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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이사야 26:1–27:1

    今日默想:以賽亞書26:1–27:1

    한경우··조회 63

    제목 : 심지가 견고한 자

    어제 우리가 읽은 25장은 하나님이 만민을 위하여 여시는 잔치를 노래했다. 그리고 오늘 26장은 유다 땅에서 부르는 또 하나의 노래다. 그 노래가 이렇게 시작한다.

    사 26:1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견고한 성읍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성벽이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 돌이 아니다. 여호와의 구원이 성벽과 외벽이라고 한다. 이사야 22장을 보면 그때 예루살렘 사람들은 집을 헐어 그 돌로 성벽을 보수했다.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성벽은 결국 무너졌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구원 자체가 성벽이 된다. 그리고 그 성문이 열린다.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하라고 한다.

    그러고 이렇게 말씀한다.

    사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여기 '심지가 견고한 자'라는 말의 뜻을 보자. 원문에서 '심지'로 번역된 말은 예체르라는 낱말이다. 이 말은 '빚다, 모양을 만들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로, 사람의 생각과 성향과 상상을 뜻한다. 창세기 6장에서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고 하셨을 때, 그 '생각하는 계획'이 바로 이 낱말이다. 곧 예체르는 내 마음이 습관적으로 돌아가는 자리, 내가 가만히 있을 때 저절로 향하는 방향을 가리킨다.

    그리고 '견고한'으로 번역된 말이 사무크다. 그런데 이 말은 스스로 단단하다는 뜻이 아니다. '떠받쳐진', '기대어진', '무게를 실어 놓은'이라는 뜻이다. 무언가에 기대어 지탱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 심지가 견고한 자란 스스로 강한 사람이 아니다. 자기 생각의 무게를 하나님께 실어 놓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자기 힘으로 버티고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기대고 있어서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본문이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힌다.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라고 한다. 즉 견고함의 근거가 그 사람 안에 있지 않고 그가 신뢰하는 대상에 있는 것이다.

    그래 이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신다고 하신다. 그래서 원문에서는 샬롬이라는 낱말을 두 번 거듭 나열하여 강조를 한다. 이 샬롬은 단순히 다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온전함과 건강함과 조화를 다 담은 말이다. 그러니 이 구절은 하나님께 기댄 사람에게 하나님이 온전하고 완전한 평강을 주신다는 약속이다.

    이어지는 본문은 그 백성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보여 준다.

    사 26:8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본문은 '심판하시는 길에서' 기다린다고 한다. 아직 그 자리에 이르지 못했고 심판이 진행 중인 그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9절은 그 심판의 목적을 밝힌다.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16절부터 18절에 이르면 그 백성의 정직한 고백이 나온다.

    사 26:18 우리가 잉태하고 산고를 당하였을지라도 바람을 낳은 것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출산하지 못하였나이다

    해산의 고통을 다 겪었는데 낳은 것이 바람이었다고 한다. 애를 쓸 대로 썼는데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고백이다. 나라를 구하지도 못했고 세상을 살리지도 못했다. 즉 사명을 완수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사 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18절과 19절을 나란히 놓고 보라. 사람은 산고를 다 겪고도 바람을 낳았다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땅이 죽은 자를 내놓게 하신다고 하신다. 사람이 낳지 못한 것을 하나님이 낳으시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무력함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자리가 죽음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일하신다.

    주석가들은 대체로 이 구절이 죽은 자의 부활을 말한다고 본다. 물론 이것을 포로에서 돌아오는 민족의 회복을 그린 비유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그런데 칼빈은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짚는다. 이 부활을 마지막 날에만 국한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신자는 지금도 하나님께 피함으로써 환난 가운데서, 심지어 죽음 가운데서도 생명을 얻는다. 그래서 이사야가 여기서 그리스도의 통치 전체를 담고 있다고 보았다. 우리가 교회에 속하게 될 때 이 생명을 받기 시작하지만, 온전히 누리는 것은 마지막 부활의 날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약속은 먼 훗날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바람만 낳고 주저앉은 사람에게 지금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마지막에 리워야단이 등장한다.

    사 27:1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리워야단은 성경에 여러 번 나오는 이름이다. 욥기에서 하나님이 욥에게 그 위엄을 길게 말씀하시는 그 짐승이고, 시편에서는 하나님이 그 머리를 부수셨다고 노래하기도 한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이름은 고대 가나안 지역의 신화에 나오는 바다 괴물 로탄과 관련이 있다. 그 신화에서 이 괴물을 묘사하는 말이 '도망하는 뱀', '꼬불꼬불한 뱀'인데, 오늘 본문이 쓰는 표현과 같은 낱말들이다. 그렇다면 이사야가 이방 신화를 믿었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한 주석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오늘날 역사가가 사납고 공격적인 나라를 '큰 용'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가 용의 실재를 믿는다고 여길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이사야와 그 독자들이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지 그것을 믿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이 왜 여기에 놓였는가. 바로 앞 절과 함께 보면 알 수 있다. 19절에서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셨다. 그리고 27장 1절에서 혼돈의 세력을 처치하신다.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뒤흔드는 혼돈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둘을 차례로 다루신다. 게다가 그 신화에서는 신들이 이 괴물과 힘겹게 싸워 겨우 이기는데, 여기서는 여호와께서 칼 하나로 처치하신다. 세상이 가장 무서워하던 세력이 하나님 앞에서는 그저 처리되는 피조물일 뿐이다.

    그러고 보면 이 두 절이 24장부터 이어져 온 긴 이야기를 닫는 자리다. 땅이 흔들리고 성읍이 무너지고 사람이 바람을 낳던 그 이야기의 끝에서, 하나님은 죽음과 혼돈을 다 이기신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심지가 견고한 자'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사실 이 말을 참 많이 들어 왔다.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와 책에서 인용하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이 말을 흔들리지 않는 사람,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마음을 다잡고, 결심하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그런데 오늘 원문의 뜻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 말은 스스로 단단한 사람이 아니라 기대어 있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었다. 내가 얼마나 굳센가가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무게를 싣고 있는가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의 견고함이라는 것은 늘 얼마 가지 못했다. 결심은 며칠이면 흐려졌고, 다잡은 마음은 어려운 일 하나에 흔들렸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나를 다시 세운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붙들어 주신 손이었다. 나의 작은 노력 위에 하나님이 평강에 평강을 더해 주셨다. 그러니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은혜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스스로 굳세지려 하기보다, 하나님께 내 무게를 실어 놓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루를 살아가길 소망한다.

    中文 AI翻譯

    題目:心志堅定的人

    昨天我們讀的25章歌頌了神為萬民所擺設的筵席。而今天的26章則是猶大地所唱的另一首歌。這首歌是這樣開始的:

    賽26:1 當那日,在猶大地人必唱這歌說:我們有堅固的城,耶和華要將救恩定為城牆、為外郭。

    經文說有一座堅固的城。然而,這城牆是用什麼造成的呢?不是石頭。經文說耶和華的救恩就是城牆和外郭。在以賽亞書22章中,那時耶路撒冷的百姓拆毀房屋,用那些石頭來修補城牆。他們做了一切能做的事。然而他們並沒有仰望神。結果那城牆終究還是倒塌了。但在這裡,神的救恩本身就成了城牆。而且城門敞開,讓那守信的義國得以進入。

    接著經文這樣說:

    賽26:3 堅心倚賴你的,你必保守他十分平安,因為他倚靠你。

    讓我們來看看這裡「心志堅定的人」這句話的含義。原文中翻譯為「心志」的詞是「耶策爾」(yetser)。這個詞是從「塑造、成形」這個動詞衍生出來的名詞,指的是人的思想、傾向與想像。創世記6章說人心裡所思念的一切計謀都是惡的時候,那「所思念的計謀」正是這個詞。也就是說,「耶策爾」指的是我心習慣性運轉的所在,是我靜止不動時自然而然趨向的方向。

    而翻譯為「堅定」的詞是「撒慕克」(samukh)。然而這個詞的意思並不是本身堅硬。它的意思是「被支撐的」、「倚靠著的」、「將重量託付於其上的」。這個詞指的是倚靠著某物而得以支撐的狀態。

    因此,心志堅定的人並不是靠自己堅強的人,而是將自己思想的重量託付於神的人。不是靠自己的力量撐著站立的人,而是因倚靠而不至跌倒的人。經文清楚說明了其中的原因——因為他倚靠主。也就是說,堅定的根據不在於這人自身,而在於他所信靠的對象。

    正因如此,神應許要保守這樣信靠祂的人,十分平安、十分平安。原文中「沙龍」(shalom,平安)這個詞重複出現了兩次,以此加以強調。這個「沙龍」並不僅僅是沒有紛爭的狀態,而是涵蓋了完全、健全與和諧的一個詞。因此這節經文是神向倚靠祂的人所應許的完全而完整的平安。

    接下來的經文顯明了那百姓此刻所站立的位置。

    賽26:8 耶和華啊,我們在你行審判的路上等候你;我們心裡所羨慕的是你的名,就是你那可記念的名。

    經文說是「在行審判的路上」等候。還沒有到達那地步,就在審判正進行的當中信靠並等候神。而第9節則揭示了這審判的目的:耶和華在地上施行審判的時候,世上的居民就學習公義。

    然而到了16至18節,那百姓誠實的告白便浮現出來。

    賽26:18 我們曾懷孕疼痛,所產的竟像風一樣。我們在地上未曾行什麼拯救的事;世上的居民也未曾敗落。

    明明經歷了生產的陣痛,生下來的卻是風。這是一種盡了一切努力,卻什麼也沒有成就的告白。既沒能拯救國家,也沒能救活世界。也就是說,連使命也沒能完成。然而,就在緊接的下一節,神便回應了。

    賽26:19 死人要復活,屍首要興起。睡在塵埃的啊,要醒起歌唱!因你的甘露好像菜蔬上的甘露,地也要交出死人來。

    請把18節和19節並排來看。人說自己雖經歷了生產之苦,卻只生下了風。然而神卻說要使地交出死人來。人所不能生出的,神卻使之誕生。仔細想來,人的無力感表現得最為明顯的地方,就是死亡。無論如何努力,都無法使死人復活。然而神正是在那個地方作工。

    大多數註釋家都認為這節經文是指死人的復活。當然也有學者將此視為描繪被擄之民歸回、國族復興的比喻。

    不過加爾文在這裡又多指出了一點:不要把這復活僅僅局限於末後的日子。在他看來,信徒即使在今生,藉著逃向神,也能在患難之中,甚至在死亡之中得著生命。因此他認為以賽亞在這裡所描繪的,正是基督整個的統治。我們一旦歸屬教會,就開始領受這生命,但要完全享有,則是在末後復活的那一天。因此這應許並非只是遙遠將來的事。這也是對如今只生下了風、頹然坐下之人此刻所賜下的話語。

    而在今天經文的最後,出現了利維坦。

    賽27:1 到那日,耶和華必用他剛硬有力的大刀刑罰鱷魚——就是那快行的蛇,刑罰鱷魚——就是那曲行的蛇,並殺海中的大魚。

    利維坦這個名字在聖經中多次出現。在約伯記中,神向約伯詳述其威嚴的正是這種生物;在詩篇中,也歌頌神打碎了牠的頭。根據學者的研究,這個名字與古代迦南地區神話中的海怪羅坦(Lotan)有關。在那神話中,描述這怪物的用語是「逃竄的蛇」、「曲行的蛇」,與今天經文所使用的詞語相同。那麼這是否意味著以賽亞相信異教神話呢?並非如此。有一位註釋家這樣解釋:正如今日的歷史學家把凶猛好戰的國家稱為「大龍」,並不代表他相信真有龍的存在一樣,這說明以賽亞及其讀者知道那個故事,但並不表示他們相信那故事。

    那麼,這節經文為何被安排在這裡呢?將它與前一節一同來看便能明白。19節中,神使死人復活;而27章1節中,神則除滅混亂的勢力。人無法掌控的事有兩件:一是死亡,二是撼動世界的混亂。然而神卻依次處理了這兩件事。而且在那神話中,眾神要與這怪物艱苦搏鬥才勉強獲勝,但在這裡,耶和華僅用一把刀便將其解決。世人最為懼怕的勢力,在神面前不過是被處理掉的受造物罷了。

    如此看來,這兩節經文正是為從24章延續而來的長篇敘事畫下句點的地方。在大地震動、城邑傾覆、人徒然生風的那段敘事的盡頭,神全然勝過了死亡與混亂。

    默想今天的經文,我再一次思想「心志堅定的人」這句話。其實這句話我聽過很多次,因為這是許多牧者在講道與著作中常引用的經文。而每一次,我都把這句話理解為不動搖的人、不被誘惑打倒的人。因此我也努力想成為那樣的人。收拾心情、下定決心、咬緊牙關不讓自己倒下。然而今天看了原文的意思才明白,那句話指的並不是自身堅硬的人,而是倚靠著的人。問題不在於我有多堅強,而在於我把重量託付給了誰。回想起來,我自己的堅定總是維持不了多久。決心不過幾天就淡了,收拾好的心也會因一件難事而動搖。然而每當那時,重新扶起我的並非我的意志,而是在我跌倒之處再次將我抓住的那隻手。神在我微小的努力之上,加添了平安又平安。因此我能走到今天,靠的不是自己的能力,而是恩典。所以今天,我也盼望不再一味想要靠自己堅強,而是將我的重量託付於神,帶著對神的信靠,度過這一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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