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미스바에 와서 여호와 앞에 이르지 아니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자기가 한 나쁜 일을 하나님이 하신 것처럼 말하고,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려 하는 일에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합니다. 먼저 택하여 백성으로 삼아 주신 자들에게 이런 취급을 받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는 데에 더욱 신중해야겠고 말보다 앞선 기도로 점검하여 하나님과 사람을 슬프게 하는 죄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耶和華以色列的神啊,為何以色列中有這樣缺了一支派的事呢?」
「凡不上米斯巴到耶和華面前來的,必將他治死。」
把自己做的惡事說成好像是神做的,又在任意想要殺人的事上利用神的名。我不禁思想,被祂先揀選、立為子民的人這樣對待,神的心會是如何呢?我在提到神的名時要更加謹慎,也要在開口之前先用禱告來省察自己,努力不陷入讓神和人憂傷的罪中。
서로가 악을 향해 치달을 때에 그것을 멈추는 책임은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어제 설교의 본문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순종도 내 기준에서 착하게 혹은 의롭게 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을 따라가는 걸음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當彼此都朝著惡奔去的時候,要停下這一切的責任,似乎在當時在場的每一個人身上。我禱告,願自己成為一個無論在任何情況下,都不被情緒左右,而是安靜求問神旨意的人。就像昨天講道經文中「當恐懼戰兢,做成你們得救的工夫」這句話語,我學到:信靠神的信心與順服,並不是照著自己的標準活得善良或公義,而是在積極求問神的旨意、並跟隨那旨意前行的腳步中成就的。
미가와 단지파의 행보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들 중에서 믿음과 순종이 사라지고 형식과 말만 남았을 때의 종착지가 어딘지 보여줍니다. 자기 뜻대로 신상을 만들어 여호와라 하고 하나님이 명하신 바와 비슷하게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세우고 에봇과 드라빔을 준비한 미가도, 그것이 좋아보여서 그 형식과 준비물들을 훔쳐가는 단지파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완전히 떠났음을 알지 못 했을 것 같아 두렵습니다. 믿음을 흉내내는 사람이 되지 않고, 매 순간 정직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를 원합니다. 그 길을 벗어나려 할 때마다 께닫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米迦與但支派的行徑,向我們顯明了當神所吩咐的事當中,信心與順服消失殆盡、只剩下形式與言語時,最終會走向何處。米迦按自己的意思製造神像,稱之為耶和華,模仿神所吩咐的方式立利未人為祭司,並預備以弗得和家中神像;而但支派看見這一切覺得不錯,便偷走了那形式與這些器具——我害怕的是,他們恐怕都不知道自己早已完全離開了神。我不願成為只是模仿信心的人,願每一刻都誠實地愛神、事奉神。求神在我每次偏離這條道路時,都使我省悟過來。
기드온에게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다"고 말하는 백성들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가장 경계하셨던 결말인 것 같습니다. 군대를 줄이실 때 알려주신 하나님의 의도와 달리, 점점 사람의 힘과 감정 위주로 흘러간 전쟁의 끝엔 사람의 이름이 남았고, 그가 죽고 남은 자리는 바알이 차지했습니다.
하나님만 왕이신 것을 아는 기드온이 금 에봇을 만든 건 선한 의도였을 것 같아 고민이 됩니다. 선한 영향력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나의 선한 영향력을 묵상하고 키워가는 것보다, 예수님의 영향력 아래 선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百姓對基甸說「是你救了我們脫離米甸人的手」,這樣的景象似乎正是神最警戒的結局。與神在減少軍隊人數時所表明的心意不同,這場戰爭逐漸走向以人的力量和情感為主導,最後留下的是人的名聲,而他死後所留下的位置,卻被巴力給佔據了。
明知只有神是王的基甸,卻造了金以弗得,我在想這或許出於善意,因此感到很掙扎。這讓我想起「良善的影響力」這個詞。比起默想並培養自己的良善影響力,我更應該立志成為一個活在耶穌影響力之下、良善生活的人。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사람은 져도 망하고 이겨도 망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드온은 승리에 대하여 은근히 자기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요청이 거절당할 때에는 거절한 상대에게 분노하고 큰 악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승리의 때에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찬양하고, 실패하거나 거절당할 때에는 그것 또한 허락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동요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如果不仰望神,人無論是輸是贏,最終都會走向滅亡。基甸在得勝的時候,似乎隱隱地在彰顯自己;而當他的請求遭到拒絕時,也會對拒絕他的人發怒,甚至做出極大的惡事。
願我在得勝之時,讚美神完全的恩典;在失敗或遭拒絕之時,也因為信靠這同樣是神所允許的,而不致動搖。願我只單單仰望那位始終與我同在的神。
하나님이 직접 싸우시고 이기게 하시는 것을 명백히 하기 위해 군대를 비현실적으로 축소하는 장면이 재밌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작고 약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더 밝히 보이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작게 하실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군대가 준비된 후, 하나님은 기드온의 두려움을 이해하시고 책망 대신 도움을 주십니다. 말씀만 믿고 나아가라 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상황을 꾸며주시는 장면에서, 많은 자녀를 맞춤형으로 키우시는 아버지의 자상함이 느껴집니다. 이런 아버지가 내게 계셔서 나를 보시고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하시고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神為了明確表明是祂親自爭戰、使人得勝,而將軍隊不合常理地縮減,這個場景很有意思。我們的生命也是如此,當我們又小又弱的時候,神的恩典反而更加清楚地顯明,所以神有時候也會使我們變得渺小。
軍隊預備完成之後,神理解基甸的恐懼,沒有責備他,反而給予幫助。神並沒有只是要他單憑話語勇往直前,而是親自為他安排、佈置環境,從這個場景中,我感受到一位按著每個孩子的個別需要來養育他們的父親,那份體貼細膩的愛。感謝我有這樣一位父親,祂看顧我、垂聽我的禱告、對我說話、並引導著我。
기드온이 용기를 내어 어렵고 위험한 일에 순종합니다. 그 후에 여호와의 영이 임한 기드온에게 일어난 일은 정말 놀랍습니다. 그의 나팔소리에 아비에셀이 따르고 므낫세, 아셀, 스불론, 납달리에서도 나아와 그를 영접합니다. 작았던 그가 여호와의 영으로 인해 진짜 용사가 되고 있습니다. 또다시 흔들리는 마음도 이해하시고, 표징들을 보여주시며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이 참 좋습니다.
나도 모든 흔들리는 마음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야겠습니다. 말씀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늘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고,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基甸鼓起勇氣,順服於艱難又危險的任務。之後,耶和華的靈降臨在基甸身上,接下來發生的事情實在令人驚奇。他一吹號角,亞比以謝族就跟隨他,瑪拿西、亞設、西布倫、拿弗他利也都出來迎接他。原本渺小的他,因著耶和華的靈,正逐漸成為真正的勇士。
神也理解我們再次動搖的心,並藉著顯明徵兆來裝備我們,這樣的神真好。
我也要將所有動搖的心帶到神面前。我要信靠這位向我說話、引導我的神,時常側耳傾聽神,並順服祂所賜下的話語。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높은 곳에서 교만하던 자를 낮추시고 멸시받게도 하시지만 다시 그를 돌보아 원래의 자리에 서게도 하십니다. 두로의 무역을 회복시키신 후에, 하나님께서 그 이익을 '여호와 앞에 사는 자'를 배불리 먹이고 잘 입히는 데 사용하실 거란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나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여호와 앞에 사는 자로 평생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기를 원하시는 다른 이들을 돌보는 일에도 사용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身為萬物之主的神,會使高處驕傲的人降卑,甚至遭人輕視,但也會再次眷顧他,讓他重新站回原本的位置。在神恢復推羅的貿易之後,祂要將那利益用來使「住在耶和華面前的人」得以飽足、穿得體面,這句話讓我印象深刻。我也懇切盼望自己能一生都在這地上,作為蒙神眷顧、住在耶和華面前的人而活。並且盼望自己也能被神使用,去照顧那些神願意餵養、給予衣著的其他人。
“이는 네가 네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네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아니한 까닭이라”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나를 돌아봅니다. 나도 주께서 기뻐하시는 나무가 아니라 내가 기뻐하는 나무를 심으면서 주께 받으시라고 하지는 않는지 두렵습니다. 죄의 마음과 죄의 자리를 알고 떠날 수 있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因為你忘記了拯救你的神,不記念你能力的磐石」
我在審判的神面前反省自己。我也害怕自己是否不是栽種主所喜悅的樹,而是栽種自己喜悅的樹,卻要求主悅納。我禱告求神幫助我,能認識並離開罪的心思與罪的處境。
사람에게 포학하게 행한 것과 끝없는 교만으로 인해 바벨론이 하나님께 심판 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 한분만 믿고 경배하라는 말씀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나의 삶에서 교만과 불친절을 경계해야겠습니다.
這是關於巴比倫因對人施行殘暴、以及無盡的驕傲,而將受到神審判的預言。我願意照著神的話語去生活,愛神也愛鄰舍,只單單相信並敬拜神一位。我要在自己的生活中警惕驕傲與不友善。
앗수르가 유다를 벌하는 일에 사용되면서도 자신의 악을 쌓아갔던 것처럼, 세상과 교회에서 주님의 선한 목적으로 쓰임을 받는 중에도 우리는 교만과 다툼 같은 여러가지 죄에 빠질 수 있는 것이 두렵습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예수님의 기도가 생각납니다. 항상 그런 기도를 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나를 점검해야겠습니다.
就像亞述在懲罰猶大的過程中被使用,卻同時不斷積累自身的罪惡一樣,我深深懼怕:在世界與教會中,即便是被主用於祂美善的旨意當中,我們仍可能陷入驕傲、紛爭等各樣的罪。耶穌的禱告浮現在我心中——「不叫我們遇見試探,救我們脫離兇惡。」我願時常帶著這樣的禱告,尋求主的幫助,並不斷省察自己。
세상은 ‘내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미덕으로 이야기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믿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뿐임을 되새깁니다. 하나님께서 벌하실 때에 유다가 해야 했던 것이 도전이 아니라 회개였던 것처럼 나도 주님 앞에 항상 낮은 마음으로 은혜를 구해야 함을 배웁니다. 선하고 겸손한 성도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世界將「我能做到」的自信視為美德來稱頌,但基督徒所信靠的不是自己,而是唯獨神,這讓我重新思考。正如神施行審判時,猶大所當做的不是抵抗,而是悔改;我也學習到,在主面前應當常存謙卑的心,尋求恩典。我渴望成為一個善良又謙遜的聖徒。
자기를 지혜롭게 여겨서 스스로 선과 악의 기준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악'입니다. 매일 나를 점검하여 그런 악에서 떠나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선한 길로 성령께서 늘 인도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본문에서와 같이 심판을 향해 가는 세상에 있을 때에도, 저와 우리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自以為有智慧,憑自己制定善惡標準,這正是神所定義的「惡」。我當每日省察自己,遠離這樣的惡。禱告聖靈常常引導我走在神所定的善道上。正如經文所示,當這世界走向審判之時,我也盼望自己與我們眾人,能成為使神的忿怒止息的人。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 자신의 영만이 알 수 있는 것이라는 바울의 가르침이 와 닿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지혜를 버리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가르침을 늘 받기 원합니다. 나의 일과 일상의 만남들 가운데에도 성령께서 나타나시고 선한 일을 이루시는 것을 내가 보고 성실히 참여하고 싶습니다.
保羅的教導深深觸動了我——神的智慧,唯有神自己的靈才能明白。因此,我渴望放下自己的智慧,時時領受住在我心中聖靈的教導。在我的工作與日常的每一次相遇中,我也盼望能看見聖靈的彰顯、成就美善的事工,並忠心地參與其中。
교회에서 분쟁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는 바울의 권면은 오늘날에도 동일한 중요성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했으니, 사랑과 화합이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분명한 의무임을 늘 기억해야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사랑하고 협조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한 분 그리스도 예수 아래에서 우리 교회가 하나 된 모습, 나아가서 지역의 교회들이 하나 된 모습, 결국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 된 선한 모습으로 주께 영광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保羅勸勉教會要消除紛爭,以同樣的心思、同樣的意念彼此聯合,這在今天看來依然同等重要。既然已決定跟隨耶穌,就要時刻謹記:愛與和睦不再是可選擇的事,而是明確的責任。我渴望成為一個在教會中懂得去愛、願意彼此配合的人。
願我們的教會在同一位基督耶穌裡合而為一,進而願本地區的各教會合而為一,最終願所有基督徒都能以合一的美好樣式,同歸於主,榮耀歸於主。
한 집안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들로 살아오던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의 선택. 그것을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신 일이라고 고백하는 요셉은 어떤 마음일지 헤아려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신 게 그 형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형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기 위해서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도취되어 하나님께서 이사람, 저사람, 모두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그 마음에 공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在一個家中,約瑟曾是最受寵愛的兒子,卻被兄長們賣為奴隸。他卻能坦然承認,這是神為了拯救生命所行的事——思想約瑟當時的心境,令人深深感慨。約瑟說,神允許這一切發生,是為了保全他兄長們的性命,並使他們的後裔得以留存於世。
沉浸在「神愛我」這份恩典之中,卻不能忘記神是何等愛每一個人——這個人、那個人,所有人。願我能真正體會神的那顆心,為此禱告。
가족에게 버려지고 외국으로 팔려온 노예 출신이자 감옥에 갇힌 죄수 요셉의 처지는 제가 감히 공감한다고 말할 수 있는 선을 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런 요셉과 함께 하시고, 요셉도 그 사실을 온전히 믿으며 삶을 지켜 가니,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바로와 신하들에게까지 자신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요셉의 영광은 그가 결국 총리가 되었다는 데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한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개인적인 상처도 공감하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 참 좋고 감사합니다. 오늘도 그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被家人拋棄、被賣到異鄉為奴,又身陷囹圄的囚犯——約瑟所處的境況,已遠遠超出我所能說「感同身受」的範圍。然而,神與這樣的約瑟同在,約瑟也全然相信這個事實、堅守自己的生命,因此神藉著他,向法老和臣僕們彰顯了自己的能力與榮耀。約瑟的榮耀,似乎並不在於他最終成為了宰相,而在於他得以參與神的榮耀之中。然而,在這一切當中,那位也能體恤個人內心傷痛、並使人得著醫治與恢復的神,讓我深感美好與感恩。今天,我也靠著這份信心繼續前行。
요셉이 있는 곳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아버지가 되셔서 자녀들을 돌보시는 것이 감동적입니다. 그 사랑때문에 감옥과 같은 곳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말할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을 믿습니다.
在約瑟所在之處,一件接著一件發生的事情,讓我們清楚地認識到,這一切都是神所做的工。全能的神親自成為父,看顧祂的兒女,這是何等感人。正因為那份愛,我相信即使在如同監獄般的地方,也能述說神的大能,並得以看見神的榮耀。
(창40:1-23)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 모든 일이 두 관원장의 꿈 해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7절을 보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요셉이 그 감옥에 있는 다른 이들의 얼굴빛을 살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두 관원장의 얼굴에서 '근심의 빛'을 보고서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묻고 우리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고 희망의 빛을 건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이런 일을 원하십니다. 어둠에 다가가 예수님의 빛을 비추기 위하여 주위 사람들의 얼굴과 마음을 살펴보아야겠습니다.
(創40:1-23)約瑟成為埃及宰相、與家人重逢的一切,都從為兩位官長解夢開始。從第7節可以看出,身陷囹圄、蒙受冤屈的約瑟,仍細心察看獄中其他人的臉色。約瑟從兩位官長臉上看見「憂愁之色」,便主動走近他們,詢問他們遭遇了什麼困難,並將我們神能夠成就的盼望之光傳遞給他們。神也希望在我身上發生同樣的事。為了走進黑暗、照耀耶穌的光,我當留心察看身邊之人的臉龐與內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