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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시편 1:1-6

    今日默想:詩篇1:1-6

    Kyoung Woo Han··조회 40

    제목 :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

    시편 1편은 너무나 잘 알려진 시다.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 가운데도 이미 외우고 있는 분이 많을 것이다. 의인과 악인, 두 길을 선명하게 갈라놓는 시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 나는 악인은 잠시 옆에 내려놓고, 시편 1편에서 이야기하는 의인에만 집중해 보려 한다. 이 복 있는 사람을...

    먼저 한 가지를 분명히 해 두고 싶다. 1절의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시는 장면이 아니다. 히브리어 첫 단어 '아쉬레(אַשְׁרֵי)'는 "오, 복되도다 이 사람이여" 하는 감탄에 가깝다. 그러니까 이 시는 '이렇게 살면 복을 주겠다'라든가 '이렇게 살면 복을 받는다' 라는 거래의 선언이 아니라, 의인의 삶이 이미 얼마나 복된지를 감탄하며 그려 보이는 그림이다. 이 구분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차이를 놓치면 시편 1편 전체가 '잘 살아서 의인이 되면 상 받는다'는 이야기로 쪼그라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1절은 먼저 그가 무엇을 하지 않는지를 말한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그런데 시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2절에서 방향을 정반대로 튼다.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즐거워하여'에 해당하는 원어는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다. 율법이 그에게 짐이 아니라 즐거움이라 의미이다. 그리고 '묵상하다'로 옮긴 '하가'라는 단어는 조용히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소리를 내어 읊조리는 것에 가깝다.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그림이다. 그것도 주야로, 곧 끊임없이. 그러니까 의인은 말씀을 이따금 들여다보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이 아예 몸에 밴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단지 말씀을 외우는 자가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내며 곱씹는 사람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런 사람을 나무에 비유한다.

    시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여기 '심은'이라는 단어의 원어를 잘 보면 수동태로 되어 있다. 그 나무는 저절로 자란 나무가 아니라, 누군가가 옮겨다 심은 나무다. 그러니까 이 나무는 자기가 설 자리를 자기가 고른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손이 이 나무를 뽑아서, 하필 물가에, 옮겨 심어 준 것이다.

    그런데 그 심긴 자리가 어디인가. '시냇가'라고 번역되었지만, 이것은 자연히 흐르는 강이 아니라 사람이 낸 관개 수로에 더 가깝다. 가뭄이 와도 마르지 않도록, 늘 물을 끌어다 대 주는 자리. 그러니 이 나무가 철 따라 열매를 맺는 것은 이 나무가 특별히 강해서가 아니다. 물을 끊임없이 공급받는 자리에 심겼기 때문이다. 보라, 2절의 묵상과 3절의 나무는 결국 한 삶이다. 물가에 심겼기에 끊임없이 물을 빨아들이는 것이고, 그 물을 빨아들이는 일이 곧 주야로 말씀을 곱씹는 삶이다.

    그러면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는 무슨 뜻인가. 솔직히 이 구절은 오해받기 가장 쉽다. 마치 의인에게는 모든 일이 술술 풀린다는 보장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여기서 '형통'은 일이 다 잘 풀린다는 거래적 약속이 아니라,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나무처럼 그 삶이 근원에서부터 견고하다는 뜻이다. 물가에 뿌리내린 견고함이지, 만사형통의 보증수표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을 마지막 6절이 하나님 편에서 떠받친다.

    시 1: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인정하시나'로 옮겨진 원어는 '야다', 곧 '알다'라는 단어이다. 그런데 이 앎은 머리로 아는 인지가 아니다. 돌보고, 지켜보고, 품으시는 언약적인 앎이다. 아모스가 "내가 너희만을 알았나니"(암 3:2) 할 때의 바로 그 앎. 그러니 의인이 끝내 안전한 이유는 의인이 잘 버텨서가 아니다. 여호와께서 그 길을 아시고 지키시기 때문이다. 그래, 이게 핵심이다. 이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인의 복이 의인의 노력에서 나온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하나님 아시고 지키시는 자리에 있는 상태를 노래하는 것이다.

    그래 나는 솔직히 자주 잊는다. 사역에 어떤 열매가 보이면, 어느새 그것이 내가 일군 것인 양 여긴다. 설교가 은혜로웠다는 말을 들으면 내심 우쭐하고, 공동체가 자라는 것 같으면 마치 내 수고의 대가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시편 1편 앞에 서면 그 생각이 무너진다. 그래 나는 내가 심지 않았다. 내가 이 자리를 고른 것이 아니다. 목사라는 이 자리, 이 공동체, 이 대만이라는 부르심... 그 어느 것 하나 내가 선택한 것은 없다. 그 분의 손이 나를 뽑아 여기 옮겨 심으신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마르지 않는 것은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물을 대 주시는 그 수로 곁에 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미 항상 내 길을 아시고 지키고 계신다. 그렇기에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 은혜를 우리 공동체와 대만교회를 섬김으로 항상 나눌 수 있길 소망한다.

    中文 AI翻譯

    題目:栽在溪水旁的樹

    詩篇第1篇是一首廣為人知的詩。我們群體中的肢體,想必已有許多人將它背熟。這首詩也以清晰的筆觸,將義人與惡人的兩條路截然劃分。然而今天,我想暫且將惡人放在一旁,單單專注於詩篇第1篇所描繪的義人——這位有福之人……

    首先,我想釐清一件事。第1節的「有福的人」,並非神賜下祝福的場景。希伯來文的第一個詞「אַשְׁרֵי(Ashrei)」,更接近一聲發自內心的驚嘆:「哦,這人何等有福啊!」因此,這首詩並不是「如此而活便賜你福氣」或「如此而活便得到祝福」這樣的交換宣告,而是以讚嘆的筆觸,描繪義人的生命本已何等蒙福。這個區分至關重要——若忽略了這份差異,詩篇第1篇整體便會縮減成「好好做人成為義人就得賞賜」的故事。

    那麼,這位有福的人是怎樣的人呢?第1節首先說明他不做什麼:不從惡人的計謀,不站罪人的道路,不坐褻慢人的座位。然而詩人並未就此停筆,在第2節將方向完全逆轉。

    詩1:2 惟喜愛耶和華的律法,晝夜思想,這人便為有福!

    「喜愛」這個詞的原文,傳達的不是義務,而是喜悅。律法對他而言不是重擔,而是歡喜。而「默想」所對應的希伯來文「הָגָה(Hagah)」,並非靜靜地在心中默思,而是更接近低聲吟詠、口中喃喃誦讀的樣子。而且是晝夜,也就是不間斷地。所以,義人不是偶爾翻閱話語的人,而是話語已然融入生命、滲透全身的人。不僅如此,他不單是背誦話語之人,更是按著話語活出生命、反覆咀嚼的人。

    詩人便以樹木來比喻這樣的人。

    詩1:3 他要像一棵樹栽在溪水旁,按時候結果子,葉子也不枯乾。凡他所做的盡都順利。

    仔細留意「栽」這個詞的原文,會發現它是被動式。那棵樹不是自然生長的,而是被某人移植過來的。也就是說,這棵樹並非自己選定立足之處,而是有人的手將它拔起,特意將它移植到水邊。

    那麼,它被栽植的地方是哪裡呢?雖然譯為「溪水旁」,但這裡更接近人工開鑿的灌溉渠道,而非自然流淌的河流——是一個即便旱季來臨也不乾涸、始終能引水灌溉的地方。因此,這棵樹能按時結果,並非因為它格外強壯,而是因為它被栽在水源不斷供應的地方。你看,第2節的默想與第3節的樹木,歸根結柢是同一個生命。因為栽在水邊,所以能不斷汲水;而那不斷汲水的生命,正是晝夜咀嚼話語的生命。

    那麼,「凡他所做的盡都順利」又是什麼意思呢?坦白說,這句話最容易被誤解,聽起來像是義人凡事都能一帆風順的保證。然而並非如此。這裡的「順利」,不是「萬事如意」的交換式應許,而是像旱季中不枯乾的樹木一樣,那生命從根源便是穩固的。這是紮根水邊的穩固,而非萬事亨通的保票。

    這一切,由最後的第6節從神的角度加以支撐。

    詩1:6 因為耶和華知道義人的道路,惡人的道路卻必滅亡。

    「知道」所對應的原文是「יָדַע(Yada)」,意思是「認識、知道」。然而這種「知」並非頭腦上的認知,而是帶有眷顧、看顧、懷抱的盟約之知。正如阿摩司書所說「在地上萬族中,我只認識你們」(摩3:2)中的那種「認識」。因此,義人終究得以安穩,並非因為義人撐得夠好,而是因為耶和華認識並看顧那條路。是的,這才是核心所在。這首詩從頭至尾,從未說義人的福氣源自義人自身的努力,而是在歌頌那處於神所認識、所看顧之位置的生命狀態。

    說實話,我常常忘記這一點。當事工出現某些果子,不知不覺便以為那是我親手耕耘的成果。聽到有人說講道蒙了恩典,心中便暗自得意;看見群體逐漸成長,有時也會以為那是我辛勞的回報。然而,每當站在詩篇第1篇面前,這樣的念頭便轟然崩塌。是的,我並非自己栽種自己。這個位置不是我自己選的。牧師這個位分、這個群體、蒙召來到台灣……這一切,沒有任何一樣是我自己選擇的。是祂的手將我拔起,移植到這裡。因此,我之所以沒有枯乾,不是因為我夠強壯,而是因為我被栽在那不斷引水灌溉的渠道旁。耶和華上帝已然始終認識並看顧我的道路。正因如此,我是一個蒙福的人。我切切盼望,能藉著服事這個群體與台灣的教會,將這份恩典不斷地與眾人分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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