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시편 14:1-7
今日默想:詩篇 14:1-7
제목 : 하나도 없다. 그런데...
시 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기서 어리석은 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나발'이다. 그런데 나발은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다. 사무엘상 25장에 나발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는 부자였고 계산에 밝았다. 다만 하나님을 계산에서 빼고 살았을 뿐이다. 그러니까 어리석은 자(나발)는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발은 입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음으로 말한다. 아무도 듣지 않을 때 자기 속으로 내리는 결론이다. 그래서 이건 철학이 아니라 삶이다. 우리가 시편 10편에서 이야기한 그 '실천적 무신론'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들이 하나님 없이 사는 모습은 그 행실에서 들어난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다.
시 14:2-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다보신다. 그리고 무엇을 찾으시는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의로운 사람도 아니다. 그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다. 조건이 이토록 낮다. 그런데 결과가 어떠한가? 하나도 없도다. 히브리어는 '엔 감 에하드'이다. 이 말의 의미는 예외를 미리 막아 버리는 말이다. 단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시를 읽을 때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1절의 나발(어리석은 자)을 저 바깥의 누군가로 읽는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성경은 모두가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한다. 하나도 없으니 나도 역시 그 나발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바울이 로마서 3장에서 바로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못 박는다.
시 14: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떡 먹듯이'. 사람을 삼키는 일을 밥 먹는 일처럼 아무렇지 않게 한다는 말이다. 즉 죄책감도 망설임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마음에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 사람은 사람을 떡처럼 먹는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도 사랑하지 않고, 사람을 삼키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 둘을 한 문장 안에서 잇는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없다는 것은 관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이다. 그런데 여기서 시가 방향을 튼다.
시 14:5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본문은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3절에서는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5절에서는 의인의 세대가 있다고 한다. 앞뒤가 안 맞는 것 같다. 이것의 의미는 본성으로는 선을 행할 수 있는 자가 하나도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의인의 세대가 있다는 것이다. 즉 3절에서는 타락한 우리가 원래 어떤 존재인지를 말하고, 5절은 하나님께서 그런 죄인들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말한다. 그리고 6절이 결정적이다.
시 14: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여기 피난처라는 단어가 나온다. 히브리어로 '마흐세'라는 단어이다. 그런데 이 단어의 어근이 시편 11편 1절의 그 단어다.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에 나오는 단어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칭하여 주시는 것이다. 즉 이 사람들이 의인의 세대인 이유는 그들이 의로워서가 아니다. 여호와가 그들의 피난처이시기 때문이다. 그들의 의가 그들을 세운 것이 아니라, 그들이 피한 그분이 그들을 세우셨다.
이 순서를 놓치면 안 된다. 자기 의로 서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나도 없다고 성경이 말한다. 그런데 여호와께 피한 사람은 서 있다. 왜냐하면 서 있게 하시는 분이 여호와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6절은 자랑이 아니라 고백이다.
시 14: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시가 갈망으로 끝난다. 구원은 아직 오지 않았다. 시인은 그것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구원이 시온 즉 하나님의 성산에서 나오셨다는 것을... 그 은혜를 고백하며 우리가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 나 역시 나발(어리석은 자)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의인의 세대 안에 서 있다. 내가 달라져서가 아니다. 나를 붙드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여전히 매일 실패하고 넘어지고, 영적으로 육적으로 가난한 자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 그래 우리 공동체 중에 자기 의로 서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여호와께 피한 자들이다. 우리의 피난처가 여호와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분께 피한다. 그 피난처 안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은혜를 기뻐하며 노래하며 살아가길 기도한다.
題目:一個也沒有。然而……
詩 14:1 愚頑人心裡說:沒有神。他們都是邪惡,行了可憎惡的事;沒有一個人行善。
這裡譯為「愚頑人」的希伯來文是「拿巴」(Nabal)。然而拿巴並不是指頭腦愚笨的人。撒母耳記上第二十五章記載了一個名叫拿巴的人,他是個富翁,精於算計。只是他活著的時候,把神從他的算計中排除在外。因此,愚頑人(拿巴)不是指無知的人,而是指活得好像沒有神一樣的人。 拿巴並不是用口說「沒有神」,而是在心裡說。這是一個在無人聆聽時,在內心深處所作的結論。所以這不是哲學問題,而是生命的問題。這正是我們在詩篇第十篇所談到的那些「實踐性無神論者」。因此,愚頑人沒有神的生命樣式,就顯現在他們的行為上——他們邪惡,所行的盡都可憎。
詩 14:2-3 耶和華從天上垂看世人,要看有沒有明白的,有沒有尋求神的。3 他們都偏離正路,一同變為污穢;沒有行善的,連一個也沒有。
神從天上俯視,祂在尋找什麼?不是完美的人,也不是義人,僅僅是尋求神的人。條件是如此之低。然而結果如何?連一個也沒有。希伯來文是「'en gam 'echad」,這句話的意思是預先堵絕一切例外——連一個也沒有。
因此,讀這篇詩篇時,我們需要警惕一件事:就是把第一節的拿巴(愚頑人)當作是外面的某個人來讀。但事實並非如此。聖經說,所有人都是愚頑人。連一個也沒有,意味著我自己也是那個拿巴。正因如此,保羅在羅馬書第三章引用這段經文,斬釘截鐵地說:「沒有義人,連一個也沒有。」
詩 14:4 作孽的沒有一個有知識嗎?他們吞吃我的百姓如同吃飯一樣,並不求告耶和華。
「如同吃飯一樣」——意思是吞噬他人就像吃飯一樣毫不在意,毫無罪惡感,也毫不猶豫。之所以能如此行事,詩篇這樣說:「並不求告耶和華。」心裡以為沒有神的人,就不呼求神;不呼求神的人,就把人當飯吃。這說明,因為不愛神,就不愛神所創造的人,甚至能夠吞噬他人。聖經在同一句話中將這兩件事相連。因此,「沒有神」不是觀念的問題,而是生命的問題。 然而,詩篇在這裡轉了一個方向。
詩 14:5 他們在那裡大大地害怕,因為神在義人的族類中。
這段經文是否讓你覺得有些奇怪?第三節說行善的連一個也沒有,第五節卻說有義人的族類。前後似乎矛盾。其實,這段話的意思是:憑著本性,沒有一個人能夠行善;然而,卻有一群因神的恩典而被立起來的義人族類。也就是說,第三節說的是墮落的我們原本是什麼樣的人,而第五節說的是神為這樣的罪人做了什麼。 第六節是關鍵所在。
詩 14:6 你們叫貧苦人的謀算蒙羞,然而耶和華是他的避難所。
這裡出現了「避難所」這個詞,希伯來文是「machseh」。而這個詞的字根,正是詩篇第十一篇第一節所用的那個詞——「我是投靠耶和華的」,兩者同出一源。這就是說,神使那些投靠祂的人稱為義。換言之,這些人成為義人族類的原因,不是因為他們本身是義的,而是因為耶和華是他們的避難所。不是他們自己的義立住了他們,而是他們所投靠的那一位立住了他們。
這個次序不可搞錯。靠自己的義站立的人,連一個也沒有——聖經如此說。然而,投靠耶和華的人卻能站立,因為使人站立的是耶和華。所以第六節不是誇耀,而是告白。
詩 14:7 但願以色列的救恩從錫安而出!耶和華救回祂被擄的子民的時候,雅各要快樂,以色列要歡喜。
詩篇以渴望作結。救恩尚未臨到,詩人只是迫切地盼望著。然而我們知道——那救恩已從錫安,就是神的聖山而來。讓我們帶著這份告白,享受救恩的喜樂,活出這樣的生命。
是的,我也曾是拿巴(愚頑人)。然而如今,我站在義人的族類之中。不是因為我變了,而是因為有一位握住我的神。雖然每天仍然失敗、跌倒,在靈裡、在肉身上都是貧窮的人,但耶和華神是我的避難所。是的,我們群體中靠著自己的義站立的人,連一個也沒有。然而,我們都是一同投靠耶和華的人。因為耶和華是我們的避難所。所以今天,我再次投靠祂,活在那避難所之中,並禱告我們能懷著這份恩典,歡欣歌唱地活下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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