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한 줄 묵상나눔

    한 줄 묵상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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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연님의 한 줄 묵상만 보기
    이지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어릴적 자주 불렀던 찬양도 생각나고 어린시절 다니던 교회도 생각이 나며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습니다. 꾸밈없이 예배하던 그때가 그리워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교회는 어린아이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또 대만 성도들과 한국 성도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예배하는 보기드믄 공동체여서 더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이 예배시간에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도 너무 소중합니다. 부족한 저를 항상 귀한 공동체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욱 풍성해지길 소망합니다.

    今天在默想話語時,想起了小時候常唱的讚美詩,也想起了童年時去的教會,心中感到一陣溫暖。或許是因為懷念那段純粹敬拜的時光吧。我們教會從小孩到成人,台灣的弟兄姊妹與韓國的弟兄姊妹一同敬拜,是一個難得的群體,因此更加美麗。孩子們在敬拜時間自由奔跑玩耍的樣子,也是無比珍貴。讚美主,祂總是引領不足的我進入這寶貴的群體!盼望直到主再來的那一天,認識神的知識能夠更加豐盛。

    이지연·

    돌이키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남기시는 이도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내 열심이 또는 내 능력이 무슨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착각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모든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하신이도 하나님이셨습니다. 나의 나된것이 다 주님의 은혜이니 불평할것도 없고 자만할것도 없음에도 아직도 현실은 그렇지 못함에 회개합니다. 그저 바라옵기는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순탄할때 아하스처럼 교만해져서 그릇되게 행하지 않게 하시고 유다처럼 시험을 당할때 앗시리아를 의지하는 어리석은자가 되지 않길 기도합니다.

    使人回轉的是神,使人留存的也是神,我信這一切。曾有一段時日,我以為自己的熱心或能力能帶來什麼改變,但讓我領悟到一切都是神的恩典的,也是神自己。我之所以成為今日的我,全是主的恩典,本無可抱怨、也無可自滿,然而現實中我仍做不到,為此我悔改。我所祈求的,不過是:當神賜福、一切順遂時,求祢不讓我像亞哈斯那樣驕傲自大、行事乖謬;當遭遇試煉時,也不讓我成為像猶大那樣愚昧、倚靠亞述的人。

    이지연·

    오늘 말씀을 통해 삶을 돌아봅니다. 성도는 교만할때 반드시 무너짐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깁니다. 교만은 하나님 없이 내가 왕이 되는 행위임으로 하나님은 교만을 절대 내버려 두지 않으심을 봅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도전서 10:12 말씀처럼 항상 시선을 주님께 두어 교만을 경계하고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겸손히 예배하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 없이 사는 삶 자체가 곧 교만임을 절대 잊지 않도록 날마다 성령으로 인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今天藉著話語來省思自己的生命。再次將這真理銘記於心:信徒若驕傲,必然跌倒。驕傲是一種沒有神、自己為王的行為,因此我們看見神絕不會對驕傲視而不見。正如「自以為站得穩的,須要謹慎,免得跌倒」(哥林多前書 10:12)這句話語所說,願我們時常將目光定睛於主,警惕驕傲,成為每天在神面前謙卑敬拜的信徒。我禱告求主每天用聖靈引導我們,使我們絕不忘記:沒有主的生命本身就是驕傲。

    이지연·

    이사야 10 :1,2 불의한 법을 공포하고, 양민을 괴롭히는 법령을 제정하는 자들아, 너희에게 재앙이 닥친다! 가난한 자들의 소송을 외면하고, 불쌍한 나의 백성에게서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들을 노략하고, 고아들을 약탈하였다. 말씀을 묵상하며 오늘도 내가 과연 사회를 살아가며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불의를 버리고 정의를 실천해왔는지를 돌아봅니다. 성도의 영적 신앙과 삶이 분리될 수 없는데 때때로 불법과 편법을 넘나들며 타협하고 살아왔음을 회개합니다. 주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 성도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以賽亞書 10:1,2 「你們這些制定不義法令、頒布苛政害民的人,有禍了! 你們枉屈窮乏人的訴訟,奪去我困苦百姓的權利,以寡婦為擄物,以孤兒為掠物。」 默想話語,今天我也反思自己在社會中生活,是否真的捨棄了神所要求我們拒絕的不義,並且實踐了公義。聖徒屬靈的信仰與生活本不可分離,然而我卻時常在違法與投機取巧之間妥協度日,為此悔改。願我能過一個不玷污主名的聖徒生活。

    이지연·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믿습니다. 말씀을 통해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것이기 때문에 성도는 소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이 은혜가 오늘도 살아갈 힘을 공급해 주니 참 감사합니다. 밤이 지나고 오늘 새 아침이 밝은것처럼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엔 오늘 이사야 말씀처럼 가장 어두었던 그곳부터 빛을 비추시고 모두 역전시키실 것을 믿기에 오늘도 그저 겸손한 예배자의 모습으로 서있길 기도합니다. 드리워진 어둠을 걱정하지 않고 빛을 비추실 주님께만 마음을 둘 수 있길 소망합니다.

    我相信神是必定成就一切的信實之神。因為透過話語所揭示的神的應許必定會實現,所以聖徒們懷抱盼望而活。這份恩典今日也供應了繼續生活的力量,真是感恩。正如黑夜過去、今日新的清晨來臨,我相信主再來的那一天,就如今日以賽亞的話語所說,祂必從最黑暗之處開始照耀光明,將一切翻轉。因此,我今日也禱告自己能以謙遜敬拜者的姿態站立。我盼望自己不憂慮籠罩的黑暗,只將心思放在那位必要照耀光明的主身上。

    이지연·

    실로아 물과 같이 흐르는 주님의 은혜는 깨닫지 못하고 앗시리아만을 의지했던 것이 꼭 내 지난 인생과도 같아 아차싶습니다. 이사야처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여 매일같이 잔잔하게 흐르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보다 나은 내일만을 기다리며 오늘을 풍성히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도 깨우치길 기도합니다. 내게 주신 실로아 물을 깊이 묵상하는 히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如同西羅亞水般靜靜流淌的主的恩典,我卻渾然未覺,只倚靠亞述——這與我過去走過的人生何其相似,讓我心中一驚。願我能像以賽亞一樣,單單倚靠那永不改變的神的話語,每天對那涓涓細流、不息湧現的神的恩典心存感謝。也求神開啟我的眼,讓我不再愚昧地只盼望更美好的明天,卻無法豐盛地享受今天所擁有的一切。願今天成為深深默想神所賜給我的西羅亞水的一天。

    이지연·

    임마누엘 하나님을 잊고 내 힘으로 살아왔던 수많은 날들을 회개합니다. 언제나 동행하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믿음으로 서 있을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일상 가운데서 날마다 환경을 더 바라보게 되는 연약한 내 자신이 안타깝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말씀만을 의지하여 하나님이 일하심을 믿고 순종하는 삶으로 변화되길 소망합니다. 인생의 작고 큰 결정을 할때마다 잊지 않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모습으로 변화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릇된 길로 갔던 아하스의 모습을 버리고 순종의 길을 갔던 이사야의 모습이 되길 기도합니다.

    我為那許多忘記以馬內利之神、憑自己力量生活的日子悔改。我心裡清楚,當我將心定睛在那位時刻與我同行的神身上、憑信心站立時,便不會動搖——然而在日常生活中,我卻更容易被眼前的環境所牽引,對自己這份軟弱感到惋惜。我渴望自己能單單倚靠那不會動搖的話語,相信神在其中運行,並轉變為一個順服而行的人。我盼望自己在人生每一個大小決定之前,都不忘向神祈求,讓這成為我生命的樣式。因此,我禱告,願我捨去亞哈斯走在悖逆之路上的樣子,成為如以賽亞那般走在順服之路上的人。

    이지연·

    오늘 이사야 말씀을 묵상하며 지난 주 설교에서 들었던 사무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을 택하시고 부정한 입술이라고 고백하는 이사야를 택하십니다. 그리고 친히 자라게 하시고 그 죄를 사하십니다. 처음 들려주신 그 음성 또한 감당하기 버거운 심판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이 매우 무겁게 다가옵니다. 나라면 어떨까? 쉽사리 복음도 전하지 못하는 나인데.. 하지만 다시금 깨닫게 하십니다. 사명을 맡기신 분도 주님이시요. 그 사명을 감당할 힘을 주시는 분도 주님이시라는 것을요. 주님만 의지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今天默想以賽亞書的話語時,想起了上週講道中聽到的撒母耳記話語。神揀選了年幼的撒母耳,也揀選了承認自己嘴唇不潔的以賽亞。祂親自使他們成長,並赦免他們的罪。起初所賜下的那個聲音,也是關於難以承擔的審判預言。今天的話語讓我感到非常沉重。如果是我,會怎樣呢?我連福音都不容易傳出口……但祂再次讓我明白:託付使命的是主,賜下承擔那使命之力量的也是主。願今天成為單單倚靠主的一天。

    이지연·

    오늘말씀에서 보듯 죄는 또 다른 죄를 낳고 악은 또다른 악으로 이어지는것을 봅니다. 말씀과 멀어질때 결국 죄악과 타협하게 되는 내 자신을 수없이 경험합니다. 내 안에 선함이 없으므로 항상 말씀을 가까이하여 분별하는 지혜를 오늘도 구합니다.

    正如今日話語所示,我看見罪生出另一個罪,惡也接連引發另一個惡。每當遠離話語時,我無數次經歷自己終究與罪惡妥協的軟弱。因我心中沒有良善,今日我再次求神賜下智慧,使我常親近話語、能夠分辨善惡。

    이지연·

    하나님은 공평과 정의로 언제나 최선의 것을 허락하시는 분임을 묵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는 열매를 맺고 살아왔던 날들임을 회개합니다. 유다가 하나님의 돌보심을 알지 못하고 타락하여 결국 모근것을 잃은 것이 내 인생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울타리 되시는 주님의 존재마저 인식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행했던 유다는 결국 모든것을 거두시는 주님을 체험하게 되었듯 주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내멋대로 살아왔던 날들이 많았음을 돌아봅니다.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어 돌보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默想神以公平與公義,時時賜下最美好的事物。然而,我在此悔改——那些未能結出符合神期望之果子的日子。我深刻體認到,猶大不知神的看顧而走向墮落,最終失去一切,這與我自己的人生並非毫無關聯。猶大甚至未能意識到主作為籬笆的存在,任意妄為,最終經歷了那位收回一切之主;同樣地,我也回顧那許多不認識主、隨心所欲度過的日子。我盼望今天能成為一個因主藉著話語使我醒悟、並蒙主看顧之恩典而心存感謝的日子。

    이지연·

    오늘 이사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도 결국 우리를 살리기 위함임을 묵상합니다. 어제 설교 말씀처럼 결국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봅니다. 악하고 잘못된 나를 책망하심으로 정결케 하시고 회복되는 은혜를 오늘도 말씀을 통해 깨닫고 내안에 싹트고 있는 죄악을 점검하고 돌이키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오늘도 들을 귀를 허락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今天透過以賽亞書的話語,默想神的審判最終也是為了使我們得生。正如昨天的講道信息,看見神的恩典終究是使一切翻轉逆轉的恩典。藉著祂責備邪惡、有過失的我,使我得以潔淨、恢復——今天也願透過話語領悟這份恩典,禱告這一天能省察在我內心萌芽的罪惡,並且回轉歸正。今天也再次求主賜下能聽見的耳朵,渴慕祢的恩典。

    이지연·

    하나님 대신 내가 의지했던 모든것이 다 우상숭배임을 압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해야 함에도 실상은 그렇지 못할때가 너무 많음에 참회합니다. 우상이 되었던 것들을 내려놓고 주님만 의지하는 삶이 될 수 있길 소망합니다.

    我知道所有我曾依靠的事物,若不是出於神,都是偶像崇拜。即使應當全然倚靠神,卻有太多時候未能如此,為此我深深懺悔。我渴望能放下那些曾成為偶像的事物,過一個單單倚靠主的生命。

    이지연·

    오늘 이사야 본문을 묵상하며 이 땅에서 순례자로 살아가는데 헛된 것을 의지하고 움켜쥐며 살고 있음을 돌이켜 봅니다. 마지막 때에 내가 의지하고 우상으로 만들었던 모든 것이 다 없어질 것을 알면서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내 자신을 회개합니다. 말씀 없이는 한순간도 바로 서 있을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히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내 모습은 마치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실때 한시도 깨어 있을 수 없냐고 책망받았던 제자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날마다 넘어지지만 그렇기에 더 주님의 은혜로만 오늘도 살길 원합니다.

    今天在默想以賽亞書的經文時,我回顧自己在這世上以朝聖者身分行走,卻仍依靠虛空之物、緊握不放的生命狀態。末後的日子,我所依靠、視為偶像的一切都將消逝——即便明白這個道理,我卻依然無法輕易放手,為此向神悔改。我承認自己離開話語連片刻都無法站立的軟弱與局限,謙卑地尋求主的引領。我的光景,就如同在客西馬尼園裡,當耶穌禱告時,因無法儆醒片刻而受到責備的門徒一樣。每天雖然跌倒,但也正因如此,今天我更渴望單單靠著主的恩典而活。

    이지연·

    유다가 처음부터 타락한 성읍은 아니었지만 정의와 공의가 사라지고 지도자들이 타락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몰락하는 모습을 보며 반면교사로 삼습니다. 성도란 어찌보면 모두 세상에서 영적 지도자와 같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신분으로써 성도의 타락은 곧 지도자의 타락으로 성읍 전체의 몰락을 이끌었던 유다와 다를바 없다는 부담감을 항상 지니며 살아야겠습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기준삼고 성령이 이끄시는데로 또한 양심껏 살아내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猶大起初並非一座墮落的城邑,然而當公平與公義消失、領袖們腐化墮落,城邑便急速沉淪。以此為鑑,我深刻反思。聖徒在某種意義上,都是世上屬靈的領袖,肩負著光與鹽的使命。聖徒的墮落,正如領袖的腐化導致整座城邑覆滅的猶大一樣,毫無二致。我當時刻懷抱這份責任感,認真生活。願今天也以話語為準則,順著聖靈的引導,並憑良心活出每一天。這是我今日的禱告。

    이지연·

    이사야 1:17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 이사야 선지자가 본 이상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나의 삶의 산제사를 원하시지 주일날만 가면을 쓰고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를 원하시지 않는다는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17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을 요구하시지 꾸며진 의식을 원하시는게 아님을 봅니다.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도 정의를 구현하려 애쓰는 모습이 있길 기도합니다.

    以賽亞書 1:17 學習行善,尋求公義,解救受欺壓的人,為孤兒伸冤,為寡婦辯護。 透過以賽亞先知所見的異象,我們得以認識神的心意。我再次領悟到,神所渴望的,是我將生命作為活祭獻上,而非每逢主日便戴上面具、流於形式的敬拜。正如第17節的話語所示,神所要求的是極其具體而真實的生命樣式,而非精心雕琢的宗教儀式。我禱告,願自己在今天所賜的每一天中,都能竭力活出公義。

    이지연·

    예배자의 삶은 일상에서 드러나야함을 본문을 통해 묵상하게 됩니다. 며칠전 마이클잭슨의 삶을 그린 영화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어린시절 교회에서는 그의 겉모습을 평판하며 소위 악마로 비유하던 어른들을 많이 보며 자랐던지라 편견이 깨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었는지 믿지 않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의 삶을 보면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 이웃을 향한 사랑과 나눔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봅니다. 나의 삶도 이렇듯 교회에 다녀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드러나는 태도가 참된 성도의 모습이고 예배자의 삶이되길 기도합니다

    透過本文,我默想到敬拜者的生命應當在日常生活中彰顯出來。幾天前,我看了一部描繪麥可·傑克森生平的電影,深受感動。由於我從小在教會裡,看著許多大人批評他的外表、甚至將他比喻為魔鬼,要打破這份偏見著實花了很長的時間。雖然他是否相信耶穌並不確定,但從他的生命來看,我看見他活出了耶穌的形象,充滿了對鄰人的愛與分享。我也禱告,願我的生命同樣如此——不是因為上教會,而是在日常生活中所流露出的態度,才是真正聖徒的樣式,也是敬拜者的生命。

    이지연·

    다윗의 기도를 통해 성도가 마땅히 드려야 할 기도를 배웁니다. 내 고난에만 머물러 있는것이 아닌 열방을 향한 아픔과 중보가 있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나이가 들고 해가 거듭될수록 기도도 성숙해져야 할텐데 어린아이처럼 나만을 위해 간구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발견합니다. 너무 내 자신애게만 집중되어 있던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이타적인 성도의 기도로 변화되길 원합니다. 오늘도 그 작은 한걸은부터 내딛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透過大衛的禱告,我們學習聖徒應當獻上的禱告。我們領悟到,不能只停留在自己的苦難中,而應當有對列國的負擔與代禱。在信仰生活中,隨著年歲增長、歲月流逝,禱告也應當日趨成熟,然而卻發現自己仍像孩子一樣,只為自己祈求,呈現出自私的樣貌。我渴望脫去那個過度專注於自我的舊人,轉化為充滿利他精神的聖徒的禱告。今天也祈求這是踏出那小小一步的一天。

    이지연·

    오늘의 시편은 다윗이 하나님께 고통을 토로하며 시작하지만 끝은 감사와 신뢰로 마무리합니다. 다윗을 보며 믿음의 사람이 가야할 길을 배웁니다. 나의 삶도 고통속에 신음하는 날들도 있고 때론 기도조차 나오지 않는 아픔을 겪기도 하지만 끝은 결국 구원하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으로 마무리되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환경을 보지 않고 주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을 간구합니다.

    今天的詩篇,大衛以向神傾訴痛苦為開端,卻以感恩與信靠作為結尾。透過大衛,我們學習一個有信心的人所當走的道路。我的生命中,也有在痛苦中哀嘆的日子,有時甚至經歷連禱告都說不出口的傷痛;但我渴望,這一切的終點,終究能以對那位必將拯救我們之神的感恩與讚美來畫下句點。今天,我也祈求那能不看環境、只仰望主的信心。

    이지연·

    거짓이 가득한 혼돈의 때를 살아가는 성도가 붙들어야 할것은 오직 주님의 말씀뿐임을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온갖 정보가 넘치는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거짓에 마음이 흔들리고 현혹되기 쉽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는 주님의 말씀뿐임을 기억하고 더욱 말씀 가운데 거하는 성도가 되길 소망헙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남은 날들도 말씀을 놓지 않을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在這充滿謊言與混亂的時代中,聖徒所當緊緊抓住的,唯有主的話語——我再次將這真理銘記於心。活在資訊爆炸世代的現代人,心思極易被謊言動搖與迷惑,但願我們記住:唯有主的話語是永不改變的真理,渴望成為更加住在話語中的聖徒。讚美主,祢今日再次讓我們以話語開始新的一天;也懇求主的幫助,使我們在餘下的日子裡,始終不放開祢的話語。

    이지연·

    기초가 바닥부터 흔들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다윗은 하나님께 피해 그분의 도우심을 잠잠히 기다립니다. 인생을 길게 살지 않았지만 저 또한 인생의 바닥이라고 느껴진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시편 11:1절의 말씀처럼 세상은 ‘너는 새처럼 너의 산에서 피하여라’라고 말하는것 같았습니다. 더 현실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더 편법적인 방법으로 피해가라고 조언해주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저또한 남들에게 그랬던적이 한두번이 아닌것 같습니다. 신앙의 기초가 흔들리지 않도록 언제나 하나님께만 피하는 모습으로 변화되길 소망합니다.

    在根基從底部動搖、什麼都無能為力的處境中,大衛逃奔向神,靜靜等候祂的幫助。雖然我的人生閱歷尚淺,但我也曾有過那些感覺跌入人生谷底的時刻。每當那時,就像詩篇11篇1節的話語所說,這世界彷彿在對我說:「你要像鳥兒一樣,逃往你的山上吧。」告訴我更現實的方法、勸我用更取巧的方式躲避的情況,實在不在少數。我自己對別人也這樣做過,絕不只是一兩次。我衷心盼望自己能被改變,讓信仰的根基不再動搖,無論何時都只逃奔向神。

    이지연·

    살다보면 정말 선한 논크리스챤들을 만나기도 하고 반대로 정말 악한 크리스챤들을 만날때도 많은것 같습니다. 그럴때마다 저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렸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드는 의문은 과연 내가 생각하는 악인이 하나님 보실때도 악인일까?라는 것입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닌 경우가 적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이제는 내가 스스로 재판장이 되었던 교만함을 내려놓고 다윗처럼 철저하게 하나님을 재판장으로 삼는 인생이 되길 소망합니다.

    生活中,我們有時會遇到真正善良的非基督徒,反過來,似乎也常常遇到真正邪惡的基督徒。每當這種時候,我也像大衛一樣,等待著神的審判。 然而,今天在默想話語時,心中浮現了一個疑問:我所認為的惡人,在神眼中也是惡人嗎?雖然無法確定,但我心裡覺得,並非如此的情況應該不在少數。 如今,我渴望放下那自以為是審判官的驕傲,像大衛一樣,徹底以神為審判者,活出這樣的人生。

    이지연·

    다윗의 시편을 묵상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쉽게 이해가 되어 그렇기도 하지만 그의 삶을 볼때 지난주일에 목사님이 말씀하신 삶 자체가 예배가 되는 모범적인 모습이 큰 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수 많은 죄악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크게 들어 쓰신 이유가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다윗의 삶을 닮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큰 죄악은 멀리하려 노력하지만 삶의 작은 부분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단 내 힘으로 해쳐나가려 하는 교만함을 회개합니다.

    默想大衛的詩篇,心裡就感到平靜與安慰。一方面是因為詩篇對神的描繪極為細膩,讓人能輕易理解神是怎樣的一位神;另一方面,看到大衛的生命本身,正如上主日牧師所講的「生活本身成為敬拜」的榜樣,這讓我深受恩典。這也讓我明白,為何神能大大使用大衛,儘管他有許多的罪惡與軟弱。 我渴望效法大衛的生命,現實中卻往往力不從心。我努力遠離重大的罪惡,但在生活的每一個細節裡,我卻不倚靠神,反而想憑自己的力量闖過去——我為這份驕傲悔改。

    이지연·

    다윗의 시를 묵상하고 있자면 하나님이 다윗을 얼마나 기뻐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마음과 생각과 입술은 여호와를 찬양하고 드높이는것에만 진심이었음을 봅니다. 눈을 떠서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매우 섬세하고 진정성 있게 하나님을 묵상하고 찬양하는 그 모습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그 목적에 가장 부합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며 반면 내 모습과 너무 대비되어 부끄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이불킥 속에서도 저 또한 자격이 아닌 은혜로 살아가는 성도이기에 오늘도 부족한 모습마저 기쁘게 받아주실 주님을 찬양하며 나아갑니다.

    默想大衛的詩篇時,心中不禁想著,神究竟有多喜悅大衛。我看見他的心思、意念與嘴唇,都真誠地獻給讚美與高舉耶和華這件事。從睜開眼到入睡,他如此細膩而真摯地默想、讚美神的樣子,正是神創造人類之目的最完美的體現。反觀自己,對比之下,不禁感到慚愧。然而,即便在那無數次懊悔輾轉之中,我也是一位靠著恩典而非資格活著的聖徒,因此今天也要讚美那位願意喜悅接納我不足之處的主,繼續向前行。

    이지연·

    시편 7:17 나는 주님의 의로우심을 찬송하고 가장 높으신 주님의 이름을 노래하련다. 다윗은 능력있고 권력을 가졌던 인물이지만 그런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때론 인생의 위기가 찾아오고 억울함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럴때는 의지할곳이 없어 주님을 찾지만 오히려 평탄할때 주님을 잊고 살아가는 내 모습이 두렵습니다. 평틴할때 주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며 고난 가운데서 철저히 엎드려 주의 도우심을 구한 다윗처럼 기쁠때나 슬플때나 주님과 동행하는 모습이 되길 소망합니다. 또한 정의로운 성도가 되길 기도합니다.

    詩篇 7:17 我要稱謝耶和華,因為祂是公義的;我要歌頌至高者耶和華的名。 大衛雖是一位有能力、有權勢的人物,卻不倚靠這些,而是單單倚靠神而活。人生有時會遭遇危機、蒙受冤屈,在那樣的時刻,因為無處可依,才來尋求主;然而,反觀自己在平順時卻忘記主的樣子,令我感到懼怕。我渴望自己能像大衛那樣——在平坦時讚美主、將榮耀歸給祂,在苦難中徹底俯伏、尋求主的幫助——無論喜樂或悲傷,都與主同行。同時,我也禱告自己能成為一個活在公義中的聖徒。

    이지연·

    처음 본문을 묵상하고는 다윗이 정신이 혼미해져서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목사님의 묵상 내용이 마음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고 본문의 참 의미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참회란 내 죄를 잘 정리해서 하나님께 나아와 그것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채로 하나님의 긍휼 앞에 나를 던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참회를 한번도 이렇게까지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것 같습니다. 깨달음의 감사함을 넘어 자유함마저 드는 내용이 큰 은혜가 됩니다. 다윗과 같이 진실된 참회가 있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一開始默想這段經文時,我心裡浮現的想法是:大衛這是神智不清、自說自話嗎?😅 就在那時,牧師的默想內容如同一記深深的迴響進入我心,讓我真正明白了這段經文的意涵。「懺悔,不是將自己的罪整理好、來到神面前一一列舉,而是身無一物可誇、將自己完全投入神的憐憫之前。」我想,自己從來沒有將懺悔思考得如此深刻過。這段話帶給我的,不只是領悟的感恩,更有一種從心而生的自由——這真是莫大的恩典。願我也能像大衛一樣,過一個有真誠懺悔的生命。

    이지연·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예배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의 기도에는 탄식과 신음도 있지만 끝내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경배하는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겸손히 주님앞에 나아가는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제사임을 묵상합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말씀처럼 상황과 신분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주님 앞에서 바로 서 있는지가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방패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삶의 자리에서 언제나 겸손한 예배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在這段經文中,大衛以禱告與敬拜神作為一天的開始。他的禱告中有嘆息與呻吟,卻也充滿了倚靠那位終究賜下勝利之神的讚美與敬拜。默想大衛謙卑來到主面前的心,正是神所喜悅接納的活祭。「你要保守你心,勝過保守一切,因為一生的果效是由心發出。」(箴言 4:23)正如這節話語所說,重要的不是處境或身份,而是我的心是否在主面前站立端正。信靠作我盾牌的主,盼望在生活的每個角落,都能成為一個永遠謙卑的敬拜者。

    이지연·

    시편 4:7 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 주신 기쁨은 햇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에 누리는 기쁨보다 더 큽니다. 8 내가 편히 눕거나 잠드는 것도, 주님께서 나를 평안히 쉬게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성숙한 믿음이 놀랍습니다. 삶의 위기 가운데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모습과 잘나갈때 누리던 것들이 주지 못했던 참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위기의 순간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은혜가 됩니다. 다윗처럼 넘어졌을때도 주님 주신 기회를 바로 알고 전화위복의 열매를 누리는 인생이 되길 소망합니다.

    詩篇 4:7 主啊,你使我心裡滿有喜樂,勝過那些人在五穀和新酒豐盛時的喜樂。8 我必安然躺下睡覺,因為主啊,你使我安然居住。 大衛成熟的信心令人驚嘆。在生命的危機中,他單單倚靠主,享受著那些順遂時光所無法給予的真實喜樂與平安,並在危難之中讚美神——這讓我深受恩典。我渴望能像大衛一樣,即使在跌倒的時刻,也能清楚認識主所賜的機會,結出化危為福的生命果實。

    이지연·

    시편 3:8 구원은 주님께만 있습니다. 주님의 백성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 다윗이 연약함과 죄악으로 무너졌을때 오히려 그의 믿음이 빛을 발하는 것을 봅니다. 성도의 모습은 이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 또한 날마다 넘어지고 죄악 속에 방황하지만 다윗처럼 주님의 손을 놓지 않고 구원하실 그분께만 의지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평탄함 가운데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고난 가운데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건지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詩篇 3:8 救恩唯獨屬於主。求主賜福給祢的子民。 我看見大衛在軟弱與罪惡中跌倒時,他的信心反而發出光芒。我相信,這就是聖徒應有的樣式。我自己也每天跌倒、在罪惡中徬徨,但我渴望能像大衛一樣,不放開主的手,單單倚靠那位必要拯救我的神,過這樣的生活。願我在平順中不驕傲,在苦難中經歷不離棄我、必要搭救我的主,今天也成為與主同行的一天。

    이지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드는 생각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편에 선다는 것은 어떻게 매번 확신 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그것을 잘 분별하고 있는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입니다. 학창 시절 속해있던 단체에서 되뇌였던 ’백문일답’이란 것이 떠오릅니다. 모든 질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답하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어린 시절 가정에 방문했던 선교팀이 선물해준 티셔츠에 적혀 있던 ‘WWJD’ 라는 문구도 기억납니다. What would Jesus Do?. 오늘의 본문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속에서 살아가면서 붙잡을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今天在默想話語時,心中浮現的問題是:站在神所喜悅的那一邊,我每一次究竟能有多大的把握?我真的有好好地分辨這件事嗎?這讓我想起學生時代所屬團契中反覆背誦的「百問一答」——用「耶穌基督」來回答所有問題。我也想起了更小的時候,造訪家中的宣教團隊送給我的一件T恤上所印的「WWJD」這句話。What would Jesus Do?(耶穌會怎麼做?)。就像今天的經文所描述的,活在這混亂的時代中,我們唯一能緊緊抓住的,就是耶穌基督!

    이지연·

    시편 1:2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복 있는 사람과 악인을 구별하는 시편의 저자는 말씀에 초점을 두었음을 봅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던 그때도 말씀 묵상을 통해서였음을 기억합니다. 또한 의인의 형통한 삶이 모든일이 다 잘되고 어려움이 없다는 뜻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성도가 말씀안에 거할때 비록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것마저 다 주님의 뜻이요 계획하심으로 믿고 마음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얻을 수 있음을 압니다.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詩篇1:2 唯喜愛耶和華的話語,晝夜默想的人。 詩篇的作者在分別有福之人與惡人時,將焦點放在了話語上。我想起當初親身遇見耶穌的那一刻,也是透過默想話語而成就的。同時我也領悟到,義人亨通的生命,並不意味著凡事順遂、毫無困難。當信徒住在話語之中,即便遭遇艱難,也能相信那一切都是主的旨意與計畫,從而在心中得著主所賜的平安。我渴望能過一個更加親近話語的生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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