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한 옷을 입은 자가 바로 나임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해 온 죄를 회개합니다. 여전히 연약한 본성을 가지고 있기에,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지 못하고 사랑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실천하는 예배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我沒有察覺那穿著破舊衣服的人正是我自己,一直以外表來論斷人,我為這罪悔改。因為我仍有軟弱的本性,無法看別人比自己強,也無法活出愛。
求主幫助我,記念從神所領受的恩典與愛,活出一個實踐這恩典與愛的敬拜者。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약 1:19)
말하거나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은 밖에서는 되는데,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는 참 어렵습니다. 가족과 작은 다툼이라도 있으면 묵상도, 교회에 가는것도 힘이듭니다. 말씀읽기와 묵상만으로 제 말과 태도가 변하지 않기에 날마다 무너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말씀으로 나 자신을 지키며 행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我親愛的弟兄們,這是你們所知道的。但你們各人要快快地聽,慢慢地說,慢慢地動怒。(雅各書 1:19)
慢慢地說、慢慢地動怒,在外面還做得到,但對最親近的家人卻真的很難。只要和家人有一點小爭執,連默想、去教會都變得很吃力。光靠讀經和默想,我的言語和態度並沒有改變,所以每天都在跌倒;儘管如此,我仍禱告,求神讓我不只是聽道,更能用話語守護自己,成為行道的人。
힘든 상황을 만날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을 허락하셨을까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주변 환경을 탓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에 빠뜨려 시험하시는 분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고난의 순간에 경계해야 할 것은 내 안의 욕심입니다. 욕심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겠습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선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遇到困難的處境時,我常常會想:「為什麼神允許這樣的事臨到我身上?」於是埋怨神,或是怪罪周遭的環境。但我再一次體會到,神並不是那位使我們陷入試探、試探我們的神。在苦難的時刻,真正需要警醒的,是我裡面的私慾。我要時常警醒,不讓私慾使我與神疏遠。感謝讚美那位賜下最美好事物、良善的神。
지혜가 부족할 때 꾸짖지 않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삶의 시험과 어려운 순간에 이를 기쁨으로 여기고 믿음의 인내로 승화시키는 모습이 제게는 참 부족합니다. 하지만 주님이 이루어 가실 저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눈앞의 시련에 흔들리는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온전하게 인내를 이루어가는 성도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感謝神的恩典,在我缺少智慧的時候,祂不斥責,反而厚賜與我。在人生的試煉和艱難時刻,把這些都當作喜樂,並昇華為信心的忍耐,這是我非常欠缺的。但我期待主在我身上所要成就的樣式。我迫切盼望自己不被眼前的試煉動搖,而是成為一個憑著信心使忍耐成功、完全的聖徒。
사사기에서 사람들은 다들 자신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동 하며 살았습니다. 그곳에 더이상 사사나 왕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를 그들이 대신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저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믿었던 것은 내 판단이었습니다. 이제 그 자리에서 내려와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는 삶을 사는 제가 되길 기도합니다.
在士師記中,人們都照著自己眼中看為正的去行。那裡不再有士師,也沒有王。他們佔據了原本屬於神的位置,自己坐了上去。
我也是一樣,口裡說相信神,但實際上真正相信的卻是自己的判斷。如今我禱告,願我從那個位置上下來,過一個以神的話語為準則的生活。
이스라엘은 한 지파를 위기에 처하게 하고 뒤늦게 슬퍼하며 후회했지만 회개는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잘못된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내 선택과 고집을 정당화하려 쉽게 하나님의 뜻이라 말하진 않았는지 나의 삶을 돌아봅니다. 나의 뜻을 관철시키려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을 경계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행해야겠습니다. 항상 깨어있어 진정한 회개로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키길 소망합니다.
以色列使一個支派陷入危機,事後才悲傷懊悔,卻沒有真正悔改。反而為了替錯誤的決定辯護,冠上了神的名。
我回頭省察自己的生命:是否也曾為了合理化自己的選擇和固執,輕易地說那是神的旨意?我要警醒,不再為了貫徹自己的意思而假借神的名行事,而是尋求並遵行神所喜悅的事。盼望我能時常儆醒,以真實的悔改將心轉向神。
기브아의 악을 감싸던 베냐민 지파는 죄를 묵인한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나 역시 제 식구 감싸기로 불의를 묵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문제가 있을 때 바로잡는 용기를 갖길 원합니다. 또한 분노에 휩싸이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과 절제 안에서 공의를 행하길 다짐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방법과 지혜를 겸손히 구하며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袒護基比亞之惡的便雅憫支派,因默許罪惡而受到神的審判。我也省察自己,是否因為護短而默許了不義。願我在遇到問題時,有勇氣去導正。我也立志不被怒氣吞沒,而是在神的屬性——愛與節制之中行公義。禱告今天也能謙卑地尋求神的方法與智慧來生活。
이스라엘 지파들은 베냐민을 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묻지 않고, 싸우기로 결정했으니 누구부터 나갈지 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너무도 당연히 내 뜻과 방향을 다 정해둔 뒤, 하나님께 축복해 주세요,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를 드리곤 합니다. 그것이 중보기도라 할지라도 내 열심으로 무작정 구하기보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먼저 여쭙고 겸손히 나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以色列各支派沒有先求問攻打便雅憫是否合乎神的旨意,而是在決定開戰之後,才問該由誰先上去。今天的我們也常常理所當然地先把自己的心意和方向都定好,然後才向神禱告說:「求祢賜福、求祢幫助。」即使是代禱,也不要單憑自己的熱心盲目祈求,而是先求問神真正的心意是什麼,盼望我能成為謙卑來到神面前的聖徒。
자기에게 불리한 일은 빼놓고 기브아 사람들의 잘못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한 레위인의 모습에서 저를 봅니다. 타인의 허물은 잘 발견하면서 내 자신에게 관대하고 내 잘못을 감추는 모습을 회개합니다. 남을 탓하지 않고 말씀 앞에서 나를 먼저 비춰봐야겠습니다. 내 마음을 모두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那位利未人略去對自己不利的事,只向以色列人述說基比亞人的過錯,我在他身上看見了自己。我很容易發現別人的過犯,卻對自己寬容、掩飾自己的錯誤,我為此悔改。我要不再責怪別人,先在話語面前省察自己。禱告願我在完全知道我心的神面前,真誠地活著。
레위인은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안전을 위해 첩을 밖으로 내보내는 이기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내 생각, 내 기분, 세상의 기준이 삶의 판단 기준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나만 아는 이기적인 마음과 책임 회피를 버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신 것처럼 사랑과 책임감을 다 할수 있길 소망합니다.
利未人在危急的時刻,為了自身的安全,竟把妾推到門外,做出了自私的舉動。我回頭省察,自己是不是也以我的想法、我的心情、世界的標準作為生活的判斷依據。在日常生活中,我需要操練以神的話語為準則。願我能拋棄只顧自己的自私心態與逃避責任,像耶穌為我們捨己那樣,盡心付出愛與責任。
기브아 사람들은 환대를 하지않고 외면했지만 나그네를 맞아준 사람은 그곳에 거주하던 외지인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제 안에도 마음의 문을 닫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들이 있었음을 돌아봅니다.
처음 이 교회에 왔을 때 받았던 따뜻한 환대 덕분에 잘 적응할 수 있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새롭게 찾아오는 이들과 도움이 필요한 지체들에게 먼저 손 내밀어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基比亞的人沒有款待,反而視而不見,但接待旅人的卻是住在那裡的外地人。看到這一幕,我也反省自己是否曾經關閉心門,無意間從需要幫助的鄰舍身邊走過。
我不會忘記剛來到這間教會時所受到的溫暖款待,正是因為那份恩典,我才能順利融入這裡。我盼望自己也能成為先伸出手的人,向新來的人和需要幫助的肢體傳遞神的愛,成為恩典流通的管道。
레위 사람은 하루만 더, 조금만 더 라는 머뭇거림에 가야할 길을 알면서 미루었습니다. 나의 삶 속에도 순종의 자리를 미루게 만드는 유혹과 핑계가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지금 당장의 편안함과 타협하려는 마음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걸음을 더디게 만듭니다. 내 안의 주저함과 핑계를 내려놓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기를 소망합니다.
利未人因「再一天就好、再等一下就好」的猶豫,明知該走的路卻一再拖延。我也反省自己的生命中,是否也有讓我拖延順服之路的誘惑與藉口。想與眼前的安逸妥協的心,會使我歸向神的腳步變得遲緩。願我能放下心中的猶豫與藉口,渴望走上主所喜悅的道路。
단 자손은 원하던 땅을 정복하고 신상까지 빼앗아 거창하게 자신들의 성읍을 세웠습니다. 원하는 목적지에 마침내 도착한 것처럼 보였으나, 그 길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욕망과 우상을 따른 길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이 얻은 성공은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삶에서 어디에 도달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길에서 누구를 따라 걸어왔는가 입니다. 눈앞의 성공이 아닌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겸손히 순종하며 걸어가는 우리 가정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但支派征服了他們所渴望的土地,甚至奪取了神像,氣派地建立了自己的城邑。看起來他們似乎終於到達了渴望的目的地,但那條路並非神的旨意,而是隨從慾望與偶像的道路。最終,他們所獲得的成功卻使他們遠離了神。
在人生中,比起到達了何處,更重要的是在那條路上跟隨誰而行走。願我們的家庭不是追求眼前的成功,而是正確地信靠神、謙卑順服地走這條路。
단 지파는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둔 길을 가면서 형식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었고, 레위 청년은 더 큰 이익을 기뻐하며 따라갔습니다. 저도 이미 마음을 정해놓고 하나님께 맡겼다며 마음을 편하게 생각했던적이 있습니다. 이미 답을 정해둔 내 길에 성경 구절을 찾아 명분을 만들고, 내 마음이 기뻐하는 일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진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승인을 확인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좋게 여기시는지 묻고 듣는 정직한 기도를 드려야겠습니다.
但支派走在心裡早已決定好的路上,只是形式上詢問神的旨意,而那位利未青年則是歡喜於更大的利益而跟隨前去。我也曾有過心裡早已下定決心,卻說自己是交託給神,藉此讓自己心安理得的時候。我反省自己是否曾為心中早已定好答案的路,去尋找聖經經文來製造正當理由,是否曾把自己心裡喜悅的事,誤以為是神的旨意。我應當獻上的,不是用來確認神是否批准的禱告,而是誠實地詢問並聆聽神所喜悅的是什麼的禱告。
미가와 어머니는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도 자신의 욕망만 채우는 기복신앙에 빠졌습니다. 말씀을 기준 삼지 않고 자기 편의대로 제사장을 세우며 복을 받을 것이라 착각했습니다.
저의 신앙이 단지 복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는 신앙이 되길 원합니다. 단순히 교회 출석과 봉사에 안주하지 않고, 매일의 삶에서 말씀대로 순종하는 참된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저와 모든 진리교회 한어부 성도들이 주님의 뜻 안에 바로 서길 기도합니다.
米迦和他的母親口裡說是事奉神,卻陷入只求滿足自己私慾的功利信仰。他們不以神的話語為準則,反倒隨己意立祭司,還誤以為這樣就能得福。
願我的信仰不只是為了得福,而是能夠發現神的旨意並且順服的信仰。求主不讓我只安於上教會、做服事,而是成為在每天的生活中都照著話語順服的真實敬拜者。願我和真理教會所有韓語部的聖徒們,都能在主的旨意中站立得穩,為此禱告。
삼손은 자기눈에 좋은대로 마음이 원하는대로 계속 살아가다가 눈이 멀었고 안타깝게 그제서야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자신밖에 몰랐던 삼손이 다시 힘을 달라고 기도하고 응답받았듯이 하나님은 항상 부족한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사용하십니다. 그의 의와 나라를 구하는 기도가 아니였어도 하나님은 저에게 항상 좋은것만 주셨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은혜를 부어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살아갈수 있도록 주님을 바라보며 기쁘게 순종하는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參孫按著自己眼中看為好的、隨心所欲地生活下去,直到他失去了雙眼,可惜的是,他這時才終於仰望神。就像只顧自己的參孫再次祈求力量而得到神的回應一樣,神總是垂聽我這不足之人的禱告,並且使用我。即便我的禱告並非為求祂的義和祂的國,神仍然總是賜給我最好的。感謝主在任何處境中都不斷澆灌恩典。願我能仰望主,歡喜順服,活出主所期望的方向。
삼손은 늘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 길을 묻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기도 역시 이러한 삼손의 모습과 비슷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이 내 삶을 인도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가 마음속으로 정해놓고 하나님께 승인만 원했습니다. 기도를 통해 주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뜻을 통과시키려 한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제가 어떤 방향으로 가길 원하시는지 묻는 순종의 기도를 드리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參孫總是在關鍵時刻沒有向神詢問方向。但我的禱告其實也常常和參孫這樣的樣子很相似。並不是真心渴望主引導我的人生,而是心裡早已決定好答案,只想要神的批准。我反省自己,是否不是透過禱告去尋求主的旨意,而是想藉著禱告讓自己的想法過關。我需要練習獻上順服的禱告,求問主希望我往哪個方向前進。
삼손은 자기 마음대로 힘을쓰고 교만한데도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그는 ‘내가‘ 라는 말만 가득했고 갈증을 느끼고서야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교만한 삼손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불편했지만 이내 그모습이 제 모습인것을 깨닫게되었습니다. 일이 잘풀릴땐 내힘으로 해낸것처럼 착각하지만 작은일로 바로 무너지고 그때야 하나님을 찾기때문입니다. 매일 비유로 저를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모든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항상 기억해야겠습니다. 한계에 부딪혀 주님을 찾는것이아니라 항상 주님을 의지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參孫隨心所欲地使用力量,驕傲自大,然而神卻透過他成就了祂的應許。參孫滿口都是「我」,直到感到口渴才去尋求神。看著參孫驕傲的樣子,心裡感到不舒服,但隨即明白那正是我自己的樣子。因為事情順利的時候,我就誤以為是靠自己的力量做成的,但一遇到小小的難處就立刻崩潰,這時才去尋求神。感謝主每天透過比喻讓我有所領悟。我要時常記得,一切都是主的恩典。願我不是遇到極限才尋求主,而是能夠時常依靠主、與主同行地生活。
삼손은 장성하자 하나님보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았습니다. 눈에 좋아보이는것을 따라갈수록 하나님에게서는 멀어집니다. 나의 삶의 기준을 다시한번 점검해보게 됩니다. 제 눈에 좋아 보이는 욕망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눈에 옳은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내 뜻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길 기도합니다.
參孫長大成人後,並沒有按照神的心意,而是按照自己眼中看為對的方式生活。越是追隨眼睛看為美好的事物,就越是遠離神。這讓我重新省察自己人生的標準。我不應該追求自己眼中看為美好的慾望,而應該過神眼中看為正直的生活。願神的話語,而非我自己的意念,成為我人生的準則,我為此禱告。
마노아처럼 눈앞의 상황과 두려움에 집중하면 불안해지기 쉽지만, 그의 아내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남편의 마음을 평안하게 가라앉혀 주었습니다. 살아가다 예측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 흔들리고 마음이 힘들때, 마노아의 아내처럼 비난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하며 마음을 안심시켜 주는 지혜가 저에게도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가족과 공동체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전하는 선한 동역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像瑪挪亞一樣,若只專注在眼前的處境和恐懼上,很容易變得不安;但他的妻子卻仰望神的應許,使丈夫的心得以平靜安穩。當我們在生活中遇到無法預料的難題,內心動搖、感到艱難的時候,比起責備,我也需要像瑪挪亞的妻子那樣,擁有正確傳達神的旨意、使人安心的智慧。願我能在神面前站立得正,成為向家人與群體傳揚神美善的良善同工。
하나님께서 태어날 삼손이 아닌 어머니에게 먼저 거룩과 절제의 삶을 요구하셨던 것처럼, 자녀의 믿음은 부모인 나의 순종에서 시작됨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자녀에게 말로만 신앙을 강요하는 부모가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제 삶으로 먼저 보여주는 지혜롭고 신실한 부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연약하고 부족함이 많으니, 날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바른 기준과 분별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如同神在參孫出生之前,先向他的母親要求聖潔與節制的生活一樣,感謝神讓我明白,兒女的信仰是從身為父母的我的順服開始的。求神不要讓我成為只用言語勉強孩子相信的父母,而是讓我先用自己的生命,活出敬畏神、順服話語的樣式,成為有智慧、忠心的父母。我軟弱且多有不足,求神加添我正確的標準與分辨力,使我能夠天天在神面前站立得正。
쉽볼렛 이라는 발음 하나로 동족을 편 가르고 배척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여러나라에 살면서 지역, 소득, 인종 등 저마다의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선을 긋는 세상의 모습을 보며 씁쓸할 때가 많았습니다. 자신에게 유익하지 않은 사람들을 은연중에 배척하려 했던 이기심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은 다름으로 상대를 품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주는 사랑입니다. 내 마음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나만의 기준을 내려놓고 판단 대신 주님의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제가되길 소망합니다.
經文中出現了僅憑「示播列」這一個發音,就將同族分派、加以排斥的畫面。至今在許多國家生活的過程中,看著這個世界以地區、收入、種族等各自不同的標準來評斷他人、劃分界線的樣子,心裡常感到苦澀。其實在我心中,也曾有過那種暗中想要排斥對自己沒有益處之人的自私。神所期望的樣式,並不是因著差異而無法接納對方,而是在基督裡彼此理解、彼此包容的愛。願我能放下心中至今仍存在的自我標準,不再論斷,而是能以主的心懷去親近他人。
입다가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지만 승리를 얻기위해 세상의 방식을 따라갔습니다. 내 삶이 하나님의 기준에 서있지 않으면, 세상의 그릇된 가치관을 수용하게 됩니다. 입다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지 않으신 서원을 했지만, 그의 딸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 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간증 영상들을 볼때 ‘정말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소중한 것을 바쳐야 하는구나, 서원은 함부로하는것이 아니네’ 라고 오해를 했습니다.
서원을 통해 내 뜻과 욕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묻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耶弗他把自己的女兒獻為祭物,並不是神的旨意,而是為了得勝而隨從了世上的方式。當我的生命沒有站立在神的標準上時,就會接受世上錯誤的價值觀。耶弗他許了一個神並未要求的願,但他的女兒卻看重與神之間的約定。過去我在看見證影片時,曾誤以為「原來真的想要得到某樣東西,就必須獻上寶貴的事物」、「原來許願不是隨便許的」。
我盼望自己不是藉著許願來成就自己的意思和貪心,而是能成為一個謙卑尋求神旨意的信徒。
입다는 싸움에 능했지만 먼저 사람을 보내 대화를 시도했고, 자신의 주장을 설명한 뒤 승패의 결정은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습니다. 억울하거나 부당한 일을 당하면 감정을 쏟아내거나 논리적인 반박으로 이기려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내가 결과를 다 통제하려 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실 영역을 열어드려야 합니다. 판단과 결과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기억하며, 온전히 내어드리는 태도를 가져야겠습니다.
耶弗他雖然擅長爭戰,卻先派人前去溝通,說明自己的立場之後,將勝負的決定完全交託給神。當我們遭遇冤屈或不公平的事時,很容易情緒爆發,或想用邏輯反駁來取勝。然而,與其想要全盤掌控結果,不如為神親自作工留下空間。要謹記審判與結果全然掌握在神的手中,並存著完全交託的態度。
입다는 기생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고향에서 쫓겨났지만 큰 위기에 처하자 길르앗 장로들은 태도를 바꿔 그에게 간곡히 부탁 했습니다. 이 모습을 통해 필요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이기적인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동안 사람을 대할 때 내게 유익이 되는지, 필요한지가 기준이 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나이가 들며 관계에 기대가 사라지고 무감각해졌는데 조금더 마음을 열고 관심을 가지는 태도를 실천해야겠습니다.
耶弗他因為是妓女的兒子而被家鄉的人趕走,但當基列面臨重大危機時,長老們卻改變態度,懇切地拜託他出來幫忙。透過這個情景,讓我思考人與人之間那種因需要而改變態度的自私關係。也讓我反省,自己過去與人相處時,是否也是以「對我有沒有益處」、「需不需要」作為標準。隨著年紀增長,對關係漸漸失去期待,變得越來越麻木,我想我應該要再多敞開一點心,practice更加關心他人的態度。
고난의 때에만 ‘이번만 넘어가게 해주세요’ 라며 하나님을 찾았던 제 모습을 돌아봅니다. 이민 생활을 하며 간절한 문제 앞에서는 절박하게 기도하다가도, 막상 문제가 해결되면 타성에 젖어 하나님을 잊고 살기 일쑤였습니다. 힘든 순간마다 내 아픔만 토로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날마다 베풀어 주신 긍휼을 당연한 것처럼 여겼음을 회개합니다.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감사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악인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볼때 하나님의 공의가 불공평하게 느껴졌고, 정직하게 사는것이 손해를 보는것 같아서 답답했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비멜렉의 종말이 보여주듯,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피할 수 없으며 반드시 공의로 갚아주십니다. 심판하고 갚아주시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드려야겠습니다. 손해처럼 보일지라도 주님과 동행하며 정직하고 공의로운 청지기의 삶을 살아갈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看到惡人飛黃騰達的樣子時,曾覺得神的公義似乎不公平,也曾因為正直生活好像會吃虧而感到鬱悶的日子。然而,正如亞比米勒的結局所顯明的,神的審判絕對無法逃避,祂必以公義來報應。審判與報應的事,還是應該交託給神。祈願即使看似吃虧,也能與主同行,活出正直公義的管家人生。
아비멜렉은 생명을 살리는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을 댓가로 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 왕권은 오래가지 못했고 세겜과 함께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기의 피를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세상은 남을 짓밟거나 이용해야 올라간다고 말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방식은 희생과 섬김입니다. 나의 것을 내려놓고 누군가를 위해 내어주는 자리에 서야겠습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를 세워주고 작은 배려와 섬김을 실천하는 한주가 되어야겠습니다.
亞比米勒不是藉著拯救生命,而是以他人的死亡為代價得到了地位。所以他的王權沒能長久,最終與示劍一同崩塌。但耶穌卻藉著獻出自己的血,拯救了我們。
世上的人說,要踐踏或利用別人才能往上爬,但神國度的方式卻是犧牲與服事。我要放下自己所擁有的,站在為他人付出的位置上。即使自己吃虧,也要立志成全對方,在這一週實踐微小的體貼與服事。
사사기 9장의 가시나무처럼 권력과 자기 유익만 좇아 성도에게 상처를 주는 지도자가 아니라,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처럼 본분을 다하며 기쁨을 전하는 좋은 목회자들을 지금까지 많이 만났습니다.
영적 지도자의 따뜻한 돌봄과 섬김 속에 신앙생활을 해온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커다란 축복이자 은혜입니다. 가시나무 같은 그늘이 아닌,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신 목자들을 기억하며 순종과 사랑과 기도로 목회자를 잘 섬기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不像士師記九章中的荊棘一樣,只追求權力與自身利益、傷害聖徒的領袖,而是像橄欖樹、無花果樹、葡萄樹那樣,盡忠本分、傳遞喜樂的好牧者,我至今遇見了許多。
能夠在屬靈領袖溫暖的照顧與服事中信仰生活,是神所賜的莫大祝福與恩典。願我謹記那些不是引我到荊棘般陰影之下,而是帶領我到青草地的牧者們,以順服、愛心與禱告,成為好好服事牧者的聖徒。
기드온은 아비멜렉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지 못했고 그의 자녀에게 욕망이 투사되었습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부모로 비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의 삶에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세상의 성공이나 타이틀이 아닌 오직 믿음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지 돌아보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나의 결심과 열심만으로는 부모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길, 그리하여 아이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줄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基甸沒有將信仰的產業傳承給亞比米勒,反而將自己的慾望投射到了他的兒女身上。
我不禁思考:在我孩子的眼中,我是怎樣的父母呢?回顧自己是否活出了成為孩子榜樣的生命,是否將優先順序放在信仰上,而非世上的成功或頭銜,心裡感到沉重。
單憑我的決心和努力,是無法承擔起父母這個角色的。我禱告,願自己能夠時刻與主同行,漸漸效法主的品格,好將信仰的產業傳承給我的孩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