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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 이사야 6:1-13

    今日默想:以賽亞書 6:1-13

    한경우··조회 51

    제목 : 나를 보내소서

    지금까지 이사야는 유다의 죄를 낱낱이 고발해 왔다. 다섯 장에 걸쳐 죄를 드러냈고, 특히 바로 앞 5장에서는 여섯 번이나 "화 있을진저"를 외쳤다. 그런데 오늘 6장에 이르러, 이사야는 자기가 언제 어떻게 이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밝힌다. 그 시작이 한 왕의 죽음이다.

    사 6: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웃시야는 오십이 년을 다스린 강한 왕이었다. 그가 죽었다는 것은 한 시대의 안정이 끝나고 불안이 밀려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즉 지상의 보좌가 비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이사야는 또 하나의 보좌를 본다. 땅의 왕은 죽어도, 참된 왕은 여전히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신다. 그리고 그 보좌 곁에 천사인 스랍들이 있다. 스랍이라는 이름은 '불타는 자'라는 뜻이다. 그 불의 존재들이 각기 여섯 날개를 가졌는데, 그중 둘로만 날고 넷으로는 자기를 가린다.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린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불의 존재조차, 그 영광 앞에서는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자기를 가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 화답하여 외친다.

    사 6: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거룩하다는 말이 세 번 반복된다. 히브리 사람들은 최상급을 나타낼 때 이렇게 같은 말을 거듭했다. 그러니 이것은 '가장 거룩하신, 비할 데 없이 거룩하신'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거룩이 성전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다고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턱을 넘어 온 땅으로 흘러넘친다. 그 목소리에 성전 터가 흔들리고 연기가 가득 찬다.

    이 거룩 앞에서 이사야가 무너진다.

    사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여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조금 전까지 이사야는 남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를 여섯 번 외쳤다.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을 뵙는 순간, 그 '화'가 자기에게로 돌아온다. "화로다 나여." 남을 향하던 심판의 외침이 자기 고백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필 부정하다고 고백한 것이 입술이다. 스랍들은 그 입술로 "거룩하다"를 외치는데, 이사야의 입술은 부정하다. 거룩 앞에 설 때 인간이 발견하는 것은 언제나 자기 죄이다. 밝은 빛 아래 설 때에야 옷의 얼룩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이사야가 망하게 되었다고 부르짖는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신다.

    사 6:6-7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이사야를 씻으시는 방식을 보자. 이사야가 스스로 입술을 씻지 않는다. 스랍이 제단의 숯불을 가져와 그의 입에 댄다. 부정하다고 고백한 바로 그 자리, 곧 입술에 정확히 불이 닿는다. 그리고 그 불은 제단에서 온 불이다. 제단은 속죄가 이루어지는 자리다. 곧 이사야를 정결하게 한 것은 그의 노력이 아니라, 속죄의 자리에서 온 불이었다. 스스로 씻으라 하셨으나 씻지 못하던 백성을 하나님이 친히 씻으신다는 그 은혜가, 여기 예언자 한 사람에게 먼저 임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씻으신 후에 이사야를 부르신다.

    사 6:8 내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그래 부르심은 씻으심 다음에 온다. 죄 사함을 받은 자만이 보냄을 받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망하게 되었다'고 부르짖던 그 입술이, 이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말한다. 부정하던 입술이 씻김을 받자, 순종의 입술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부르심의 내용이 뜻밖이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보내시며, 백성이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하신다. 회개시키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악하게 하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예수님이 후에 이 구절을 인용하신 자리를 보면 실마리가 보인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신 뒤 이 구절을 말씀하셨다. 결국 같은 씨가 뿌려져도 어떤 땅은 열매를 맺고 어떤 땅은 맺지 못한다. 씨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땅, 곧 듣는 마음이다. 같은 태양이 밀랍은 녹이고 진흙은 굳게 하듯, 같은 말씀이 어떤 마음은 회개로 녹이고 어떤 마음은 더 완악하게 굳힌다. 이것은 하나님이 죄 없는 사람을 억지로 멸망으로 미시는 것이 아니다. 빛을 끝내 거부하는 자에게, 그 빛이 마침내 심판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사야가 묻는다.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그 무거운 사명이 언제 끝나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의 대답은 철저한 황폐의 시기 까지이다. 성읍이 비고, 집에 사람이 없고, 땅이 황무해질 때까지. 그러나 그 황폐의 끝에, 오늘 본문의 마지막 한 줄이 놓여 있다.

    사 6:13下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십분의 일이 남아도 그것마저 황폐해진다고 하셨다. 그래 이것은 남은 자조차 심판을 통과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나무가 베여도 그루터기는 남는다. 뿌리째 뽑히지 않는다. 겉으로는 죽은 등걸처럼 보이지만, 그 그루터기가 '거룩한 씨'라 불린다. 씨는 다시 자라기 위해 존재한다. 죽은 것 같은 그 그루터기에서 언젠가 새싹이 돋을 것이다. 이사야는 이 소망의 싹이 누구인지를 앞으로 조금씩 더 밝혀 갈 것이다. 오늘은 다만 이것을 기억하자. 철저한 심판의 끝에도 하나님은 그루터기 하나를 남겨 두신다는 것을.

    목사로 살아온 나는 오늘 이사야의 "나를 보내소서" 앞에서 오래 머문다. 나도 한때 그렇게 대답했기 때문이다. 부르심을 받고, 낯선 이 땅 대만까지 왔다. 처음에는 이사야처럼 심장이 뛰었다.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그 한마디로 짐을 싸고 바다를 건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 첫 고백의 온도를 잃어버린 것 같다. 언제부턴가 사역이 뜨거움이 아니라 익숙함이 되었고, 부르심이 감격이 아니라 일과가 되었다. 지치고, 무뎌지고, 어떤 날은 내가 왜 여기 있는지조차 흐릿해졌다. 그런 나에게 오늘 본문이 묻는다. 너는 어떻게 이 자리에 왔느냐고. 그러니 오늘 나는 다시 그 부르심 앞에 다시 선다. 나의 부정한 입술을, 무뎌진 마음을 다시 제단의 불 앞에 내어놓는다. 그리고 처음의 그 고백을 다시 드리기를 기도한다. "하나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中文 AI翻譯

    題目:差遣我吧

    直到如今,以賽亞一直在逐一控訴猶大的罪。他用了五章的篇幅揭露罪惡,尤其在緊接於前的第五章,六次高呼「禍哉」。然而來到今日的第六章,以賽亞說明了自己何時、如何領受這份呼召。一切的起點,是一位君王的死。

    賽 6:1 當烏西雅王崩的那年,我見主坐在高高的寶座上,祂的衣裳垂下,遮滿聖殿。

    烏西雅是一位在位五十二年的強盛君王。他的死,意味著一個時代的穩定走到了盡頭,不安的浪潮開始湧來——地上的寶座就這樣空了。然而就在那一刻,以賽亞看見了另一個寶座。地上的君王雖死,真正的王卻依然坐在高高的寶座上。寶座旁有天使撒拉弗侍立。「撒拉弗」這個名字,意思是「燃燒者」。這些火焰的存在各有六個翅膀,其中兩個用來飛翔,四個用來遮蔽自己——兩個遮臉,兩個遮腳。連最親近神的火焰存在,在那榮耀面前也不敢仰面,只得遮蔽自己。而他們彼此呼應,高聲呼喊:

    賽 6:3 彼此呼喊說:「聖哉!聖哉!聖哉!萬軍之耶和華,祂的榮光充滿全地!」

    「聖哉」三度重複。希伯來人表達最高級時,便以這樣的方式重覆同一個詞。因此這句話的意思是:「至聖者,無可比擬地聖潔。」然而那聖潔並不止步於聖殿之內——祂的榮光充滿全地。聖潔之神的榮光越過聖殿的門檻,傾流而出,充滿大地。那聲音一發,殿的根基震動,殿中充滿了煙。

    面對這聖潔,以賽亞崩潰了。

    賽 6:5 那時我說:「禍哉!我滅亡了!因為我是嘴唇不潔的人,又住在嘴唇不潔的民中,又因我親眼看見萬軍之耶和華——王。」

    這一節不可輕易略過。就在片刻之前,以賽亞還向眾人六次高呼「禍哉」。然而當他得見聖潔的神的那一刻,那「禍」轉向了自己:「禍哉,我啊!」原本指向別人的審判之聲,成了對自己的告白。而他承認污穢的,偏偏是嘴唇。撒拉弗用口呼喊「聖哉」,以賽亞的嘴唇卻是污穢的。人站在聖潔面前所發現的,永遠是自己的罪——正如站在明亮的光下,才看見衣服上的污點。然而就在以賽亞呼喊「我滅亡了」的那一刻,神並沒有離棄他。

    賽 6:6-7 那時,撒拉弗中有一個飛到我跟前,手裡拿著紅炭,是用夾子從壇上取下來的,7 用那炭沾我的口,說:「看哪,這炭沾了你的嘴,你的罪孽便除掉,你的罪惡就赦免了。」

    請留意神潔淨以賽亞的方式。不是以賽亞自己洗淨嘴唇,而是撒拉弗取來祭壇上的炭火,觸碰他的口。炭火精準地落在他所承認污穢的那個地方——嘴唇。而那炭火來自祭壇。祭壇是贖罪成就的地方。換言之,使以賽亞潔淨的,不是他自己的努力,而是從贖罪之處而來的火。神親自洗淨那些蒙召自潔卻無力自潔之百姓的恩典,先臨到了這一位先知身上。

    就這樣潔淨之後,神呼召了以賽亞。

    賽 6:8 我又聽見主的聲音說:「我可以差遣誰呢?誰肯為我們去呢?」我說:「我在這裡,請差遣我!」

    是的,呼召在潔淨之後才來。唯有罪得赦免的人,才能被差遣。片刻之前還呼喊「我滅亡了」的那副嘴唇,如今說出:「我在這裡,請差遣我!」污穢的嘴唇既蒙洗淨,便成了順服的嘴唇。

    然而那呼召的內容出人意料。神差遣以賽亞,卻吩咐他要使百姓聽是聽見,卻不明白;看是看見,卻不曉得——不是使他們悔改,反而是使他們心更剛硬。這話著實難解。然而若看耶穌後來引用這段經文的場合,便能尋見線索。耶穌講完撒種的比喻後引用了這段話。歸根究底,同樣的種子撒下,有的土地結果,有的卻不結果。種子本身並無問題,造成差異的是土地——也就是聆聽的心。正如同樣的太陽,能融化蜂蠟,也能使泥土更加堅硬;同樣的話語,能使某些心悔改融化,也能使某些心更加剛硬。這並非神強行將無辜之人推入滅亡,而是讓那些終究拒絕光明的人,使那光最終成為他們的審判。

    最後,以賽亞問道:「主啊,這到幾時為止呢?」他問的是這沉重的使命何時才能結束。神的回答是:直到徹底荒涼的時刻——城邑荒涼、無人居住、田地空曠、成為廢地。然而在那荒涼的盡頭,今日經文的最後一行靜靜地放在那裡:

    賽 6:13下 就像栗樹、橡樹被砍伐,樹墩子還留著;這聖潔的種類在境內也是如此。

    神說,就算留下十分之一,那十分之一也將再遭荒廢。這是說,就連剩餘的人也要經歷審判。然而樹雖砍伐,樹墩子仍在——並非連根拔起。表面看來像是枯死的殘樁,卻被稱為「聖潔的種類」。種子的存在,是為了再次生長。那看似已死的樹墩子,終有一日將萌發新芽。以賽亞往後將一點一點地揭示,這希望的嫩芽究竟是誰。今日,我們只記住這一件事:即便在徹底審判的盡頭,神仍留下一個樹墩子。

    身為牧師多年的我,今日在以賽亞的「請差遣我」面前久久駐足。因為我也曾如此回應過。領受呼召,來到這片陌生的土地——台灣。起初,我如同以賽亞一般,心跳激動:「我在這裡,請差遣我。」就憑這一句話,我打包行李,渡海而來。然而時間流逝,我似乎漸漸失去了那最初告白的溫度。不知從何時起,事工從熾熱變成了習慣,呼召從感動變成了例行。我疲憊了,麻木了,有些日子甚至連自己為何在此都變得模糊。今日的經文向這樣的我發問:你是怎麼來到這個位置的?

    所以,今日我再次站在那呼召面前。我將自己污穢的嘴唇、麻木的心,再次放在祭壇的火前。我也禱告,願能再次獻上最初的那句告白:「神啊,我在這裡。請差遣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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