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목록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이사야 5:1–17

    今日默想:以賽亞書 5:1–17

    한경우··조회 87

    제목 : 포도원의 노래

    어제 묵상한 본문에서 하나님은 지도자들을 향해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라고 고발하셨다. 그때 이 포도원이 무엇인지는 오늘 밝혀질 것이라 했는데, 오늘 본문이 바로 그 유명한 '포도원의 노래'다. 이 포도원의 노래를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신약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이 노래는 사랑고백처럼 시작한다. 이사야가 심판을 선포하는 예언자가 아니라, 사랑 노래를 부르는 가수처럼 등장하는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그의 포도원을 노래하겠다고 한다.

    그 노래의 내용은 이렇다. 사랑하는 자에게 기름진 산등성이의 포도원이 있었다. 그는 땅을 파고, 돌을 골라내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다. 망대를 세우고 술틀까지 팠다. 팔레스타인 산지에서 돌을 골라내는 일은 가장 고된 노동이고, 술틀을 바위에 파는 것은 풍성한 수확을 확신할 때만 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주인은 이 포도원에 아낄 것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좋은 포도가 맺히기를 바라며 기다렸다. 그런데 맺힌 것은 들포도였다. 시고 냄새나는, 먹을 수 없는 열매였다.

    여기서 노래가 방향을 튼다. 가수가 갑자기 청중을 향해 묻는 것이다.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사 5: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청중은 아직 이것이 자기 이야기인 줄 모른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그런 포도원은 갈아엎어야 마땅하다고 판결을 내린다. 이것은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죄를 지적할 때 썼던 바로 그 전략이다. 남의 이야기인 줄 알고 판결을 내리게 한 다음, 네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찌르는 것이다. 그래 청중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판결을 내린 셈이다. 그런데 독자들은 4절의 질문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즉 하나님 쪽에는 아무 결핍이 없었다는 것이다. 포도원 농사 실패의 원인은 전적으로 포도나무들 쪽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주인이 판결을 집행한다. 그런데 그 방식을 보자.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사 5:5-6). 주인은 포도원에 불을 지르지 않는다. 포도나무를 뽑지도 않는다. 다만 울타리를 걷고, 돌보기를 그치고, 비를 그칠 뿐이다. 즉 지키던 손을 거두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심판이다. 보호가 철회되면 포도원은 황무지가 된다.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포도원에겐 없기 때문이다. 울타리를 걷으면 먹힘을 당하고, 짓밟힘을 당하게 된다. 지금까지 주인의 보호를 깨닫지 못하던 포도원이 그 보호하심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구름에게 비를 명하는 대목에서 이 노래의 가면이 벗겨진다. 구름에게 명령할 수 있는 농부는 세상에 없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그리고 7절이 마침내 정체를 공개한다.

    사 5: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이 마지막 행은 히브리 시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언어유희로 꼽힌다. 정의는 히브리어로 '미쉬파트'인데 포학은 '미스파흐'다. 공의는 '체다카'인데 부르짖음은 '체아카'다. 각 쌍이 자음 하나 차이다. 소리는 거의 똑같은데 실체는 정반대인 것이다. 정의처럼 보이는 포학, 공의처럼 들리는 착취의 비명. 겉모습은 그럴듯한데 그 안에서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오는 사회. 하나님이 유다에게서 들으신 소리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포도나무가 맺은 들포도는 무엇인가? 포도원의 그 포학과 부르짖음의 실체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에 대한 답이 바로 이어지는 화 선언들이 그 목록이다. 본문에는 모두 여섯 개의 화가 선언되는데, 오늘은 그중 처음 두 가지만 나오고 나머지는 내일 함께 보게 된다.

    첫째 화는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게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주하려는 자들을 향한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 하면, 율법에서 땅은 하나님의 것이었고, 각 가족에게 나누어 준 기업은 영구히 팔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력자들이 빚을 빌미로 가난한 이웃의 기업을 삼켜 대토지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웃을 다 몰아내고 홀로 살려던 그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 크고 아름다운 집들에 거주할 자가 없게 될 것이라고. 홀로 살고 싶어 하던 자들의 소원이, 가장 뒤틀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셈이다.

    둘째 화는 아침 일찍 일어나 독주를 따라다니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을 향한다. 그들의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가 갖추어져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술과 음악 자체가 아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한다는 것, 그것이 문제다. 새벽부터 밤까지 자신들의 감각만을 채운 결과, 하나님의 일을 볼 눈이 없어진 것이다. 이처럼 쾌락이 죄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을 보는 시야를 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13절은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혀 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본문은 2장에서 들었던 후렴으로 닫힌다. 여느 사람은 굴복되고 존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신다. 백성에게서 찾지 못하신 그 정의와 공의를,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행위로 나타내신다. 즉 정의가 그 땅에서 사라져도, 정의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 나는 묵상을 하면서 울타리의 은혜를 묵상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불벼락이 아니라 울타리를 걷으시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오늘 나에게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뒤집어 생각하면, 지금 내가 무사한 것은 울타리가 서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오늘도 별일 없이 지나간 하루, 가족의 건강, 공동체의 평안, 낯선 땅에서 그럭저럭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이 일상이, 실은 하나님이 걷지 않고 세워 두신 울타리 안의 풍경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울타리 안에서도 때로는 작은 여우가 들어오기도 하고, 해충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항상 그 울타리를 잊고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아니 나는 그것을 너무 자주 당연하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울타리는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걷히고 나서야 그것이 거기 있었음을 안다. 그러니 오늘 나는 그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헤아리며 감사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울타리 안에서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열매, 곧 정의와 공의의 좋은 포도를 맺는 삶이기를 기도한다. 그래서 오늘도 참포도나무에 접붙여 주신 은혜를 찬양한다.

    中文 AI翻譯

    題目:葡萄園之歌

    在昨日默想的經文中,神向領袖們控訴:「吞吃葡萄園的正是你們。」那時提到葡萄園究竟是什麼,今日將會揭曉——今日的經文,正是那首著名的「葡萄園之歌」。我們需要好好記住這首葡萄園之歌,因為唯有如此,才能正確理解新約中耶穌的教導。無論如何,這首歌以愛的告白作為開場。以賽亞不像一位宣告審判的先知,倒像一位吟唱情歌的歌者,說要為他所愛的人,歌唱那人的葡萄園。

    歌的內容是這樣的:所愛的人在肥沃的山坡上有一座葡萄園。他掘地、撿去石頭、種上上好的葡萄樹,又蓋了望樓,鑿了壓酒池。在巴勒斯坦山地撿去石頭是最艱辛的勞作,而在岩石中鑿壓酒池,更是只有確信豐收時才會去做的事。可見主人對這葡萄園毫不吝惜。他滿懷期待,等候結出好葡萄,然而所結的,卻是野葡萄——酸澀腥臭、無法入口的果子。

    歌在此轉了方向。歌者突然向聽眾發問:「耶路撒冷的居民和猶大人哪,請你們在我與我葡萄園之間秉公判斷。」

    賽 5:4 我為我葡萄園所做的,還有什麼可做的呢?我指望結好葡萄,怎麼倒結了野葡萄呢?

    聽眾尚未意識到這說的是自己的故事,便在心中判定:這樣的葡萄園理當被翻耕毀掉。這正是先知拿單指出大衛罪行時所用的策略——讓人以為是在評斷別人的事,待其作出判決,再刺穿他:「你就是那人!」就這樣,聽眾在不知不覺中,對自己作出了審判。然而讀者不可錯過第四節的那個問題:「還有什麼可做的呢?」也就是說,神這一方毫無虧欠。葡萄園失收的責任,全在葡萄樹本身。

    接下來,主人執行判決,但請留意他的方式:「我現在告訴你們,我要向我葡萄園怎樣行。我必撤去籬笆,使它被吞滅,拆毀牆垣,使它被踐踏;我必使它荒廢,不再修剪,不再鋤地,荊棘蒺藜就長起來;我也必命雲不降雨在其上。」(賽 5:5–6)主人沒有放火燒園,也沒有拔除葡萄樹,不過是撤去籬笆、停止照料、不再降雨——也就是收回那守護的手。然而,這就是審判。保護一旦撤除,葡萄園便成荒地,因為葡萄園本身並沒有自保的能力。籬笆撤去,便要被吞滅、被踐踏。一直以來未曾察覺主人保護的葡萄園,如今才真切感受到那保護的存在。

    而在神命令雲不降雨的這一幕,這首歌的面具終於揭開。世上沒有任何農夫能向雲下命令——這首歌的主角,從一開始就是神。第七節終於揭明真相:

    賽 5:7 萬軍之耶和華的葡萄園就是以色列家;他所喜愛的樹就是猶大人。他指望的是公平,誰知倒有暴虐;指望的是公義,誰知倒有冤聲。

    這最後一行,被公認為整個希伯來詩歌中最著名的文字遊戲。「公平」希伯來文是「mishpat」,「暴虐」是「mispach」;「公義」是「tzedakah」,「冤聲」是「tze'akah」。每一對相差僅一個輔音,音近而義反。看似公平的暴虐,聽起來像公義的剝削哀號——外表堂皇,內裡卻滲出窮苦人的哭聲。神在猶大所聽見的,正是這樣的聲音。

    那麼,葡萄樹所結的野葡萄究竟是什麼?葡萄園中那暴虐與哀號的實體又是什麼?緊接而來的「禍哉」宣告,便是答案的清單。本文共宣告六個「禍哉」,今日只出現其中前兩個,其餘的明日再一同來看。

    第一個「禍哉」,是針對那些房屋連接房屋、田地接連田地,不留餘地、獨佔此地的人。為何這是問題?因為律法規定,土地屬於神,分給各家族的產業永不得售賣。然而有權有勢之人卻藉著債務為由,吞併貧窮鄰舍的產業,積累大片土地。那些想趕走所有鄰舍、獨居其中的人,神對他們說:那些又大又美的房屋,將要無人居住。他們渴望獨居的心願,將以最扭曲的方式得到實現。

    第二個「禍哉」,是針對那些清早起來追求烈酒、深夜仍沉醉於葡萄酒的人。他們的宴席上備有琴、瑟、鼓、笛,應有盡有。然而問題不在酒與音樂本身,而在於他們不顧念耶和華的作為,也不留意他手所做的事。從清晨到深夜只顧填滿自己的感官,結果便是失去了看見神作為的眼光。因此,享樂之所以成為罪,是因為它吞噬了人仰望神的視野。所以第十三節說,我的百姓因無知識而被擄掠。

    本文以第二章中出現過的副歌作結:世人都要屈膝,尊貴的人必要降卑,傲慢的眼目也必降低;然而唯有萬軍之耶和華,因施行公平,必被尊崇。神在百姓中間尋找而不得的公平與公義,祂以自己的行動來彰顯。也就是說,縱使公義從那地消失,公義本身並不因此消亡。

    今日默想時,我思想的是籬笆的恩典。神的審判不是烈火降下,而是撤去籬笆——這一事實今日深深觸動了我。將這段話語反過來思想,意思便是:我如今平安無事,是因為籬笆仍然立在那裡。今日又平靜地過去的一天、家人的健康、群體的平安、在異鄉尚能落地生根的日常生活——這一切,原來都是神未曾撤去、仍舊立著的籬笆之內的風景。當然,籬笆之內有時也會鑽進小狐狸,也會生出害蟲。然而我似乎總是活在忘記那籬笆的狀態中,甚至,我或許太頻繁地將它視為理所當然。因為籬笆不容易被眼睛看見,唯有它被撤去之後,才知道它曾在那裡。因此,今日我願意細細思量那看不見的籬笆,心存感謝。也禱告自己能在這籬笆之內,結出神所等候的果子——那公平與公義的好葡萄。為此,今日我也讚美那將我接在真葡萄樹上的恩典。

    댓글 / 留言 (0)

    로딩 중...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留言需要先登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