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58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말씀를 묵상하며 바울의 권면에 도전을 받습니다. 주님 원하시는 삶을 방해했던 내 가장 연약한 모습은 게으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일을 더 많이 하고 이 모든 수고를 더하라고 권면하는 바울은 분명 양과 질 모두를 언급하고 있음을 봅니다. 이제는 안락함을 조금씩 포기하고 주님 기뻐하시는 일을 더 감당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화되길 소망합니다.
(고린도전서 15:35–49, 사도행전 24-26)
부활의 영광은 씨앗이 먼저 썩어지는 십자가의 과정을 통해서만 거둘 수 있음을 바울의 서신과 삶을 통해 배웁니다. 사도행전의 바울은 고난 속에서도 자신을 철저히 썩어지는 씨앗으로 기꺼이 내어주었습니다. 일상의 자리와 섬기는 과정에서 지금 당장 열매를 맺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그것들이 생명의 열매로 맺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부활을 믿기에 몸과 영이 영원이 부활할 주님 재림하실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지만 머리로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구체적인 면들이 존재합니다. 내 생각이 짧고 식견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은 흐릿하게 알지만 주님 오실 그날까지 조금씩 더 선명해질것을 믿기에 오늘도 말씀에 은혜를 받습니다. 온전하지 못한 내 몸과 영혼을 온전하게 바꾸실 성령님에 의지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지금은 밀알처럼 작은 믿음이지만 밀알이 땅에 심기어져 썩고 자라나듯 내 작은 믿음도 자라나게 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고린도전서 15:20–34, 사도행전21-23)
부활에 대한 소망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특히 내 삶의 방향을 십자가만을 바라보도록 이끌어주는 큰 원동력임을 느낍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끔찍한 고초를 겪으면서도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담대히 감당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이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 덕분이었습니다. 부활은 단순히 새 생명을 얻었다는 내면의 기쁨에서 끝나는 지식이 아니라 나의 매일의 삶을 십자가의 길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어야 함을 깊이 묵상합니다.
창세기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생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장면을 보았다. 우리도 예수님과 한 생명으로 연결되었다. 예수님이 살아났으니 우리도 살아날 것이 당연하다. 또 로마서에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이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생명을 얻은 자임을 보았다. 나에게 생명주신 이가 거룩하게 살라고 하셨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어찌 그것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부활의 확신을 가진 자로서 내일 죽을 것처럼 먹고 마시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라고 생각해서 나태하게 지내지도 말고 늘 깨어 기도하며 의를 행하는 자가 되자.
고린도전서 15:31a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감히 단언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부활을 믿고 기대하며 살아왔지만 오늘 말씀에서 언급하는 부활을 믿는 삶의 열매는 내게 드러나고 있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바울이 고백한 날마다 죽는 삶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고 실천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매일 매일 죽기보다 살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엔 참 안타까울것 같습니다. 날마다 자라나고 변해야 할텐데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스스로도 안타깝습니다. 주님과 힘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사는 삶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한때 그리스도인은 왜 즐거움을 따르면 안 되고 절제되고 거룩히 살아야 하는지 답답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부활의 영광을 잊고 분별되지 않는 삶을 산다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속기 쉽고 죄를 짓게 될 수 있다. 우리의 인생이 헛되지 않고 주님께 영광이 되기위해 눈앞에 즐거움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청지기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오늘도 성실히 살아 내야겠다.
(고린도전서15:12-19, 사도행전18-20)
고린도전서의 말씀처럼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되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부활은 단순한 기적을 넘어 우리를 죄에서 온전히 건져내신 은혜의 완성임을 묵상합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 바울이 자기 생명보다 귀하게 여겼던 사명 역시 바로 이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부활을 통해 확증된 이 십자가의 은혜를 매일의 삶에서 누리며 그 생명을 이웃에게 증언하고 나누는 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기를 소망합니다.
부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확실한 약속이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는 모든 수고와 믿음은 아무 의미 없는 헛수고가 되고 말 것이다.
그동안 구원받은 신앙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부활을 어렵게만 느껴왔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세상의 허무한 것들을 붙잡고 애쓰기보다, 부활의 기쁜 소식을 가족들에게 더늦기전에 전해야겠다는 마음과 용기를 얻었다. 내 삶의 소망인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끝을 알 수 없어 불안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군대에서 고된 훈련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전역하는 날을 고대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부활의 확신이 있는 성도에겐 이 세상에서의 삶이 얼마나 복되고 행복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제 아들이 고등학교 입시전형 면접을 보았는데 시험 결과는 다음 주 금요일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면접관들이 면접 후 바로 합격여부를 알려주었습니다. 금요일까지 불안해 하고 있을 우리의 마음을 배려해 준것 같아 감동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섬세한 배려를 체험합니다.
(고린도전서 15:1-11, 사도행전 16-17)
사도행전의 바울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갔지만 복음의 핵심인 부활만큼은 결코 놓치지 않았습니다. 아레오바고의 철학자 앞에서도 세상 이치로는 비이성적으로 보일 수 있는 진리를 타협 없이 전합니다.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내가 믿음을 갖게 된 것조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그 크신 은혜를 매일 간구하며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더욱 깊이 알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여러 증인들처럼 직접 보지 못했으나 그것이 믿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미 오래 전에 약속하신 말씀을 예수님을 통해 이루시고 또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나도 주님의 일에 함께 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 또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하자.
부활하신 주님이 있기에 오늘도 소망을 갖고 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없다면 내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을것을 압니다. 복음의 진리와 핵심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합니다. 하지만 이제것 나의 삶은 복음을 믿고 구원 받은것에 만족하며 전하는 삶에는 소극적이고 게을렀음을 반성하고 회개합니다.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애써 전하지 못함을 합리화 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런 태도가 익숙함이 되어 부담조차 느끼지 않는 삶이 되어 있음에 회개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말씀을 보며 제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동안 세상의 유익한 지식이나 다른 정보들은 가족들에게 열정적으로 소개하고 전파하면서도, 정작 부활의 복음은 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본질이 아닌 것만 열심히 나누었던 지난날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너무 당연시 여겼던 부활의 복음을 잊지않는 그리고 전하는 제가되길 소망합니다
(고린도전서 14:20–40, 사도행전14-15)
고린도전서와 사도행전의 말씀을 통해 참된 영적 질서는 율법주의가 아닌 화평을 위한 십자가 안에서의 배려에 있음을 묵상합니다. 타인을 품기 위해 나의 익숙함을 기쁜 마음으로 양보해야 하지만 그 배려가 복음의 본질마저 훼손한다면 결단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이 원리를 일상에서 현명하게 잘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4:20,40
형제자매 여러분, 생각하는 데는 아이가 되지 마십시오. 악에는 아이가 되고, 생각하는 데는 어른이 되십시오.
모든 일을 적절하게 하고 질서 있게 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리스도인 다운 모습은 무엇일까? 머리속으로 그려봅니다. 때때로 믿지 않는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은 아니 오히려 더한 내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워집니다. 또한 본이 되지 못하는 교회 모습을 뉴스에서 접할때마다 답답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 말씀하신 마태복음 5장 13-16 말씀을 다시 마음에 새겨봅니다.
예배는 믿는 자뿐만 아니라 믿음이 연약한 자와 믿지 않는 자들까지도 품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로 나만 말하고 나만 드러나는 것이 아닌 모든 이가 질서있게 말하고 품위있게 드러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예배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니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세워져서 하나님만 드러나는 공동체가 되도록 기도하자.
(고린도전서14:1-19, 사도행전11-13)
어떠한 은사도 나를 높이기 위함이 아님을 배웁니다. 날카로운 지식과 화려한 언변을 가졌을지라도 그것이 사랑으로 영혼을 세우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교회를 세우는 데 쓰이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사도행전의 유대인들은 지식을 가지고 메시아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졌음에도 복음을 영접하여 기뻐하는 이방인들을 사랑으로 품기는 커녕 시기하여 바울을 박해합니다. 이런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아 나의 모든 능력이 진정 무엇을 위해 쓰여야 하는지 끊임없이 점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