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하는 온전한 율법은 저를 얽매는 도덕적 짐이 아니라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게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법입니다. 마지못해하는 생활이 아니라 성령안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오늘 말씀에 나와있듯이 이웃을 사랑하고 저를 돌보겠습니다.
使人自由、全備的律法,不是捆綁我的道德重擔,而是使我脫離罪的鎖鍊、神愛的律法。我不要勉強度日,而是要在聖靈裡以甘心樂意的心,照著今天的話語所說的,去愛鄰舍,也好好照顧自己。
자유롭게하는 온전한 율법은 저를 얽매는 도덕적 짐이 아니라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게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법입니다. 마지못해하는 생활이 아니라 성령안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오늘 말씀에 나와있듯이 이웃을 사랑하고 저를 돌보겠습니다.
使人自由、全備的律法,不是捆綁我的道德重擔,而是使我脫離罪的鎖鍊、神愛的律法。我不要勉強度日,而是要在聖靈裡以甘心樂意的心,照著今天的話語所說的,去愛鄰舍,也好好照顧自己。
유혹과 욕심이 없는 삶을 사는것은 불가능하지만 죄가 자라나 사망에 이르기 전에 멈추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긍휼을 허락하신에 감사를 드립니다. 넘어진 자리에서 합리화를 하거나 변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와 회복을 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그런 민감함을 회복하기를 결단합니다.
要過一個沒有誘惑和私慾的生活是不可能的,但感謝神賜下憐憫,讓我們能在罪長成以致於死之前停下來,回轉歸向神。我不要在跌倒的地方合理化自己或找藉口,而是要回轉歸向神,過一個得著恢復的生活。我決心要恢復這樣的敏銳。
고난앞에서는 원망대신 인내를 택하고, 한계를 마주할때는 엎드려 지혜를 구하고, 세상의 조건대신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라는 말씀은 하나같이 어려운 일들입니다. 그래도 자기의 소견대로 행하다 망한 사사기 백성들을 거울삼아 제 생각과 계산을 내려놓고 간구하게됩니다. 어렵기에 더욱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신뢰하기를 결단합니다.
在苦難面前選擇忍耐而不是埋怨,面對極限時俯伏下來求智慧,不看世界的條件而仰望神的榮耀——這些話語沒有一件是容易的事。即便如此,我以那些任意而行、終致敗亡的士師記百姓為鑑,放下自己的想法和算計來祈求。正因為困難,我更要尋求聖靈的幫助,並決心信靠祂。
내 소견에 옳은대로 따르는 자유는 사사기에서 보듯이 방종과 약육강식으로 이어집니다. 바울이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며 참 자유를 누렸던 것처럼 내 소견과 내 계획으로 밀고있던 교만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에 주권을 내어드리는 연습을 하겠습니다.
照自己眼中看為正的去行,這樣的自由正如士師記所見,會導致放縱與弱肉強食。就像保羅稱自己為基督的僕人,卻享受真正的自由一樣,我要放下憑自己的見解和計畫一意孤行的驕傲,練習將主權交給主的話語。
사사기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자신의 복수심과 체면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소비합니다. 당시에는 인간의 결정을 절대화하고 타인을 통제하는 참 편리한 수단이었을 것입니다. 그 완악함이 지금 내 모습 속에도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겸손히 묻고 기다리며 순종하기보다 내 욕망에 하나님의 이름을 입히고 자기기만을 합니다. 말씀 앞에서 나를 부인하며 나의 생각과 열심이 과연 하나님의 거룩과 긍휼을 높이고 있는지 돌아보겠습니다.
士師記中的百姓,把神聖潔的名當作捍衛自己報復心與面子的工具來消費。在當時,這想必是將人的決定絕對化、並控制他人的一種非常方便的手段。那樣的剛硬,如今也存在於我身上。我沒有謙卑地求問、等候並順服主的旨意,反而將神的名套在自己的慾望上,自欺欺人。我要在話語面前否定自己,省察我的想法與熱心,是否真的在高舉神的聖潔與憐憫。
기브아의 죄악에 대한 징벌은 마땅했으나 온 성읍을 도륙한 나머지 지파들은 악의 처단이 아니라 광기 어린 복수로 보입니다. 명분의 정당성이 수단의 악함을 면죄해주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선악의 판단은 생각보다 쉽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은 잘못됨을 보았을 때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바로 잡아가는 과정임을 배웁니다. 하나님의 뜻과 십자가의 긍휼을 구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基比亞的罪惡受到懲罰固然是應當的,但其餘支派屠滅全城,看起來不是在懲治邪惡,而是近乎瘋狂的報復。理由再正當,也不能為邪惡的手段開脫。在日常生活中,判斷善惡其實比想像中容易。但我學到,比這更難的是:看見錯誤時,不憑個人的情緒,而是用神的方法一步步去導正。盼望自己的生命能尋求神的旨意和十字架的憐憫。
베냐민지파는 사실을 소명하고 사죄를 하며 하나님께 심판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제 식구감싸기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나머지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중심에 하나님이 없는 오직 형제를 단죄하는 일에만 단결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가 사라진 공동체는 이렇게 정죄와 편나누기라는 인간의 본성에 쉽게 끌려감을 봅니다. 오직 하나님을 중심으로 공의와 긍휼을 지켜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便雅憫支派沒有說明事實、認罪道歉,把審判交給神,反而袒護自己人。同樣地,其餘的以色列人心中沒有神,只團結在定弟兄的罪這件事上。我看見一個失去神聖潔治理的群體,就這樣輕易被定罪與分派系的人性所牽引。我要努力只以神為中心,持守公義與憐憫。
죄악의 현장에서 레위인은 회개를 하는것이 아니라 자신의 허물은 생각안하고 자극적인 선동을 우선합니다. 나의 잘못과 그 안에 있는 깊은 죄를 정직하게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향한 질타를 한다던가 정죄를 하는 일은 작던 크던간에 일상에서 쉽게 저지르는 잘못입니다. 남을 향해 돌을 던지기 전에 내 안의 들보를 정직하게 바라보며 십자가 앞에서 긍휼을 구하는 자로 서기를 소망합니다.
在罪惡的現場,利未人沒有悔改,反而不去想自己的過犯,優先做的是煽動人心的挑撥。不誠實面對自己的錯誤和其中深藏的罪,反倒去指責、定罪別人,這無論大小,都是我們在日常生活中很容易犯的錯。盼望在向別人丟石頭之前,能先誠實看見自己眼中的樑木,站在十字架前,成為一個祈求憐憫的人。
선교는 스스로 낯선 땅의 나그네가 되어 하나님이 예비하신 상한 심령을 찾아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안에서 함께 회복을 누리는 것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두 사람의 만남은 이런 아름다운 만남같아보이지만 하나님의 주권이 빠진 이런 사적인 선의는 오히려 폭력앞에서 더 연약한 제 3자를 희생시키는 파국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나그네의 태도와 노인의 환대로 세상을 섬기되 그 중심에는 항상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는 교제를 하기를 소망합니다.
宣教,或許就是親自成為異鄉之地的寄居者,尋找神所預備、心靈破碎之人,向他們傳揚福音,並在神裡面一同享受恢復。今天話語中這兩個人的相遇,乍看之下似乎是美好的相遇,但缺乏神主權的這種個人善意,反而在暴力面前,以犧牲更為軟弱的第三者的悲劇收場。願我們以寄居者的態度和老人的款待來服事世界,但在其中心,始終要以基督為中心來建立團契。
따뜻하고 후한 대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떠나야 할때와 머무를 때를 분별하지 못하게 하는 무책임한 지연이 나타납니다. 하나님보다 우선되는 친교, 육신의 편안함과 나의 기준을 우선시해서 결단할 타이밍을 놓치고 영적 긴장감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됩니다.
看似溫暖豐盛的款待,實際上卻可能是一種無法分辨該離開或該停留的時機、不負責任的拖延。這讓我反思自己是否因為把優先於神的交誼、肉體的安逸與自己的標準擺在首位,而錯失了當下決斷的時機,漸漸失去了屬靈的警醒與張力。
미가는 내가 만든 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아가면 어떻게 하냐고 따집니다. 삶을 살면서 만들어내는 우상이나 기준들은 결국에는 사라지지만 하나님을 유일한 기업으로 삼은 사람은 비록 모든것이 사라지더라도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힘입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나의 푯대가 이런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라질 우상을 쫓고 있는지 돌아보는 하루를 보내겠습니다.
米迦質問,如果有人搶走他所造的神像和祭司,該怎麼辦呢?我們在生活中所打造出來的偶像或各種標準,終究會消失,但那以神為唯一產業的人,即便一切都消逝了,也能憑藉著無人能奪走的永恆生命重新站立起來。我要度過這一天,省察自己的目標究竟是朝向這樣的神,還是在追逐終將消失的偶像。
한 가정과 한 지파의 제사장 자리에서 미련 없이 더 큰 규모를 택했던 레위인의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되묻게 합니다. 세상은 영향력의 크기를 척도로 삼지만 하나님 나라는 나의 평범한 일상의 자리에서 말씀 앞에 얼마나 신실하게 머무는가를 바라보십니다. 사람을 높이시고 낮추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나의 욕심을 선한 영향력으로 포장하며 마땅히 지켜야 할 사명과 신의를 저버리지 않도록 오늘 내게 허락하신 자리에서 정직과 거룩함으로 지내기를 소망합니다.
那位毫不留戀地離開一個家族與一個支派的祭司職位,轉而選擇更大規模的利未人形象,讓我們重新反思神國度的標準究竟在哪裡。世上以影響力的大小為衡量標準,但神的國度看的卻是:在我平凡的日常崗位上,我在話語面前有多麼忠心地堅守。我承認,使人升高或降卑,唯獨在神的手中。願我不要將自己的貪心包裝成良善的影響力,也不背棄理當堅守的使命與信實,而是在今日神所賜給我的崗位上,以正直與聖潔度日。
어머니의 은을 훔쳤다가 저주가 두려워 회개 없는 고백을 하고, 그 가족은 그들만의 입맛에 맞추어 하나님을 기복의 도구로 섬깁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던 그 시대의 비극은 오늘날 내 신앙의 자리에도 거울처럼 비칩니다. 참된 신앙의 척도는 그럴듯한 포장이나 거짓 확신이 아니라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성경앞에 정직하게 나를 비추며 말씀을 읽고 온전히 따르는 순종의 삶에 더욱 힘쓰기를 소망합니다.
偷了母親的銀子,卻因害怕咒詛而做出沒有悔改的告白;那個家庭按照自己的口味,把神當作求福的工具來事奉。那個人人憑自己眼中看為對的事而活的時代的悲劇,如今也像一面鏡子,映照出我信仰的現況。真實信仰的度量標準,不是看似合理的包裝或虛假的確信,唯獨是記載下來的神的話語。願我在聖經面前誠實地省察自己,更加努力過一個讀神的話語並完全遵行的順服生活。
흠결이 많은 삼손을 포함한 여러 사사들 또한 믿음의 영웅으로 신약에서는 칭함을 받습니다. 이는 부서진 자리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회복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리석음과 실수로 빗나가더라도 신실함으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包括瑕疵眾多的參孫在內的多位士師,在新約中也被稱為信心的英雄。這應該是因為神即使在破碎之處,仍然持續動工、施行恢復。即使因愚昧與過犯而偏離正道,仍以信實恢復我們的神,願讚美歸於祂。
15장이 삼손이 20년동안 사사로 지냈음을 알리며 마치는거에 무색하게 16장의 시작은 블레셋 땅, 그것도 기생의 집에서 나오는 삼손으로 시작합니다. 탁월한 은사에 비해 미성숙한 인격은 주변과 내면에서 흔히 발견되는 연약함입니다. 하지만 그 불일치를 대수롭지 않게 방치하면 삼손과 같이 죄의 경계선이 무너지며 결국에는 무감각해지는 것을 봅니다. 일상의 자리에서도 인격을 십자가에 매어놓는 순종을 연습하도록 하겠습니다.
第15章以參孫擔任士師二十年作結,與此形成鮮明對比的是,第16章一開始卻描寫參孫從非利士地、而且還是從妓女家中走出來的景象。相較於卓越的恩賜,不成熟的人格是我們內心和周遭常見的軟弱。然而,若對這種不一致輕忽以對、任其發展,就會像參孫一樣,罪的界線逐漸崩潰,最終導致麻木不仁。願我們在日常生活中也操練順服,將自己的人格釘在十字架上。
망나니 같던 삼손마저 극심한 갈증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나 당시 이스라엘은 회개의 부르짖음조차 잃어버렸음을 봅니다. 현대의 인본주의적 시선으로 구약시대 사람들의 흠결을 판단하며 도덕적 우월감에 현대인들이 저들보다는 낫지라 생각하지만 정작 하나님과의 본질적인 관계에서는 예전과 비슷하게 절박하게 부르짖지도 않는 안일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겉모습의 정돈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의 결핍을 주님 앞에 솔직히 내려 놓고 구하는 참된 갈망을 회복하기를 소망합니다.
我看到,即便是像參孫這樣行為放蕩之人,在極度乾渴面前也向神呼求,然而當時的以色列卻連悔改的呼求都已經失去了。現代人常以人本主義的眼光,批判舊約時代人們的缺點,帶著道德上的優越感,認為自己比他們好,但回頭想想,我們與神之間本質上的關係,是否其實和從前一樣,並沒有那樣迫切地呼求,反而陷入了安逸之中呢?外表的整齊並不重要,我盼望能夠誠實地在主面前放下自己靈魂的缺乏,恢復那真實懇求的渴望。
다른 사사들과는 달리 자신의 연약함을 자각하며 다듬어질 기회 없이 삼손은 거저 주어진 초월적 힘에 취해 방자하게 살아갑니다. 영적 성숙이 결여된 은사는 교만으로 이어지며, 영혼을 파멸로 이끄는 덫이 됩니다. 한편 그 빗나간 교만도 구원 섭리를 이루는 도구로 바꾸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도 보게 됩니다. 주신 은사와 기도를 내 힘으로 착각하는 교만을 경계하며 날마다 주권자 하나님 앞에서 저를 복종시키는 청지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與其他士師不同,參孫沒有經歷過自覺軟弱、被神磨練塑造的機會,反而沉醉於白白賜下的超凡力量之中,放縱恣意地生活。缺乏靈性成熟的恩賜會導致驕傲,成為引領靈魂走向滅亡的陷阱。然而另一方面,我們也看見神絕對的主權,祂甚至能將那偏離正道的驕傲,轉化為成就救贖旨意的工具。願我警惕將神所賜的恩賜與禱告誤認為是憑自己力量而來的驕傲,並期盼自己每日都能在主權者神面前降服,成為順服的管家。
두려움에 사로잡혀 은혜를 곡해했던 마노아를 말씀의 약속으로 붙잡아준 아내의 분별력은 위기 속에서 공동체가 서로에게 어떤 영적 안전망이 되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녀의 세속적 고집에 단호하게 선을 긋지 못하고 끌려다닌 부부의 유약함은 온정주의에 갇힌 공동체의 한계도 보여줍니다. 불안 속에서는 은혜를 상기시켜 주는 건강한 동역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被恐懼所困、誤解了恩典的瑪挪亞,被妻子用話語的應許緊緊抓住,這份分辨力顯明了在危機之中,群體彼此之間應當成為怎樣的屬靈安全網。然而另一方面,這對夫妻在面對兒子世俗的堅持時,未能果斷劃清界線、反而被牽著走的軟弱,也顯明了受困於溫情主義的群體所具有的限制。在不安之中,我深深感受到需要有健康的同工彼此提醒恩典。
회개조차 잊어버린 시대의 부모에게 자녀를 나실인으로 키우라 하셨고, 부모는 아이를 구별하여 키우지만 아이는 결국 그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하며 자라납니다. 부모는 연약하여 자녀의 모든 순간을 지켜주지 못해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 자녀를 기르지 않으시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자녀를 끝까지 다루어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주님의 주권적인 손길에 믿음으로 아이들을 맡겨드리는 부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在這個連悔改都被遺忘的時代,神卻要父母將孩子培養成拿細耳人。父母將孩子分別出來養育,但孩子終究會如實地反映出這個時代的樣貌,成長起來。父母因為軟弱,無法看守孩子的每一個時刻,因而常感到無力,但即便如此,我們知道神並非不在養育這個孩子。願我們成為這樣的父母:即使在失敗與挫折中,仍信任那始終不放棄地雕塑孩子的神,並憑信心將孩子交託在主權柄的手中。
긴 외교적 논쟁이 실패한 후에야 비로소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는 선언이 나옵니다. 참된 승리는 지혜보다는 하나님의 영으로 확증됨을 봅니다. 그러나 그 크신 은혜앞에서도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입다의 서원은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끝내 내 손으로 승리를 보장받으려는 저의 일상의 부끄러운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거저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계산하기를 내려놓기를 결단합니다.
在漫長的外交爭辯失敗之後,才出現耶和華的靈降臨的宣告。可見真正的得勝,不是靠智慧,而是藉著神的靈得以確證。 然而,在如此浩大的恩典面前,仍無法戰勝內心的不安,反而與神做交易的耶弗他之誓願,卻與我平日那副無法全然享受恩典、非要靠自己的手來確保勝利不可的可恥模樣如出一轍。 我決心要為那白白賜下的恩典獻上感謝,並放下心中的算計。
출신 성분이나 사회적 배경으로볼때 입다는 거룩한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어 보입니다. 거기다 길르앗의 장로들 또한 신앙적인 결단이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도 아니라 싸움꾼이 필요해 입다를 그들의 지도자로 세웁니다. 앞의 다른 사사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나의 자격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오직 그 뜻하신 바를 위해 쓰임을 받는 것임을 봅니다. 모든 상황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겸손히 순종하겠습니다.
從出身背景或社會條件來看,耶弗他似乎不夠資格成為聖潔的領袖。再加上基列的長老們立他為領袖,也不是出於信仰上的決斷或順從神的旨意,而是因為需要一個能打仗的人。就像先前其他士師的例子一樣,我看見蒙揀選使用並非因著自己的資格,而是出於神的恩典,並單單為要成就祂的旨意。我願信靠在一切境遇背後動工的神的護理,謙卑地順服。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할때 모든 결과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고 이방신들을 제하여바리는 결단을 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 회개를 받아주셨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라는 입술의 고백에 그치지 않고 삶의 자리에 있는 우상들을 구체적으로 치워버리는 행동으로 증명됩니다.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 완전히 드리고 주님의 긍휼과 회복을 보기를 원합니다.
當以色列百姓悔改,承認一切結果的主權都在神手中,並決心除去異邦的神像時,神才接納了他們的悔改。真正的悔改不僅止於口中說出「我錯了,求你救我」的告白,而是要用具體行動證明,將生活中的偶像徹底除去。願我完全將生命的主權交給神,親眼看見主的憐憫與恢復。
요담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은 그대로 성취됩니다. 필요한 도움을 구할때는 간절히 간구하면서도 정작 내 욕망에 반하는 하나님의 책망에는 귀를 닫고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말씀은 위로뿐만 아니라 심판과 경계도 함께 있음을 기억하며 그 말씀대로 조용히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透過約坦所發的神的審判,如實成就了。我反省自己:在尋求所需的幫助時,是否只是懇切祈求,但對於違背自己欲望的神的責備,卻關上了耳朵?我要記得,話語不僅帶來安慰,也同時包含審判與警戒,願我能按照這話語安靜地生活下去。
가알은 전형적인 말만 요란한 사람입니다. 말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 가벼움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허세는 결국 파멸을 부를 뿐 아니라, 애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공동체 전체를 파멸로 이끄는 결과를 낳습니다. 작은 교만과 절제되지 않은 말들이 파괴적인 불씨가 된다는 것을 봅니다. 맡겨진 자리에서 겸손하고 정직하게 처신하기로 결단합니다.
迦勒是個典型只會誇口、光說不練的人。言行不一致的輕浮,以及不敬畏神的虛張聲勢,最終不僅招致自己的滅亡,還把無辜的人推向死亡,導致整個群體走向毀滅。由此可見,小小的驕傲與不加節制的言語,會成為破壞性的火苗。我決心在所託付的崗位上,謙卑且正直地行事為人。
성도의 삶은 비유에 나오는 세 나무들처럼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들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게 하는 본질적인 사명을 가치있게 여기는 삶입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과 일터에서도 아무리 작은 소산이라도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또 그 뒤에 계신 하니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聖徒的生命,並不像比喻中出現的三棵樹那樣高舉自己,而是看重那讓神和人得榮耀、得喜悅的本質使命的生命。不只是在教會,也願在家庭與職場中,無論多麼微小的收穫,都能看見那一切都是神的恩典,並看見在其背後神的榮耀。
기드온은 성막과 대제사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고향에 에봇을 두고 그 곳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고 영적으로 착각을 합니다. 그는 평안한 삶을 살았지만 이 하나님의 질서를 벗어난 그의 모범되지 못한 모습은 다음 세대를 곧바로 바알숭배로 가게합니다. 아이들에게 타협 없는 온전한 믿음의 본을 보여주는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겠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의 착각처럼 그것이 쉽지 않음도 봅니다.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며 깨어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基甸並沒有尋求聖幕和大祭司,而是在自己的故鄉設立以弗得,並在屬靈上誤以為神的引導就在那裡。他雖然過著平安的生活,但他這種偏離神的秩序、未能作出榜樣的樣式,卻直接導致下一代走向拜巴力的道路。我們應該向孩子們展現毫不妥協、完全信靠的信仰榜樣。同時我也看到,正如基甸的誤判一樣,這並不是件容易的事。我要努力常與神保持交通、時刻保持警醒。
미디안연합군의 왕들을 죽이는 것은 자신을 높이면서 보복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형제들과 민족을 위해 시작한 하나님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자마자 이런 사적인 보복과 자기과시를 시작합니다. 에브라임 지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 초기에는 가만히 있다가 승세가 기울자 전리품이 아쉬운지 기드온을 비난합니다. 어려울때 간구는 쉽지만 풍요로울때 하나님의 영광만을 높이는 것은 어렵습니다. 오직 연약한 나를 써주신 은혜에 감사만 올려드리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殺死米甸聯軍的眾王,看起來像是一邊高抬自己,一邊進行報復。在為了兄弟們與民族而展開的這場神的戰爭中剛剛得勝,就開始了這種私人的報復與自我炫耀。以法蓮支派也是如此。戰爭初期按兵不動,等到戰局有利、覬覦戰利品時,卻反過來責難基甸。在艱難的時候懇求禱告很容易,但在豐盛富足的時候,單單高舉神的榮耀卻很困難。我要活出這樣的生命:只為神使用軟弱的我這份恩典,獻上感謝。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시작하고 주님이 다 이루신 일임을 알면서도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되면 결국 나의 공로와 수고로 돌려버리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작은 성취라도 나의 공을 먼저 세는 교만을 조심해야겠습니다. 먼저 영광과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雖然明知一切都是從神完全的恩典開始,也是主所成就的事,但一旦得到自己想要的結果,還是不由自主地把功勞歸給自己的努力,這種以自我為中心的想法似乎難以避免。即使是小小的成就,也要小心不要先想到自己的功勞而產生驕傲。我要活出一種凡事先將榮耀與感謝獻給神的生命。
확증편향에 대해 생각하다가 오늘 말씀을 보게 되어 기드온의 선택이 더 장엄해 보입니다. 미디안연합군이 무서워서 숨어서 타작을 한 기드온의 본능적인 선호는 숨어서 생존하는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이 욕망과 정반대가 되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 표징에 응답하는 기드온은 누구보다도 깨어 있는 사람이고 또 그 무게를 알면서도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내 안락함을 거스르는 순종의 자리 앞에서도 기드온처럼 묵묵히 결단하는 참된 믿음의 용기를 소망합니다.
思考著確認偏誤的問題時看到了今天的話語,讓基甸的選擇顯得更加莊嚴。因害怕米甸聯軍而躲藏著打麥子的基甸,他本能的偏好是躲藏起來求生存。然而,回應與這個慾望正好相反的神的呼召及其印證的基甸,卻是一個比任何人都清醒的人,也是一個明知那份重量卻仍懂得順服的人。盼望自己在違背安逸的順服之地前,也能像基甸一樣默默做出決斷,擁有真實信心的勇氣。
암담한 이스라엘의 현실과 기드온의 지극히 평범하고 연약한 모습을 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도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신조차 갖지 못하는 태도는 주위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그 초라하고 믿음 없는 자를 직접 찾아오셔서 살아있는 약속과 권능을 보여주십니다. 섬김에 있어서 부족함과 연약함에 매몰되어 위축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자원이나 능력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연약한 자를 들어 쓰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권능에 달려 있음을 굳게 신뢰하겠습니다.
看見以色列黯淡的處境,以及基甸極其平凡又軟弱的樣貌。即使在神的呼召面前,仍不斷懷疑、無法確信的態度,正是我們周遭隨處可見的平凡人性。神親自尋訪那卑微又缺乏信心的人,向他展現活生生的應許與大能。願我在服事上不因不足與軟弱而畏縮退卻。我要堅定相信,這並不取決於我自己的資源或能力,而是全然仰賴那位使用軟弱之人、信實可靠的神的大能。
전체 126편 · 1 / 5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