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그대로 보면, "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신지라."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라고 엄중하게 말씀하시고, 사랑하여 어둠에서, 곤고에서, 환란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내 어머니가 보고싶다. '다시는 그러지 마라'고 혼내셨는데, 동일한 잘못을 하던 나를 말없이 그냥 안아주시던 어머니. 그것이 내가 실제 경험한 하나님 사랑이었으리라... 감사합니다.
照聖經原文來看,「……所以我不再拯救你們了。你們去哀求自己所選擇的神明吧,讓他們在你們遭遇患難的時候拯救你們吧。」如此嚴厲地說「不再拯救你們了」,卻又因著愛,將人從黑暗、困苦、患難中拯救出來的神。
好想念我的母親。她曾經責備我說「不要再犯同樣的錯了」,但當我又犯下相同的過錯時,她卻默默地只是抱住我。
那,或許就是我實際經歷過的神的愛……感謝主。
그들은 말을, 병거의 많음을 마병의 강함을 의지하며, 나는 여호와를 의지하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이 말씀을 의지하리라. 아멘.
他們倚靠戰車,倚靠戰馬的眾多,倚靠馬兵的強壯,但我要倚靠耶和華!我萬軍之耶和華必保護耶路撒冷。我要倚靠這話語。阿們。
원인과 결과가 너무나 간명하다. 땅을 공허하고 황폐하게 하신다. 이유는 율범을 범하고 언약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완벽한 겸손이 아니고선 해결 방안이 없다. 하나님조차도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이기를 포기한듯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같은 겸손, 그같은 완벽한 겸손. 거기까지 계속 달려갈 길이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와 권위에 대한 완벽한 인정, 압도당할 만큼의 인정이 필요하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압도적 권위에 어떤 반응을 하고 있는가? 제발 완전한 겸손을 가져라.
原因和結果如此清楚明瞭。神使大地變得空虛荒蕪,理由是因為人違背了律法、背棄了約定。若不是完全的謙卑,就沒有解決之道。就連神自己,也因愛我們而彷彿放棄了作為神的身分,在耶穌基督十字架上的死,展現出這樣的謙卑——那般完全的謙卑。這是我必須不斷奔向的道路。對神一切的作為與權柄,需要有完全的認可,甚至是被那壓倒性的權威所震懾的認可。我究竟對神那壓倒性的權柄作何回應呢?求主讓我擁有完全的謙卑。
말씀을 읽을 수록, 묵상할 수록, 아직 내게는 어려움이다. 좁은 길이다. 주를 가까이 함이 자유로움과 풍요로움의 첩경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임이 어렵고 순간순간 하나님을 내 파수꾼이요,삶의 정예요원으로 둘 뿐이다. 끊임없이 나와 주님의 자리바뀜이 일어나고 있다. 누가 주님인지..오늘 말씀도 온전하게 내 본분의 위치로 돌아오지 않고, 끊임없이 주인의 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언제 하나님을 완벽히 내 주님으로 인정하고 그에게로 돌아갈지... 아직은 그의 안드로메다 내에 있으며 주변을 맴돌고 있다.
越是讀話語,越是默想,對我來說仍然是困難的。是條窄路。要接受「親近主是通往自由與豐盛的捷徑」這個事實,對我而言並不容易,我只能一時一刻地把神當作我的守望者、生命中的精銳幹員。我與主之間的位置不斷在互換。到底誰才是主呢……今天的話語也還沒有讓我完全回到本分的位置,仍不斷在主人的位置上打轉。何時才能完全承認神是我的主,並回轉歸向祂呢……我目前仍在祂的仙女座之內,在祂周圍徘徊著。
모든 일 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근본, 믿음의 태도 속에 살아가지만, 삶의 과정 속에 자신감을 가장한 내 힘과 지혜로 행한 일에 뿌듯해 한다. 이렇게 읽는 말씀을 통해 다시금 모든 일, 주께서 하셨고, 나는 도끼요 톱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주 안에 겸손은 미덕이 아닌, 생명의 근본이자 기초로 인식하는 태도를 견지하며 기도한다.
凡事都是神所成就的——雖然在信仰的根本態度上如此相信,卻在生命的歷程中,常為那些憑著偽裝成自信的自己力量與智慧所行的事而沾沾自喜。藉著如此閱讀這段話語,再次承認:凡事都是主所成就的,而我不過是一把斧頭、一把鋸子而已。在主裡,謙遜不是一種美德,而是生命的根本與基礎——我以這樣的認知持守態度,並獻上禱告。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일찍이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방탕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요. 삶의 모든 것을 갖춰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크고 비밀하고 아름다운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요. 그가 손으로 하시는 일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있어 내게 참생명과 진리가 있음에 감사한다.
若沒有神、話語、以及基督的十字架,我早已在烈酒中沉淪,在放蕩中度過漫漫長夜。縱使生命中擁有一切,也不會對神所行那奇妙、隱秘、美好的事情心存關注,更不會看見祂手所做的工。因著祂,我才擁有真生命與真理,為此我滿心感謝。
나는 어디에 머무르며, 어디에 살고 있는가? 하나님께 살고 세상에 잠시 머물러야 함에도 영원히 세상에 사는 냥, 최선을 다해 세상을 살아가는 나, 내 모습 하나님 보고 계시죠? 왜 그렇게 살아가는지...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자의 모습이 내게 있는가? 그런 마음의 방향 갖고 있지만, 현실의 회계적 결산은 늘 그에 반하는 모습이 더 많이 남아 있음을 돌아본다. 하나님! 하루의 영적 결산이 하나님으로 이익이 되는 날 되세 하옵소서. 주의 가르침이 내게 살아 꿈틀거리게 하소서...
我究竟停留在哪裡,又活在哪裡?明明應當活在神裡、暫居於世界,我卻彷彿要永遠活在世上一般,竭盡全力地活著——神啊,祢看見我這樣的模樣了吧?為何我如此度日……我裡面是否有那永不動搖之人的樣式?雖然心中懷有那樣的方向,但回顧現實的「會計結算」,卻發現與之相悖的樣子依然留存更多。神啊!求祢讓這一天的靈性結算,成為以神為盈餘的一天。求祢讓主的教導在我裡面活潑躍動……
내가 하나님께 너무 피해자 코스프레로 포장된 삶을 살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면 내가 피해자라면 가해자가 있게 마련이고, 내 입장과 상황이 늘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하나님께 나만 억울한 냥, 내 원수를 물리쳐 달라며, 내 사정을 읍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 경우엔 내가 가해자의 입장이 되어 내가 타인의 원수가 되고 그들이 하나님께 변론과 송사를 맡긴 대상이 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돌아보니 그런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억울한 상황도 싫지만, 타인의 삶에 해가 되는 상황도 안 만들도록 하나님 인도하소서.
我開始思考,自己是否在神面前活出了一種過度包裝成「受害者姿態」的人生?因為如果我是受害者,必然就有加害者存在。我的立場與處境總是站在受害者的角度,向神訴說只有我委屈,求祂擊退我的仇敵、為我申冤——若真是如此,事情或許還簡單些。但在某些情況下,我其實是站在加害者的位置,成為別人的仇敵,而他們才是將辯護與訴訟託付給神的那一方。不,回顧過去,這樣的情況其實並不少。委屈的處境固然難受,但求神引導我,也不要讓自己成為傷害他人生命的存在。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 사람이 무엇이길래 주께서 생각하시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망각하며 하루하루를 이어가는데...내가 무엇을 했다고...그저 부끄러운 존재로만 생을 이어가는데, 내게 영화와 존귀의 면류관까지 씌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금까지 내게 베풀어 준 삶, 그 안에 얼기설기 엮여있는 많은 삶의 인연들을 들추어 보며, 모든 것이 그의 생각이고, 모든 것이 그의 돌보심이었음 찬양합니다.... 여호와 그 이름이 온 땅에 아름답도다. 아멘
用祢的手指所造的祢的諸天,並祢所陳設的月亮星宿,人算什麼,祢竟顧念他⋯⋯在忘卻何為美麗的日子裡一天天度過⋯⋯我又做了什麼⋯⋯不過是以羞愧的姿態延續著生命,祢卻將榮耀尊貴的冠冕戴在我頭上,讚美這樣的神。回顧祢賜給我至今的人生,以及其中交織纏繞的許多生命中的緣分,一切都是祢的心意,一切都是祢的看顧,我要讚美祢⋯⋯耶和華-我們的主,祢的名在全地何其美!阿們
믿음의 조상들은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으로 하루를 보낸다. 자신의 행위이든,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든 모두 하나님과 결부시켜 감정을 표하고, 해결을 모색한다. 지금의 나는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의 내주하심을 인식하지 않고, 내 경험, 전문가, 심지어 ai에게 나를 결부시켜 하루를 시작하고 끝을 내고 있다.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도전 주는 것은 내 시작과 마무리가 다시 하나님으로 환치되어 내 경험과, 도움의 손길조차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내주하심 가운데 더욱 온전해지길 소망한다. 내가 더욱 하나님께 민감하게 하소서. 아멘.
信心的先祖們以神為起點,也以神度過每一天。無論是自己的行為,還是關係中所產生的問題,他們都將一切與神聯結,向祂傾訴情感,尋求解決之道。而現在的我,在許多方面都未曾意識到神的內住,反而將自己的經驗、專家的意見,甚至 AI,作為我一天的起點與終點。藉著話語再一次給我挑戰——願我的開始與結束重新歸回神,使我的經驗與所得的幫助,都在神的掌管與內住中變得更加完全。求讓我對神更加敏銳。阿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