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한 줄 묵상나눔

    한 줄 묵상나눔

    일상 속 짧은 깨달음·기도제목·감사를 나누고, 서로 ❤️ 좋아요로 격려해요. 한국어/중국어 편한 언어로 작성하시면 자동 번역됩니다.

    서혜원·

    청년부 모임을 준비할 때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을 생각해가는데,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내가 한 말이 정답이 되고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형태가 돼서 고민이 됐다. 나에게는 은혜가 있고 말씀에 대한 감사가 있지만 그것이 흘러가지 않는다면 공동체의 덕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리더는 나 혼자 잘 되려고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세워지기 위해 섬기는 사람이다. 주님께서 나를 리더로 세우신 그 사명에 순종하며, 내가 신앙적으로 연약하지 않더라도 그 자리까지 나아가 그들을 얻고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자가 되어야 겠다.

    在準備青年團契聚會時,我會思考一些想和大家分享討論的問題。但我發現,雖然並非出於本意,我所說的話卻成了「標準答案」,反而讓其他人產生疏離感,這讓我深感困擾。我心中有恩典,也有對話語的感恩,但若這些無法流向他人,豈不是沒能建立團體的德行嗎?領袖不是獨自努力求好的人,而是為了讓群體一同被建立而服事的人。我要順服主將我立為領袖的那份使命——即使我在信仰上並不軟弱,也應當主動走到他們當中,贏得他們的心,成為建立團體德行的人。

    이원미·

    가정과 공동체에서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을 세워주기 위한것인지 점검해야겠습니다. 제 의견을 주장하기보다 상대방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나누는것을 실천하는 한주가 될길 원합니다. 또한 기도할때 감정적인 뜨거움에 집중하는것이 아니라 마음의 생각을 담아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기도하며 말씀을 읽을때 깊이 묵상하고 깨닫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겠습니다.

    在家庭與群體中,我需要檢視自己的言行,究竟是為了自身的益處,還是為了建立他人。這一週,我希望不是堅持自己的意見,而是實踐用安慰與鼓勵的話語來關懷對方。此外,禱告時不只專注於情感上的熱切,而是將內心的思念傾訴於神,學習具體而清晰地禱告;讀話語時,也要給自己足夠的時間深入默想與領受。

    이지연·

    고린도전서 14:1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신령한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특히 예언하기를 열망하십시오. 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을 위해 흘려보내라고 권면합니다. 은사도 결국 남을 위해 사용할때 그 가치가 더해지고 그것이 곧 사랑이라고 알려줍니다. 언제나 주님은 나를 향해 마음을 쓰시고 나를 위해 죽으셨듯이 나 또한 남을 위해 내가 받은 은사를 사용하며 남의 유익을 구할때 그것이 곧 주님 가르쳐주신 사랑을 실천하는 것임을 배웁니다. 나만 알고 살아왔던 지난 날들을 회개하고 이제는 남에게 유익이 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哥林多前書 14:1 追求愛,熱切渴慕屬靈的恩賜,尤其要追求做先知講道。 保羅勉勵我們,要將從神所領受的愛,流淌給身邊的人。他告訴我們,恩賜終究是在為他人使用時,才能彰顯其真正的價值,而這本身就是愛。主無時無刻都將心意傾注在我身上,甚至為我而死——當我也同樣為他人運用所領受的恩賜、尋求他人的益處時,我學到:這正是在實踐主所教導的愛。我願悔改那些只顧自己的歲月,從今以後,渴望活出一個能造就他人的生命。

    한경우·오늘의 묵상 AI 한 줄 요약

    성령의 감동과 알아듣는 지성이 함께할 때 참된 예배가 되며,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높이는 화려함보다 이웃이 알아듣는 다섯 마디의 진심 어린 말과 삶으로 공동체를 세운다.

    當聖靈的感動與能夠領悟的理性同在時,才成為真正的敬拜;真實的愛,不在於抬高自己的華麗言辭,而是以鄰人能聽懂的五句真心話與生命,建立起群體。

    고전 14:19

    曹仲寧·

    오늘은 나의 ‘두 번째 생일‘이에요. 즉 세례를 받은지 만 6년이 되는 날이에요. 이런 기념일에 사랑과 관련된 묵상을 읽을 수 있어서 좋고 묘해요. 6월 21일 다가올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봐요. 자신의 영적 삶을 검점해 보고, 내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어요. 요즘 행할 때 하나님아니라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을 실천하는 삶으로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래요.

    今天是我的「第二個生日」,也就是受洗滿六週年的日子。能在這樣的紀念日裡讀到與愛相關的默想,感到既美好又奇妙。每當六月二十一日將近,我就會回顧神的恩典,省察自己的屬靈生命,也再次思考自己人生的目標是什麼。最近在行事為人時,心裡浮現的是倚靠自己的力量,而非倚靠神。希望自己能更進一步,活出實踐愛的生命。

    이원미·

    바울이 말하는 사랑의 정의에는 감정의 단어가 없다. 참는다, 성내지 않는다 같은 태도를 이야기한다. 누군가를 대할때 내 기분을 따르지 않고 이 상황에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생각하고 의지적으로 훈련을 해야겠다. 비록 나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믿음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께 공급받는 사랑을 잘 흘려보낼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保羅所定義的愛,其中沒有任何情感的字眼,談的是「忍耐」、「不輕易發怒」這樣的態度。 在面對他人時,不跟隨自己當下的情緒,而是思考在這個處境中該採取什麼樣的態度來實踐愛,並要有意志地去操練。 雖然我並不是一個愛心充沛的人,但我盼望能藉著信仰的操練,將從神那裡所領受的愛,好好地流淌出去。

    서혜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내가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사랑으로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 없이 일 하는 것이다. 주님의 사랑이 나를 살렸으니 나도 사랑으로 다른 이를 섬겨야 같은 생명 안에 거하게 된다. 항상 기도할 때 사랑을 구하지만 정작 내가 기도한 대로 살아가지 못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 하려고 하지만 그 안에 사랑은 없고 열심만 있었음을 회개한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너무 답답하고 속상한 일들이 많이 있지만 나도 하나님과 다른 이들의 사랑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음에 기억하며, 그 모든 관계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되자.

    神就是愛。即使我再努力工作,若不是出於愛,就是在沒有神的情況下工作。主的愛使我得以存活,所以我也當以愛服事他人,才能同住在那同一個生命之中。我常在禱告時求愛,卻往往無法照著所禱告的去生活。我以為自己在努力過信仰生活,卻懺悔其中沒有愛,只有熱心。人的思維中有太多令人窒息、令人沮喪的事,但我也記念,正是因著神與他人的愛,我才能走到今天。願我成為一個在所有關係中實踐愛的人。

    이지연·

    고린도전서 13:13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고 모든 관계를 회복시키고 모든 은사를 은사되게 하는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임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나는 사랑보다 믿음을, 능력을, 지식을, 부요를, 건강을.. 추구해 왔던것 같습니다. 모든 은사는 사람마다 맞게 골고루 나누어 주셨지만 사랑은 동일하게 우리 모두에게 주셨는데 그 가장 귀한 은사를 잊고 살았던 날들이 많았음을 회개합니다. 주님께 받은 사랑을 온전히 흘려보내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哥林多前書 13:13 「如今常存的有信、有望、有愛,這三樣,其中最大的是愛。」 愛能遮掩一切過錯、修復一切關係、使所有恩賜成為真正的恩賜——我深刻體會到,愛是神完全的性情。然而,回顧自己走過的路,我似乎一直在追求信心、能力、知識、富足、健康……而非愛。神將各樣恩賜按著各人所需分別賜下,愛卻是同等地賜給我們每一個人。我為自己長久以來遺忘了這最珍貴的恩賜而悔改。我渴望此生能夠將從主所領受的愛,完全地流淌出去。

    한경우·오늘의 묵상 AI 한 줄 요약

    사랑은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되는 것이며, 주님 앞에서 영원히 남는 가장 귀한 은사다. 실패 속에서도 그 사랑을 힘입어 다시 일어서 오늘을 사랑으로 사는 것이 진정한 신앙의 열매다.

    愛不是心靈的一種狀態,而是透過行動來實踐的,是在主面前永遠長存、最為珍貴的恩賜。即使在失敗中,也能藉著那份愛重新站起,以愛度過今天——這才是真正信仰所結出的果實。

    고린도전서 13:13

    이근행·

    (고린도전서 12:12-31, 사도행전 7-8) 바울이 선언한 것처럼 성령께서는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인이라는 장벽을 허물고 우리를 한 몸으로 부르셨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멸시받던 사마리아 사람과 에티오피아 내시가 세례를 받고 교회의 지체로 편입됨을 봅니다. 이곳에 모인 우리 역시 서로 다른 배경과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그 다름이 흩어짐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묵상합니다. 오직 한 성령 안에서 진정한 하나 됨을 이루어가기 위해 먼저 다가가는 삶을 살겠습니다.

    (哥林多前書 12:12-31,使徒行傳 7-8) 正如保羅所宣告的,聖靈拆毀了猶太人與希臘人、奴隸與自由人之間的藩籬,呼召我們成為一個身體。在使徒行傳中,我們看見曾被藐視的撒馬利亞人與埃提阿伯的太監,受了洗,被納入教會成為肢體。聚集在這裡的我們,雖然各自擁有不同的背景與文化,卻默想到:這份差異不能成為分散的理由。為了在唯一的聖靈裡實現真正的合一,我願活出主動靠近他人的生命。

    서혜원·

    교회 공동체는 한 사람이 여러 지체를 맡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하나의 지체만을 담당한다. 그저 그 지체의 역할이 다를 뿐이다. 역할이 많다고 내가 잘난 것으로 착각하거나 역할이 적다고 내가 필요없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교회의 몸은 그리스도이고 우리는 그 몸에 있는 각 지체들이다. 예수님께서 이미 모든 지체를 품으셨는데 그걸 어찌 사람의 기준으로 판단하겠는가. 내가 부족하고 연약한 지체라고 생각이 들 땐 이런 나를 품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많은 역할로 인해 수고한다면 주를 섬길 수 있음에 감사하는 자가 되자.

    教會群體不是一個人負責多個肢體,而是一個人只擔當一個肢體的職分,只是每個肢體的角色不同而已。不能因為角色多就誤以為自己了不起,也不能因為角色少就誤解自己是多餘的。教會的身體是基督,我們是這身體上各個肢體。耶穌已經將所有肢體都擁入懷中,又怎能以人的標準來評判呢?當覺得自己是軟弱不足的肢體時,就感謝耶穌用愛接納了這樣的我;若因承擔許多職責而辛勞,就成為一個能夠事奉主、心存感恩的人吧。

    康智訓·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언어생활이나 삶의 매순간에 보이지않게 이른바 “급나누기”를 하는 영향이 있는 내 악한 모습이 있는 편이다. 그 부족하고 치졸한 그 세미한 감정을 깨트려 부수는 말씀이었다. 조금 더 비우고 조금 더 줄여가라는 말을 평생 들어왔음에도 오늘 하루 조금 더 쓴 뿌리를 뽑아내어보는 하루를 살아가야겠다.

    我們美麗的肢體,根本無需如此。 在言語生活或生命的每個瞬間,我發現自己內心深處有一種不知不覺地進行所謂「階級區分」的惡劣樣貌。今天的話語,正是擊碎那份貧乏又卑微的微妙情感的一句話。 儘管一生都在聽「再多放空一些、再多減少一些」這樣的話,今天,我仍要活出努力再多拔除一根苦毒之根的一天。

    이지연·

    고린도전서 12: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따로 따로는 지체들입니다. 모두가 주님 안에서 한 몸이고 모두 다 주님의 피값으로 사신 귀한 지체임을 묵상합니다. 내 안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차별하였던 나쁜 마음을 회개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멀리 했던 지난 날들을 돌아보고 다르기 때문에 더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겸손한 마음을 부어주시길 구합니다.

    哥林多前書 12:27 你們就是基督的身體,各人是肢體,各有其分。 默想我們在主裡合而為一,每一位都是主用寶血所買贖的珍貴肢體。為自己內心曾以各種理由對人有所差別對待的惡念悔改。回顧那些不願理解、選擇疏遠與自己不同之人的過去歲月,感謝祢讓我領悟:正因為彼此不同,他們才是更加珍貴的神的子民。今天也懇求祢將主的謙遜之心澆灌在我身上。

    이원미·

    지금까지 내 자신을 공동체 안에서 가치 있게 여기지 못했거나, 내 시간과 영역을 지키고 싶어서 한 발짝 물러서 있길 원했던적이 많습니다. 내 편안함보다 주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옳다는 마음을 주시지만 온전히 기쁨으로 순종하는 내가 되지못함이 답답할때가 있지만 이 또한 제 믿음이 자라가는 과정이라 믿습니다. 공동체와 모든 관계안에서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기도로 제 역할을 기쁘게 감당할수 있길 원합니다.

    到目前為止,我常常無法在群體中認識自己的價值,或是因為想守護自己的時間與空間,而選擇退後一步。 雖然神賜給我一顆心,知道順從主的話語比自己的舒適更為正確,但有時也會為自己無法全然以喜樂順服而感到沮喪。然而,我相信這也是我信仰成長的過程。我渴望在群體與所有關係中,彼此珍視對方,並能以禱告喜樂地承擔自己的角色。

    한경우·오늘의 묵상 AI 한 줄 요약

    하나님이 부족해 보이는 지체에 오히려 더 큰 귀중함을 입히신 것은 공동체가 서로를 돌보게 하시기 위함이니, 가장 보이지 않는 지체부터 먼저 살피는 섬김이 필요하다.

    神將更大的尊貴加在那些看似軟弱的肢體上,是為了讓群體能夠彼此看顧;因此,我們需要一種從最不顯眼的肢體開始、優先關懷的服事心志。

    고린도전서 12:12-31

    康智訓·

    주객전도 되지 않기. 은사가 먼저가 아닌 하나님과의 동행과 그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차갑게 살아가기.

    不要本末倒置。 不是以恩賜為優先,而是持守與神同行的熱切之愛,在這冷淡的世界中活出信仰。

    서혜원·

    은사는 나를 자랑하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나에게 가장 적합한 은사를 부어주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공동체를 섬기는 자가 되자.

    恩賜不是為了彰顯自己而賜下的,乃是為了讓我們認耶穌為主而賜下的。為此,讓我們讚美那位將最適合我們的恩賜傾注下來的神,並成為按照聖靈的引導服事群體的人。

    이원미·

    그동안 내가 가진 작은 재능, 경험, 환경들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자랑거리로 삼지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타인을 내 기준에서 너무 쉽게 판단하는 본성을 버리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그 자리에 두신 뜻과 이유를 먼저 헤아리고 존중해야겠습니다. 남을 탓하거나 비교할 것 없이, 오직 나 자신이 말씀 안에서 끊임없이 단련되어 내가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함을 매일 깨닫습니다. 내게 주신 은사를 가족과 이웃, 공동체에 잘 사용하는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回顧自己是否將所擁有的小小才能、經歷與環境視為理所當然,或以此作為誇耀的資本。 捨去以自我標準輕易評判他人的本性,當先體察並尊重神將那人放在那個位置上的心意與緣由。 無需埋怨他人或與人比較,每天都深刻體會到:唯有自己在話語中不斷被磨練、讓自己站立得穩,這才是最重要的事。 衷心盼望自己能善用神所賜的恩賜,服事家人、鄰舍與群體。

    이지연·

    성령이 내 안에서 일하시고 주님의 은사를 받았겠지만 내가 받은 은사를 잘 분별하고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지는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주님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위해 겸손히 사용할 수 있는 모습이 되길 소망합니다.

    聖靈在我裡面運行,我也領受了主所賜的恩賜,但說實話,我還不太清楚自己是否真正分辨了所領受的恩賜,並將其用於群體之中。我渴望能更敏銳地回應聖靈的引導,並能分辨主所賜給我的恩賜是什麼。也盼望自己能成為一個謙遜地將恩賜用於服事群體的人。

    한경우·오늘의 묵상 AI 한 줄 요약

    성령이 주신 은사는 나의 자랑이 아니라 공동체를 함께 세우기 위한 것. 그 목적을 놓치면 은사는 분열이 된다.

    聖靈所賜的恩賜,不是為了我的誇耀,而是為了共同建立群體。一旦忘記這個目的,恩賜就會成為分裂的根源。

    고린도전서 12:7

    이근행·

    (고린도전서 11:17-34, 사도행전 1-3)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는 오순절 사건 직후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세상 모든 사람에게 칭송받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성만찬의 자리에서조차 가난하고 약한 자를 배려하지 않는 무너진 모습을 봅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심에도 그 인도하심에 깨어있지 않을 때 구약의 백성들처럼 우리의 연약함이 얼마나 쉽게 바닥을 드러내는지 깨닫습니다. 내 안의 육체의 소욕을 내려놓고, 성령의 인도하심만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哥林多前書 11:17-34,使徒行傳 1-3) 使徒行傳中所呈現的初代教會,在五旬節事件發生後,是一個以純全的心彼此分享食物、讚美神,並蒙眾人稱頌的群體。然而,在哥林多前書中,我們卻看到沒過多久,就連在聖餐的場合,也出現了不顧憐貧弱者的破敗景象。即使聖靈與我們同在,當我們不儆醒順從祂的引導時,我們深刻體會到,我們的軟弱是多麼容易像舊約的百姓一樣,將本相暴露無遺。願我們都能成為放下內心肉體私慾、單單跟隨聖靈引導而活的聖徒。

    서혜원·

    성찬의 은혜는 누리고 싶은데 구약에서부터 그렇게 강조했던 가난하고 연약한 자를 배려하라는 말씀은 지키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십자가에서 모두 하나를 이루셨는데 우리가 세상이 정한 기준과 계급을 가지고 사람들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꼭 돈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어떠한 것이라도 내 안에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했던 모습을 회개하고 나의 모든 일을 주의 영광을 위해 행하는 자가 되자.

    若想享受聖餐的恩典,卻不遵行從舊約就再三強調的——要顧念貧窮軟弱之人的話語,那麼所吃所喝的,就不是基督的身體與寶血,而是在吃喝自己的罪了。耶穌在十字架上,不論我們地位高低,使我們眾人合而為一;我們卻不可用世界所定的標準與階級來評判他人。這不單是關乎金錢的事——無論何事,讓我們悔改內心中論斷與歧視他人的態度,成為凡事都為主的榮耀而行的人。

    이지연·

    성찬의 참 의미를 기억하며 내 안에 남아 있는 차별과 편견, 내 잣대로 판단하고 정죄했던 잘못된 생각을 다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변화되길 소망합니다. 하나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처럼 가정 안에서나 교회에서, 직장에서 또는 거리를 걷는 일상에서도 참된 그리스도인의 성품으로 분열시키는 사람이 아닌 하나되게 하는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더 가지려고 애쓰는 모습을 버리고 더 나누려고 애쓰는, 배려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아는 그라스도인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記念聖餐的真正意義,將我內心殘留的歧視與偏見、以自己的標準論斷和定罪他人的錯誤想法全然放下,渴望在主裡得著更新。正如主吩咐我們合而為一,願我在家庭、教會、職場,以及日常行走的街道上,都能以真正基督徒的品格,成為使人合一的人,而非製造分裂的人,為此禱告。願我放下汲汲追求擁有更多的樣子,成為一個努力付出分享、懂得體貼、懂得等待的基督徒。今天也懇求主的恩典。

    이원미·

    바울이 서로 살피고 함께먹기위해 기다리라고 한 이유는 빵보다 사람이 먼저이기때문인데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이 얼마나 많았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분별하며 공동체 구성원과 주변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기다림을 실천하는 삶으로 바뀌길 소망합니다.

    保羅之所以叫我們彼此體恤、等候一同吃飯,是因為人比餅更重要。反思自己,明明說相信耶穌,卻有多少次只顧自己、流露出自私的樣子,實在令我深感慚愧。願我能分辨基督的身體,活出甘心為群體成員與周遭之人樂意等候的生命。

    한경우·오늘의 묵상 AI 한 줄 요약

    성찬은 한 몸의 상호의존성을 나누는 식탁이다. 곁의 사람을 기다리고 분별할 때 비로소 공동체의 일치가 실현된다.

    聖餐是分享同一身體相互依存的餐桌。當我們等候、體察身旁的人,群體的合一才得以真正實現。

    고린도전서 11:33

    이근행·

    (고린도전서 11:2-16, 빌립보서)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영적 질서와 권위를 묵상하며 이것이 우리를 통제하기 위함이 아님을 봅니다. 오히려 빌립보서의 권면처럼 서로가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향해 함께 나아가도록 돕는 은혜로운 도구가 됨을 봅니다. 주님께서 가정과 교회에 세우신 이 거룩한 질서를 존중하며 그 질서 안에서 서로를 온전히 세워주고 하나 됨을 이루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哥林多前書 11:2-16、腓立比書) 默想哥林多前書中所呈現的屬靈秩序與權柄,我們看見這並非為了管轄我們。反而如同腓立比書的勸勉,這是幫助彼此同心合意、一同邁向榮耀神這唯一目標的恩典器皿。願我們尊重主在家庭與教會中所建立的這份聖潔秩序,並在這秩序之中彼此完全造就、活出合而為一的生命。

    서혜원·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미지나 기대감이 있다. 그것을 지켜주는 것도 어쩌면 이웃 사랑일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예수님을 본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고 심지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단정치 못하게 옷 입고 다닌다면 그 모습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볼 수 있겠나.. 앞선 본문들에서 말했던 것처럼 내가 그렇게 할 자유가 있으나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고 이웃을 넘어지게 한다면 절제하는 것이 옳다. 나의 먹고 마시고 옷을 입는 모는 것조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하는 자가 되자.

    對於基督徒,世人心中有一定的形象與期待。維護這樣的形象,或許本身就是一種愛鄰舍的表現。世人透過基督徒來認識耶穌。然而,如果我們說話、行為與世人無異,甚至穿著打扮比世人更加隨便,那麼人們又怎能從我們身上看見耶穌呢⋯⋯如同前面經文所說的,我雖然有那樣做的自由,但若那樣做無法彰顯神的榮耀,反而使鄰舍跌倒,那麼節制才是正確的選擇。讓我們成為一個在吃喝穿著的一切事上,都為著榮耀神而行的人。

    이지연·

    고린도전서 11:16 이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이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나, 그런 풍습은 우리에게도 없고, 하나님의 교회에도 없습니다. 말씀을 대하는 해석이 갈릴때 참 어렵습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속으로는 ‘저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판단할때가 많습니다. 특히 정치적인 이슈나 사회적인 문제 앞에서 많이 느끼곤 합니다. 그럴때마다 고민이 됩니다. 바울의 조언대로 그런 논쟁하는 풍습 자체가 어쩌면 문제일지 모른다는 조심스러움으로 다른 의견을 더 존중할 줄 아는 제가 되길 기도합니다.

    哥林多前書 11:16 若有人想為這事爭論,我們卻沒有這樣的規矩,神的各教會也是沒有的。 當面對話語詮釋出現分歧時,真的很不容易。表面上努力不露出情緒,內心卻常常在想「那樣不對吧⋯」而陷入論斷。尤其在面對政治議題或社會問題時,這種感受特別強烈,每當如此,心裡就充滿掙扎。願我能以保羅的提醒為鑑——那種爭論的風氣本身或許才是問題所在——帶著這份謹慎之心,成為一個更懂得尊重不同意見的人,為此禱告。

    이원미·

    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인것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온전히 순응하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나의 자유와 권리만을 주장하지않고 겸손한 마음과 기쁨으로 그 권위를 존중하는 지혜로운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我知道認可父母、丈夫以及我所屬群體的權柄,是敬畏神的態度,但在實際生活中,卻有許多時候無法完全順服。 我渴望自己能成為一個有智慧的人——不只是主張自己的自由與權利,而是以謙卑的心和喜樂來尊重那份權柄。

    康智訓·

    지나온 묵상과 신앙적 담론들 속에서 오늘에서야 이 고린도전서 11장의 답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는 바로 균형(均衡)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전적 의미로 균형은 저울로 비교를 할 때 어느 곳 한 곳에 치우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하나님이라는 잣대와 저울로 그 규율 안에서 자유할 수 있는 하루가 우리가 되길 소망해본다.

    在過去的默想與信仰討論中,今天終於感覺找到了哥林多前書第11章的答案。腦海中浮現的,正是「均衡」這個詞。 就字典上的意思而言,均衡是指用秤來比較時,不偏向任何一方。願我們都能擁有這樣的每一天——以神為標準與衡量,在祂的法則之內得享自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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