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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이사야 1:21–31

    今日默想:以賽亞書 1:21–31

    Kyoung Woo Han··조회 39

    제목 : 신실한 성읍이라 불리리라

    이사야 1장은 어제 읽은 앞부분에 이어, 오늘 한 편의 애가로 그 서곡을 닫는다. 히브리 성경에 의하면 21절의 첫 마디가 '어찌하여'인데, 이 말은 예레미야가 무너진 예루살렘을 붙들고 통곡할 때 애가의 첫머리에 놓았던 바로 그 단어다. 그러니까 이사야는 지금 아직 무너지지도 않은 예루살렘의 장례를 미리 치르듯 애가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그렇게 애통해하는가.

    사 1:2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한때 이 성읍은 '신실한 성읍'이었다. 정의가 가득 차 있었고, 공의가 그 안에 밤새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그 성읍이 창기가 되었다. 성경에서 음란은 본래 하나님을 저버린 배신, 곧 영적 간음을 뜻한다. 그런데 이 영적 음란은 멀리 있지 않았다. 어제 우리가 본 것처럼, 마음은 떠난 채 손만 들어 드리는 형식적인 예배—그것이 이미 영적 음란이었다. 몸은 성전에 있으나 마음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은 자리에서는 이웃을 향한 정의도 반드시 무너진다. 그래서 이사야는 그 음란의 정체를 곧바로 이렇게 풀어낸다. 은이 찌꺼기가 되고, 포도주가 물로 묽어지고, 관리들이 뇌물을 사랑하며 고아와 과부가 버림받는 것—이 정의의 붕괴가 곧 그 성읍이 하나님을 등졌다는 증거였다. 형식적인 예배로 시작된 영적 음란이, 마침내 정의와 공의를 잃어버린 삶으로 열매 맺은 것이다.

    여기서 이사야가 지적하는 대상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성읍 전체를 싸잡아 꾸짖기 전에, 먼저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라고하며 지도자들을 지목한다. 정의가 무너진 자리에는 언제나 정의를 세우도록 세움 받은 자들의 타락이 있다. 성문에서 재판하며 약한 자의 억울함을 풀어 주어야 할 자들이, 도리어 뇌물을 받고 힘 있는 자의 편에 섰다. 어제 본문에서 하나님이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17절) 명하셨는데, 오늘 그 명령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는 자들이 다름 아닌 지도자들이다. 결국 이스라엘의 타락은 지도자들이 먼저 무너졌고 백성이 그 뒤를 따랐다.

    그래서 24절,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내 대적에게 보복하겠다." 그 대적이 누구인가. 이방 나라가 아니라 자기 백성이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하나님의 원수 자리에까지 서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무서운 선언 바로 뒤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 1:25 내가 또 내 손을 네게 돌려 네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며 네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치신다고 하시는데, 그 치심의 내용이 파멸이 아니라 제련이다. 앞에서 은이 찌꺼기가 되었다고 하셨는데, 이제 그 찌꺼기를 용광로에 넣어 녹여 버리고 순은을 되찾으시겠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심판은 백성을 없애려는 불이 아니라, 백성 안의 불순물을 태워 없애려는 불이다. 그리고 그 제련의 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사 1:26 내가 네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네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하셨나니

    정의가 무너진 자리가 지도자로 시작되었으니, 회복 또한 지도자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은 재판관들을 처음같이, 모사들을 본래같이 되돌리시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바로 그때 성읍은 다시 '신실한 성읍'이라 불린다. 21절에서 잃어버렸던 그 이름을, 26절에서 되찾는 것이다. 창기가 되었던 성읍이 다시 신실한 성읍이 된다. 바로 그 사이에 놓인 것이 심판인데, 알고 보니 그 심판은 성읍을 신실함으로 되돌리기 위한 하나님의 정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회복이 어디서 온전히 이루어지는지는, 이사야가 조금 더 나아가며 보여 줄 것이다. 이것을 기억하고 이사야서를 봐야 한다.

    이 애가는 그렇게 회복의 약속으로 방향을 튼 뒤, 마지막으로 두 갈래 길을 확인하며 장을 닫는다. 시온은 정의로 구속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원을 받지만(27절), 끝내 여호와를 버린 자는 패역한 자와 함께 멸망한다(28절). 그런데 그 버린 자들의 마지막 모습이 지독하게 반어적이다. 그들은 무성한 상수리나무와 물 댄 동산을 신뢰하며 그 아래서 우상을 섬기던 자들인데(29절), 정작 그들 자신이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처럼, 물 없는 동산처럼 말라 버린다(30절). 자기가 의지하던 그 모습으로 시들어, 끝내 그 우상과 함께 불타 버리는 것이다(31절). 그래 신실함으로 돌이키는 길과 우상을 붙들고 말라 가는 길, 바로 그 두 길 앞에 성읍이 서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을 하면서 항상 두려움으로 내 삶을 돌아본다. 하나님이 성읍을 회복하실 때 가장 먼저 손대신 곳이 지도자였다는 사실이 두렵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병드는 것도, 다시 서는 것도, 그 시작점에 세움 받은 자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이 자리에서 뇌물 같은 것을 받을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하지만 나의 그릇된 결정이 공동체가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삶 속에서는 약한 지체의 억울함을 못 본 척 넘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마음이 다른 데로 새어 나가는 것, 그것이 지도자의 영적 음란이다. 그렇다. 세움 받은 자리는 특권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공의를 실현하라고 맡겨진 짐이다. 더불어 오늘 나는 나와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을 위해 기도한다. 나는 가정과 강의실과 사무실과 가게에서 애쓰는 젊은 지체들이 그 자리에서 성공하기를, 언젠가 사람들을 이끄는 자리에 서기를 바란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는다.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이 목적인가, 아니면 그 자리에서 정의와 공의를 세우는 것이 목적인가. 그래 지도자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도자가 된 후에 그곳이 신실한 자리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먼저 신실하기를 기도한다. 그리하여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신실한 성읍이라 불리울만 하길 소망한다.

    中文 AI翻譯

    題目:必被稱為忠信之城

    以賽亞書第一章,承接昨日所讀的前半部分,今日以一首哀歌為其序曲畫下句點。按照希伯來聖經,第21節的開頭是「何竟」,這個詞正是耶利米抱著傾覆的耶路撒冷痛哭時,置於哀歌卷首的那個字。因此,以賽亞如今所唱的,是一首為尚未傾覆的耶路撒冷預先舉哀的輓歌。那麼,他在為何而哀慟?

    賽 1:21 先前忠信的城,現在竟成了妓女!其中充滿了公平,公義居在其中,現在卻有兇手居住。

    這座城曾是「忠信之城」。公平充滿其中,公義整夜安居其內。然而這城竟淪為妓女。聖經中的淫亂,本指背棄神的背叛,即屬靈上的姦淫。而這屬靈的淫亂,並不遙遠。正如昨日我們所見——心已離去,卻只舉手獻上的形式化敬拜,那已然是屬靈的淫亂。身在聖殿,心卻離開了神。而對神之愛冷卻的地方,對鄰舍的公義也必隨之崩潰。因此,以賽亞隨即將那淫亂的實質揭示出來:銀子變為渣滓,酒被水摻淡,官長貪愛賄賂,孤兒寡婦遭人遺棄——這公義的瓦解,正是那城背棄神的明證。從形式化的敬拜開始的屬靈淫亂,終究結出了喪失公平與公義之生命的果子。

    在此,不可忽略以賽亞所指責的對象。在斥責全城之前,他先點明「你的官長居心悖逆」,矛頭直指領袖。每當公義傾覆之處,背後必有那些被立來建立公義之人的墮落。那些本該坐在城門審判、為弱者伸冤的人,卻反而收受賄賂,偏向有權有勢之人。昨日經文中,神吩咐「為孤兒伸冤,為寡婦辯護」(17節),而今日公然違背此命令的,正是這些領袖。以色列的墮落,始於領袖的先行傾覆,百姓隨之跟從。

    因此,第24節,神如此說:「我要報復我的對頭。」那對頭是誰?不是外邦列國,乃是自己的子民。神的立約百姓,竟淪落到與神為敵的地步。然而就在那可怖的宣告之後,神又如此說:

    賽 1:25 我必翻轉我的手,煉盡你的渣滓,除去你的雜質。

    神說要擊打以色列,然而那擊打的內容,不是毀滅,而是精煉。前文說銀子已成渣滓,如今神要將那渣滓投入熔爐熔盡,重新得回純銀。是的,神的審判不是要消滅百姓的火,而是要燒盡百姓內中雜質的火。那精煉的終點,將發生何事?

    賽 1:26 我必復還你的審判官,如起初一樣;復還你的謀士,如起先一般。然後,你必稱為公義之城,忠信之邑。

    既然公義的崩潰始於領袖,復興也從領袖開始。神說要使審判官如起初、謀士如起先。正在那時,這城再次被稱為「忠信之城」。第21節所失去的那個名,在第26節被重新尋回。曾淪為妓女之城,再次成為忠信之城。夾在其間的,是審判——而細看之下,那審判原是神為使這城回歸忠信所施的精煉。至於這復興將在何處得以完全成就,以賽亞將在稍後更進一步地揭示。讀以賽亞書,需銘記這一點。

    這首哀歌如此轉向復興的應許之後,最終以兩條路作結,為本章畫上句點。錫安必因公平得蒙救贖,其中歸回的人必因公義得蒙拯救(27節);然而那些終究離棄耶和華的人,必與悖逆者一同滅亡(28節)。那些離棄之人最後的光景,帶著令人窒息的反諷。他們信靠茂盛的橡樹與澆灌的園子,在其下侍奉偶像(29節),然而他們自己,卻像葉子枯乾的橡樹,像無水的園子,乾枯凋零(30節)。他們以所倚靠之物的形狀枯萎,終與那偶像一同被焚燒(31節)。是的——轉回忠信之路,與抓住偶像逐漸枯竭之路,這兩條路,正擺在那城面前。

    每當讀神的話語、默想時,我總是帶著敬畏省察自己的生命。因為神復興那城時,祂首先動手之處是領袖——這讓我心存懼怕。群體的病患,以及群體的重建,其起點都在那被立之人身上。當然,我所在的位置,並非一個可以收受賄賂之類的場合。然而我深知,我錯誤的決策,可能使群體無法獻上完全的敬拜。在生活中,我也省察自己:是否對軟弱肢體的委屈視而不見、一筆帶過?心思流向別處——那便是領袖的屬靈淫亂。是的,被立之位不是特權,而是在那位置上實現公義所託付的擔子。

    此外,今日我也為自己和我們群體的肢體們禱告。我盼望那些在家庭、講堂、辦公室與店鋪中竭力而為的年輕肢體,能在所在之處蒙神賜福,有朝一日站上帶領人的位置。然而今日的經文向我們發問:登上那位置本身是目的,還是在那位置上建立公平與公義才是目的?是的,比成為領袖更重要的,是成為領袖之後,使那位置成為忠信之地。因此,今日我禱告:願我們在所託付的位置上,首先成為忠信之人。願我們的群體,在神眼中足以被稱為忠信之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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