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목록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시편 15:1-5

    今日默想:詩篇15:1-5

    Kyoung Woo Han··조회 36

    제목 : 일상, 무너지지 않는 성소

    시편 14편은 이렇게 끝났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아직 오지 않은 구원을 향한 갈망이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시편이 이렇게 시작한다.

    시 15: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주의 성산. 그 산이 바로 시온이다. 그러니까 14편의 갈망과 15편의 질문이 같은 산 앞에 서 있다. 구원이 나오기를 바라던 그 산 앞에서, 이제 누가 그 산에 거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이 질문을 가볍게 읽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바로 앞에서 답이 이미 나왔기 때문이다. 시편 14편 3절은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니까 15편의 질문은 순진한 질문이 아니다. 절망적인 질문이다. "하나도 없다면서요. 그러면 누가 들어갑니까?"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이 이어진다.

    시 15:2-3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목록이 길게 이어진다. 정직, 공의, 진실, 혀, 이웃, 판단, 그리고 돈. 이 목록을 보는 순간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걸 다 지켜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렇게 읽으면 이 시편은 율법주의가 된다. 조건을 채운 사람만 들어가는 문이 되고, 예배는 자격 심사가 된다.

    그런데 이 목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없는 것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은 두 판이다. 첫째 판은 하나님을 향한 계명이다.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라,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지키라. 둘째 판은 이웃을 향한 계명이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등등. 그래서 예수님이 이것을 두 마디로 요약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그런데 시편 15편의 목록을 보라. 전부 둘째 판이다. 거짓을 말하지 않고, 이웃을 비방하지 않고, 뇌물을 받지 않고, 이자로 이웃을 착취하지 않는다. 전부 이웃 쪽이다. 첫째 판은 하나도 없다. 우상 이야기도 없고, 안식일 이야기도 없고, 심지어 제사 이야기도 없다. 성전 문 앞에서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가를 물었는데, 그 대답에 제물도 절기도 정결 규정도 나오지 않는다.

    이게 무슨 뜻인가. 첫째 판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미 전제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라. 지금 이 사람은 어디에 서 있는가. 시온 산 앞이다. 성전 문 앞이다. 그가 거기까지 걸어 올라왔다는 것 자체가 무엇을 말하는가. 그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을 경험한 자이다. 그래서 그 산으로 온 것이다. 그러니 그 성산 안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배의 증거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 그러니까 이 목록은 하나님 사랑의 조건이 아니라 증거다. 이것을 지켜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삶이 이렇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실 율법이 애초에 그렇게 주어졌다.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것은 애굽에서 나온 다음이었다.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니다. 이미 백성이 된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운 것이다. 순서가 그렇다. 구원이 먼저고, 삶은 그 응답이다.

    시편 15편도 똑같다. 이 목록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의 모습이다. 이 순서가 뒤집히면 우리의 신앙이 무너진다. 지켜서 들어가려 하면 평생 문 앞에 서 있게 되고, 못 지킨 날에는 자기가 쫓겨났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은혜로 들어간 자로 살아가면, 넘어진 날에도 여전히 그 집 안에 있는 것이다. 그 관점으로 본문을 조금 더 보자.

    시 15:4-5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여기서 나는 오래 멈춘다.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약속을 했는데 알고 보니 나에게 손해다. 그런데 안 바꾼다. 손해가 확정된 뒤에도 지키는 약속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헤세드다.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 그 헤세드의 인간 버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확히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일에 하나님께 이득이 있었는가. 없었다. 손해뿐이셨다. 그 가장 큰 손해가 십자가였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바꾸지 않으셨다. 그러니까 이 목록의 정점은 도덕이 아니다. 하나님을 닮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기에, 우리도 이웃에게 그렇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첫째 판과 둘째 판이 만나는 자리다. 바로 큰 사랑을 받은 자가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래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예배당 안에서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배당 밖에서, 내 혀와 내 약속과 내 지갑에서 증명된다.

    목사로서 나는 이 문장이 가장 무섭다. 왜냐하면 나는 예배당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먹고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편 15편은 나에게 강단을 묻지 않는다. 내 혀를 묻고, 내 약속을 묻고, 내 지갑을 묻는다. 나도 손해가 보이는 약속 앞에 서 본 적이 있다. 항상 계산이 먼저 돌아갔다. 강단에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전하면서, 정작 내 신실함은 손해 앞에서 그렇게 얇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내가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손해를 감수하며 언약을 지키셨기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신실함은 자격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그렇기에 여전히 부족하지만 더욱 더 그런 삶으로 성화되어 가길 기도한다.

    中文 AI翻譯

    題目:日常,不會崩塌的聖所

    詩篇第14篇是這樣結束的——願以色列的救恩從錫安而出。那是對尚未到來之救恩的渴望。然而緊接著的下一篇詩篇,卻是這樣開始的:

    詩15:1 耶和華啊,誰能寄居在你的帳幕?誰能住在你的聖山?

    主的聖山,那座山正是錫安。因此,第14篇的渴望與第15篇的提問,站立在同一座山前。在那座人們盼望救恩從中而出的山前,如今要問的是:究竟誰能居住在那山上?

    這個問題不可輕率地讀過。因為就在前文,答案已經揭曉了。詩篇14篇第3節斷言:沒有行善的,連一個也沒有。所以,第15篇的提問並非天真的問題,而是令人絕望的問題。「你說連一個也沒有,那麼究竟誰能進去?」隨後,這個問題得到了回應。

    詩15:2-3 就是行為正直、做事公義,心裡說實話的人。他不以舌頭讒謗人,不惡待朋友,也不隨夥毀謗鄰里。

    清單延伸甚長。正直、公義、誠實、舌頭、鄰舍、判斷,還有金錢。看到這份清單的瞬間,心中不禁浮現這樣的念頭:難道要遵守這一切,才能親近神嗎?然而若如此解讀,這篇詩篇便成了律法主義——成為一道只有滿足條件的人才能進入的門,而敬拜也淪為資格審查。

    然而,若仔細端詳這份清單,便會發現一件奇異之處:有些東西是缺席的。我們所熟知的十誡分為兩塊。第一塊是朝向神的誡命:不可有別的神、不可造偶像、不可妄稱神的名、要守安息日。第二塊是朝向鄰舍的誡命:當孝敬父母、不可殺人、不可偷盜、不可作假見證,等等。因此耶穌將這些總結為兩句話:「愛神,並愛鄰舍。」

    然而,請看詩篇第15篇的清單——全都屬於第二塊。不說謊、不毀謗鄰舍、不收賄賂、不以利息剝削鄰舍。全都是鄰舍那一面。第一塊一條也沒有。沒有偶像的話,沒有安息日的話,甚至連祭祀的話也沒有。明明是在聖殿門前問如何才能進入,答案中卻不見祭物、節期,也不見潔淨條例。

    這意味著什麼?並非因為第一塊缺席,而是因為它已被預設為前提。試想:這個人站在哪裡?他站在錫安山前,聖殿門前。他跋涉至此,這件事本身說明了什麼?它說明他愛神,他是已經經歷過神的人,所以才來到那座山。因此,在那聖山之中,一切都是向神的敬拜;而那敬拜的見證,便是愛鄰舍。

    所以,這份清單不是愛神的條件,而是愛神的憑據。不是遵守這些才能愛神,而是愛神之人的生命,就會如此顯明出來。事實上,律法從一開始便是如此賜下的。以色列在西奈山領受十誡,是在出埃及之後。他們不是因遵守律法才成為神的子民,而是已然成為子民的人,在學習該如何生活。順序就是如此:救恩在先,生命是其回應。

    詩篇第15篇亦然。這份清單不是救恩的條件,而是蒙救之人的樣式。若這順序倒置,我們的信仰便會崩塌。若試圖靠遵守來進入,便會一生站在門外;一旦有哪天沒守住,便會以為自己已被趕出。然而,若以蒙恩進入者的身分生活,即便在跌倒的日子,仍然是在那家之中。帶著這樣的眼光,讓我們再往下看本文。

    詩15:4-5 他眼中藐視匪類,卻尊重那敬畏耶和華的人;他發了誓,雖然自己吃虧,也不更改。他不放債取利,不受賄賂以害無辜。行這些事的人必永不動搖。

    在這裡,我久久停駐。發了誓,雖然自己吃虧,也不更改。立了約定,後來才發現對自己有損。但他不改變。是在確定虧損之後仍然遵守的承諾。這是什麼?這是「慈愛」(hesed)——神的盟約之愛,那慈愛的人間版本。因為神對我們所行的,正是如此。神愛我們,對祂自己有益處嗎?沒有。祂只有虧損。那最大的虧損,就是十字架。即便如此,神也沒有更改。所以,這份清單的頂點不是道德,而是效法神。因為神對我們如此行,我們也向鄰舍如此而活。這也是第一塊與第二塊相遇之處——正是蒙受了大愛的人,去實踐小小的愛。

    所以,說愛神,不是在禮拜堂中來證明的。恰恰相反,是在禮拜堂之外,在我的舌頭、我的承諾、我的錢包上得到證明。

    身為牧師,這句話讓我最感到戰兢。因為我是一個靠著在禮拜堂內說愛神來維持生計的人。然而,詩篇第15篇問我的不是講台,它問的是我的舌頭、我的承諾、我的錢包。

    我也曾站在看得出吃虧的承諾面前。算計總是先行運轉。在講台上傳講神的信實,自己的信實卻在虧損面前如此薄弱。然而,就在那個當下,我明白了一件事:我不是因為能夠守住承諾才成為神的子民,而是因為神甘願承擔虧損、為我守住了盟約,我才能站立在今天這個地方。所以,我的信實不是資格,而是對救恩的感謝的表達。正因如此,雖然仍有諸多不足,我仍禱告,願自己在成聖的路上,愈發活出這樣的生命。

    댓글 / 留言 (0)

    로딩 중...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留言需要先登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