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이사야 5:18–30
今日默想:以賽亞書 5:18–30
제목 : 화 있을진저
어제 우리는 포도원의 노래를 살펴보았다. 하나님이 정성껏 가꾼 포도원이 들포도를 맺었고, 그 들포도의 정체가 '정의를 바랐더니 포학이요 공의를 바랐더니 부르짖음'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포학과 부르짖음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오늘 본문이 바로 그 목록이다. 이사야는 5장에서 여섯 번 "화 있을진저"를 외치는데, 그중 둘은 어제 살펴 보았고 오늘 본문에는 나머지 네가지가 나온다. 그러니 먼저 여섯가지의 화들을 한자리에 놓고 보자.
첫째는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홀로 거하려는 자다. 둘째는 아침부터 밤까지 독주와 연회에 빠진 자다. 셋째는 거짓의 끈으로 죄악을 수레처럼 끌고 다니는 자다. 넷째는 악을 선이라, 선을 악이라 부르는 자다. 다섯째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자다. 여섯째는 술에 용감하고 뇌물로 재판을 굽게 하는 자다.
이 여섯 가지의 화들을 늘어놓고 보면 첫째와 둘째, 그리고 여섯째는 눈에 보이는 죄이다. 땅을 빼앗고, 술에 취하고, 재판을 굽게 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바로 손과 몸으로 짓는 죄다. 그런데 그 사이에 낀 셋째와 넷째와 다섯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죄다. 죄를 사랑하고, 선악을 뒤집고,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것으로 바로 마음으로 짓는 죄이다. 이사야는 지금 바깥으로 드러난 죄의 열매 밑에, 보이지 않는 죄의 뿌리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 뿌리의 한가운데 다섯 번째의 화가 있다.
사 5:21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이 다섯 번째의 죄는 다른 죄들처럼 긴 설명이 붙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짧은 한 절이 어쩌면 다른 모든 죄들의 뿌리이다. 생각해 보자. 창세기의 인류의 타락이 무엇인가? 스스로 교만하여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악을 스스로 판단하려고 한다. 그 죄악의 모습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악을 선이라 부르며, 어떻게 하나님을 향해 '심판하려거든 어디 빨리 해 보시라'라고 조롱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바로 자기를 지혜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선과 악의 기준을 부정하고 내가 스스로 정한 선과 악을 기준삼는다. 즉 하나님의 판단이 아니라 내 판단이 최종 결정이 될 때, 사람은 무엇이든 뒤집을 수 있게 된다. 선악의 이름표를 바꿔 달 수 있고, 쓴 것을 달다 하고 어둠을 빛이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왜곡의 출발점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 보다 자신들이 스스로 지혜롭고, 명철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창조주의 자리에 오르려는 교만이다.
그래서 세번 째 화의 그림이 무섭다. 그들은 죄악을 끈으로 매어 수레처럼 끌고 다닌다. 그런데 그 끈이 처음에는 거짓의 가는 실이었다가, 나중에는 수레를 매는 굵은 밧줄이 된다. 죄란 처음에는 실 한 오라기처럼 가볍다. 끊으려면 언제든 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실을 끊지 않고 끌고 다니는 사이에, 어느새 그것은 내 힘으로는 벗을 수 없는 밧줄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경이 되면 네번 째 화처럼 아예 악을 선이라 부르게 된다. 죄를 끊지 못하니 죄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벗을 수 없으면 이름을 바꾼다. 그것이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자가 걷는 길이다.
이 모든 화의 이유를 이사야는 한 구절로 못 박는다.
사 5:24下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그렇다.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기 때문이다. 기준을 버렸기 때문이다. 모든 죄악의 근원이 바로 교만이다. 그렇기에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것은 결국 같은 일이다. 바로 내가 기준이 되려면 하나님의 기준을 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결국 심판이 온다. 하나님이 손을 들어 백성을 치시는데, 본문은 무서운 후렴을 단다. "그럴지라도 그의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느니라." 그런데 그 심판의 도구를 보라. 하나님은 먼 나라를 부르신다.
사 5:26 또 그가 기치를 세우시고 먼 나라들을 불러 땅 끝에서부터 자기에게로 오게 하실 것이라 보라 그들이 빨리 달려올 것이로되
하나님이 기치를 세우고 휘파람을 부시자, 땅 끝의 군대가 달려온다. 그 군대에는 피곤한 자도 조는 자도 없으며, 화살은 날카롭고 활은 당겨진 완벽한 군대다. 그런데 여기서 한 단어을 잘 봐야 한다. 앞에서 하나님을 조롱하던 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어디 속히 해 보시라'(사 5:19)고 말했는데, 그 하나님이 부르신 심판의 군대가 정말로 '빨리' 달려온다. 그들이 비웃으며 재촉한 그 '속히'가, 심판으로 응답되는 것이다. 조롱이 그대로 되돌아온다.
그 결과 5장은 어둠으로 닫힌다.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뿐이고, 빛은 구름에 가려 어둡다. 넷째 화에서 그들은 어둠을 빛이라 불렀는데, 이제 정말로 빛이 어둠에 삼켜진다.
오늘 본문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깊이 다가오는 죄악의 모습은 바로 '악을 선이라, 선을 악이라 부르는 자들'이다. 사실 이것이 먼 옛날 유다만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선악의 좌표가 흔들린다. 어제까지 잘못이라 여기던 것이 오늘은 당연한 것이 되고, 옳다고 배운 것이 어느새 낡고 편협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리고 그 흔들리는 좌표 위에서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이 살아간다. 삶의 현장에서 세상은 끊임없이 무엇이 달고 무엇이 쓴지를 바꿔 부르며 우리들을 흔들고 있다. 그래서 오늘 나는 한 가지를 기도한다. 세상의 좌표가 아무리 흔들려도 내가 먼저 말씀의 좌표 위에 서 있기를... 선을 선이라, 악을 악이라 정직하게 선포할 수 있기를... 화려한 웅변으로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그 자리 하나로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목회자가 되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題目:有禍了
昨天我們查考了葡萄園之歌。神精心栽培的葡萄園結出了野葡萄,而那野葡萄的真面目,正是「期待公平,所得的卻是欺壓;期待公義,所得的卻是哀號」。那麼,那欺壓與哀號究竟具體指什麼?今天的經文正是那份清單。以賽亞在第五章中六次呼喊「有禍了」,其中兩次昨天已經查看,今天的經文則包含其餘四項。因此,讓我們先將這六樣禍放在一起來看。
第一,是那連屋蓋屋、連地買地、獨居一方的人。第二,是從早到晚沉溺於烈酒與宴樂的人。第三,是用謊言的繩索拖拉罪孽、如同拉車一般的人。第四,是稱惡為善、稱善為惡的人。第五,是自以為有智慧的人。第六,是在酒上逞英雄、因賄賂而枉法斷案的人。
將這六樣禍並排來看,第一、第二以及第六是顯而易見的罪——奪取土地、沉溺於酒、枉曲審判,這些都是以手與身體所犯的罪。然而夾在其間的第三、第四與第五,卻是眼睛看不見的罪——愛戀罪惡、顛倒善惡、自以為有智慧,這些正是以心所犯的罪。以賽亞如今正是要讓我們看見:在那些外顯的罪惡果子之下,有一條看不見的罪惡根源。
那根源的正中央,正是第五樣禍。
賽 5:21 那自以為有智慧、自以為有聰明的人有禍了!
這第五樣罪沒有像其他罪一樣附上冗長的說明。然而這短短的一節,或許正是所有其他罪惡的根源。讓我們想一想:創世記中人類的墮落是什麼?就是人因驕傲而想要成為神,以致要憑自己判斷善惡。如今人仍在重複那罪惡的樣式。人怎能稱惡為善?怎能向神嘲弄說「你若要審判,就快快來吧」?那是因為人以自己為智慧的標準。他們否定神所設立的善惡標準,改以自己所定的善惡為準則。換言之,當人的判斷取代神的判斷、成為最終裁決時,人便能翻轉一切——可以調換善惡的標籤,可以稱苦為甜、稱黑暗為光明。這一切扭曲的起點是什麼?正是認為自己比神更有智慧、更有聰明,以及妄圖登上造物主之位的驕傲。
因此,第三樣禍的圖像令人不寒而慄。他們用繩索套住罪孽、拖拉如同拉車。然而那繩索起初不過是謊言的細絲,後來卻成了捆綁車輛的粗繩。罪在起初輕如一縷細線,似乎隨時都能扯斷。然而在那細線未被割斷、反被一路拖拉的過程中,它已在不知不覺間成了憑自己之力再也無法掙脫的繩索。到了那個地步,便如第四樣禍一般,乾脆稱惡為善。既然無法斷絕罪惡,便重新定義罪惡;既然無法脫去,就更換名稱。這正是自以為有智慧的人所走的路。
以賽亞用一句話,將這一切禍患的緣由釘牢:
賽 5:24下 他們棄掉萬軍之耶和華的訓誨,藐視以色列聖者的言語。
正是如此。因為他們棄掉萬軍之耶和華的訓誨,藐視以色列聖者的話語;因為他們拋棄了那標準。一切罪惡的根源正是驕傲。因此,自以為有智慧,與棄掉神的話語,歸根究底是同一回事——因為要讓自己成為標準,就必須先將神的標準推開。
其結果,審判終究臨到。神舉手擊打祂的百姓,而經文中帶著一句可怕的副歌:「雖然如此,祂的怒氣還未轉消,祂的手仍然伸出。」然而請看那審判的器具——神召喚遠方的列國。
賽 5:26 他必豎立大旗,召遠方的列國,向他們打口哨,他們就從地極速速而來。
神豎立旗幟、一聲呼嘯,地極的軍隊便奔騰而至。那軍隊中無人疲憊、無人打盹,箭矢鋒利、弓弦拉滿,是一支毫無破綻的軍隊。然而在此必須留意一個詞。先前嘲弄神的人曾說「神的作為,讓祂快快來吧」(賽5:19),而如今神所召來的審判之師,真的「速速」奔來。他們嗤笑著催逼的那個「快快」,竟以審判作為回應。嘲弄原封不動地折返歸去。
其結果,第五章以黑暗落幕。人瞻望那地,所見只有幽暗與苦難,光明也被烏雲遮蔽而昏暗。在第四樣禍中,他們曾稱黑暗為光明,如今光明真的被黑暗所吞噬。
在今天的經文中,個人感受最為深刻的罪惡景象,正是「稱惡為善、稱善為惡的人」。想必是因為這並非遙遠古代猶大獨有的樣貌。我們如今所處的世界,善惡的座標同樣在動搖。昨天還被視為過錯的事,今天已成理所當然;從前被教導為正確的事,不知何時竟被視為陳腐而狹隘。而我們的群體肢體,就在那搖晃的座標上生活。在生活的現場,世界不斷改換什麼是甜、什麼是苦的稱呼,持續搖動著我們。因此今天我只禱告一件事:無論世界的座標如何搖晃,願我首先站立在話語的座標之上……願我能誠實地宣告善為善、惡為惡……不是憑著華麗的辯才,而是憑著那屹立不搖的立場,能與聖徒們一同在神面前站立端正——今天,我再次為成為這樣的牧者而禱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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