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이사야 9:8–10:4
今日默想:以賽亞書 9:8–10:4
제목 :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어제 우리가 읽은 본문은 빛이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그 나라를 정의와 공의로 세우시며,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신다는 약속이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빛을 등지고 선 사람들의 이야기다.
오늘 본문은 한 편의 시다. 네 개의 연으로 되어 있는데, 각 연이 똑같은 후렴으로 닫힌다.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이 후렴이 네 번 반복된다. 그리고 사실 이 후렴 한 줄이 시 전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럼 이 시의 네 연을 차례로 따라가 보자.
첫째 연에서 하나님은 빛을 등진 그들의 마음을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마음이 뱉은 말을 그대로 인용하신다.
사 9:10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는도다
집이 무너지고 나무가 찍혔다. 하나님이 치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회개를 하지 않고 재건 계획을 세운다. 그것도 더 좋은 자재로 짓겠다고 한다. 값싼 벽돌 대신 다듬은 돌로, 흔한 뽕나무 대신 귀한 백향목으로 재건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언뜻 들으면 대단한 각오처럼 들린다. 무너져도 다시 일어서겠다는 불굴의 의지 같다. 그러나 성경은 이 말을 칭찬하지 않는다. 도리어 교만이라 부른다. 왜 그런가. 무너짐이 하나님의 신호였는데, 그들은 그 신호를 읽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심판 앞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건축 자재가 아니라 돌이킨 마음이었다.
그래서 둘째 연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 9:13 그리하여도 그 백성이 자기들을 치시는 이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그래 여기서 심판의 목적이 드러난다.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치신 것은 멸하시려는 것이 아니었다.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백성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머리와 꼬리를 하루 사이에 끊으신다고 하시는데, 머리는 존귀한 지도자들이요, 꼬리는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고 그 의미를 알려주신다. 즉 위에서 이끄는 자와 아래에서 부추기는 자가 함께 끊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하나님이 그들의 고아와 과부조차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겠다고 하신다. 잘 생각해 보자. 원래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변호하라 명하신 분이 아니신가. 그런데 그들 조차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고 하신다. 그 이유는 그들이 다 사악하여 악을 행하며 모든 입으로 망령되이 말하기 때문이다. 곧 부패가 지도층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까지 스며들었다는 뜻이다.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셋째 연은 그 부패가 어떻게 번지는지를 보여 준다. 악행이 불 타오르는 것 같다고 한다. 앞의 두 연에서는 하나님이 심판을 보내셨는데, 여기서는 악 자체가 불이 되어 스스로를 태운다. 그렇다. 죄는 이미 그 안에 파괴의 성질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 불이 붙은 사회의 모습이 처참하다. 사람이 자기 형제를 아끼지 않는다. 왼쪽으로 먹어도 배고프고 오른쪽으로 먹어도 부족하다. 그래서 므낫세가 에브라임을 삼키고 에브라임이 므낫세를 삼킨다. 이 둘은 요셉의 두 아들에게서 나온 형제 지파다. 한 몸에서 나온 형제가 서로를 뜯어먹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둘이 손을 잡고 유다를 친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식으면, 그 다음에는 반드시 형제를 향한 마음이 식는 것이다.
넷째 연은 결이 조금 다르다. 여기서는 불의가 문서가 된다.
사 10:1-2 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2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앞의 세 연이 교만과 불신과 폭력이었다면, 여기서는 그것이 제도가 된다. 불의한 것을 법령을 만들고 판결문을 쓴다. 결국 불의가 개인의 충동이 아니라 나라의 규칙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법이 겨누는 대상이 누구인가. 바로 가난한 자와 과부와 고아다. 하나님이 1장에서 변호하라고 명하신 바로 그 사람들이다. 권력자들이 지켜 주어야 하는 자들을 이제 법이 사냥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권력자들을 향해 벌하시는 날에 너희가 어디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의 영화를 어디에 두려느냐고 물으신다. 즉 약한 자에게서 빼앗아 쌓은 그 영화를 어디에 숨기겠느냐는 물음이다. 그리고 다시 후렴이 울리며 시가 닫힌다.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이제 그 후렴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하나님의 손이 거두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진노를 즐기셔서가 아니다. 그 심판이 아직 목적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돌아오게 하시려고 치셨는데 돌아오지 않았으니, 손이 그대로 펴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무서운 후렴 안에는 뜻밖의 소식도 들어 있다. 손이 아직 펴져 있다는 것은, 이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우리가 돌아오길 기다리신다는 표현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첫째 연의 벽돌이 무너졌으나 다듬은 돌로 쌓겠다는 말을 깊게 묵상한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 말이 낯설지 않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다시 짜는 것이었다. 다시 더 열심히 준비하고, 더 좋은 방법을 찾고, 더 부지런히 뛰면 될 것이라 여겼다. 무너짐이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한참 뒤에야 들었다. 돌아보면 그 시절 나는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자재를 찾고 있었다. 어제 주일에 나는 사무엘상 8장을 설교했다. 이스라엘이 사무엘에게 나아와 우리에게도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던 장면이다. 그때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하신 말씀을 되새기어 본다. 그들이 버린 것은 네가 아니라 나라고 하셨다. 눈에 보이는 왕이 있어야 안심이 되는 마음, 하나님의 다스리심보다 내 손에 잡히는 것이 더 미더운 마음. 오늘 본문의 그 다듬은 돌과 백향목이 결국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우상숭배였다. 그래서 오늘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더 나은 계획이 아니라 돌이킨 마음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내 열심으로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치시는 그분께로 돌아서야 한다는 것이라는 것을... 그래 어제 우리가 읽은 대로, 이루시는 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그렇다면 나의 몫은 오늘 내게 맡겨진 자리에서 순종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 무너진 자리에서 자재를 고르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돌아서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題目:祂的手仍然伸展
昨天我們所讀的經文是光。一個孩子為我們而生,祂要以公平與公義建立那國度,萬軍之耶和華的熱心必成就這事——那是一個應許。然而今天的經文,講的是那些背對那光而立之人的故事。
今天的經文是一首詩。全詩共有四節,每節以同一句副歌作結:「雖然如此,耶和華的怒氣還未轉消,祂的手仍然伸展。」這句副歌重複了四次。事實上,這一句副歌,就是這首詩所要說的全部。讓我們依序跟隨這首詩的四節。
第一節中,神說,那些背對光明之人的心,是驕傲剛硬的心。祂並直接引用了那心所吐出的話:
賽 9:10 磚牆塌了,我們必用鑿石建築;桑樹砍了,我們必用香柏樹代替。
房屋倒塌,樹木被砍——那是神所擊打的。然而他們非但沒有悔改,反而擬定重建計畫,還說要用更好的材料來建造:以鑿石取代廉價的磚頭,以珍貴的香柏木取代普通的桑樹。乍聽之下,這話似乎顯出非凡的決心,像是縱然跌倒也要重新站立的不屈意志。然而聖經並不稱許這話,反而稱之為驕傲。為何如此?因為那倒塌本是神發出的信號,而他們拒絕讀懂這信號。在那審判面前,他們所需要的不是更好的建材,而是悔改轉回的心。
因此,第二節如此說道:
賽 9:13 這樣,百姓仍不歸向擊打他們的主,也不尋求萬軍之耶和華。
在這裡,審判的目的顯露出來。神擊打祂的百姓,並非要滅絕他們,而是要使他們轉回。然而那百姓並不轉回。於是神說,祂要在一日之間剪除以色列的頭和尾——頭是尊貴的領袖,尾是教導謊言的先知。也就是說,在上引導之人與在下慫恿之人,都一同被剪除。神還說,連他們當中的孤兒和寡婦,祂也不憐恤。請仔細想想——神原本不是命令人要為孤兒和寡婦伸冤的那一位嗎?然而祂卻說連他們也不憐恤。原因在於,他們人人都是邪惡的,行事作惡,滿口妄言。這意味著,腐敗不只存在於領導階層,更已滲透到社會最底層。無一例外。
第三節展示了那腐敗如何蔓延。經文說,惡行如同烈火燃燒。前兩節是神差派審判而來,但在這裡,惡本身成了火,自行焚燒。是的,罪惡在其內部就已懷藏毀滅的本質。那被火燃著之社會的景象,是何等悽慘——人不顧惜自己的弟兄,向左吞吃仍不飽足,向右吞吃仍不滿足。於是瑪拿西吞吃以法蓮,以法蓮吞吃瑪拿西。這兩支派同出於約瑟的兩個兒子,是同根而生的兄弟,如今卻互相撕咬。而後這兩者聯手攻擊猶大。由此可見,當人心向神的愛冷淡,接下來必然是向弟兄的愛也隨之冷淡。
第四節的筆調略有不同。在這裡,不義成了文字。
賽 10:1-2 禍哉!那些設立不義之律例的,和那些筆錄奸惡之規章的,為要屈枉窮乏人,奪去我民中困苦人的權利,以寡婦當作擄物,以孤兒當作掠物。
若說前三節是驕傲、不信與暴力,那麼在這裡,這一切已成為制度。不義被寫成法令,化為判決書。最終,不義不再只是個人的衝動,而成了國家的規則。那麼,這法令所瞄準的對象是誰?正是窮人、寡婦與孤兒——正是神在第一章命令要為之伸冤的那些人。那些本當受權力者保護的人,如今卻被律法所獵取。因此,神向那些掌權者發問:在祂懲罰的日子來到時,你們要逃到哪裡去求幫助?你們積聚的榮華要存放在哪裡?換言之,那從弱者身上剝奪而來所堆積的榮華,你們能藏到哪裡去?然後副歌再次響起,詩篇就此落幕:「耶和華的怒氣還未轉消,祂的手仍然伸展。」
如今,那副歌的意涵已然清晰。神的手為何不收回?不是因為神喜悅憤怒,而是因為那審判尚未成就它的目的。祂擊打,是為要使人轉回;既然人仍未轉回,祂的手便依然伸展。因此,在這令人敬畏的副歌之中,竟也藏著出人意料的消息。手仍然伸展,不只意味著這故事還未結束,更意味著神仍在等待我們轉回。
今天,我深深默想第一節中那句話——「磚牆塌了,我們必用鑿石建築」。令我慚愧的是,這話對我並不陌生。在我的人生中,當事情不順遂時,我最先做的,或許不是跪下,而是重新擬定計畫——再更努力地準備,尋找更好的方法,更勤奮地奔跑,以為這樣就夠了。「那倒塌或許正是神在向我說話」——這個念頭,往往要過了很久之後才浮現。回頭看,那些歲月裡,我所尋找的並不是神,而是更好的建材。
上個主日,我講道的經文是撒母耳記上第八章——以色列人來到撒母耳面前,要求立王治理他們,像列國一樣。那時神對撒母耳所說的話,我再次細細回味:「他們所棄絕的不是你,而是我。」渴望眼睛看得見的王才能安心的心,對神的治理的信任不如手中所握之物確實的心——今天經文中那鑿石與香柏木,歸根結底不也是同一回事嗎?那就是偶像崇拜。
因此,今天我再次確認:神對我所要求的,不是更好的計畫,而是悔改轉回的心。不是憑著我的熱心堆砌什麼,而是要轉向那擊打我的那一位。正如昨天我們所讀的——成就這事的,是萬軍之耶和華。那麼,我的份,就只是在今天所蒙託付的崗位上順服而已。
所以,我今天禱告:願我不做一個在廢墟中挑選建材的人,而做一個在那廢墟中轉向神的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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