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고백처럼 안주하지 않고 운동선수가 치열하게 절제하듯 최선을 다하는 그리스도인 다운 모습으로 살기 원합니다.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치 않으심 또한 잊지 않고 어려움이 있을때 불평하고 낙심하기 보단 부어주실 은혜를 기대하며 감사하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如同保羅的告白,願我不安於現狀,像運動員全力以赴、嚴格自律,過著真正基督徒樣式的生活。同時也不忘神不會允許超過我們所能承受的試煉,當遇到困難時,不是埋怨、灰心,而是懷著期待神所要傾倒的恩典,活出感恩的生命。
바울의 고백처럼 안주하지 않고 운동선수가 치열하게 절제하듯 최선을 다하는 그리스도인 다운 모습으로 살기 원합니다.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치 않으심 또한 잊지 않고 어려움이 있을때 불평하고 낙심하기 보단 부어주실 은혜를 기대하며 감사하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如同保羅的告白,願我不安於現狀,像運動員全力以赴、嚴格自律,過著真正基督徒樣式的生活。同時也不忘神不會允許超過我們所能承受的試煉,當遇到困難時,不是埋怨、灰心,而是懷著期待神所要傾倒的恩典,活出感恩的生命。
바울은 복음을 위해 모든 권리와 자유를 내려 놓았고 예수님은 날 살리기 위해 하늘 보좌 버리시고 기꺼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한없이 크신 그 은혜를 자격 없는 내게 거저 주셨다. 하지만 내 지난 삶을 돌아볼때 난 항상 반대의 삶을 살아왔음에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난 어떻게든 내 권리를 찾으려 애쓰고, 내 자유를 빼앗길까 두 눈을 부릅뜨고 살아왔다. 영혼을 위해 희생하기는 커녕 두 손을 꽉 진채 살아온 내 모습을 회개하며 이제는 나도 주를 위해 낮아지고 희생하며 내게 맡기신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는 삶이 되길 기도한다.
保羅為了福音放下了一切的權利與自由,耶穌為了使我得生,甘願離開天上的寶座,在十字架上捨命。那無限廣大的恩典,白白賜給了毫無資格的我。然而,當我回顧過去的生命,我總是走在相反的道路上,心中充滿了無盡的慚愧。我總是想方設法地爭取自己的權利,睜大雙眼守護著不願失去的自由。不但沒有為靈魂犧牲,反而緊握雙手只顧自己——我為這樣的自己悔改,並禱告從今以後,我也能為主降卑、甘心犧牲,默默背負祂所託付給我的十字架,走完這一生的路。
당대 최고의 엘리트 바울은 사랑이 없는 지식은 오히려 해로울 뿐이라고 설명한다. 부모가 되고 아이가 자라며 내 행동, 말투, 삶을 대하는 태도 하나하나가 아이에게는 본보기가 될것을 알기에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이 되지 못하는 연약한 내 모습을 매번 발견하는것 또한 사실이다. 내 책임감 없는 잔소리가 아이를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케 하는게 아니라 바울처럼 사랑으로 내 자신을 버릴때 비로소 아이가 바르게 자라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시는 말씀을 묵상하며 은혜를 받았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는다. 잠 10:12
當代頂尖的精英保羅說明,沒有愛的知識反而有害無益。成為父母、孩子逐漸長大後,深知自己的一舉一動、說話方式、面對生活的態度,都會成為孩子的榜樣,因此時時謹慎。然而儘管如此,每次發現自己仍是那個無法成為好榜樣的軟弱之人,這也是不爭的事實。這段話語讓我再次領悟:不是用缺乏責任感的嘮叨來讓孩子成長得更好,而是像保羅一樣,以愛捨去自我,孩子才能真正地正直成長。默想這話語,領受了恩典。愛能遮掩一切過錯。箴 10:12
고전 7:40 내 의견으로는, 그 여자는 그대로 혼자 지내는 것이 더 행복할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며칠째 내게 감동을 주시는 말씀은 내 의견과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참 쉽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오해하여 확신에 차면 그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바울도 자기 의견을 제시하면서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 하였듯이 모든 일에 있어 내 확신으로 밀어부치기 보단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열린 자세로 수용하는 지혜를 주시길 오늘도 구해본다. 은혜 없이는 안된다.
林前 7:40 我的意見是,那女人這樣獨身下去會更有福氣。我想我也有神的靈。 這幾天持續感動我的話語,是我必須清楚分辨自己的意見與神的話語。然而這實在不容易。基督徒若誤解話語而充滿確信,沒有什麼比這更危險的了。正如保羅在提出自己的意見時,說這樣也好、那樣也好——今天我也再次祈求神,賜我智慧,在凡事上不以自己的確信一意孤行,而是尋求神的旨意,以開放的心去領受。沒有恩典,什麼都不行。
고린도 교인들이 확신에 차 서로 옳다 주장한 것처럼 나 또한 확신에 차 내 주장만을 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특히 가정에서 아내에게, 아들에게, 부모님들에게, 누나들에게.. 10년 주기로 그 생각이 바뀌고 그때 옳다 생각했던 것이 아님을 깨우치는 순간마다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바울도 정답이 아닌, 상황에 맞는 옳음, 때로는 차선책을 제시하듯 나 또한 정답만을 내세우는 사람이 아닌 너그러이 이해하는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就像哥林多的信徒們各自充滿自信、堅持己見一樣,我也想起了自己曾經滿懷把握、只顧主張自我的種種時刻。尤其是在家裡——對妻子、對兒子、對父母、對姊姊們……每隔十年,那些想法便會改變,每當我意識到當時認為正確的事其實並非如此,那些記憶便成了令我羞赧的片段,留存心中。保羅所提出的,並非唯一的標準答案,而是符合處境的合宜之道,有時甚至是退而求其次的選擇——我也盼望自己能成為這樣的人:不是一味堅持標準答案的人,而是能寬容理解他人的人。
고전 16:17 그러나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영이 됩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산다는 것이 무겁게 다가온다. 언제나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가령 교회에서는 집에서와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한다. 겸손한 척, 선한 척, 자비로운 척, 심지어 말투도 달라지는 것이 내 모습이다. 더 큰 문제는 왜 그렇듯 주님을 의식하고 살지는 못할까? 이다. 주님과 한 몸이 되어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고전 1:26-29 약할때 강함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林前 16:17 但與主聯合的人,就與祂成為一靈。 將主迎入心中而活,這件事讓我感到沉重。我似乎一直活在別人的眼光之中。比如,我發現自己在教會和在家裡判若兩人——裝謙遜、裝善良、裝慈悲,就連說話的語氣都不一樣,這就是真實的我。更大的問題是:為什麼我就是無法如此時刻意識到主、活在主面前呢?與主合而為一地生活,實在太難了。靠自己的力量根本做不到。因此,今天我再次求主的恩典。林前 1:26-29 讚美在我軟弱時成為我力量的主。
고린도전서 6:7,9-10 예수님의 당하심으로, 고통 받고 죽으심으로 나는 은혜입어 구원받았음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 은혜를 도리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데에만 활용하였음을 반성합니다. 주님 보시기에 내가 죄의식조차 없이 지나치는 일상속에서의 잘못들이나 내가 남에게 큰 잘못이다! 판단하며 정죄하였던 것들이 다르지 않았음을 돌아봅니다.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마태복음 7:3 말씀을 다시 묵상해 봅니다. 손해보고, 져주고, 속아주는 성도의 삶이 주님 가르쳐 주신 사랑일터인데..
哥林多前書 6:7, 9-10 我記念,因著耶穌所承受的一切——祂的苦難與死亡,我得蒙恩典、領受了救恩。然而,我反省自己竟將那份恩典,反倒只用在論斷他人、定罪他人之上。回想在主眼中,我在日常生活中毫無罪惡感地一帶而過的過失,與我對他人高聲指控「這是大錯!」並加以定罪的事,其實並無二致。我再次默想馬太福音 7:3 的話語:「你看見你弟兄眼中有刺,卻不想自己眼中有梁木呢?」吃虧、退讓、甘願被欺——這樣的聖徒生命,才是主所教導我們的愛啊……
고린도전서 5:5 여러분은 그러한 자를 당장 사탄에게 넘겨주어서, 그 육체는 망하게 하고 그의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해야 할 것입니다. 누룩이 전체에 퍼져서 불어나듯이, 편안함이 나태함이 되고 나태함이 교만이 되어 주님 주신 참 자유가 아닌 육체의 자유만을 추구하였던 자신을 돌아봅니다. 주님이 걸으신 길은 평탄이 아니고 십자가의 길이었음을 다시 기억합니다. 주님 맡기신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지 묵상해 봅니다.
哥林多前書 5:5 你們要把這樣的人交給撒但,使他的肉體滅亡,讓他的靈魂在主的日子得以得救。 就像酵母滲透全團使其膨脹一樣,我回顧自己曾讓安逸變為懈怠,懈怠變為驕傲,所追求的不是主所賜的真自由,而只是肉體的自由。我再次記起,主所走的道路不是平坦之路,而是十字架的道路。我默想:主所託付給我的十字架,究竟是什麼?
전체 8편 · 1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