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시편 3:1-8
今日默想:詩篇 3:1-8
제목 :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
시편 3편은 다윗이 인생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부른 노래다. 표제는 이 시를 "그가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의 고백으로 밝힌다. 사무엘하 15장에서 18장에서 아들이 아버지의 왕좌를 빼앗고 아버지의 목숨을 노리던 반역의 한복판에서 부른 노래라는 것이다. 사무엘서를 보면 다윗은 예루살렘을 버리고, 감람산 길을 맨발로,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갔다(삼하 15:30). 아들에게 쫓기에 도망자의 모습으로 서 있는 자리였다.
그래서 이 시는 두려움의 토로로 시작한다.
시 3: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다윗은 온전히 자신의 상황을 그대로 하나님께 고백한다.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사방이 적이다. 한때 그를 따르던 백성들이 이제 아들 압살롬의 편에 섰다. 그러니 자신이 도망하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적일 수 있다. 그렇기에 그 두려움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 믿음의 사람이라고 해서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다윗은 두렵다고 정직하게 고백한다. 그런데 그 두려움을 누구에게 쏟아내는가. 여호와 하나님께이다. 그래 두려움을 숨기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 믿음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다윗을 더 아프게 한 것은 칼이 아니라 말이었다.
시 3: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원수들의 조롱은 다윗의 목숨이 아니라 그의 신앙 자체를 겨눈다. '저 사람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이 말은 사무엘하 16장에서 시므이가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저주하던 말이었다(삼하 16:7-8). 그런데 그 말에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윗 자신도 이 고난에는 자기 죄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는 것을(삼하 12장, 나단의 예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은 '나는 죄가 없다'고 변론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시 3: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여기서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이 절은 '그러나 당신은, 여호와여(וְאַתָּה יְהוָה)'로 시작한다. 여기에 역접의 접속사가 붙어 있다. 그러니까 원문은 '그러나 주는'이라고 해석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개역개정 성경에는 이 역접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원문의 의미는 다윗은 지금 원수들이 말한 '그는'과 자신이 부르는 '그러나 주는'을 정면으로 맞세우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말한다. 그 말과 자기 사이에, 다윗은 '그러나 주는'이라는 한 마디를 세운다. 감람산에서 수치로 가렸던 그 머리를(삼하 15:30) 하나님이 드신다고 고백한다. 가려진 머리와 들리는 머리를 비교한다. 그래 세상이 씌운 수치를 하나님이 벗기신다. 이것은 다윗이 받아 마땅한 심판 상황 속에서도 간구하는 하나님의 은혜다.
또한 사무엘서를 보면 다윗은 도망하면서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다(삼하 15:25).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궤를 부적처럼 붙들어 자기 안전을 보장받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윗은 이렇게 부르짖는다.
시 3: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이 외침은 광야에서 언약궤가 떠날 때 모세가 외치던 기도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소서"(민 10:35). 그래 비록 언약궤는 곁에 없지만, 다윗은 그 언약궤가 가리키던 하나님께 간구한다. 임재의 상징이 사라진 자리에서, 임재의 실체를 붙든 것이다. 이것이 다윗의 신앙고백이다.
그런데 이 모든 두려움의 상황과 조롱의 한복판에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를 한다.
시 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그래 천만인이 에워싸 진 친 밤처럼 느껴지는 시간이다(3:6). 언제 적들이 쳐들어 와서 목이 베일지 모르는 밤이다. 그런데 그 시각에 다윗은 잠을 자고 깼다고 말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여기 쓰인 '붙드시다(사마크)'라는 단어는 '떠받쳐 지탱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바닥이 무너지지 않게 밑에서 받치고 있는 손의 이미지다. 그렇기에 다윗이 잠들 수 있었던 것은 상황이 안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떠받치는 그 손을 신뢰했기 때문이라는 고백이다. 그래서 여기서 잠은 무방비가 아니라 신뢰의 고백인 것이다. 하나님이 붙드신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사실이고, 그 사실 위에 자신의 몸을 누이는 것이 바로 다윗의 믿음이다.
그래서 이 시는 시인 한 사람의 구원에서 멈추지 않는다.
시 3: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구원은 다윗의 용맹에도, 그의 군사에도 있지 않다. 오직 여호와께만 있다. 그리고 그 구원은 다윗 한 사람에게서 멈추지 않고 모든 주의 백성에게로 흘러간다. 도망자의 밤 기도가 공동체를 향한 복의 간구로 열리는 것이다.
그래 나를 돌아보면 나는 항상 작은 상황에도 흔들린다. 다윗처럼 왕좌를 잃고 아들에게 쫓기는 것도 아닌데, 그저 내일 일이 염려되어 밤새 뒤척인 날이 너무나 많다. 어쩌면 이것은 나의 모습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 가운데도 그런 밤을 보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시험을 앞둔 학생도, 일터의 무게를 진 직장인도, 사업의 앞날이 캄캄한 이도, 자녀들의 일로 가슴 조리는 부모들도, 저마다의 천만인에게 에워싸인 밤을 지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과연 다윗처럼 잠들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다윗의 고백을 붙들면, 잠은 내가 상황을 통제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붙드시는 손을 신뢰할 때 오는 것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래서 한 시인은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신다(시 127:2)'고 고백을 한다. 그렇다. 잠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오늘 밤에도 나를 떠받치는 그 손을 신뢰하며, 염려를 그 손에 내려놓길 소망한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그 신뢰의 훈련을 하고 나아간다. 그리고 기도한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도 그 붙드심 안에서 쉼을 얻도록...
題目:托住我的神
詩篇第3篇,是大衛在人生最低谷所唱的詩歌。詩篇的標題說明,這是他「逃避他兒子押沙龍時」的心聲。在撒母耳記下第15章至第18章中,記載了兒子奪取父親王座、覬覦父親性命的叛亂,而這首詩正是大衛在那場叛亂的風暴中心所唱的歌。撒母耳記記載,大衛離棄耶路撒冷,赤腳、蒙頭哭泣,沿著橄欖山的路上去(撒下15:30)。他站在那裡,是一個被兒子追殺的逃亡者的樣子。
因此,這首詩以傾吐恐懼開篇:
詩3:1 耶和華啊,我的敵人何其加增!有許多人起來攻擊我。
大衛如實地將自己的處境向神傾訴:「我的敵人何其加增!」四面皆是敵人。曾經跟隨他的百姓,如今投靠了兒子押沙龍。在他出逃的路上,所遇見的人,人人都可能是敵人。他正是帶著這樣的恐懼如此呼號。
信心之人,並不代表沒有恐懼。大衛誠實地承認自己的恐懼。然而,他將這恐懼傾倒給誰呢?是耶和華神。所以,隱藏恐懼並不是信心;將恐懼帶到神面前,這才是信心。在那樣的處境中,使大衛更加痛苦的,不是刀劍,而是言語。
詩3:2 有許多人議論我說:「他得不著神的幫助。」(細拉)
仇敵的嘲諷,所瞄準的不是大衛的性命,而是他的信仰本身。「那個人被神所棄。」這句話,正是撒母耳記下第16章中,示每向大衛扔石頭咒罵時所說的話(撒下16:7-8)。然而大衛無法反駁,因為他自己也知道,這場苦難中有他罪孽的影子(撒下12章,拿單的預言)。所以大衛沒有辯稱「我沒有罪」,而是單單仰望神。
詩3:3 耶和華啊,你是我四圍的盾牌,是我的榮耀,又是叫我抬起頭來的。
此處若看希伯來文原文,這節以「然而,你啊,耶和華(וְאַתָּה יְהוָה)」起首,帶有轉折連接詞。因此原文應當理解為「然而,你啊,主」。在我們現有的中文譯本中,這個轉折並不那麼明顯。然而原文的意思是,大衛正在將仇敵所說的「他」,與自己所呼喊的「然而,你啊,主」正面相對而立。世界說:「他被神所棄。」大衛在那話語與自己之間,豎立起「然而,你啊,主」這一句話。他在橄欖山上以羞恥蒙頭而行(撒下15:30),卻在此時訴說神使他得以昂首。蒙羞低頭與蒙恩昂首,兩相對照。世界所加諸的羞辱,神將它除去。這是大衛在理應受審判的處境中,仍向神祈求的恩典。
此外,撒母耳記記載,大衛在出逃途中,將約櫃送回耶路撒冷(撒下15:25)。他沒有像拿著符咒一般緊抱象徵神同在的約櫃,以此來確保自己的安全,而是將自己交託在神的旨意之中。然而大衛卻如此呼求:
詩3:7 耶和華啊,求你起來!我的神啊,求你救我!因為你打了我一切仇敵的腮骨,敲碎了惡人的牙齒。
「耶和華啊,求你起來!」這聲呼喊,是當年以色列在曠野,約櫃起行時,摩西所呼求的禱告:「耶和華啊,求你興起!願你的仇敵四散!」(民10:35)。雖然約櫃已不在身旁,大衛卻向約櫃所指向的那位神祈求。在同在的記號消失之處,他緊抓住同在的實體。這就是大衛的信仰告白。
然而,就在這一切恐懼與嘲諷的當中,大衛卻如此唱道:
詩3:5 我躺下睡覺,我醒著,都為耶和華所扶持。
那是一個彷彿被萬千人馬圍困的夜晚(3:6),隨時可能被仇敵闖入、身首異處的夜晚。然而大衛說,他在那時安然躺下,又醒了過來。這怎麼可能呢?他如此告白其緣由:「都為耶和華所扶持。」這裡所用的「扶持(撒馬克)」一詞,含有「從下方托住、支撐」的意思。這是一雙從下方托住,使地基不至崩塌的手的意象。因此,大衛能夠安睡,並不是因為處境已然安全,而是他信靠那雙托住自己的手。在此,安睡並非毫無防備,而是信靠的告白。神必扶持,這是永不動搖的事實;將自己的身體安臥在那事實之上,正是大衛的信心。
因此,這首詩並不在詩人一人得救之處停止。
詩3:8 救恩屬乎耶和華;願你賜福給你的百姓。(細拉)
救恩不在大衛的勇猛,也不在他的軍隊,唯獨在乎耶和華。而那救恩不止於大衛一人,卻流向祂所有的子民。逃亡者在暗夜中的禱告,如此敞開為對群體的祝福祈求。
回顧自己,我在小小的處境中便動搖不已。我並非如大衛那般失去王座、被兒子追殺,卻僅僅因為掛慮明日之事,就有過太多個輾轉難眠的夜晚。也許這不只是我一人的寫照。或許在我們群體的肢體當中,也有人正在度過這樣的夜晚:面對考試的學生、揹負工作重擔的職場人士、前途茫茫的創業者、為兒女憂心的父母——各人都有屬於自己的、被萬千敵圍困的夜晚。
在那樣的處境中,我們真的能像大衛那樣安然入睡嗎?坦白說,我做不到。然而,當我抓住大衛的告白,便再次領悟:安睡並非來自我掌控了局面,而是來自信靠那雙托住我的手。因此有一位詩人如此告白:「耶和華賜福給他所愛的,使他安然睡覺(詩127:2)。」是的,安睡不是我自己製造的,而是神所賜下的禮物。今夜,我盼望能信靠那雙托住我的手,將憂慮放下交在那手中。這固然不易,卻要在這信靠的操練中繼續前行。我也如此禱告:不只是我一人,願我們群體的肢體,都能在那扶持之中得著安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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