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권면하심 대로 그의 뜻을 따르는 것이 맞다. 결혼에 대해서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함을 우리는 잘 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질것을 믿습니다. 아멘!
關於離婚,當按照神的勸導,遵行祂的旨意,這才是正確的。 關於婚姻也是如此…… 這一切都當照著神的旨意而行,這是我們所深知的。 我相信話語必照著祂在我身上成就。 阿們!
이혼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권면하심 대로 그의 뜻을 따르는 것이 맞다. 결혼에 대해서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함을 우리는 잘 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질것을 믿습니다. 아멘!
關於離婚,當按照神的勸導,遵行祂的旨意,這才是正確的。 關於婚姻也是如此…… 這一切都當照著神的旨意而行,這是我們所深知的。 我相信話語必照著祂在我身上成就。 阿們!
내 몸은 주를 위한 것이고, 부부의 몸은 서로를 위한 것이다. 배우자를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과 배려로 온전히 신뢰하는 사랑 속에서 가정이 세워진다.
我的身體是為主而存在的,夫妻的身體是為彼此而存在的。不將配偶視為佔有的對象,而是在信心與體貼、完全信任的愛中,家庭才得以建立。
고린도전서 7:4
고전 16:17 그러나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영이 됩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산다는 것이 무겁게 다가온다. 언제나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가령 교회에서는 집에서와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한다. 겸손한 척, 선한 척, 자비로운 척, 심지어 말투도 달라지는 것이 내 모습이다. 더 큰 문제는 왜 그렇듯 주님을 의식하고 살지는 못할까? 이다. 주님과 한 몸이 되어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고전 1:26-29 약할때 강함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林前 16:17 但與主聯合的人,就與祂成為一靈。 將主迎入心中而活,這件事讓我感到沉重。我似乎一直活在別人的眼光之中。比如,我發現自己在教會和在家裡判若兩人——裝謙遜、裝善良、裝慈悲,就連說話的語氣都不一樣,這就是真實的我。更大的問題是:為什麼我就是無法如此時刻意識到主、活在主面前呢?與主合而為一地生活,實在太難了。靠自己的力量根本做不到。因此,今天我再次求主的恩典。林前 1:26-29 讚美在我軟弱時成為我力量的主。
성령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세상의 자극적인 영상과 글들로 내 몸을 채우고 있었음을 회개합니다. 그것들은 제 영혼을 주님과 멀어지게 만듭니다. 주님이 존귀하게 여겨주신 내 몸을 위해 영적으로 깨어있기를 기도합니다.
我懺悔自己未能意識到聖靈時刻與我同在,卻用世界上那些刺激性的影片和文字來填滿自己。那些東西使我的靈魂與主漸行漸遠。我禱告,願自己能靈裡儆醒,好好珍惜這被主所尊貴看待的身體。
내 몸이라고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내 몸은 창조의 증거요, 성령의 전이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산 몸이요, 거룩한 산 제물이다. 잠깐의 쾌락을 위해 내 몸을 정욕에 내던지지 말고, 유혹의 자리는 피하고, 몸으로 하는 모든 일과 시간을 주를 위해 사용해야겠다.
我的身體不可隨意濫用。我的身體是創造的見證,是聖靈的殿,是用耶穌寶血所買來的,是聖潔的活祭。不可為了片刻的享樂而將身體放縱於私慾之中,要遠離試探的場所,將身體所做的一切事和時間,都獻上給主使用。
성령의 전인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릴 때 성령은 우리를 축복해 주신다. 이 성령으로 우리는 참으로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온전히 주님을 따르게 됨을 알수 있다. 그렇다. 아멘이다!
當我們將聖靈殿宇——我們的身體——獻給神時,聖靈就賜福給我們。 藉著這聖靈,我們能真正合而為一,也能明白我們將得以全然跟隨主。 是的,阿們!
세상이 "네 몸은 네 것"이라 말하지만, 값으로 사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이 몸을 드릴 때 오히려 자유로워진다.
世界說「你的身體是你自己的」,但當我們將這身體獻給那用重價買贖我們的主,為祂的榮耀而活時,反而得著真正的自由。
고린도전서 6:19-20
(고린도전서 6:1-11, 누가복음14-16)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있거나 다툼에서 이기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님을 봅니다. 내 눈에 아무리 옳고 좋아 보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은 예수님이 보이신 십자가의 길이고 서로 하나 되는 길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막상 내가 양보하면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이기는 것 같아 굳이 내 고집을 주장했던 옹졸함을 깊이 반성합니다. 참 어렵습니다.
(哥林多前書 6:1-11,路加福音 14-16) 在世上佔據高位、或在爭論中取勝,在神眼中根本毫無重要性。無論在我眼裡看來多麼正確、多麼美好,神所渴望的道路,只有耶穌所彰顯的十字架之路——彼此合而為一的那條路。然而,這個道理雖然頭腦上明白,一旦真要讓步,卻又覺得好像是讓持反對意見的人得了勝,於是仍固執己見——對於這份心胸狹窄,我深深地自我反省。真的很難。
세상 법정에서 형제들끼리 이겨 보려고 붙은 송사는 서로 진 것이다. 그래서 서로 진것으로 여기고 세상 법정에서는 더 이상 송사하지 말아야 함을 알려준다. 서로 송사하는 것은 더 이상 이기려 하는 것이 아니기에 어떻게 하여야 이길수 있는 것인지 깊이 상고해 보아야 한다.
在世上的法庭中,弟兄彼此相爭、試圖勝訴的官司,其實雙方都是輸家。 因此,要認識到彼此都已輸了,在世上的法庭中不應再繼續打官司。 彼此相告,不再是為了爭贏,所以應當深深思考:究竟如何才能真正得勝。
고린도전서 6:7,9-10 예수님의 당하심으로, 고통 받고 죽으심으로 나는 은혜입어 구원받았음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 은혜를 도리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데에만 활용하였음을 반성합니다. 주님 보시기에 내가 죄의식조차 없이 지나치는 일상속에서의 잘못들이나 내가 남에게 큰 잘못이다! 판단하며 정죄하였던 것들이 다르지 않았음을 돌아봅니다.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마태복음 7:3 말씀을 다시 묵상해 봅니다. 손해보고, 져주고, 속아주는 성도의 삶이 주님 가르쳐 주신 사랑일터인데..
哥林多前書 6:7, 9-10 我記念,因著耶穌所承受的一切——祂的苦難與死亡,我得蒙恩典、領受了救恩。然而,我反省自己竟將那份恩典,反倒只用在論斷他人、定罪他人之上。回想在主眼中,我在日常生活中毫無罪惡感地一帶而過的過失,與我對他人高聲指控「這是大錯!」並加以定罪的事,其實並無二致。我再次默想馬太福音 7:3 的話語:「你看見你弟兄眼中有刺,卻不想自己眼中有梁木呢?」吃虧、退讓、甘願被欺——這樣的聖徒生命,才是主所教導我們的愛啊……
이미 하나님이 사랑으로 품으신 자를 나의 생각, 판단, 욕심으로 그들에게 분노하고 용서하지 못한 모습이 많았다. 여전히 나는 억울하고 화가 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들을 용서하고 품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도 나를 위로하시고 그들과 더욱 더 연합하게 하실 줄 믿는다.
對於那些已被神以愛所懷抱的人,我卻常常以自己的想法、判斷和私慾,向他們發怒、無法饒恕。我相信,即使我仍感到委屈與憤怒,當我記念神的愛、選擇饒恕並懷抱他們、為他們禱告時,神也必安慰我,並使我與他們更加合而為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엔 어떻게든 손해를 보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왔습니다. 나의 권리를 찾으며 애썼던 모습 속에는 예수님이 없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항상 기억하며,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在信靠耶穌的同時,活在這世界中,我卻一直竭力避免自己吃虧受損。 在那努力爭取自身權益的樣子裡,根本沒有耶穌的位置。 願我時刻記念耶穌在十字架上為我們捨去一切的愛,並以真正神兒女的身分活出生命。
형제와 다투며 이기려는 마음 자체가 이미 영적 패배다. 거저 건짐받은 우리는 한 치도 손해 보지 않으려 하기보다 서로를 용서하고 품어야 한다.
與弟兄爭執、想要勝過對方的那顆心,本身就已經是屬靈的失敗。我們這些白白蒙恩得救的人,與其分毫不願吃虧,更應當彼此饒恕、彼此包容。
고린도전서 6:7
(고린도전서 5:1-13,누가복음12-13)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듯 내 안의 작은 교만이 영혼과 공동체를 병들게 함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위선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고 바울은 순전함의 떡으로 살라 권면합니다. 겉모습만 그럴듯한 신앙은 벗어버리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오직 주님의 은혜 안에서 진실하고 겸손하게 섬기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哥林多前書 5:1-13,路加福音 12-13) 正如一點點酵母能使整團麵發起來,我深刻體認到,內心小小的驕傲足以使靈魂與群體陷入病態。主提醒我們要警惕虛偽的酵母,保羅則勸勉我們要以誠實無偽的無酵餅度日。願我脫去那只注重外表的信仰,藉著與神的交通,在主的恩典中,過一個真實而謙遜地事奉的生命。
죄는 너무 쉽고 빠르게 우리를 전염시킨다. 잘못한 줄 알았다면 즉시 끊어내야지 이정도쯤은 괜찮다고 방치하면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하나님이 거룩하니 우리에게도 거룩하라고 하셨다. 내 죄와 다른 사람의 죄도 우리에게서 끊어낼 수 있도록 서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서로 권면하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기를 간구해야겠다.
罪惡太容易、太迅速地感染我們。若已知道自己做錯了,就應該立刻切斷;若以為「這點程度無所謂」而放任不管,它就會蔓延到無法收拾的地步。神是聖潔的,所以祂也呼召我們要聖潔。我們應當迫切祈求,成為一個彼此關心、彼此禱告、彼此勸勉的聖潔群體,使我自己的罪與他人的罪都能從我們當中被切斷。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과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말씀 없이는 빠르게 본성으로 돌아가는 죄인일 뿐입니다. 말씀읽기를 즐겨 하며 항상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주님이 기뻐 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성도가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값 없이 받은 구원을 항상 기억하며 구원 받은 사람답게 살기를 기도합니다.
我雖然過著與相信耶穌之前截然不同的生活,但若沒有神的話語,我不過是個會迅速回歸本性的罪人。我渴望成為一位樂於讀經、時常思考「主會怎麼做?主所喜悅的是什麼?」的聖徒。我禱告,願自己常常記念藉著耶穌的恩典白白所得的救恩,並活出一個蒙恩得救之人應有的樣式。
묵은 누룩은 내 삶에서 철저하게 배제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내 삶이 문제가 있더라도 철저하게 분별하여 하나님께 속한 삶, 사탄에 속한 삶을 구별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삶을 철저하게 따라사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舊有的酵母必須從我的生命中徹底排除。 因此,即使我的生命存在問題,我也渴望能夠徹底分辨,區別出屬於神的生命與屬於撒旦的生命。 我願成為一個徹底跟隨、活出屬於神之生命的人。
고린도전서 5:5 여러분은 그러한 자를 당장 사탄에게 넘겨주어서, 그 육체는 망하게 하고 그의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해야 할 것입니다. 누룩이 전체에 퍼져서 불어나듯이, 편안함이 나태함이 되고 나태함이 교만이 되어 주님 주신 참 자유가 아닌 육체의 자유만을 추구하였던 자신을 돌아봅니다. 주님이 걸으신 길은 평탄이 아니고 십자가의 길이었음을 다시 기억합니다. 주님 맡기신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지 묵상해 봅니다.
哥林多前書 5:5 你們要把這樣的人交給撒但,使他的肉體滅亡,讓他的靈魂在主的日子得以得救。 就像酵母滲透全團使其膨脹一樣,我回顧自己曾讓安逸變為懈怠,懈怠變為驕傲,所追求的不是主所賜的真自由,而只是肉體的自由。我再次記起,主所走的道路不是平坦之路,而是十字架的道路。我默想:主所託付給我的十字架,究竟是什麼?
죄를 외면하는 교만함이 공동체 전체를 거룩함에서 멀어지게 한다. 참된 사랑은 차가운 심판이 아니라 회복을 향한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漠視罪的驕傲,使整個群體遠離聖潔。真正的愛,不是冷酷的審判,而是一顆永不放棄、朝向復原的心。
고린도전서 5:6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였다. 그리고 세상의 자랑이 될 만한 모습이 아닌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낮고 비천한 모습에 처한 자신을 본받으라고 한다. 바울의 그러한 모습은 예수님을 본받은 것이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다. 예수님이 먼저 그 길을 가셨고, 성경 속 믿음의 사람들도 나아갔다. 나도 그 길을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고 무너지지 않게 잡아주실 갓이다. 세상을 본받지 말고 주님을 본받아 주와 함께 동행하는 자가 되길 바란다.
保羅將自己的處境與哥林多人作了比較。他說,要效法的不是那種足以在世上誇耀的樣式,而是自己所處的那種卑微低下、無人願意走的樣式。保羅這樣的樣式,正是效法耶穌的結果。沒有十字架,就沒有榮耀。耶穌已先走了這條路,聖經中那些有信心的人也走了這條路。我若也踏上這條路,神必與我同在,並扶持我使我不至傾倒。願我們不要效法世界,乃要效法主,成為與主同行的人。
고린도전서 3:16-4:5 분열되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 살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이 모습들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로 깨어있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고린도전서 4:6-21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께 은혜로 받은 재능과 믿음조차 마치 자기 노력의 결과처럼 자랑했습니다. 반면 바울과 사도들은 고난 속에서도 인내와 사랑으로 예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삶을 살았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임을 기억하며, 유일한 진리인 말씀 앞에서 늘 겸손히 배우고 다듬어지는 제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哥林多前書 3:16–4:5 深刻感受到我們正活在一個分裂、混亂的世界之中。這一切景象,相信並非主所願見的。越是在這樣的時刻,我越渴望成為一個定睛仰望神、在禱告中儆醒的信徒。 哥林多前書 4:6–21 哥林多的信徒,甚至將神白白賜予的恩賜與信心,視為自己努力的成果而誇口。相較之下,保羅與使徒們即便身處苦難,仍以忍耐與愛心活出耶穌的品格。願我時刻記得凡事皆是恩典,在獨一真理的話語面前,始終謙遜地學習、被雕塑琢磨——這是我迫切的禱告。
(고린도전서 4:6-21, 누가복음 10-11) 바울이 보여준 낮아짐과 누가복음 속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 자기 희생과 낮은 곳에서의 섬김을 가리킵니다. 교회에서 평생 들어 익숙한 진리지만 막상 삶에서 실천하기란 어렵습니다. 때로는 은연중에 내가 높아지려는 마음으로 섬길 때도 있고 반대로 육신이나 영적으로 지칠때는 섬김 자체가 버겁게 느껴집니다. 결국 무슨 일을 하든 나를 비우고 오직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으실 때 비로소 내가 낮아져 감추어지고 주님께만 영광 돌리는 참된 섬김이 됨을 생각해봅니다.
(哥林多前書 4:6-21,路加福音 10-11) 保羅所展現的謙卑,以及路加福音中耶穌的話語,都指向自我犧牲與在卑微之處服事他人。這是在教會裡聽了一輩子、早已熟悉的真理,然而真正在生活中實踐卻並不容易。有時我們在不知不覺中,懷著想要抬高自己的心去服事;有時又因肉體或靈性的疲憊,連服事本身都感到難以承擔。最終,無論做什麼事,唯有倒空自我、讓神獨得尊榮,才能真正隱藏自己、將一切榮耀歸於主——這才是真實的服事。
바울의 비움은 자기 비움이요, 주님의 영광의 충만이었다. 바울은 나를 본 받으라 한다.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을 자신의 낮아짐을 통하여 다시 살리게 하기 위함임을. 바울은 이렇게 자기를 낮추어 만인들을 살리려 노력하였다.
保羅的倒空,是自我的倒空,也是主榮耀的充滿。 保羅說:要效法我。 為的是藉著自己的降卑,使哥林多信徒從驕傲中得以復甦。 保羅就是這樣謙卑自己,努力使萬人得生命。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모욕을 축복으로 갚는 십자가의 능력이다.
神國度的能力,不是世界的成功,而是在卑微之處,以祝福回應羞辱的十字架能力。
고린도전서 4:20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다. 성전이 거룩한 이유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면 내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기준을 들이대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 내가 하나님의 자리를 가로채게 된다. 하나님이 주인이기에 거룩한 성전이, 내가 주인이 되면 분열과 다툼의 장소가 되어버린다. 내가 자랑할 것은 성전의 주인되신 하나님이시고, 주님께서 나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셨으니 그 일에 끝까지 충성하는 자가 되어야겠다.
聖殿是神所居住的地方。聖殿之所以聖潔,是因為神在其中,因為神是主人。若我是神的聖殿,那就是承認神是我的主人。然而,當我以世界的標準去評斷他人時,我便奪取了神的位置。以神為主人而聖潔的聖殿,一旦我成為主人,就會變成分裂與紛爭之所。我所當誇耀的,是作為聖殿之主的神;主命令我們彼此相愛,因此我要成為在這件事上忠心到底的人。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바울은 선포한다. 그러므로 맡겨진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실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때가 이르러 주님께서 심판하러 오실때에 기쁨으로 나설수 있는 자가 되길 기도한다. 그러한 자로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屬於神的人都是基督的,而基督是神的——保羅如此宣告。 因此,受託之人所被要求的,就是展現忠心。 禱告盼望,當那日主來審判之時,自己能以喜樂之心坦然而立。 求主使我成為這樣的人,能夠站立在祢的面前。
분당은 거룩한 성전을 찢는 일이다. 다름을 존중하고 그 안에서 하나 된 성전으로 서는 것, 그것이 청지기의 충성이다.
分裂是撕裂神聖殿宇之事。尊重彼此的不同,並在其中合一成為一座聖殿——這才是管家的忠心。
고린도전서 3:16
(고린도전서 3:1-15, 누가복음,6-7) 고린도 교인들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아 세상의 지혜나 사람을 자랑하기에 바빴습니다. 반면 누가복음 7장의 여인은 사람들의 손가락질 속에서도 오직 예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과 헌신을 올려드립니다. 바울이 말한 불 시험을 견디는 참된 공적이란 결국 이 여인처럼 십자가 은혜에 감격하여 쏟아내는 순전한 사랑인것 같습니다. 반석 되시는 십자가의 은혜만을 굳게 붙들 때 제 삶에도 비로소 불타지 않는 참된 열매가 맺힐 줄 믿습니다.
(哥林多前書 3:1-15,路加福音 6-7) 哥林多的信徒在靈命上如同嬰孩,忙於誇耀世上的智慧和人物。相較之下,路加福音第7章的那位女人,即使在眾人的指指點點中,仍將對耶穌真誠的愛與獻身毫無保留地呈獻於祂面前。保羅所說的能經得住火煉的真實功德,我想終究就像這位女人一樣——是被十字架恩典深深感動而傾瀉而出的純全之愛。我相信,當我緊緊抓住作為磐石的十字架恩典時,在我的生命中也必將結出不被火燒盡的真實果子。
이전 공동체에서 누린 큰 은혜와 기억 때문에, 마음의 벽을 높이고 이곳에서 그동안 소극적으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내가 우리 공동체에 어떤 재료를 쌓고 있었는지 돌아봅니다. 이제는 소극적인 태도를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 위에 말씀과 기도, 그리고 진정한 배려를 하나씩 쌓아가는 일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因為在以前群體中所經歷的豐盛恩典與美好回憶,我在心中築起了一道高牆,這段時間以來一直消極地停留在這裡。藉此,我回顧自己究竟為我們的群體積累了什麼樣的材料。如今,我渴望放下消極的態度,成為一個在耶穌基督這根基之上,將話語、禱告,以及真誠的關懷一磚一瓦堆砌起來的工人。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세워져야 하고 각자의 섬김과 사역으로 드러날 분도 오직 머리되신 예수님이시다.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고 하는데, 내가 속한 공동체는 그 열매가 시기와 분쟁인가 사랑과 섬김인가? 우리 교회와 청년부의 머리가 예수님인 것을 고백하고 오직 예수만 드러나길 바란다. 또 세상의 가치관과 유혹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공동체이자 하나님이 일하시는 밭,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 되기를 기도해야겠다.
教會群體必須建立在基督這個根基之上,透過各人的服事與事工所彰顯的,也唯有身為頭的耶穌。聖經說憑著果子就可以認出那棵樹——我所屬的群體,它的果子是嫉妒與紛爭,還是愛與服事?我要承認耶穌是我們教會與青年團契的頭,並祈願唯獨耶穌得到高舉。也要禱告,願我們成為一個在世界的價值觀與誘惑中仍屹立不搖的信仰群體,成為神所耕耘的田地、神所居住的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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