망은 영원히 꺾이지 않는다.

    그런데 궁핍한 자가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그들 자신에게 있지 않고, 그들을 기억하시는 왕에게 있다. 이것이 이 시편의 감사와 부르짖음을 하나로 묶는 힘이다. 이미 잊지 않으셨던 그 하나님을 알기에, 아직 남은 고통 앞에서도 '일어나소서' 하고 부르짖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 나에게도 잊혀진 듯한 시절이 있었다. 대학 시절, 매일의 삶이 곤고했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철없이 하나님을 원망했다. 이만하면 떠나도 되지 않겠냐고, 몸부림치며 등을 돌리려 했다. 솔직히 속상했고 억울했다. 왜 우리는 그렇게 열심히 믿어도 가난하고 곤고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내가 떠나려 몸부림칠 때에도 잊지 않으시고 도리어 찾아와 주셨다. 연약한 나를 끝내 실망시키지 않으셨다. 지금 돌아보면, 그 곤고한 골짜기마다 나보다 앞서 계셨던 손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저 그 하나님의 은혜와 잊지 않아 주신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오늘도 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찬양하는 하루를 보낼 수 있길 기도한다.

    中文 AI翻譯

    題目:不會忘記的神

    詩篇第9篇是以一種特別的方式寫成的詩。它按照希伯來字母的順序,將每一節的第一個字母依序排列——第一個字母、第二個字母、第三個字母……如此類推。若以中文來比喻,就像按照「ㄅ、ㄆ、ㄇ、ㄈ」的順序來開頭寫作一般。值得注意的是,這套字母排列並不在第9篇結束,而是一直延續到第10篇。因此,許多學者認為詩篇第9篇與第10篇原本應是同一首詩。事實上,在七十士譯本(希臘文譯本)中,這兩篇確實被合計為一篇。

    由於寫作時必須先配合字母順序,詩的內容並不像一條緊密連貫的邏輯線索,反而像是將許多場景並排陳列一般。因此,從頭到尾讀完詩篇第9篇,會給人一種許多故事匯聚一堂的印象。有全心獻上的感謝,有仇敵退去跌倒的場景,有永遠坐在寶座上施行審判的畫面,而到了後半段,又轉向「求祢起來」的呼求。這呼求在第10篇中更加深沉、更加迫切。因此,第9篇可說是一首從感謝過渡到呼求的橋樑之詩。

    所以今天,我不打算捕捉所有的場景,而只想抓住其中流淌最深的那一條主線。

    詩篇 9:10 耶和華啊,認識祢名的人要倚靠祢,因為祢沒有離棄尋求祢的人。

    這裡「認識祢的名」,並不是說對神有許多認識或資訊上的了解,而是更接近於在關係中認識祂的意思。正因為認識主,才能倚靠主。然而,我們倚靠主的根據在哪裡?並不在於我自己多麼忠心地抓住了祂,而在於「祢沒有離棄尋求祢的人」這一份告白之中。因此,重心從我身上轉移到了神身上——即使我的手軟弱無力,托住我的那雙手也不會放開我。 這樣的告白延續到了第17節與第18節。

    詩篇 9:17-18 惡人——就是忘記神的外邦人——都必歸到陰間。因為窮乏人不總是被忘記;困苦人的指望也不永遠落空。

    這兩節經文中,「忘記」這個詞(希伯來文「שָׁכַח」,shakaḥ)以截然相反的方向出現了兩次。一方面,惡人忘記了神,因此他們歸回陰間。陰間是死人所去之處,是與生命隔絕的黑暗之地。忘記神的人,其結局便是如此。然而另一方面,神卻不忘記窮乏的人。這裡「窮乏人」、「困苦人」,指的是那些無力、被壓制、被排擠的人——也就是世界容易遺忘的人。但是,縱然世界忘記了他們,神卻不會忘記。軟弱的人,神不會忘記;因此,他們的盼望永遠不會折斷。

    而窮乏人不被遺忘的原因,不在於他們自身,而在於那位記念他們的王。這正是將這首詩的感謝與呼求凝聚為一體的力量。正因為認識那位從未忘記的神,面對尚未消去的苦難,才依然能夠呼求:「求祢起來!」

    在我自己的生命中,也曾有過那種彷彿被遺忘的歲月。大學時期,每一天的生活都艱難困苦,前路茫茫,看不見方向。那時,我幼稚地埋怨神,掙扎著想要轉身離去,彷彿這樣就可以了斷一切。說實話,我心裡又委屈又憤恨。我不明白,為什麼我們那麼努力地信靠,卻依然要在貧窮與困苦中掙扎。然而,神沒有丟棄那樣的我。當我掙扎著想要離去的時候,祂不但沒有忘記我,反而主動來尋找我。祂終究沒有讓軟弱的我失望。如今回頭看,每一個艱難的幽谷之中,都有那雙比我先到的手。因此,我只能感謝那位神的恩典——感謝祂不曾忘記我的恩典。今天,願我也能記念那位神的恩典,度過一個充滿讚美的一天。

    댓글 / 留言 (0)

    로딩 중...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留言需要先登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