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9:29-50:14, 마태복음 23-24)
마태복음의 선한 종의 비유를 통해 야곱의 삶을 다시 바라봅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이기적이고 기만하는 허물이 많은 모습이었지만 하나님은 복을 향한 그의 큰 열망을 아시고 그를 택하여 선한 종으로 훈련시키셨습니다. 그 열망으로 하나님의 사람답게 빚어지고 자신이 받은 축복을 후대에 남겨주는 야곱의 마지막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저 또한 주님의 훈련하심에 순종하며 생명을 흘려보내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야곱은 험난한 인생을 살았지만 그 길 가운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야곱의 삶의 여정은 다했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생애를 끝까지 함께 하시며 은혜를 주시고 각 사람의 삶을 통해 역사하신다. 나의 삶도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역사하시는 귀한 시간이 되도록 간구해야겠다.
나의 고향에는 증조부, 증조모, 조부, 조모, 그 형제들을 위한 묘까지 함께 되어 있다.
나의 원래 고향은 하늘나라 이지만 이 땅에서의 고향은 아버지께서 정하여 둔 그 자리가 있다.
험악한 세월을 보냈던 야곱이 하나님의 손길 아래 멋진 여행을 마무리 지은 것처럼 나도 그런 인생으로 축복하여 주시길 간구한다.
야곱은 살아있는 동안 평생을 나그네로 살았지만, 죽어서는 약속의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땅은 잠시 머무는 곳이지만 이곳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안주하려 애쓰고 살아왔습니다. 때론 나그네와 같은 삶을 원망하며 평안만을 좇았던것이 떠올라 부끄러워졌습니다.
이곳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집착하지않고 돌아갈 본향을 기억하며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가야겠습니다.
(창세기 49:16-28, 마태복음 21-22)
야곱은 자녀들을 축복하는 중에 불쑥 여호와의 구원에 대한 깊은 갈망을 고백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나무를 저주하시며 참된 열매를 요구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이와 깊이 연결됨을 봅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취를 얻기 위해 애쓰는 일상이지만 궁극적으로 내 삶에 맺혀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참된 열매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다.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나에게 맞는 은혜를 부어주시는 분이시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어떤 사람은 많이 축복받고 어떤 사람은 적게 축복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적게 받았다고 하나님이 덜 사랑하시고 많이 받았다고 더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축복의 정도, 그릇의 모양은 중요하지 않다. 그 모습이 어떠하든 내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귀한 그릇이 되도록 주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는 자가 되자
주님, 제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축복에는 한계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야곱이 마지막에 주의 구원을 기다렸던 것처럼, 저 또한 내 힘으로 자녀를 지키려는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제 손이 닿지 않는 그곳에 주님의 손이 임하여 주소서. 자녀의 앞날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심을 신뢰하며, 오늘도 그 구원을 기다리는 기도의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유언을 하고 자녀들의 축복기도를 들으며 하늘나라에 가는것은 모든 믿는자의 바램인것 같다.
야곱은 비록 험난한 세월을 살아 왔지만 임종을 앞두고 자녀들을 축복한다.
각 후손들이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서 조금은 달라지지만 큰 틀에서 보면 멋진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모든 부모 역시 그런 마음으로 자녀들을 바라보지 않을까?
(창세기 49:1-15, 마태복음 18-20)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오해하여 높은 자리를 구한 어머니에게 주님은 자리를 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이며 진정 높아지려면 종이 되어 섬기라고 너그럽게 가르쳐 주십니다. 야곱이 자녀들에게 증거한 삶의 자리 또한 이처럼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순복하고 은혜에 감사할 때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길 수 있는 마음과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합니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는 별개의 삶이 아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앞으로의 삶을 결정한다. 하나님은 나를 새롭게 하시지만 과거의 잘못을 외면하고 무작정 덮고 넘어 가시는 분은 아니시다. 내가 이전에 지은 죄악들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삶이 변하여, 더 이상 인간의 정욕과 세상의 풍요를 좇아 살지 않으며, 하나님이 주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낼 때 하나님의 은혜가 앞으로의 삶에도 영원히 거할 것이다.
(창세기 49:1-15)
칭찬할것은 격려하고 고쳐야할 성품은 경고하는 야곱의 모습에서 진정한 부모의 축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의 밝은면만 보지말고 부모의 감정으로 아이의 그림자를 야단치지 말아야겠습니다. 아이의 연약함을 직시하고 영적으로 다루어줄수있는 부모가되길 원합니다.
유다에 대한 축복은 정말 아름답다.
형제의 찬송이 되며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비록 실제의 삶은 추한 면들이 있지만 야곱은 그의 마음을 찬송한다.
베냐민을 대신해서 자신이 종이 되겠다고 한 그 마음을...
우리는 때로 손해 보는것 같아도 후에 넘치게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때가 있다. 늘 그렇게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나의 목자 되시는 예수님, 어린 양인 저는 울타리를 벗어나기도 하고 때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주야로 일하시며 밤에는 늑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시고, 낮에는 우릴 인도하십니다. 주님의 이 크신 은혜를 저는 잘 알지 못하기에 주님 그저 기도 합니다.
(창세기 48:8-22, 마태복음 15-17)
평생 자신의 목자가 되어주신 하나님을 고백하며 그 은혜가 자손들에게도 흘러가기를 구한 야곱의 축복과 예수님을 향한 베드로의 참된 신앙 고백 위에 선포된 축복을 함께 묵상합니다. 참된 복은 세상의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온전히 고백하는 믿음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내 삶의 진정한 복이 되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오늘도 주신 은혜에 순종하는 거룩한 하루를 살겠습니다.
요셉과 애굽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야곱의 눈 앞에 세웁니다.
야곱은 이 둘을 축복하며 평생 쟁취만 하려던 손으로 장자와 차남을 엇갈려 축복합니다.
야곱의 그 욕심으로 평생 험악한 세월을 살아왔지만 노년에는 베푸는 손, 축복의 손으로 바뀝니다.
저 역시 잔머리의 대가였지만 이제는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창세기 47:27-48:7, 마태복음 13-14)
야곱은 고센 땅에서 크게 번성했지만 그 풍요로움에 취하지 않고 자신의 참된 본향인 가나안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유언으로 남깁니다. 마태복음 13장 역시 영원한 본향인 천국을 소망하며 우리의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릴 수 있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이나 만족감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자 보화인 말씀을 굳게 붙드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모든것이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편안함에 안주하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큰 선물과 영원한 약속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나 돌아봅니다.
아이에게 가장 물려주어야 할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뒷전으로 밀어두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아이가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로 낯선 이방 땅에서도 풍요와 번성을 누렸지만 부유한 세상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곳을 소망하였다. 또 자신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음 세대에게도 이어가도록 축복하였다. 나도 화려하고 찬란해보이는 이 세상이 아닌 나의 기업,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소망하며 또 이 기쁜 소식이 다음 세대에도 흘러가도록 하자.
야곱의 유언은 참으로 아름답다.
자기 힘으로, 자기 지혜로 이루어 온 것인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신것 뿐이었다.
겸손함으로 자신의 것을 내려 놓으며 두 손자를 입양함으로 장자 르우벤을 대신하여 요셉에게 두 몫을 배분할줄 아는 지혜도 갖추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욕심을 내려 놓을때 축복의 통로로 사용된다.
(창세기 47:13-26, 마태복음 10-12)
살면서 겪는 결핍과 시련을 통해 오히려 진정으로 의지할 분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게 되고 빈자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채워짐을 경험합니다.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 예수님이 주시는 멍에를 멜 때 진정한 휴식을 누린다는 마태복음의 말씀은 결국 그 짐을 내가 아니라 성령께서 친히 짊어지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때로는 벅차고 힘든 삶의 과정 속에서도 늘 함께하시며 짐을 지시는 하나님 안에서 동행의 기쁨을 누리고 싶습니다.
요셉이 기근이라는 재난 속에서도 지혜롭게 자원을 관리했듯, 저 또한 제게 주어진 삶의 영역을 지혜롭게 관리할수 있길 원합니다.
제게 허락하신 귀한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물질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선순위에 따라 사용하길 원합니다.
단순히 눈앞의 풍요를 모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말씀과 기도도 영적 저축을 쌓아가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세상의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한 공급자이시며 주인 되심을 온전히 신뢰합니다.
요셉의 지혜로운 통치로 애굽은 돈, 가축, 토지, 종을 만들어 갈수 있었다.
새로운 토지법으로 나라의 기틀을 다지며 강국으로써의 모양을 갖춘다.
강국일때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더욱 그 길로 매진해야 하는데 우상을 섬기는 일로 나아갔을때 애굽은 이스라엘 민족을 내놓으며 쇄락의 길로 접어 들었다.
잘될 때, 안될 때 모두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길이 최고의 길임을 다시한번 확인 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