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한 줄 묵상나눔

    한 줄 묵상나눔

    일상 속 짧은 깨달음·기도제목·감사를 나누고, 서로 ❤️ 좋아요로 격려해요. 한국어/중국어 편한 언어로 작성하시면 자동 번역됩니다.

    이지연님의 한 줄 묵상만 보기
    이지연·

    예수님은 언제나 가장 낮은 자들을 돌아보시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편에 서셨습니다. 오늘 야고보서 말씀처럼 사람을 겉모습의 다름이나 혹은 성향 차이로 차별하거나 정죄하는 모습이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나아가 세상 가운데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할때 예수님의 마음처럼 긍휼이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길 기도합니다.

    耶穌總是眷顧最卑微的人,站在需要幫助的人那一邊。如同今天雅各書的話語,我反省自己是否曾因外表的不同或性格傾向的差異而歧視、論斷別人。更進一步,我禱告在世上面對不信主的人時,能像耶穌的心腸一樣,存著憐憫的心。

    이지연·

    그저 듣기만 하여 내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않고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나는 매순간 넘어지지만 성령이 함께 하시어 이루어 나가실 줄 믿습니다. 매일 말씀을 주시고 깨닫게 하심에 감사하며 오늘도 주신 말씀 기억하며 미약하지만 순종하려고 노력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禱告我不要只是聽道,自己欺哄自己,而是能成為行道的人。我雖然時時刻刻跌倒,但我相信聖靈與我同在,必會帶領我一步步成就。感謝神每天賜下話語,使我明白;也禱告今天能記住神所賜的話語,雖然軟弱微小,仍努力順服度過這一天。

    이지연·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기 원합니다. 내 안의 욕심을 날마다 말씀을 거울삼아 잘 점검하기 소망합니다. 언제나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서 오늘도 유혹에 넘어지지 않고 시험을 당하더라도 욕심 때문에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겸손하고 정직하게 마음을 살피는 성도가 되길 기도합니다.

    我渴望更加愛神。盼望每天以話語為鏡子,好好省察我裡面的私慾。禱告我能倚靠總是賜下最美好事物的神,今天也不被誘惑勝過;即使遇到試探,也不因私慾而跌倒,成為一個謙卑、誠實省察自己內心的聖徒。

    이지연·

    하나님께서는 나의 필요를 잘 아시기에 시험도 허락하십니다. 부모가 되어 자녀를 키워보니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하는 자녀의 모습을 볼때 안쓰러운 마음과 뿌듯한 마음이 동시에 듭니다. 시험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마음을 잘 분별하여 인내하고 감사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기 원합니다. 며칠전 접한 시 한편이 떠오릅니다. 만약 홍해가 당신 앞을 가로막고 있고 왼쪽에는 산 오른쪽에는 광야 뒤에서는 애굽군이 말을 타고 쫓아온다면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하라 왜냐하면 그 상황은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神因為深知我的需要,所以也允許試煉臨到。自己當了父母、養育孩子之後,看著孩子經歷各樣困難而成長,心裡既心疼又欣慰。願我在每個試煉的時刻,都能好好分辨神的心意,學會忍耐與感恩,重生成為成熟的基督徒。這讓我想起幾天前讀到的一首詩。 如果紅海 擋在你面前,左邊是山,右邊是曠野, 後面埃及軍隊騎著馬追趕而來,那就開始讚美神吧!因為這正是神行奇蹟最完美的時刻。

    이지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반복적으로 무너지는 내 안의 죄성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잊은 채 자신이 한 그릇된 맹세만 지키려는 고집스러운 이스라엘의 모습 속에서 나도 다르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어리석은 확신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는 동떨어진 결정을 내리고, 애써 머리를 굴려 편법으로라도 이를 이행하려 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주님을 나의 진정한 왕으로 모시고 살기 원합니다.

    今天默想話語時,我為自己裡面一再跌倒的罪性悔改。以色列人忘記了神的話語,卻固執地只想守住自己所發的錯誤誓言;在他們身上,我看見自己其實也沒有什麼不同。有多少次,我在愚昧的自信中做出與神話語相背離的決定,還費盡心思,甚至想用變通的方法去實行。現在,我願意尊主為我真正的王,這樣活下去。

    이지연·

    자기확신에 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 그럴듯한 이유를 찾으며 하나님의 뜻을 왜곡합니다. 말씀과 멀어지고 회개가 없는 성도의 삶은 이처럼 반복되는 죄악의 악순환만 거듭할 뿐임을 깨닫습니다. 나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쉽게 남의 탓으로 돌리며 문제를 빠져나가려고 하는 못된 습관이 내게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성경을 오해하지 않도록 날마다 겸손히 주님의 지혜를 구하기 원합니다.

    充滿自信的以色列人,不尋求神的旨意,反而找各種看似合理的理由,扭曲了神的旨意。我體會到,遠離話語、沒有悔改的信徒生活,就只會像這樣不斷重複罪惡的惡性循環。在我身上也還留著許多壞習慣:不肯承認自己的錯,輕易把責任推給別人,想要逃避問題。我願每天謙卑地尋求主的智慧,好讓我不至於誤解聖經。

    이지연·

    이스라엘 자손의 승리도 베냐민 자손의 패배도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두번의 패배를 허락하셨듯 이제 베냐민에게 패배를 허락하십니다. 이렇듯 한번의 패배가 영원한 패배가 아니듯 승리 또한 영원한 승리가 아니기에 언제나 겸손히 승리도 패배도 다 주님의 뜻안에 있음을 고백하고 순종하는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지속적으로 회개하여 돌이키는 순결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오늘도 간구합니다.

    以色列人的得勝和便雅憫人的戰敗,都是神所做的事。正如神曾容許以色列兩次戰敗,好讓他們悔改回轉,如今祂也容許便雅憫戰敗。一次的失敗不是永遠的失敗,同樣地,勝利也不是永遠的勝利。所以我禱告,願我常常謙卑,承認勝利和失敗都在主的旨意之中,過順服的生活。今天我也懇求,願我常常尋求神的旨意,不斷悔改回轉,成為一個聖潔的基督徒。

    이지연·

    잘못된 기도에 하나님은 패배로 응답하십니다.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아픈 희생을 통해서라도 끝내 회개하고 옳바른 길로 돌이키게 하십니다. 실패와 좌절을 통해서도 끝까지 내 영혼을 잘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승리에만 도취되거나 반복되는 실패속에 좌절하기 보다 내 영혼이 죄악으로 물들어 가고 있지는 않은지 날마다 살피고 주님께 묻는 성도가 되길 기도합니다. 내 원함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훈련을 해 나아가야 겠습니다.

    對於錯誤的禱告,神以失敗來回應。神的愛始終不放棄我們,即使要透過痛苦的犧牲,也終究使我們悔改,回轉走正路。我體會到,神的愛即使透過失敗與挫折,也始終要使我的靈魂興盛。與其沉醉於外在的勝利,或在一再的失敗中灰心喪志,我更禱告自己能成為每天省察、向主求問的聖徒,看看自己的靈魂是否正被罪惡沾染。我要持續操練,不求自己所願,而是尋求神旨意的禱告。

    이지연·

    아내를 내어주고 날이 밝기까지 문을 열어주지 않아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레위인은 결코 그 죽음으로부터 자유할 수 없습니다. 죽은 아내 입장에서 볼때 불량배들과 레위인 중 누가 더 원망스러울지 모르겠습니다. 진정 아내를 사랑하고 위했다면 다른 지파들을 불러 모으는 방법도 달랐을것 같습니다. 남을 비난하며 내 죄를 깨닫지 못하는 레위 사람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위선적인 모습으로 가득한 나의 마음을 회개하고 진정 주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거듭나기 원합니다. 예수님 닮아가는 모습이 되게 하소서.

    把妻子交出去,直到天亮都不開門,最終讓她喪命的那個利未人,絕對無法從她的死中脫身。站在死去妻子的立場來看,真不知道那些匪徒和利未人,哪一個更讓她怨恨。如果他真的愛妻子、為她著想,召集其他支派的方式應該也會不一樣吧。在那個只會指責別人、卻看不見自己罪的利未人身上,我看見了自己的樣子。我願意為充滿偽善的心悔改,真正重生成為像主兒女的樣式。求主讓我越來越像耶穌。

    이지연·

    레위 사람은 지도자의 위치에 있어야 함에도 뒤로 숨으며 본을 보이지 못합니다. 아마도 일행을 구하기 위해 아내 한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합리적이고 지혜롭다고 스스로 합리화 했을것입니다. 하지만 희생은 남에게 강요할것이 아닌 본인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해야하는 것임을 본문을 통해 묵상해봅니다. 나도 대의라는 명분 뒤에 숨어 남의 희생만을 강요하며 살아온건 아닌지 돌아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사랑을 본받아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약자의 편에 서고 죄악과 강자앞에서 비굴해지지 않는 성도가 되길 기도합니다.

    那利未人本該站在領導者的位置上,卻躲在後面,沒有做出榜樣。他大概自我合理化,認為為了救同行的人而犧牲一個妾,是合理又明智的做法。但透過這段經文,我默想到:犧牲不是強加在別人身上的,而是應當由自己甘心樂意去承擔的。我也反省自己,是不是一直躲在「大局」的名義背後,只要求別人犧牲。禱告求主讓我效法耶穌在十字架上的犧牲與愛,像主那樣站在弱者這一邊,在罪惡和強權面前也不卑躬屈膝,成為這樣的聖徒。

    이지연·

    기브아 사람들에게는 없는 환대가 자신도 나그네였던 노인에게서만 나타납니다. 아마도 노인이 처음 기브아에 왔을때 느꼈던 마음이 떠올랐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환대를 받았던 따뜻함일수도 그 반대로 환대받지 못한 서글픔일수도 있지만 그 마음이 다른 나그네를 환대해주고 영접하는 선한 결과로 나타난것 같습니다. 우리가정도 처음 대만에 왔을때 이 노인과 같이 환대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따뜻한 기억을 잊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먼저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가정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基比亞的人身上看不到的款待,卻唯獨出現在這位曾經也是異鄉客的老人身上。我想,這或許是因為他想起了自己初到基比亞時的心情。無論是曾受到款待的溫暖,還是相反地未被款待的悲傷,這份心情似乎都化為了款待與接待其他異鄉客的美好結果。我們一家剛到台灣的時候,也遇到許多像這位老人一樣款待我們的人。願我們不忘記那份溫暖的記憶,成為一個能夠毫不猶豫地向有需要的人伸出援手的家庭,這是我的禱告。

    이지연·

    한 레위 남자가 보여주는 삶에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르받은 사람이 자신의 뜻대로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도의 삶이 하나님께 이끌림 받지 않고 내 뜻대로만 살아간다면 맡은바 사명을 소홀히 했던 이 레위 사람처럼 점점 더 수렁으로 빠지게 될 것이 뻔합니다. 오늘도 나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 맡겨주신 사명을 살아내고 있는지 점검해 보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이 성도로써 내 첫 사역지이며 공동체라는 것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從一個利未人所展現的生活中,我們看到一個蒙召要做神的工作的人,卻只按照自己的意思生活的樣子。信徒的生活若不被神引導,只照自己的意思過日子,就必然會像這位疏忽所託付使命的利未人一樣,漸漸陷入更深的泥沼。今天我也願意反省自己的生活,省察自己是否正在活出神所交託的使命。願我不忘記神所賜的家庭,就是身為信徒的我的第一個事工禾場和群體,並禱告自己能按照神的旨意去服事。

    이지연·

    미가도 단 지파도 하나님께 여쭙지 않고 신상과 에봇으로, 그들이 세운 젊은 제사장으로 침략과 살인을 정당화하며 거리낌 없이 악행을 이어갑니다. 말씀을 떠나 하나님께 여쭙지 않는 사람의 삶은 이렇듯 자신과 공동체를 죄악으로 물들게 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구하기 보다 빠른 답을 얻기 위해, 또는 내가 정해놓은 방법과 결과를 위해 말씀을 도구삼아 그릇된 길로 가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신상과 에봇을 만들고 젊은 제사장을 세운것처럼 나도 말씀 묵상을 내 도구로 그릇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겠습니다.

    米迦和但支派都沒有求問神,而是藉著神像和以弗得,以及他們所立的年輕祭司,將侵略與殺人合理化,毫無顧忌地繼續行惡。離開話語、不求問神的人生,就是這樣使自己和群體都沾染罪惡。我也反省自己,是否曾為了得到快速的答案,或是為了達成自己預先設定的方法與結果,而非真心尋求神,把話語當作工具走上了偏差的道路。就像他們製造神像和以弗得、設立年輕祭司一樣,我也該檢視自己是否把話語默想錯誤地當作自己的工具在使用。

    이지연·

    사사시대에 왕이 없어서 각자 유익을 따라 움직였던 모습을 보며 나의 마음을 돌아봅니다. 나도 분명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그의 뜻을 따라 살기 원하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상은 그렇지 못할때가 많고 단 지파처럼 인간적인 합리성과 잔머리를 굴리며 고심하고 선택할때가 많습니다. 요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고심하게 되고 기도하게 되니 참 감사합니다. 말씀을 묵상하지 않던 때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이것이 주님의 크신 은혜임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걸어가길 기도합니다.

    看見士師時代沒有王,各人任意而行的樣子,讓我反省自己的內心。我自己雖然也清楚宣告願意以神為我的王、順服祂的旨意而活,但實際上卻常常做不到,像但支派一樣,常常憑著人的理性和小聰明來思考、選擇。最近因著默想話語,開始思考神的旨意是什麼、也因此更多禱告,真的很感恩。回想起過去沒有默想話語的日子,再次體會到這都是主莫大的恩典。願今天這一天也能照著神的旨意而行,獻上禱告。

    이지연·

    사사기 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 미가와 그의 어머니의 모습속에서 말씀 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위험하고 위태로운지 잘 보여줍니다. 말씀이 없는 열심과 신앙은 미가의 집안과 같이 하나님을 오해하고 나아가 그의 뜻과 반대로 행하는 죄를 범하게 합니다. 거룩한 주일을 맞아 말씀앞에 더욱 겸손히 나아갈 수 있게 하시고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士師記 17:6 那時以色列中沒有王,各人任意而行。 從米迦和他母親的樣子中,我們清楚看見沒有話語的生活是多麼危險、多麼不穩固。沒有話語的熱心與信仰,就像米迦一家那樣,會使人誤解神,甚至違背神的旨意而犯罪。願我們在迎接這神聖的主日之際,能更加謙卑地來到話語面前,天天默想話語,成為跟隨神旨意生活的聖徒。

    이지연·

    삼손의 삶을 묵상하면 끝까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의 모습도 다르지 않아 낙심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이 변함없이 이끄시고 역사하시기에 삼손의 연약함도 강한 그의 두 팔로 붙드셨듯 나의 연약함 모습도 받으시는 주님 앞애 오늘도 겸손히 나아가기 원합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절 말씀처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기 소망합니다. 수련회 가운데 역사하실 주님을 기대합니다.

    默想參孫的一生,到最後總是留下許多遺憾。想到自己在神面前的樣子也不例外,不禁感到灰心。但因著信實的神始終如一地引導並做工,正如祂用強而有力的雙手扶持參孫的軟弱一樣,今天我也願意懷著謙卑的心,來到願意接納我軟弱模樣的主面前。靠自己的力量我什麼都做不到,但正如腓立比書4章13節所說:「我靠著那加給我力量的,凡事都能做」,我盼望單單仰望神。期待主在這次靜修會中動工。

    이지연·

    삼손은 나실인이자 사사였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블레셋 사람들보다도 더욱 불신자 같은 생활을 이어갑니다. 사실 나를 비롯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평가를 받고 살아가는것 같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써 살아가지만 모범이 되기는커녕 날마다 조금씩 타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마치 삼손이 들릴라에게 거짓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위태로운 모습과도 같습니다. 삼손의 최후를 알기에 더욱 위기감을 느낍니다. 오늘 당장 내가 끊어내야 할 불순종을 가르쳐 주시고 돌이킬 힘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參孫雖然是拿細耳人,也是士師,但他的生活方式卻比不信神的非利士人更像個不信者。其實包括我在內的許多基督徒,似乎也常常得到這樣的評價。雖然身為得救的基督徒而活,卻不但沒有成為榜樣,反而每天一點一點地妥協,這種模樣就像參孫向大利拉撒謊、企圖矇混過關的危險光景一樣。因為知道參孫最終的下場,所以更加感到危機感。祈求神指教我今天就必須斷絕的悖逆之處,並賜給我回轉的力量。

    이지연·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과 복수를 위해 주저하지 않고 사용합니다. 나실인으로 사사로 부름받았지만 전혀 구별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삼손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더욱 오해없이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실 나의 능력이나 심지어 신실함마저도 필요하지 않으신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나도 삼손처럼 주께 받은 은혜를 내 공으로 돌리기 십상이고 남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할 은혜를 내 안위만을 위해 낭비하기 때문입니다. 삼손의 모습속에 보이는 나의 교만함을 주님께 내려놓고 회개합니다.

    參孫毫不猶豫地將神所賜的恩賜,用在極其個人的私慾和復仇上。雖然他身為拿細耳人被呼召作士師,卻完全沒有過著分別為聖的生活。然而透過這樣的參孫,我反而能更無誤解地理解神做工的方式。因為神其實是全知全能的那一位,甚至不需要我的能力,也不需要我的忠信。因為我也像參孫一樣,很容易把從主所領受的恩典歸功於自己,把應當為他人益處而使用的恩典,浪費在只顧自己的安逸上。我在參孫身上看見自己的驕傲,願將這份驕傲在主面前卸下並悔改。

    이지연·

    나실인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던 삼손은 안타깝게도 걸맞은 약속의 삶을 살지 못한것 같습니다. 원하는데로 먹고 원하는 것을 취하며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삼손을 통해 그의 뜻을 이루십니다.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계획과 행실은 실수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고 그의 계획을 이루신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감사히 나아갑니다.

    身為拿細耳人、原本應當過分別為聖生活的參孫,很遺憾地似乎並未活出與那應許相稱的人生。他隨心所欲地吃、隨心所欲地取,並沒有展現出敬畏神的樣子。然而儘管如此,神仍然透過參孫成就了祂的旨意。我要讚美這位永遠信實的神。我的計畫與行為滿是過失,但即便如此,我仍憑著「那位永遠信實的神必扶持我、成就祂的計畫」這樣的信心,滿懷感恩地邁向今天。

    이지연·

    마노아는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대접하기 원하고 이름을 물어보지만 그의 아내는 천사를 보내신 하나님을 바라본듯 합니다. 이렇듯 내 삶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도울자를 보내주시고 그들의 호의를 통해 은혜를 부어주실때가 많았던것 같습니다. 그럴때마다 단지 사람을 바라보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감사를 돌리기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瑪挪亞沒有認出神所差派的天使,只想要款待他、詢問他的名字;但他的妻子似乎是仰望那位差遣天使的神。同樣地,在我的生命當中,神也常常差派幫助者,透過他們的善意傾倒恩典給我。每當這樣的時刻,我不願只是單單注視人並向人道謝,而是願意仰望透過他們動工的神,將感謝歸給祂。今天也要讚美透過我們做工的主!

    이지연·

    이 세상에서 구별된 나실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묵상해 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가정에서 믿는 부모님의 돌봄 아래 자라게 하시고 또한 장성하여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하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또한 믿음의 부모로써 마땅히 희생하고 실천해야 할 말씀의 길을 온전히 걸어오지 못한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회개합니다. 자녀가 장성하여 부모를 떠나기까지 온전히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기 소망하며 훗날 더 나은 믿음의 가정을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나의 주어진 하루를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겠습니다.

    默想在這世上作為分別為聖的拿細耳人,究竟意味著什麼。感謝神的恩典,讓我在蒙救贖的家庭中,在信主父母的照顧下成長,並且在長大成人後,也建立了信仰的家庭。身為基督徒,也身為信仰的父母,回顧過去未能完全走在應當犧牲與實踐的話語道路上的日子,在此悔改。盼望孩子在長大離開父母之前,都能完全忠實地跟隨主,也禱告將來能建立更美好的信仰家庭。為此,今天我也要在神所賜給我的這一天裡,順服話語,向前邁進。

    이지연·

    입다는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셔서 전쟁에 승리케 하시고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우셨는데 승리뒤에는 모든 은혜를 잊은듯합니다. 어쩌면 승리에 너무 도취되어 입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그의 행실은 은혜입은 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자비와 긍휼은 찾아볼 수 없고 잔인함만 남아 있는듯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웃을 대하는 나의 마음을 점검해보기 원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묵상하며 은혜입은 자다운 모습으로 겸손히 이웃을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耶弗他蒙神澆灌恩典,使他在戰爭中得勝,並被立為以色列的士師,然而勝利之後,他似乎忘記了所有的恩典。也許是太陶醉於勝利之中,雖然口裡讚美神,但他的行為卻與蒙恩之人的樣式相去甚遠。看不到慈愛與憐憫,只剩下殘忍。願藉著今天的話語,檢視自己對待鄰舍的心。願我默想從神所領受的恩典,禱告自己能以蒙恩之人應有的樣式,謙卑地服事鄰舍。

    이지연·

    입다의 서원처럼 나도 하나님을 오해하고 기도드렸던 지난 과거가 많이 떠오릅니다.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그릇된 신앙이 마음속에 싹트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겠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더욱 하나님과 그의 뜻을 알아가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就像耶弗他的許願一樣,我也想起過去有許多次誤解神而向祂禱告的經歷。我要更深入地默想話語,時常謹慎,不讓錯誤的信仰在心中萌芽。也盼望今天能藉著話語,更加認識神以及祂的旨意。

    이지연·

    입다의 고백처럼 심판은 우리의 영원한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믿습니다. 인생의 모든 크고 작은 결정 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할 수 있는 현명함을 구합니다.

    正如耶弗他的告白,我相信審判是屬於我們永遠的審判者——神的。在人生中大大小小的每個決定裡,我單單祈求神的智慧,也祈求能明辨神旨意的智慧。

    이지연·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나의 생각과 다름을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잘 준비되고 성숙한 그럴법한 사람을 쓰실것 같지만 하나님은 입다를 들어 사용하십니다. 이렇듯 나의 기준과 상식으로 하나님의 크신 계획하심을 재단할 수 없음을 마음에 새깁니다. 나의 생각도 하나님을 닮기 원합니다. 남을 볼때 나의 잣대로 마음대로 평가하지 않고 그 부족함 가운데도 역사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默想今天的話語,讓我再次體會到神的計畫與我的想法不同。看似神會使用那些準備充分、成熟且看起來合適的人,但神卻選用了耶弗他。如此看來,我將這一點銘記於心:不能用我的標準和常理來裁量神偉大的計畫。我也願自己的想法能效法神。求主幫助我,在看待他人時,不憑自己的標準隨意評斷,而是能夠看見神在人的不足之中仍在運行、動工,我如此禱告。

    이지연·

    사사기 말씀을 묵상하며 끝없이 참으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 앞에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죄악이 답답합니다. 어쩌면 저렇게 뻔뻔하고 구재불능일까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게 바로 내 모습이기 때문에 할말을 잃게 됩니다. 한없이 부어주시는 은혜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넘어지고 있는 현실을 회개합니다. 반복되는 죄의 고리를 끊어내고 삶이 변화되는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도록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默想士師記的話語,在無限忍耐、赦免的神面前,以色列一再重複的罪惡讓人感到鬱悶。心裡想著怎麼可以這麼厚顏無恥、無藥可救,但轉念一想,那正是我自己的樣子,讓人無言以對。儘管神不斷傾倒恩典,我卻仍然一再跌倒,為這樣的現實悔改。求主的恩典,使我能斬斷不斷重複的罪的鎖鏈,讓生命真正改變的悔改得以成就,今日也如此祈求。

    이지연·

    아비멜렉이 마지막까지 지키려했던 것은 명예였습니다. 죽음 앞에서조차 그는 헛된 욕망을 쫓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인생의 목표가 헛되고 어리석었기에 올바른 길을 가지 못했던 아비멜렉을 보며 나의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지 묵상해봅니다. 내 인생은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에 부합한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재정비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인생 가운데 수 없이 많은 선택을 해야하는데 그때마다 확신이 없고 고민이 되는것이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아 정의롭고 공정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亞比米勒到最後一刻仍想守住的,是自己的名譽。即使在死亡面前,他仍然表現出追逐虛妄慾望的愚昧模樣。看著亞比米勒因人生的目標虛妄又愚昧,以致無法走上正確道路的樣子,我不禁默想自己人生的目標究竟是什麼。願今天成為我回顧並重新調整的一天,檢視自己的人生是否設定了符合神的公義與正義的目標與方向。人生中要做無數次的選擇,然而每次面對選擇時,缺乏確信、充滿掙扎,這正是現實的寫照。願我能以神的話語為準則,做出公正而正義的選擇,為此獻上禱告。

    이지연·

    악으로 맺어진 동맹이 결국 서로를 파멸로 몰았습니다. 아비멜렉은 그 후에도 잠깐의 승리에 도취되어 스스로의 앞날은 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악한 길을 선택합니다. 가알의 모습속에서 아비멜렉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돌이켰다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때론 남의 문제를 멀리서 바라볼때 더 선명하게 보이고 판단할 수 있지만 정작 내 문제 앞에는 분별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남의 죄악속에서도 나를 돌아보고 반면교사로 삼아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오늘도 주님이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지혜로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因惡而結成的同盟,最終將彼此推向了滅亡。亞比米勒在那之後仍沉醉於片刻的勝利,看不見自己未來的道路,繼續選擇邪惡之路。若他能從迦勒的樣子中看見自己的模樣而回轉,那該有多好,但他卻沒有做到。有時候,遠遠地看別人的問題時,反而能看得更清楚、更容易判斷,但面對自己的問題時,卻常常難以分辨。願我也能從別人的罪惡中反省自己,以此為警戒,懂得悔改回轉。願今日也能靠著主藉話語所賜下的智慧而活。

    이지연·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자들은 자신의 욕심과 높아지고 굴림하고자 하는 허영심으로 서로 이용하는 이해관계에 얽혀있습니다.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나는 어떤 마음으로 섬기고 있는지 되돌아 봅니다. 나 또한 하나님을 진정한 왕으로 섬기기 보다 내 욕심을 위해 구하고 또 구하는 대상으로만 삼고 있지는 않았는지 회개합니다. 내게 주신 모든것이 다 주님의 은혜요, 또한 부어주신 이 모든것이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함이 아닌 이웃을 섬기라고 내게 맡겨주신 것임을 잊지 않고 주인이 아닌 청지기의 삶으로 변화되길 기도합니다.

    立亞比米勒為王的人,彼此糾纏在為了自己的私慾、想要高升誇耀的虛榮心而互相利用的利害關係之中。我反思自己是以怎樣的心來事奉那位真正的王——神。我也悔改反省,自己是否不曾真心以神為真正的王來事奉,反而只把祂當作滿足私慾、不斷求取的對象。我不忘記所賜給我的一切都是主的恩典,並且祂所傾倒給我的這一切,並非為了滿足我的私慾,而是託付給我去服事鄰舍的。願我從主人的心態,轉變為管家的生命,我如此禱告。

    이지연·

    아비멜렉은 스스로 왕이 되려 하였고 그 헛된 욕망이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의 자리를 벗어나 내 욕망에만 사로잡힌 모습의 결과는 결국 스스로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일뿐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스스로 더 높아지려고 하는 마음이 눈덩이 같이 불어나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보게 되는 일은 순식간임을 봅니다. 나도 조금만 더 안정된 삶, 조금만 더 편안한 집,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살아온것 같아 회개합니다. 내가 누려온 모든것이 다 주님의 은혜임을 잊지 않길 기도합니다.

    亞比米勒想要自己成為王,那虛妄的慾望顯露出殘忍無情的一面。我要謹記,離開神所賜恩典之位、只被自己慾望所抓住的結果,終究只是走向自我毀滅的捷徑而已。想要讓自己變得更高、更強的心,會像滾雪球一樣越滾越大,甚至瞬間就演變成覬覦神的位置。我發現自己似乎也一直在過著「再多一點穩定的生活、再多一點舒適的房子、再多一點……再多一點……」的日子,為此悔改。我禱告,願自己不忘記,我所享有的一切都是主的恩典。

    전체 127편 · 1 / 5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