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부 모임을 준비할 때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을 생각해가는데,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내가 한 말이 정답이 되고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형태가 돼서 고민이 됐다. 나에게는 은혜가 있고 말씀에 대한 감사가 있지만 그것이 흘러가지 않는다면 공동체의 덕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리더는 나 혼자 잘 되려고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세워지기 위해 섬기는 사람이다. 주님께서 나를 리더로 세우신 그 사명에 순종하며, 내가 신앙적으로 연약하지 않더라도 그 자리까지 나아가 그들을 얻고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자가 되어야 겠다.
가정과 공동체에서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을 세워주기 위한것인지 점검해야겠습니다. 제 의견을 주장하기보다 상대방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나누는것을 실천하는 한주가 될길 원합니다. 또한 기도할때 감정적인 뜨거움에 집중하는것이 아니라 마음의 생각을 담아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기도하며 말씀을 읽을때 깊이 묵상하고 깨닫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4:1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신령한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특히 예언하기를 열망하십시오.
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을 위해 흘려보내라고 권면합니다. 은사도 결국 남을 위해 사용할때 그 가치가 더해지고 그것이 곧 사랑이라고 알려줍니다. 언제나 주님은 나를 향해 마음을 쓰시고 나를 위해 죽으셨듯이 나 또한 남을 위해 내가 받은 은사를 사용하며 남의 유익을 구할때 그것이 곧 주님 가르쳐주신 사랑을 실천하는 것임을 배웁니다. 나만 알고 살아왔던 지난 날들을 회개하고 이제는 남에게 유익이 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은 나의 ‘두 번째 생일‘이에요. 즉 세례를 받은지 만 6년이 되는 날이에요. 이런 기념일에 사랑과 관련된 묵상을 읽을 수 있어서 좋고 묘해요. 6월 21일 다가올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봐요. 자신의 영적 삶을 검점해 보고, 내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어요. 요즘 행할 때 하나님아니라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을 실천하는 삶으로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래요.
바울이 말하는 사랑의 정의에는 감정의 단어가 없다. 참는다, 성내지 않는다 같은 태도를 이야기한다.
누군가를 대할때 내 기분을 따르지 않고 이 상황에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생각하고 의지적으로 훈련을 해야겠다.
비록 나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믿음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께 공급받는 사랑을 잘 흘려보낼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내가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사랑으로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 없이 일 하는 것이다. 주님의 사랑이 나를 살렸으니 나도 사랑으로 다른 이를 섬겨야 같은 생명 안에 거하게 된다. 항상 기도할 때 사랑을 구하지만 정작 내가 기도한 대로 살아가지 못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 하려고 하지만 그 안에 사랑은 없고 열심만 있었음을 회개한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너무 답답하고 속상한 일들이 많이 있지만 나도 하나님과 다른 이들의 사랑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음에 기억하며, 그 모든 관계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되자.
고린도전서 13:13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고 모든 관계를 회복시키고 모든 은사를 은사되게 하는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임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나는 사랑보다 믿음을, 능력을, 지식을, 부요를, 건강을.. 추구해 왔던것 같습니다. 모든 은사는 사람마다 맞게 골고루 나누어 주셨지만 사랑은 동일하게 우리 모두에게 주셨는데 그 가장 귀한 은사를 잊고 살았던 날들이 많았음을 회개합니다. 주님께 받은 사랑을 온전히 흘려보내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고린도전서 12:12-31, 사도행전 7-8)
바울이 선언한 것처럼 성령께서는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인이라는 장벽을 허물고 우리를 한 몸으로 부르셨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멸시받던 사마리아 사람과 에티오피아 내시가 세례를 받고 교회의 지체로 편입됨을 봅니다. 이곳에 모인 우리 역시 서로 다른 배경과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그 다름이 흩어짐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묵상합니다. 오직 한 성령 안에서 진정한 하나 됨을 이루어가기 위해 먼저 다가가는 삶을 살겠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한 사람이 여러 지체를 맡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하나의 지체만을 담당한다. 그저 그 지체의 역할이 다를 뿐이다. 역할이 많다고 내가 잘난 것으로 착각하거나 역할이 적다고 내가 필요없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교회의 몸은 그리스도이고 우리는 그 몸에 있는 각 지체들이다. 예수님께서 이미 모든 지체를 품으셨는데 그걸 어찌 사람의 기준으로 판단하겠는가. 내가 부족하고 연약한 지체라고 생각이 들 땐 이런 나를 품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많은 역할로 인해 수고한다면 주를 섬길 수 있음에 감사하는 자가 되자.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언어생활이나 삶의 매순간에 보이지않게 이른바 “급나누기”를 하는 영향이 있는 내 악한 모습이 있는 편이다. 그 부족하고 치졸한 그 세미한 감정을 깨트려 부수는 말씀이었다.
조금 더 비우고 조금 더 줄여가라는 말을 평생 들어왔음에도 오늘 하루 조금 더 쓴 뿌리를 뽑아내어보는 하루를 살아가야겠다.
고린도전서 12: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따로 따로는 지체들입니다.
모두가 주님 안에서 한 몸이고 모두 다 주님의
피값으로 사신 귀한 지체임을 묵상합니다. 내 안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차별하였던 나쁜 마음을 회개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멀리 했던 지난 날들을 돌아보고 다르기 때문에 더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겸손한 마음을 부어주시길 구합니다.
지금까지 내 자신을 공동체 안에서 가치 있게 여기지 못했거나, 내 시간과 영역을 지키고 싶어서 한 발짝 물러서 있길 원했던적이 많습니다.
내 편안함보다 주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옳다는 마음을 주시지만 온전히 기쁨으로 순종하는 내가 되지못함이 답답할때가 있지만 이 또한 제 믿음이 자라가는 과정이라 믿습니다. 공동체와 모든 관계안에서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기도로 제 역할을 기쁘게 감당할수 있길 원합니다.
그동안 내가 가진 작은 재능, 경험, 환경들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자랑거리로 삼지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타인을 내 기준에서 너무 쉽게 판단하는 본성을 버리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그 자리에 두신 뜻과 이유를 먼저 헤아리고 존중해야겠습니다.
남을 탓하거나 비교할 것 없이, 오직 나 자신이 말씀 안에서 끊임없이 단련되어 내가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함을 매일 깨닫습니다.
내게 주신 은사를 가족과 이웃, 공동체에 잘 사용하는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성령이 내 안에서 일하시고 주님의 은사를 받았겠지만 내가 받은 은사를 잘 분별하고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지는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주님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위해 겸손히 사용할 수 있는 모습이 되길 소망합니다.
(고린도전서 11:17-34, 사도행전 1-3)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는 오순절 사건 직후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세상 모든 사람에게 칭송받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성만찬의 자리에서조차 가난하고 약한 자를 배려하지 않는 무너진 모습을 봅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심에도 그 인도하심에 깨어있지 않을 때 구약의 백성들처럼 우리의 연약함이 얼마나 쉽게 바닥을 드러내는지 깨닫습니다. 내 안의 육체의 소욕을 내려놓고, 성령의 인도하심만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찬의 은혜는 누리고 싶은데 구약에서부터 그렇게 강조했던 가난하고 연약한 자를 배려하라는 말씀은 지키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십자가에서 모두 하나를 이루셨는데 우리가 세상이 정한 기준과 계급을 가지고 사람들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꼭 돈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어떠한 것이라도 내 안에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했던 모습을 회개하고 나의 모든 일을 주의 영광을 위해 행하는 자가 되자.
성찬의 참 의미를 기억하며 내 안에 남아 있는 차별과 편견, 내 잣대로 판단하고 정죄했던 잘못된 생각을 다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변화되길 소망합니다. 하나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처럼 가정 안에서나 교회에서, 직장에서 또는 거리를 걷는 일상에서도 참된 그리스도인의 성품으로 분열시키는 사람이 아닌 하나되게 하는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더 가지려고 애쓰는 모습을 버리고 더 나누려고 애쓰는, 배려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아는 그라스도인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바울이 서로 살피고 함께먹기위해 기다리라고 한 이유는 빵보다 사람이 먼저이기때문인데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이 얼마나 많았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분별하며 공동체 구성원과 주변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기다림을 실천하는 삶으로 바뀌길 소망합니다.
(고린도전서 11:2-16, 빌립보서)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영적 질서와 권위를 묵상하며 이것이 우리를 통제하기 위함이 아님을 봅니다. 오히려 빌립보서의 권면처럼 서로가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향해 함께 나아가도록 돕는 은혜로운 도구가 됨을 봅니다. 주님께서 가정과 교회에 세우신 이 거룩한 질서를 존중하며 그 질서 안에서 서로를 온전히 세워주고 하나 됨을 이루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미지나 기대감이 있다. 그것을 지켜주는 것도 어쩌면 이웃 사랑일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예수님을 본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고 심지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단정치 못하게 옷 입고 다닌다면 그 모습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볼 수 있겠나.. 앞선 본문들에서 말했던 것처럼 내가 그렇게 할 자유가 있으나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고 이웃을 넘어지게 한다면 절제하는 것이 옳다. 나의 먹고 마시고 옷을 입는 모는 것조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하는 자가 되자.
고린도전서 11:16
이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이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나, 그런 풍습은 우리에게도 없고, 하나님의 교회에도 없습니다.
말씀을 대하는 해석이 갈릴때 참 어렵습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속으로는 ‘저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판단할때가 많습니다. 특히 정치적인 이슈나 사회적인 문제 앞에서 많이 느끼곤 합니다. 그럴때마다 고민이 됩니다. 바울의 조언대로 그런 논쟁하는 풍습 자체가 어쩌면 문제일지 모른다는 조심스러움으로 다른 의견을 더 존중할 줄 아는 제가 되길 기도합니다.
지나온 묵상과 신앙적 담론들 속에서 오늘에서야 이 고린도전서 11장의 답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는 바로 균형(均衡)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전적 의미로 균형은 저울로 비교를 할 때 어느 곳 한 곳에 치우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하나님이라는 잣대와 저울로 그 규율 안에서 자유할 수 있는 하루가 우리가 되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