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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이사야 8:1–22

    今日默想:以賽亞書 8:1–22

    한경우··조회 65

    제목 : 실로아의 잔잔한 물

    이사야 7장에서 아하스는 하나님이 아니라 앗수르를 붙들었다. 그런데 오늘 읽은 8장도 그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왕 한 사람이 아니라 백성 전체가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을 책망하신다. 그리고 그들의 향한 메시지를 물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8장 앞 부분에는 이사야와 그 가족을 통해 하나님의 예언을 공적으로 기록함으로 참예언임을 증명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 8:6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

    실로아(실로암)는 예루살렘 성안으로 조용히 흘러드는 샘물이다. 요란하지 않고,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물이 다윗 성의 생명줄이었다. 이 실로아가 바로 하나님의 공급을 상징한다.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끊이지 않고 흐르는 하나님의 돌보심이다. 그런데 백성은 이 잔잔한 물을 시시하게 여겼다. 그리고 눈을 돌려 거대한 강을 바라보았다. 앗수르라는 큰 물이다. 큰 것이 더 미더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좋다, 그 큰 물을 원하느냐.

    사 8:7-8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8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그 큰 물이, 구원이 아니라 홍수가 된다. 골짜기를 채우고 언덕을 넘어, 유다의 목까지 차오른다. 바로 사람들이 의지한 것이 그 사람들을 삼키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하나님이 공급하여 주시는 잔잔한 물을 버린 대가가 목까지 차는 홍수였다. 그런데 그 홍수의 한복판에서 한 이름이 선포된다. '임마누엘' 어제 우리가 본 그 이름이다. 땅이 홍수에 잠겨도, 그 땅은 여전히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땅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어지는 9절과 10절에서, 이사야는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며 그 백성을 공격하고자 하는 모든 열방을 향해 외친다. 너희가 아무리 계략을 세우고, 하나님의 백성을 침략하려고 할찌라도 그 계략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명령하신다. 두려움의 방향을 바꾸라는 것이다.

    사 8:13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그렇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아람과 북이스라엘 동맹을 두려워하고, 그 시대의 가장 큰 강대국인 앗수르를 두려워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정작 두려워할 것은 그 나라와 제국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 인간에게 두려움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나뉘고 그것은 서로 반비례한다. 즉 하나님이 크게 보이면 제국은 작아지고, 제국이 크게 보이면 하나님이 작아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두 얼굴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을 붙드는 자에게는 피할 바위, 곧 성소가 되신다. 그러나 창조주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돌이 되신다. 같은 바위인데, 어떤 이는 그 위에 서고 어떤 이는 거기에 걸려 넘어진다.

    그렇기에 이 어두운 때에 이사야는 그 하나님을 기다린다.

    사 8:17 이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그렇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시는 때, 곧 응답이 보이지 않는 때에도 그 하나님을 기다리며 바라볼 것이라고 고백한다. 남 유다의 왕 아하스와 그 백성들이 보이는 힘을 붙들었다면, 이사야는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그 하나님을 기다릴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 이것이 믿음이다. 이사야는 그 믿음의 고백을 선포하는 것이다.

    반면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하는 백성은 엉뚱한 곳으로 내려간다. 신접한 자와 마술사를 찾아가는 것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가 결국 죽은 자에게 미래를 묻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는 산 자를 위하여 어찌 죽은 자에게 묻겠느냐고 질문하고 있다. 그렇다. 참 빛과 거짓 빛을 가르는 기준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에 맞지 않으면 그것은 빛이 아니다. 그렇기에 8장은 하나님을 버린 백성들이 빛을 읽고 흑암과 고통의 어둠 속에 있음을 선언함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그러나 이 어둠은 끝이 아니다. 바로 다음 장에서,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나는 성지순례에서 봤었던 실로아의 작은 우물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실로암으로 들어오는 히스기야의 수로 역시 정말 작은 물줄기임을 알기에... 이 메시지가 더욱 깊이 묵상된다. 한국의 한강과 대만의 담수이강과 비교하면 그 실로아의 물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임을 알기에 이 비유를 너무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묵상 속에서 얼마 전에 아들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들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풍성하게 주시지 않지? 꼭 필요한 것만 주셔... 물론 감사하지만, 나도 좀 풍요로웠으면 좋겠어'라고 말했었다. 물론 그 대화 끝에 하나님이 한 번도 우리를 굶기시지 않은 은혜에 감사했다. 그래 하나님의 공급은 대개 실로아를 닮았다. 요란하지 않고,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매일 주어지는 일용할 양식, 곁을 지켜 주는 몇 사람, 어제도 오늘도 별일 없이 흐르는 잔잔한 일상. 이런 것들은 너무 조용해서 은혜인 줄도 모르고 지나가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그 잔잔한 물을 시시하게 여긴다. 그리고 눈을 들어 거대한 강을 바라본다. 더 눈에 띄는 큰 강과 성, 더 많은 사람의 인정과 성공이라는 타이틀. 그 이유는 그 큰 물이 더 미더워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유다 백성이 실로아를 버리고 앗수르의 큰 강을 우러렀듯이 우리도 여전히 큰 강을 소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본문이 나에게 묻는다. 그 거대한 강이 정말 너를 살렸느냐고... 돌아보면, 내가 우러러보던 큰 물들은 나를 채워 주기는커녕 도리어 목까지 차오르는 걱정과 비교와 불안이 되곤 했다. 사람이 의지한 것이 사람을 삼킨다는 이 말씀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러니 나는 오늘 다시 실로아 앞에 서고 싶다. 요란하지 않아도 끊이지 않고 흐르는 그 물, 눈에 띄지 않아도 나를 여기까지 살려 온 하나님의 잔잔한 공급을 다시 귀히 여기고 싶다. 그리고 그 잔잔한 물 곁에서 이사야처럼 하나님을 기다리며 뿌리내리기를 소망한다.

    中文 AI翻譯

    題目:西羅亞那平靜的水

    在以賽亞書第七章,亞哈斯抓住的不是神,而是亞述。今天讀到的第八章,正是那段敘事的延伸。只是這一次,神責備的不再是一個王,而是整個百姓都犯了同樣的錯。神藉著水的比喻,向他們傳達了信息。

    第八章的前半部分,記載了神藉著以賽亞和他的家人將預言公開記錄下來,以此證明這是真實的預言。接著,神向猶大百姓傳遞了這樣的警告:

    賽 8:6 這百姓藐視西羅亞緩流的水,喜悅利汛和利瑪利的兒子。

    西羅亞(西羅亞池)是靜靜流入耶路撒冷城中的泉水。它不喧騰,也不顯眼。然而,那水卻是大衛城的生命線。這西羅亞,正是神供應的象徵——不動聲色,卻從不止息地流淌著的神的看顧。然而百姓卻輕看了這平靜的水,轉目望向那浩大的河流——亞述這條大水。因為大的,看起來更可靠。於是神說:好,你們既然想要那大水——

    賽 8:7-8 因此,主必使大河翻騰的水猛然沖來,就是亞述王和他的一切威勢,必漲過一切的河道,走遍一切的河岸,8 沖入猶大,漲溢過境,直漫到頸項。以馬內利啊,他展開翅膀,遍滿你的全地。

    他們如此渴慕的那大水,帶來的不是拯救,而是洪滔。漫過山谷,越過山嶺,直漲到猶大的頸項。這正是——人所倚靠的,終將吞噬那人。棄絕神所賜平靜之水的代價,是沒頂的洪流。然而,就在洪水的中心,一個名字被宣告出來——「以馬內利」,正是我們昨日所見的那個名字。縱然大地被洪水淹沒,那地依然是神與我們同在的地。

    因此,在接續的第九節與第十節,以賽亞轉而向一切對抗神、企圖攻擊神百姓的列邦高聲呼喊:你們無論如何謀算、意圖入侵神的百姓,你們的謀算都必落空——因為神與我們同在。

    隨後,神藉著以賽亞向祂的百姓發出命令:轉換你們懼怕的方向。

    賽 8:13 但要尊萬軍之耶和華為聖,以祂為你們所當怕的,所當畏懼的。

    是的。神國度的百姓懼怕亞蘭與北以色列的聯盟,懼怕那時代最強大的帝國亞述。然而神說,真正當懼怕的,不是那些國家與帝國,而是創造主神自己。對人而言,懼怕分為兩種:懼怕人,與懼怕神——這兩者彼此成反比。神顯得越大,帝國就越渺小;帝國顯得越大,神就越渺小。

    因此,神向人展示了兩副面孔:對那緊緊抓住神的人,祂是可以躲藏的磐石,是聖所;然而對那拒絕創造主的人,祂卻成了絆腳的石頭。同一塊磐石,有人站立其上,有人卻被它絆倒。

    正因如此,在這黑暗的時刻,以賽亞選擇等候那位神:

    賽 8:17 我要等候那掩面不顧雅各家的耶和華,我也要仰望祂。

    是的。以賽亞承認,即使在神掩面不顧、看不見回應的時刻,他仍要等候、仰望那位神。南猶大王亞哈斯和百姓抓住的是看得見的力量,而以賽亞卻要等候那雖不可見、卻是歷史主宰的神。這就是信心,以賽亞宣告的,是這樣的信心告白。

    相對地,等不住神的百姓,卻走向了歧途——去找交鬼的和行巫術的。被懼怕捆綁的人,終究向死人詢問未來。所以以賽亞質問:為何要為活人去求問死人呢?是的,分辨真光與假光的標準只有一個:神的話語。不符合話語的,就不是光。因此,第八章以這樣的宣告作結:那離棄神的百姓,已失去光明,沉陷在幽暗痛苦的黑暗之中。然而,這黑暗並非終點——因為就在下一章,那在黑暗中行走的百姓,將要看見大光。

    默想今日經文時,我想起了在聖地旅行中親眼見到的西羅亞那口小小的水井,以及流入西羅亞池的希西家水道——那也是一條極其細小的水流。正因如此,這段信息讓我默想得更深。若與韓國的漢江、台灣的淡水河相比,西羅亞的水是何等微不足道——這個比喻,因此變得無比真實。

    就在默想之中,不久前與兒子的一段對話浮現在我心中。兒子說:「神為什麼不豐豐富富地給我們呢?總是剛好夠用而已……當然感謝,但我也希望能過得富足一點。」那段對話最後,我們一起感謝神從未讓我們挨餓的恩典。是的,神的供應,往往像西羅亞一樣——不喧騰,不顯眼。每天所賜的日用飲食,守在身旁的幾個人,昨日今日都平靜流淌的尋常日子——這些太安靜了,很容易在渾然不覺中錯過,不知那竟是恩典。於是我們常常輕看那平靜的水,抬起眼睛望向浩大的江河——更顯眼的大河與城池,更多人的認可,以及「成功」的頭銜。因為那大水,看起來更可靠。就像猶大百姓棄絕西羅亞、仰望亞述大河,我們也依然渴慕那大江。

    但今日經文向我發問:那浩大的江河,真的救活了你嗎?

    回頭一看,那些我曾仰望的大水,非但沒有充滿我,反而成了漫到頸項的憂慮、比較與不安。「人所倚靠的,終將吞噬那人」——這話,不是別人的故事。

    所以,今天我想再次站在西羅亞面前。那雖不喧騰卻從不止息的水,那雖不顯眼卻將我承載至今的神之平靜供應——我想重新珍視它。並願意在那平靜的水邊,如以賽亞一般,等候神、在祂裡面紮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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