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편, 요한복음 5,6)
시편을 통해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통치를 봅니다. 반면 요한복음 에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무리가 예수님을 세상의 왕으로 삼으려 하자 이를 미련 없이 떠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통치는 단지 우리의 육신을 먹이고 입히며 세상의 필요를 채워주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썩어질 양식을 넘어선 영생의 말씀으로 우리 삶을 다스리십니다. 나의 신앙은 세상을 바라보고있는지 아니면 그 영생의 말씀을 붙드는 제자의 길을 걷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광대하고 아름다운 창조 세계에 비해 나는 초라한 죄인처럼 느껴지며, 발전하는 세상 속에서 나는 비루하고 미련해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령을 불어 넣으시고 영화와 존귀로 지으셔서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다. 또한 가장 연약한 어린아이의 입에 권능을 세워 원수를 이길 힘을 이미 부여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초라해질 때는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교만해질 때는 피조물의 한계를 기억하며 겸손해야 한다. 결국 온 땅에 울려 퍼져야 할 이름은 여호와이심을 기억하며 그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자가 되자.
다윗의 시를 묵상하고 있자면 하나님이 다윗을 얼마나 기뻐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마음과 생각과 입술은 여호와를 찬양하고 드높이는것에만 진심이었음을 봅니다. 눈을 떠서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매우 섬세하고 진정성 있게 하나님을 묵상하고 찬양하는 그 모습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그 목적에 가장 부합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며 반면 내 모습과 너무 대비되어 부끄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이불킥 속에서도 저 또한 자격이 아닌 은혜로 살아가는 성도이기에 오늘도 부족한 모습마저 기쁘게 받아주실 주님을 찬양하며 나아갑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 사람이 무엇이길래 주께서 생각하시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망각하며 하루하루를 이어가는데...내가 무엇을 했다고...그저 부끄러운 존재로만 생을 이어가는데, 내게 영화와 존귀의 면류관까지 씌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금까지 내게 베풀어 준 삶, 그 안에 얼기설기 엮여있는 많은 삶의 인연들을 들추어 보며, 모든 것이 그의 생각이고, 모든 것이 그의 돌보심이었음 찬양합니다.... 여호와 그 이름이 온 땅에 아름답도다. 아멘
(시편 7편, 요한복음 3,4)
시편에서 말하는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과 요한복음에서 사마리아 여인의 감추어진 과거를 보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주님께서 저의 죄와 부끄러움을 빛 가운데로 드러내시는 것은 정죄와 심판을 위함이 아님을 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수치가 드러난 순간 비로소 참된 구원을 알게 된 것처럼 나의 죄가 더 더럽고 크게 다가올수록 나를 품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훨씬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 크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으로 하루를 보낸다. 자신의 행위이든,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든 모두 하나님과 결부시켜 감정을 표하고, 해결을 모색한다. 지금의 나는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의 내주하심을 인식하지 않고, 내 경험, 전문가, 심지어 ai에게 나를 결부시켜 하루를 시작하고 끝을 내고 있다.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도전 주는 것은 내 시작과 마무리가 다시 하나님으로 환치되어 내 경험과, 도움의 손길조차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내주하심 가운데 더욱 온전해지길 소망한다. 내가 더욱 하나님께 민감하게 하소서. 아멘.
시인은 욥과 같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항변하지만 또 어느새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나열한다. 나는 고통 속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고난 뒤에 올 영광의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는가?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의 질서를 정하신 크고 위대한 하나님이 그저 괴로워 부르짖는 연약한 나를 바라보시고 도와주시려고 하는지를 알면 그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영광인가. 나는 날마다 넘어지는 자이지만 하나님은 그런 나를 대장부처럼 일으켜 세우시고 주의 길로 나아가게 하신다. 늘 하나님을 기억하며 주님을 붙들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한다.
삶에서 뜻하지 않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나는 과연 다윗처럼 그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 앞에 쏟아놓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과 마음을 모두 통찰하시는 분이시기에, 가장 공정하게 상황을 바라보시고 판단해 주신다. 다윗을 괴롭히던 수많은 억울한 일들과 무성한 소문들은 결국 다 사라졌지만, 그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오직 진실했던 다윗의 기도뿐이었다. 사람에게 변명하고 감정을 쏟아내기보다, 내 모든 억울한 마음을 오직 주님께 온전히 맡기며 잠잠히 무릎 꿇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시편 7:17 나는 주님의 의로우심을 찬송하고 가장 높으신 주님의 이름을 노래하련다.
다윗은 능력있고 권력을 가졌던 인물이지만 그런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때론 인생의 위기가 찾아오고 억울함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럴때는 의지할곳이 없어 주님을 찾지만 오히려 평탄할때 주님을 잊고 살아가는 내 모습이 두렵습니다. 평틴할때 주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며 고난 가운데서 철저히 엎드려 주의 도우심을 구한 다윗처럼 기쁠때나 슬플때나 주님과 동행하는 모습이 되길 소망합니다. 또한 정의로운 성도가 되길 기도합니다.
(시편 6편, 요한복음1,2)
짙은 어둠 속에서 탄식하는 다윗을 보며 세상의 어떠한 지식이나 지혜로도 씻어낼 수 없는 죄의 무거운 현실을 봅니다. 다윗조차 비껴갈 수 없었던 이 캄캄한 절망을 찢고 요한복음의 주님은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동시에 이 구원의 은혜는 저 혼자만 누리고 간직하라고 주신 것이 아님을 봅니다. 나만 가지고 있는 복음의 테두리를 넘어서서 이 생명의 빛을 주변의 영혼들에게 온전히 비추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복음을 읽어가며, 제가 얼마나 그릇된 죄인인가를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제가 저지른 죄를 주워 삼기듯 회개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런 잘못을 했고, 또 저런 잘못을 했고... 오늘 묵상 말씀을 통해 참회, 회개의 기도의 첫 자리는 하나님의 은혜 구함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넘어지고, 같은 때에 다시 같은 잘못을 범하는 제가 조심스레 하나님의 헤세드를 구합니다.
처음 본문을 묵상하고는 다윗이 정신이 혼미해져서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목사님의 묵상 내용이 마음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고 본문의 참 의미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참회란 내 죄를 잘 정리해서 하나님께 나아와 그것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채로 하나님의 긍휼 앞에 나를 던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참회를 한번도 이렇게까지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것 같습니다. 깨달음의 감사함을 넘어 자유함마저 드는 내용이 큰 은혜가 됩니다. 다윗과 같이 진실된 참회가 있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내가 고통 중에 있을 때 이 고통은 나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고 있는 것이니 노가 풀릴 때까지 가만히 있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죄인인 내가 감히 하나님께 기도해도 되는가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럴수록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용서를 구하고 사랑으로 품으시기를 바라야 한다. 하나님은 내가 연약한 존재임을 아시고 나를 도우시기 위해 항상 내 곁에 계신데 내가 두려워 주님을 떠나버리는 것이 더 큰 죄이다.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강한 확신으로 오늘도 주님 앞에 나아가 나의 죄를 고백하고 주의 긍휼을 구하는 자가 되자.
2021년 베트남에서 6개월 넘는 코로나 봉쇄로 지쳐갈 때, 다윗처럼 어느 때까지입니까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는 듯했습니다. 너무 사랑했던 하노이를 떠나야 했지만, 주님은 우리를 한국과 캐나다를 거쳐 지금의 대만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상황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으나 변치 않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소망이 있습니다. 언제나 좋은 것만 주시는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참된 평안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나는 매일의 시작을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는가? 아침에 묵상을 한 것으로 퉁치고 있진 않은가? 나는 묵상을 하고도 시간이 지나면 내 감정에 사로잡혀 자꾸 죄인의 길로 가는 연약한 사람이다. 내가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인 것을 하나님도 아신다. 그래서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의 성전으로 가야 한다. 죄가 나를 유혹하고 공격할 때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되자. 나는 비록 부족하게 시작하였을지라도 나의 그 부족한 부분을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채워주실 것이다. 주님이 채우실 사랑에 감사하며 주로 인해 기뻐하는 하루로 마무리하자.
나는 아침에 눈을뜨자마자 무엇을 가장먼저 떠올리는고 하는가? 해야할 집안일, 준비할음식, 일정들, 습관적으로 sns를 들어가서 시간소비... 이런것들에 마음을 뺏겨 하루를 시작하기보다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모든것을 맡겨드리고 하루를 시작해야 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예배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의 기도에는 탄식과 신음도 있지만 끝내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경배하는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겸손히 주님앞에 나아가는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제사임을 묵상합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말씀처럼 상황과 신분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주님 앞에서 바로 서 있는지가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방패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삶의 자리에서 언제나 겸손한 예배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시편4편, 디모데후서)
순교를 앞둔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굳건한 신뢰와 충직한 청지기로서의 다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큰 고난 가운데서도 바울이 누렸던 이 평안은 시편 4편에서도 볼 수 있는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에서 비롯된 것임을 봅니다. 지금 나의 평안이 진정 어디에서 오고 있는지 깊이 점검해 보고 오직 주님 안에서 안식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가엾게 여기셔서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합니다. 의의 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죄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 두려움 마음으로 회개 기도를 올립니다. 오직 주님만이 저를 평안하게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을 되뇌며 기쁨으로 가득한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하루의 긴장을 풀고 평안히 잠드는 밤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지만 요즘은 무더위와 호르몬의 변화로 잠 못 드는 날이 많아 육체의 연약함과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 그러나 참된 평안은 내 환경이나 몸 상태가 완벽할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한계 속에서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찾아옴을 깨닫는다. 내가 깨어 있을 때나 잠들 때나, 주께서 나를 항상 지키시고 돌보아 주심을 믿습니다.
나의 기쁨의 근원은 세상인가 하나님인가? 나를 너그럽게 하시는 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나에게 선을 보이시는 하나님, 내 마음에 기쁨을 두시는 하나님, 나를 안전하게 살게 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이며 구원자이며 아버지되시는 분이신 것에 감사하며 오직 주로 인하여 기뻐하는 자가 되자.
시편 4:7 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 주신 기쁨은 햇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에 누리는 기쁨보다 더 큽니다. 8 내가 편히 눕거나 잠드는 것도, 주님께서 나를 평안히 쉬게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성숙한 믿음이 놀랍습니다. 삶의 위기 가운데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모습과 잘나갈때 누리던 것들이 주지 못했던 참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위기의 순간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은혜가 됩니다. 다윗처럼 넘어졌을때도 주님 주신 기회를 바로 알고 전화위복의 열매를 누리는 인생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