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나에게도 한가지 결함이 있었다.
고린도 교인들 처럼 교만이 있어 남들을 아프게 할때가 있었다. 지금은 많이 치유 되었다고는 하지만 늘 한 켠에는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다.
그것이 이후에 불로 연단을 받을때 남을지 탈지는 모르겠지만...
목사님의 말씀 나눔처럼 늘 부담으로 와 닿는다.
율법에 능했던 사울이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계획을 깨닫지 못했을 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였지만, 성령의 역사가 임하자 죽기까지 충성하며 예수님을 위해 살아간 바울이 되었다. 사람의 지혜로 말씀을 읽으면 그저 텍스트가 되어 그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오히려 나를 자랑하는 자가 되지만, 성령의 역사로 말씀을 읽으면 그 안에 숨겨진 천국의 비밀들을 깨닫고 하나님을 자랑하게 된다. 나는 지금 사울인가, 바울인가? 내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 자신의 영만이 알 수 있는 것이라는 바울의 가르침이 와 닿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지혜를 버리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가르침을 늘 받기 원합니다. 나의 일과 일상의 만남들 가운데에도 성령께서 나타나시고 선한 일을 이루시는 것을 내가 보고 성실히 참여하고 싶습니다.
(고린도전서 2:1-16, 누가복음4-5)
성령과 말씀의 능력으로 광야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과 자신의 지혜가 아닌 오직 성령의 나타나심을 의지해 십자가를 전했던 바울을 묵상합니다. 삶의 크고 작은 유혹과 시험 앞에서도 내 힘과 경험이 아닌 오직 진리의 성령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기 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성령께서 제 걸음을 친히 인도하시고 말씀으로 승리하게 하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겠습니다.
성령의 지혜를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하늘의 비밀을 열어줄 열쇠를 주셨고 이를 따르게 하심에도 감사드립니다.
바울은 육에 속한 사람과 성령에 속한 사람을 나누는데 우리는 성령에 속한 사람들로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영은 오직 성령의 은혜로만 알아갈 수 있는 길임에 또한 감사하는 하루가 될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미련하고, 약하고, 멸시받는 저희를 부르셔서 교회에 기둥이 되게 하여 주시고, 항상 주님의 말씀을 잊지 않게 해주세요. 아무것도 없는 저를 지금까지 살게 해주시고, 배울 수 있게 해주심은 제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해졌음을 고백합니다.
(고린도전서 1:18-31, 누가복음 2-3)
지극히 낮고 천한 구유로 오셨지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참 기쁨을 허락하신 누가복음의 예수님을 묵상합니다. 세상의 미련하고 약한 것들을 택하여 부르신 고린도전서의 말씀 역시 결국 가장 낮은 자리로 임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라는 하나님의 초대임을 깨닫습니다. 높아지려 하기보다 낮은 곳에서 사랑으로 섬기며 주님을 온전히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당시 대단한 지성을 가졌던 바울이 세상의 지혜를 변으로 여기며 버리려 했던것을 잘 알고 있다.
그 바울이 고린도에 와서 물질과 지혜, 헛된 것들로 자랑을 삼으려 하는 것을 지적한다.
바울의 지적이 오늘 내 가슴 속에도 깊은 울림이 있어 하나님, 주님, 성령의 지혜로 살아내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고린도전서 1:10-17, 누가복음 1장)
예수님을 예비하기 위해 요한이 왔고 고린도 교회를 세우기 위해 여러 사람의 섬김이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시고 친히 공동체의 모퉁이돌이 되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러한 우리의 다름은 결코 분열을 이끌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가복음의 사가랴의 찬양처럼 구원의 역사를 위해 쓰임 받는 것임을 봅니다. 이 사실을 참된 기쁨으로 여기며,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섬기는 삶을 살겠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셨고 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부활하신 기쁜 소식은 변하지 않는 진리이며 유일한 복음이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연약하여 하나의 복음을 받아들였음에도 여러 개의 분쟁이 생기기도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되게 하시려고 복음을 주셨음을 기억하고 서로 사랑으로 섬기며 하나될 수 있는 공동체가 되도록 기도하자.
교회에서 분쟁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는 바울의 권면은 오늘날에도 동일한 중요성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했으니, 사랑과 화합이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분명한 의무임을 늘 기억해야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사랑하고 협조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한 분 그리스도 예수 아래에서 우리 교회가 하나 된 모습, 나아가서 지역의 교회들이 하나 된 모습, 결국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 된 선한 모습으로 주께 영광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고린도전서 1:1-9, 마태복음27-28)
마태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복음의 지경을 넓혀 제자들을 모든 민족에게로 파송하십니다. 고린도전서를 통해 바울은 그 순종의 결과로 세워진 교회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증거해 나가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곳에서도 우리를 흩어진 개인으로 두지 않으시고 하나의 교회로 모아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부르신 이 자리에서 위대한 지상명령을 잊지 않고 삶으로 복음을 살아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고린도전서 1:1-9
고린도 교회처럼 문제 많고 부족한 모습일지라도 그들을 성도라 부르며 끝까지 소망을 품었던 바울의 마음을 이제부터 조금이라도 닮아가는 삶을 살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지식과 능력을 앞세워 상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빚어가고 계심을 신뢰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인내하는 성도가 될수있길 원합니다.
창세기 50:15-26
악한 상황조차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자신의 감정과 환경을 초월했던 요셉의 성숙한 믿음을 닮고 싶습니다. 단순히 나에게 상처 준 이를 용서하는 단계에 머물지 않고, 그들의 두려움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위로와 실질적인 배려까지 베풀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갖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도와 성도로 부르셨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증거로 우리를 견고하게 하신다. 또 우리가 예수님과 교제하게 하신다. 이 모든 것은 내 힘과 능력으로 얻은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거저주신 은혜이고 은사이다. 내 힘과 능력으로 얻은 것으로 착각하다 은혜를 놓치고 그것에 얽매여 삯으로 여기지 말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감사와 기쁨으로 주를 섬기는 자가 되자.
(창세기 50:15-26, 마태복음25-26)
하나님의 계획을 온전히 신뢰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신을 판 형제들을 용서하고 그들과 그 가족들을 품었던 요셉이나 겟세마네 동산의 고통스러운 기도 속에서도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받아들이신 예수님 모두 아버지의 계획에 대한 온전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신뢰는 반드시 순종으로 이어지며 그 순종은 나를 완전히 내려놓을 때 비로소 가능하기에 유독 어렵게 느껴집니다. 내 뜻을 꺾고 주님의 계획과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리며 살고 싶습니다.
내가 지은 죄에 마음의 가책을 느끼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좋으나, 너무 죄책감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용서를 의심하는 것은 좋지 않다. 나에게도 요셉의 형들과 같은 모습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죄인되었을 때 이미 나를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그 죄를 진심으로 뉘우쳐 더 이상 그 죄를 짓지 않아야 하며, 그러한 나조차도 품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심없이 믿으며 주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