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이사야 3:13–4:6
今日默想:以賽亞書 3:13–4:6
제목 : 하나님이 씻으신다
오늘 본문은 이사야서에서 처음으로 멸망과 희망이 나란히 놓이는 자리다. 3장의 끝은 잿더미인데, 4장의 끝은 영광의 장막이다. 이 극단적인 대조가 오늘 본문의 뼈대다. 그러니 먼저 그 멸망이 어디서 왔는지부터 보아야 한다.
이사야는 다시 법정을 연다.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고, 백성을 심판하러 서신다. 그리고 피고석에 세워진 자들이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이다.
사 3:14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을 심문하러 오시리니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이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의 집에 있도다
지도자들을 향한 고발의 첫 마디가 '포도원을 삼켰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에게 포도원은 돌보라고 맡기셨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돌보아야 할 것을 도리어 먹어버린 것이다. 그럼 이 포도원이 무엇인가? 그것은 내일 읽을 5장, 그 유명한 '포도원의 노래'에서 다시 자세히 이야기 하자. 다만 오늘은 한 가지만 기억하고 넘어갈 것은 하나님께서 이 포도원을 '내 백성'이라 부르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15절의 고발이 그토록 격렬한 것이다.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냐?" 맷돌질은 곡식을 갈아 가루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의 얼굴을 맷돌에 간다는 이 표현은 그 장로와 고관들의 착취가 얼마나 잔혹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고발은 지도자들에게서 멈추지 않는다. 이사야의 시선이 이번에는 시온의 딸들에게로 향한다. 그들은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작거려 걸으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이 모든 표현은 바로 하나같이 과시의 몸짓이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벗기실 것들을 스물한 가지나 나열한다. 발목 고리와 머리 망사, 귀 고리와 팔목 고리, 반지와 겉옷과 손 거울까지 길게 이어지는 이 목록의 길이 자체가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자기를 치장했는지를 보여 준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치가 어디서 왔는가이다. 그것은 바로 앞에서 가난한 자의 얼굴을 맷돌질한 그 손에서 왔다. 즉 착취의 열매를 몸에 걸치고 다닌 것이다. 게다가 그 장식의 목록 안에는 초승달 장식이나 부적처럼 이방 종교의 냄새가 밴 물건들도 섞여 있었다. 결국 그들의 치장은 단순한 허영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삶을 온몸에 걸치고 다니는 표지였던 셈이다.
이런 삶의 결과가 무엇이었는가. 전쟁의 참상이다. 장정들은 칼에 죽고 용사들은 전쟁에서 망한다. 수많은 화려한 장식품을 걸쳤던 여인들은 냄새나는 노끈과 베옷을 걸치게 된다. 그 결과 백성들이 성문에서 슬퍼하며 곡하고, 시온 사람들은 황폐한 땅에 주저앉는다. 그래 방금까지 목을 빼고 아기작거리며 걷던 그 딸들이 이제 땅바닥에 앉아 통곡한다. 그리고 4장 1절이 그 참상의 마지막 그림이다. 남자들이 다 쓰러진 성에서 일곱 여인이 한 남자를 붙잡고 애원한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다만 당신의 이름으로 불리게만 해 달라. 수치만 면하게 해 달라."라고 한다. 당시 여인에게 혼인과 자녀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 시대에는 남편의 이름 아래 있지 못하고 자녀 없이 홀로 남는 것은 하나님의 복에서 제외된 자라는 낙인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남편의 부양도 바라지 않고 그 이름만이라도 달라고 매달린다. 생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수치가 더 무서웠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잿더미에서, 본문은 숨을 바꾼다.
사 4:2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모든 것이 마르고 벗겨지고 무너진 자리에서 싹이 돋는다. 심판의 폐허가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싹과 함께 남은 자들이 있다.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이다. 그들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물어야 한다. 살아남아 명단에 오른 그들이 무슨 자격으로 거룩하다 불리는가. 그들이 남보다 나았기 때문이 아니다. 방금까지 이 성읍 전체가 함께 고발당하고 있었다. 남은 자들 역시 그 더러움 가운데 있던 자들이다. 이사야는 이미 1장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는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을 것'이라고... 그래 남은 것은 우리가 붙들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남겨 두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거룩하다 칭함을 받는 이유도 오직 하나이다. 다음 3절이 말하듯 '하나님이 그들을 친히 씻으시기 때문'이다. 남은 자를 남기시고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다. 그래서 4절에 이렇게 기록한다.
사 4:4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사실 이사야 1장을 보면 하나님은 '너희는 스스로 씻으라' 명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스스로 씻지 못했다. 피 묻은 손으로는 자기를 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이 친히 씻으신다. 그런데 그 씻으심의 도구가 바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이다. 그렇다. 앞 단락의 그 무서운 심판이 정결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1장에서 찌꺼기를 녹여 순은을 되찾겠다 하신 그 제련의 불이 이 본문에서는 더러움을 씻어 내는 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심판은 버리시는 손이 아니라 씻으시는 손이다.
그리고 씻으신 다음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다. 시온 산 모든 거처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를,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신다. 이것은 출애굽 광야에서 백성을 인도하던 그 구름과 불의 상징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앞서 가지 않고 시온 위에 머물러 덮개가 된다. 그런데 히브리 원문에서 이 덮개라는 단어는 혼인 예식 때 신랑과 신부 위에 펼치는 차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1장에서 창기가 되었다고 애통하던 바로 그 성읍 위에, 이제 혼인의 차양이 펼쳐지는 것이다. 바로 씻기신 백성을 하나님이 신부로 맞으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초막이 있어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이 되고 풍우를 피하는 숨는 곳이 된다. 1장에서 딸 시온은 포도원에 홀로 남은 원두막 같다고 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이 친히 그의 초막이 되어 주신다는 것이다. 초막같이 위태롭던 자가, 하나님을 초막으로 얻는 것을 표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 앞에서 나는 한 가지를 깊이 묵상한다. 하나님이 씻으신다는 것이다. 스스로 씻으라는 명령 앞에서 번번이 실패한 나를... 하나님이 친히 씻으신다. 어쩌면 나는 내 손으로 나를 씻으려 했던 것 같다. 더 열심히 섬기는 것으로, 더 오래 기도하는 것으로 내 부족을 덮어 보려 했었다. 그러나 피 묻은 손으로는 자기를 씻을 수 없듯이 나의 노력과 행위로 씻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다시금 상기 시켜주신다. 나의 씻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일이다. 물론 때로는 그 씻으심은 아픈 방식으로 온다. 내가 붙들고 있던 것들이 벗겨지고 무너지는 시간으로 훈련의 시간으로... 사실 나 역시 그 시간이 실은 하나님이 나를 씻고 계신 시간이었음을 지나고 나서야 안다. 그러니 오늘 나는 그 손길 앞에 엎드려 기도할 뿐이다. "하나님, 나를 씻어 주옵소서. 내 안의 교만과 과시와 착취의 흔적들을 씻어 주시사, 그 씻으심 가운데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그리하여 주께서 펼치시는 그 혼인의 차양 아래, 흰옷 입은 자로 서게 하옵소서."
題目:神來洗淨
今天的經文,是以賽亞書中第一次將滅亡與盼望並列在一起的地方。第三章的結尾是一片灰燼,第四章的結尾卻是榮耀的帳幕。這極端的對比,正是今日經文的骨架。因此,我們必須先看清那滅亡從何而來。
以賽亞再次開啟法庭。耶和華起身要辯論,站立要審判祂的百姓。而被帶上被告席的,正是百姓中的長老與首領。
賽 3:14 耶和華必審問祂百姓的長老和首領,說:吃盡葡萄園的是你們;向貧窮人所奪的都在你們家裡。
控告領袖的第一句話,就是「吃盡了葡萄園」。神將葡萄園交託給領袖們,要他們好好照管;他們卻將本當看守之物,反而吞吃殆盡。那麼,這葡萄園究竟是什麼?這個問題留待明天讀到第五章那首著名的「葡萄園之歌」時再詳細討論。今天只需記住一件事:神稱這葡萄園為「我的百姓」。正因如此,第十五節的控告才如此激烈——「你們為何壓制我的百姓,磨碎貧窮人的臉?」所謂磨碎,是把穀物放在磨石上輾成粉末。因此,將人的臉放在磨石上研磨這個說法,正是要呈現那些長老與首領的剝削是何等殘酷的行為。
然而,控告並未止步於領袖。以賽亞的目光這回轉向了錫安的女子。她們「昂首而行,送目而視,踱著碎步,腳上玎璫作響」。這一切描述,無一不是炫耀的姿態。隨後,先知列舉了將從她們身上除去的飾物,足足二十一樣之多——腳鐲、頭飾、耳環、臂鐲、戒指、外衣、手鏡……這份清單的長度本身,就說明了她們用多少東西來裝扮自己。問題的關鍵在於:這些奢華從何而來?它來自前文那雙磨碎貧窮人臉的手。也就是說,她們是將剝削所得的果實披掛在身上四處招搖。更何況,那裝飾品的清單之中,還夾雜著新月形飾物或護符之類帶有異教氣息的器物。由此可見,她們的妝飾絕非單純的虛榮,而是將離棄神的生命穿戴在全身、昭示於眾的標記。
這樣的生命帶來了什麼結果?是戰爭的慘烈。壯丁倒在刀下,勇士喪身沙場。那些披掛著華麗飾物的女子,如今只能裹上發臭的細繩與麻衣。百姓在城門口悲哀哭號,錫安的人民頹然坐倒在荒蕪之地。方才還仰頸踱步的那些女子,如今卻伏地慟哭。第四章第一節,是這場慘烈景象的最後一幅畫面:在男丁盡皆傾倒的城中,七個女人拉住一個男人哀求——「我們的衣食自己籌備,只求你允許我們歸在你的名下,免除我們的羞辱。」在那個年代,婚姻與子嗣對女性而言絕非小事。那時候,若不能屬於丈夫的名下、無子孤身而終,便如同被烙上排除在神恩典之外的烙印。因此,她們不奢求丈夫的供養,只求能得他的名。她們更懼怕的,不是生計,而是社會的羞辱。
然而,就在那片灰燼之中,經文的氣息悄然轉換。
賽 4:2 到那日,耶和華發生的苗必華美尊榮,地的出產必為以色列逃脫的人顯為榮華茂盛。
在萬物枯乾、剝落、傾頹之處,嫩芽破土而出。審判的廢墟並非終點。與那嫩芽一同出現的,是留存下來的餘民——那些留在錫安、住在耶路撒冷的人,凡記錄在冊的生存者,都必稱為聖潔。然而,在這裡我們必須發問:那些活下來、名列冊上的人,憑什麼資格被稱為聖潔?並非因為他們比別人更好。經文說,就在片刻之前,這座城的所有人都一同受到控告。留下來的人,同樣曾身陷那污穢之中。以賽亞早在第一章已如此承認:「若不是萬軍之耶和華給我們稍留餘種,我們早已像所多瑪、像蛾摩拉了。」是的,我們之所以得以留存,不是因為我們自己抓緊了什麼,而是神留下了我們。而他們之所以被稱為聖潔,也只有一個緣由——正如下一節所言:「是神親自洗淨了他們。」留下餘民、使他們成聖,這從始至終都是神的恩典。因此第四節如此記載:
賽 4:4 這是因為主要用審判的靈和焚燒的靈,洗去錫安女子的污穢,又從耶路撒冷中滌除其中的血污。
事實上,翻回以賽亞書第一章,神曾命令說:「你們要自潔。」然而以色列無力自潔,因為沾滿血污的雙手無法洗淨自己。於是,神如今親自來洗。而那洗淨所用的器具,正是審判的靈與焚燒的靈。是的,前段那可畏的審判,原來是潔淨的過程。神在第一章所說的「熔去你的渣滓,煉出純銀」,到了這段經文,那冶煉之火便以洗滌污穢之水的形象呈現出來。因此,神的審判不是拋棄的手,而是洗淨的手。
洗淨之後,神還要做一件事。祂要在錫安山各處的居所,白晝用雲煙,夜間用火焰的光,覆蓋其上。這正是出埃及曠野時引領百姓的那雲柱和火柱的象徵。只是這一次,雲火不再走在前面,而是停駐在錫安之上,成為遮蓋。希伯來原文中,這「遮蓋」一詞,所指的正是婚禮上鋪展在新郎新婦頭頂的華蓋。就在第一章曾為之哀痛、說她已成為娼妓的那座城上,婚禮的華蓋如今展開了。這象徵著:神要迎娶那被洗淨的百姓為新婦。那裡又有帳幕,白晝作為遮蔽炎熱的蔭涼,成為躲避風雨的藏所。第一章曾說錫安的女兒如同葡萄園裡孤伶伶的瓜棚,如今神的榮耀親自成為她的帳幕。那曾像瓜棚一樣岌岌可危的人,如今得著神作為自己的帳幕——經文正是要表達這樣的翻轉。
站在今日這段經文面前,我深深默想一件事:神來洗淨。面對那「你們要自潔」的命令,我一再失敗——神卻親自來洗淨我。或許,我一直試圖用自己的雙手洗淨自己:用更殷勤的服事,用更長久的禱告,想要遮蓋自己的不足。然而,正如沾血的手無法洗淨自己,我也知道,靠著自己的努力與行為是無法潔淨的。今日這段經文再次提醒我:我的潔淨,從始至終都是神的工作。當然,那洗淨有時以痛苦的方式臨到——那是我所緊抓之物被剝去、傾倒的時光,是磨練的時光……說實話,那些時光是否真的是神在洗淨我,我往往要走過之後才能明白。因此,今天我只是俯伏在那雙手面前禱告:「神啊,求祢洗淨我。洗去我內心的驕傲、炫耀與剝削的痕跡,在那洗淨之中,求祢不忘憐憫。使我得以穿上白衣,站立在祢所展開的那婚禮華蓋之下。阿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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