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이사야 22:1–25
今日默想:以賽亞書22:1-25
제목 :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
이사야 13장부터 우리는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를 살펴봤다. 바벨론과 모압과 다메섹과 애굽과 아라비아가 차례로 등장했다. 그런데 오늘 22장에서 그 목록에 뜻밖의 이름이 나온다. 예루살렘이다. 본문의 표제는 '환상의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고만 되어 있는데, 본문을 읽어 가면 그곳이 바로 예루살렘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나라들의 심판 목록 한가운데 놓인 것이다. 신학자들은 이 배치 자체가 한 가지를 말한다고 한다. 그것은 언약 백성이라는 신분이 심판의 면제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소란한 성읍의 풍경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 있고, 성은 떠들썩하며 즐거워한다. 그런데 그 한복판에서 예언자는 홀로 운다.
사 22:4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망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
성읍은 잔치로 즐거운데 예언자는 위로조차 거절하며 통곡한다. 무엇을 보았기에 그런것일까?
이 본문의 배경은 히스기야 시대의 일로 보인다. 앗수르의 위협이 밀려오던 때에 예루살렘이 방어를 준비하던 그 무렵이다. 본문은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자세히 기록한다. 무기고의 병기를 점검했다. 다윗 성의 무너진 곳이 많은 것을 확인했다. 아랫못의 물을 모았다. 집을 헐어 그 돌로 성벽을 보수했다.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확보했다. 이 목록은 열왕기와 역대기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히스기야가 수로를 내고 성벽을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그 고고학적인 자료는 지금까지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 목록만 읽으면 그들은 대단히 유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기를 앞두고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았고, 하나하나 빈틈없이 해냈다. 무기와 성벽과 물, 곧 장기 전쟁에서 성을 지키기 위한 필요한 세 가지를 모두 갖추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런데 11절에서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뒤집으신다.
사 22:11 너희가 또 옛 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를 행하신 이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이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렇다. 문제는 그들이 한 일이 아니었다. 성벽을 보수한 것도, 물을 모은 것도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그 모든 준비 속에 하나님이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성벽의 약한 곳은 그렇게 꼼꼼히 살피면서, 정작 그 성을 지키시는 분은 바라보지 않았다. 앞서 14장에서 하나님은 열방의 흥망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겠느냐(사 14:27)'고. 그래 예루살렘이 그 경영하시는 분을 존중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12절과 13절이 그 실상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그 날에 통곡하며 애곡하고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고 명하셨다. 이것은 슬퍼하라는 말이 아니라 회개하라는 부르심이다. 위기 앞에서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성벽이 아니라 돌이킨 마음이었다. 그런데 백성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그들은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이렇게 말한다.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어차피 끝났으니 남은 시간이나 즐기자는 것이다. 회개할 마음이 없으니 쾌락으로 도망한 셈이다. 생각해 보면 자기 성과에 취해 잔치하는 것과 절망하여 잔치하는 것은 겉으로는 정반대다. 그러나 둘 다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성공했으니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하든, 실패했으니 하나님도 소용없다고 하든, 그 자리에 하나님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어지는 후반부는 두 사람의 이름을 지목한다. 먼저 왕궁을 맡은 셉나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높은 곳에 자기 묘실을 파고 반석에 자기 처소를 쪼아 내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물으신다. 네가 여기서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나라의 살림을 맡은 자가 정작 자기 무덤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그 자리에서 쫓아내신다.
그 자리에 엘리아김이 세워진다. 하나님은 그에게 셉나의 옷과 띠를 입히시고 정권을 맡기시며,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신다고 하신다.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다고 하신다. 든든한 곳에 박힌 못과 같다고도 하신다. 그런데 이 장의 마지막 절이 뜻밖이다.
사 22:25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는 단단한 곳에 박혔던 못이 삭으리니 그 못이 부러져 떨어지므로 그 위에 걸린 물건이 부서지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그 못조차 결국 부러진다. 사람이라는 못에게 걸린 짐은 그 못이 아무리 든든해 보여도 언젠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은 성벽을 의지했고, 그 다음에는 사람을 의지했다. 그러나 성벽도 사람도 궁극적인 의지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결국 이 본문에서 우리가 의지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임을 알려주고 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나의 사역을 돌아 본다.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책망받은 이유가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오히려 부지런했다.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고, 심지어 자기 집을 헐어서까지 성벽을 쌓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열심의 한복판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 어쩌면 나에게도 그것이 문제일 때가 많다. 사역이 어려울 때 나는 먼저 무엇을 했는가. 방법을 찾았다. 더 나은 계획을 세우고, 더 많이 준비하고, 더 부지런히 뛰었다. 그것이 성실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때 나는 성벽을 쌓고 있었을 뿐, 그 성을 지키시는 분을 바라보지 않았다. 물론 기도도 했고, 묵상도 했다. 하지만 기도와 묵상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형식처럼 드리고, 정작 마음은 내 계획 위에 있었다. 내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려 했던 것이다. 무서운 것은 이것이 겉으로는 신실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은 스스로도 알아차린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열심히 하는 것은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오히려 칭찬을 듣기도 한다. 예루살렘도 그랬을 것이다. 성벽을 쌓는 그들을 보며 아무도 그것이 죄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기도한다. 하나님, 내가 무엇을 준비하든 그 준비 속에 주님이 계시게 하옵소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주님을 앙망하게 하시고, 내 힘으로 이루려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성벽을 쌓기 전에 그 성을 지키시는 분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標題:對耶路撒冷的警告
從以賽亞書13章起,我們一直在察看神向列國發出的警告。巴比倫、摩押、大馬士革、埃及、阿拉伯依次出現。然而在今天的22章,這個名單中卻出現了一個出乎意料的名字——耶路撒冷。本文的標題只寫著「論異象谷的警告」,但讀下去便會發現,那地方正是耶路撒冷。神的百姓被安置在對異邦列國審判的名單正中間。神學家們說,這樣的編排本身就在傳達一件事:立約子民的身分,並不意味著可以免於審判。
今天的經文以一幅喧鬧城市的景象開場。人們爬上屋頂,城裡熱鬧歡騰。然而就在這片喧鬧的正中央,先知卻獨自哭泣。
賽22:4 所以我說,你們轉眼不要看我,我要痛哭。不要因我百姓〔原文作「我民的女子」〕的毀滅,強來安慰我。
城裡正因宴樂而歡騰,先知卻連安慰也拒絕,只是痛哭。他到底看見了什麼,才會如此?
這段經文的背景,似乎是希西家王在位的時期。當時亞述的威脅逼近,耶路撒冷正在準備防禦。經文詳細記載了他們所做的事:察看軍械庫裡的兵器,查看大衛城牆多處崩塌的地方,積蓄下池的水,拆毀房屋用其石頭修補城牆,又在兩道城牆之間造水池以確保水源。這份清單也可從列王紀和歷代志中得到印證。希西家開鑿水道、修築城牆的記載留存至今,其考古證據至今猶存。
單看這份清單,就能知道他們相當有能力。面對危機,他們清楚地知道該做什麼,並且一件不漏地完成了。兵器、城牆、水源——長期戰爭中守城所需的三項要素,全都齊備了。若只看到這裡,實在無可指摘。然而在第11節,神卻用一句話將這一切徹底翻轉。
賽22:11 又在兩道城牆中間挖一個聚水池,可盛舊池的水,卻不仰望做這事的主,也不顧念從古時定這事的主。
沒錯。問題不在於他們所做的事。修補城牆、積蓄水源,都不是錯。問題在於——「在那一切的準備當中,神卻缺席了」。他們如此細心地察看城牆的破損之處,卻沒有仰望那位真正守護這城的主。此前在第14章,神論到列國的興衰時曾這樣說:「萬軍之耶和華既然定意,誰能廢棄呢?(賽14:27)」然而耶路撒冷卻並未尊重這位定意行事的主。
第12節和第13節則顯明了那真實的景況。神在那日呼召他們哭泣哀號、頭上光禿、腰束麻布。這並不只是要他們悲傷,而是呼召他們悔改。危機當前,神所要的不是城牆,而是回轉的心。然而百姓的反應卻恰恰相反。他們宰牛殺羊、吃肉喝酒,說:「明日我們要死了,不如吃喝吧!」既然反正已經完了,不如把剩下的時間拿來享樂。因為沒有悔改的心,便逃向了享樂。細想起來,因自己的成就而狂歡與因絕望而狂歡,表面上正好相反,但兩者的共同點在於——都沒有轉向神。無論是說「成功了,所以不需要神」,還是說「失敗了,神也沒用」,神都同樣不在那個位置上。
接下來的後半段,經文指名點出了兩個人。首先是掌管王宮的舍伯那。國家危在旦夕之際,他在做什麼呢?他竟在高處為自己鑿墳墓,在磐石中為自己雕鑄住所。於是神問他:你在這裡有什麼身分呢?本該掌管國家事務的人,卻只顧著為自己修建墳墓。於是神將他從那位置上趕下去。
繼而神立以利亞金取代他的位置。神將舍伯那的外袍和腰帶穿在他身上,把政權交託給他,又將大衛家的鑰匙放在他肩頭。他開了,就無人能關;他關了,就無人能開。神又說他要像釘牢固之地的橛子一樣穩固。然而本章的最後一節,卻出人意料。
賽22:25 萬軍之耶和華說:當那日,釘在堅固處的橛子必壓斜,被砍斷落地,掛在其上的重擔必被砍斷,因為這是耶和華說的。
連神所立的那根橛子,最終也會斷裂。掛在「人」這根橛子上的重擔,無論那橛子看起來多麼堅固,終究有一天會倒塌。耶路撒冷先是依靠城牆,接著又依靠人。然而經文告訴我們,無論是城牆還是人,都無法成為終極可倚靠的對象。最終,這段經文告訴我們,我們所當倚靠的,是神。
默想今天的經文,我不禁反省自己的事工。經文中以色列受責備的原因,並不是因為懶惰。他們反而十分勤勞,竭盡所能,甚至拆毀自己的房屋來修築城牆。然而問題在於,在那份熱切的正中央,神卻不在其中。或許對我來說,這也常常是問題所在。每當事工陷入困難,我最先做的是什麼?是尋找方法。制定更好的計劃,做更充分的準備,更努力地奔波忙碌。因為我以為那就是忠心。然而回頭看,那時我其實只是在築城牆,卻沒有仰望那位守護這城的主。當然,我也禱告,也默想。但禱告和默想,往往只是在開始工作之前形式性地獻上,真正的心思卻放在自己的計劃上。我想憑自己的力量去成就些什麼。可怕的是,這樣的狀態表面上看起來相當忠實。什麼都不做的懶惰,自己是能察覺得到的。然而,離開神卻仍勤奮努力,卻很難察覺出來,甚至還會得到讚賞。耶路撒冷或許也是如此。看著他們修築城牆的樣子,大概沒有人會說那是罪。所以今天我這樣禱告:神啊,無論我在準備什麼,願您都在那準備之中。在開始工作之前,先讓我仰望您,讓我卸下憑己力成事的心。願我在築城牆之前,先成為仰望那位守護這城之主的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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