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백성을 일으키지만, 그 은혜는 응답할 책임을 없애지 않기에 헌신한 자는 찬송받고 앉아있던 자는 "어찌 됨이냐" 책망받는다.
神的恩典雖然先興起百姓,但這恩典並不會除去回應的責任,因此獻身的人得著稱讚,而袖手旁觀的人卻要被責問「這是怎麼回事呢」。
사사기 5:2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백성을 일으키지만, 그 은혜는 응답할 책임을 없애지 않기에 헌신한 자는 찬송받고 앉아있던 자는 "어찌 됨이냐" 책망받는다.
神的恩典雖然先興起百姓,但這恩典並不會除去回應的責任,因此獻身的人得著稱讚,而袖手旁觀的人卻要被責問「這是怎麼回事呢」。
사사기 5:2
바락과 야엘을 볼때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성취되지만 우리가 온전한 믿음으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머뭇거리거나 인간적인 안전장치를 곁에 둘 때 주님이 예비하신 더 큰 은혜를 놓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부르실 때 좌고우면하지 않고 순종하는 믿음의 담대함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從巴拉和雅億的事上可以看到,神的作為即使在人的不足中,最終仍會成就;但當我們無法以完全的信心邁出腳步、猶豫不決,或是在旁邊留有人為的安全裝置時,我們可能會錯失主所預備的更大恩典。願我在主呼召的時候,不左顧右盼,懷抱順服的信心與勇氣往前邁進。
하나님을 의지한 바락은 무시무시한 시스라의 철병거를 전멸시켰지만 야엘을 의지한 시스라는 평안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죽음을 맞게되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것도 내게 참 평안을 줄 수 없음을 깊이 묵상합니다. 야엘의 이불속과 같은 안락한 환경과 도울자, 때로는 철병거와 같은 듬직한 무기가 나에게 안정을 가져다 줄것처럼 최선을 다해 갈구하는 내 모습이 얼마나 믿음없고 미련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특히 자녀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보다 안전한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만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며 회개합니다.
依靠神的巴拉,全然殲滅了西西拉那令人畏懼的鐵車軍隊;但依靠雅億的西西拉卻沒有得到平安,反而迎來了死亡。我深深默想,世上任何事物都無法給我真正的平安。像雅億帳篷裡舒適的被窩那樣的安逸環境、幫助者,有時甚至像鐵車那樣可靠的武器,我卻竭盡全力地渴求它們,彷彿它們能帶給我安穩,卻常常沒有察覺這是多麼無信心又愚昧的模樣。特別是我反省並悔改,是否對孩子只談論為了安穩的未來該做什麼,而不是談論對神的信心。
시스라가 도망쳐 찾은 곳은 야엘의 장막이었는데, 그가 기대고 싶었던 평안의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그의 무덤이 되었습니다. 저는 본성으로 돌아가려는 습성때문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안정을 찾으려고 할때가 아직도 많습니다. 그것들에 의지하면 평안을 가져다 줄 것 같지만 나의 영혼을 멸망으로 이끌수 있습니다. 나의 마음을 세상과 환경에 기대지 않고 유일한 피난처 되신 주님께로 돌이키기를 소망합니다.
西西拉逃跑後找到的地方是雅億的帳棚,那是他想要依靠的平安之處。然而,那裡卻成了他的墳墓。 我因著想要回到本性的習性,至今仍常常想在神以外的地方尋求安穩。依靠那些東西看似能帶來平安,卻可能將我的靈魂引向滅亡。 我盼望不將我的心倚靠世界與環境,而是轉向那唯一的避難所——主。
사사로 세워진 건 드보라이고 싸우러 나간 건 바락이고 실제로 시스라를 죽인 사람은 야엘이다. 성별도, 종족도 다른 이들이 하나님 안에서 한 역사를 이루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또 그 일을 위해 여러 사람을 보내어 주신다. 누구는 작은 일밖에 못하니 쓸데없고, 누구는 가장 어려운 일을 끝냈으니 영광스러운 존재인 게 아니다. 다 하나님께서 나보다 먼저 세심하게 계획하고 역사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귀한 지체들이니 서로 용납하고 기도하며 함께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을 기뻐하는 자가 되자.
被立為士師的是底波拉,出去打仗的是巴拉,實際殺死西西拉的則是雅億。性別不同、族群也不同的人,卻在神裡面成就了同一個歷史。主賜給我們使命,也為了那件事差派許多不同的人。並不是誰只能做小事就毫無用處,也不是誰完成了最艱難的工作就顯得多麼榮耀。這一切之所以可能,都是因為神在我們之先,早已細心計劃並在其中做工。每一個人都是主所使用的寶貴肢體,願我們彼此接納、彼此代禱,成為以與人同工、共同成就主的工作為喜樂的人。
시스라가 의지한 화평은 그를 지키지 못했다. 참된 평안은 상황이 아니라 앞서 싸우시는 하나님께 있다.
西西拉所依靠的和平並沒有保護他。真正的平安不在於環境,而在於為我們爭戰在前的神。
사사기 4:17
오늘 말씀의 바락을 보며 많은 것을 느낍니다. 바락은 시스라의 철병거라도 있지 저는 왜 이리 홀로 서는 것이 힘겨운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새 신자 교육도 마쳤지만.. 함께할 사람이 있어야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는 제 믿음을 돌아 보게됩니다.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임을 마음에 새기며, 혼자든 여럿이든 하나님 앞에 힘차게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看到今天話語中的巴拉,讓我感觸良多。巴拉還有西西拉的鐵戰車可以依靠,而我卻不禁自問,為何獨自站立對我來說是如此艱難。雖然已經結束了新信徒教育課程……但我發現自己的信心,總是需要有同伴才能安心邁出腳步,這讓我不得不重新反省。我要銘記在心,其實我並不是獨自一人,而是與神同在的時刻。願我無論是獨自一人,還是與眾人同行,都能勇敢地來到神的面前。
바락이 드보라의 신앙과 확신에 의지했듯이 저도 부모님과 누나의 신앙에 기대어 살았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교회 안에서는 보호막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드보라를 의지했던 바락을 끝내 승리의 자리로 이끄시고 함께 승전가를 부르게 하셨듯 저에게도 나의 하나님으로 제 삶에 찾아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부모 세대의 온전한 신앙의 증언이 되어 아이들에게 살아계신 그들의 하나님을 신실하게 전하는 통로가 되겠습니다.
如同巴拉倚靠底波拉的信心與確信一樣,我也一直倚靠著父母和姊姊的信仰而活。他們的信仰在教會裡有時成為我的保護傘,但有時卻也像一堵巨大的牆一樣讓我感到壓迫。然而,正如神最終引導倚靠底波拉的巴拉走向得勝之地,並使他們一同高唱得勝之歌一樣,我也感謝神親自臨到我的生命中,成為「我的神」。願我能成為上一代完整信仰見證的傳承者,忠實地將那位又真又活的神傳給下一代的孩子們。
바락의 조건부 순종이 마치 내 기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여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종종 위기의 순간을 맞을때면 주님과 거래하듯 조건을 달며 기도했던 기억이 떠으릅니다. 믿음이 약하여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합니다. 결정을 해야하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조금 더 선명한 싸인을 보여주시길 기다리며 주저하곤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인간적인 유불리를 따져보다가 마음에 결정을 못하는 것인데 말이죠. 앞으로는 드보라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선명하게 듣고 즉각 순종할 수 있는 모습으로 거듭나길 간절히 구합니다.
巴拉那有條件的順服,彷彿就是把我的禱告原封不動地搬了過來,讓我心裡感到沉重。每當面對危機時刻,我常常想起自己像在跟主討價還價似地,附加條件來禱告的記憶。我為自己因信心軟弱、無法全然順服的樣子悔改。即使到了必須做決定的時刻,我也常常猶豫不決,等待神給我更明確的記號。但其實,那只是因為我在權衡人性的利害得失,才遲遲無法下定決心而已。今後,我懇切祈求能像底波拉一樣,清楚聽見神的聲音,並立刻順服,成為煥然一新的人。
나는 누구와 함께 가는가? 사람인가 하나님인가? 공동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 또 다른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미래를 알 수 없고 혼자서는 너무 불안하지만 그 마음까지도 주님은 알고 계신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꾸 나의 조건을 붙이지 말자. 말씀은 거래하는 게 아니라 순종하는 것이다. 사람이 없어서 행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있으니 능히 행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자. 주님을 믿으며 담대히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나를 도울 사람들을 보내어 함께 감당케 하실 것이다.
我是與誰同行呢?是人,還是神?並不是說群體不重要,而是群體不能成為順服神話語的另一個條件。雖然無法預知未來,獨自一人也感到非常不安,但主連這樣的心情都知道。不要一直在神的話語面前附加自己的條件。話語不是用來交易的,而是用來順服的。不是因為沒有人所以做不到,而是因為有神,所以要重生成為凡事都能做到的信心之人。當我們相信主、勇敢向前邁進時,神必會差派幫助我的人,讓我們一同承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두려움이 앞서는 바락의 모습에서 저의 연약한 모습을 봅니다. 반면 드보라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한 채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늘 곁에서 이끌어 줄 드보라 같은 믿음의 동역자만을 의지하며 신앙생활을 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내 안에 부족한 부분이 너무나 잘 보여 낙심될 때도 많지만, 매일 조금씩 저를 빚어가시는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게 됩니다. 마음이 두려울지라도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며 담대히 한 걸음 내딛는 드보라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從聽見神的話語卻仍心生畏懼的巴拉身上,我看見了自己軟弱的樣子。相反地,底波拉只單單倚靠神的話語,勇敢地向前邁進。回想起來,我似乎總是仰賴像底波拉這樣在身旁引導我的信仰同工,才走過信仰生活。看見自己內在諸多不足之處時,常常感到灰心,但一想到主每天一點一滴塑造我的恩典,就心存感恩。願我能成為像底波拉那樣的信心之人——即使心裡懼怕,仍然全然信靠主的話語,勇敢地跨出腳步,我懇切地如此禱告。
바락은 말씀만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조건을 붙였지만, 믿음은 보이지 않아도 신실하신 말씀 하나로 발을 내딛는 것임을 본문은 보여준다.
巴拉無法單憑話語就往前邁進,還附加了條件;但本文向我們顯明,信心是即使看不見,也單單憑著信實的話語跨出腳步。
사사기 4:8
오늘 말씀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부르짖자, 에훗을 세우셔서 모압 사람의 손으로부터 구해주십니다. 단신으로 왕 한명을 죽이고, 소 모는 막대로 600명을 죽여 압제로부터 벗어나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때 우리의 능력과 한계를 넘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今天話語中的神,在以色列百姓再次呼求時,興起以笏,將他們從摩押人的手中拯救出來。看到他單槍匹馬殺死一位王,並用趕牛的棍子擊殺六百人,使百姓脫離壓制,讓我體會到:當我們被神使用作為祂的工具時,神會超越我們的能力與極限,成就令人驚嘆的事。讚美全能的神。
작게 묘사되는 에훗은 그 왼손으로 쓰임을 받았고 에훗에 이어 등장하는 삼갈은 소모는 막대기를 들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쓰임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넉넉하게 갖추어진 자원이나 완벽한 형편, 또는 큰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묵상합니다. 일상의 작은 도구라도 주님 손에 온전히 붙들릴 때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습니다. 오늘 제게 허락해주신 자리에서 주님께 쓰임을 받는 청지기의 하루를 살겠습니다.
被形容為渺小的以笏,靠著他的左手被神使用;緊接以笏之後登場的珊迦,則拿著趕牛的棍子,在神拯救的作為中被使用。默想神的工作並非源於充足齊備的資源、完美的環境,或是強大的能力。即使是日常生活中微小的工具,只要完全被主的手掌握,也能被神使用成就祂的事工。今天,我要在主所賜給我的位置上,過一個被主使用的管家般的一天。
옷니엘이 죽자마자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 앞에 범죄합니다. 하나님이 다시 에훗을 세우시고 다시 이스라엘은 범죄하고 다시 삼갈을 세우시고…이 반복되는 사사기가 마치 나의 인생과도 같습니다. 구원받은 지녀로 거룩하게 서 있어야 하지만 날마다 죄악 가운데 씨름하며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주로 마음 중심의 생각 가운데 있는 죄악이라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기에 스스로도 모르고 넘길때가 많은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심을 보시는 주님은 다 이시기에 더욱 깨어있길 간구합니다. 오늘도 정결하게 하시는 그분앞에 서 있길 기도합니다.
俄陀聶一死,以色列人立刻又在神面前犯罪。神再次興起以笏,以色列人又犯罪,神又興起珊迦……士師記中這不斷重複的循環,就好像是我的人生一樣。雖然身為得救的兒女應當聖潔地站立,但我卻發現自己天天都在罪惡中掙扎,反覆跌倒。 大多是內心深處的罪惡,因為不會表現在外表上,所以常常連自己都不知不覺地就這樣放過了。但鑒察人心的主全都知道,所以我祈求能更加儆醒。今天也祈願能站立在那位使人潔淨的主面前。
지금도 여전히 오른손잡이가 많다. 하지만 에훗은 왼손잡이였고 그 점을 이용해 에글론을 죽였다. 또 세상의 상식으론 전쟁은 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삼갈은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을 죽였다. 하나님은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하고 계신다. 남들과 다른 점이, 세상의 상식에 맞지 않는 점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세상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위축되지 말고 각 사람에게 다른 은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내 생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고 다름조차 사용하시는 주님을 찬양하자.
現在也仍然是右撇子居多。但以笏卻是左撇子,並利用這一點殺了伊磯倫。而且照世上的常理,戰爭理當用刀劍來打。然而珊迦卻用趕牛的棍子殺了非利士人。神正以我無法想像的方式在做工。與他人不同、不符合世上常理的地方,絲毫不會成為做神工作的絆腳石。不要因為不符合世上的標準而畏縮退卻,反而要感謝賜給每個人不同恩賜的神。不要用自己的想法限制神的能力,而要讚美那位連「不同」都能使用的主。
하나님은 완벽한 조건의 사람이 아니라 그분의 손에 붙들린 사람을 사용해 일하십니다. 승리 앞에서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 에훗의 모습처럼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내 삶의 작은 성취나 일들을 마주할 때도 내 노력과 능력만을 의지하지않고, 모든 것을 계획하고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임을 기억하며 감사하는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온전히 인정할 때 부어주시는 진정한 평안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神使用的並非條件完美的人,而是被祂親手掌握的人來成就工作。我願效法以笏的榜樣,在勝利面前不誇耀自己的功勞,將一切榮耀都歸給神。即使面對生活中微小的成就或大小事情時,也不單單依靠自己的努力與能力,而要謹記那位計劃並引導一切的是神,並且不忘心存感謝。我相信,當我懷著謙卑的心完全承認主的時候,必能享受祂所賜下的真正平安。
에훗은 홀로 승리했으나 그 공을 자기 이름이 아닌 "여호와께서 넘겨 주셨다"는 고백으로 돌렸고, 그 순종의 자리에 팔십 년 평온이 임했다.
以笏獨自得勝,卻沒有把功勞歸給自己的名,而是以「耶和華已將他們交在我們手中」的告白將榮耀歸給神;在那順服之地,便有了八十年的太平。
사사기 3:28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민족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고, 결국 그들과 섞여 살며 그들의 신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시험하시고, 전쟁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려 했습니다. 우상을 섬긴 결과 종이 되는 고통을 겪게 하셨지만,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자 사사를 보내셔서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자 하지만, 제 안에는 아직 옛 마음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거룩한 주일, 주님의 전에 나아가 주님만을 바라보기 소망합니다.
以色列百姓沒有完全趕出迦南民族,結果與他們雜居,並事奉他們的神明。神試驗以色列,想要教導他們爭戰的方法。因為敬拜偶像的緣故,讓他們經歷了成為奴僕的痛苦,但當百姓向神呼求時,神就差遣士師來拯救他們。「我真的是以神的百姓身分生活著嗎?」我不禁這樣想。雖然渴望以神的百姓身分生活,但我裡面似乎仍殘留著許多舊有的心思。願在這聖潔的主日,來到主的殿中,只單單仰望主。
나에게 다가오는 어려움은 넘어짐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자리이다. 하나님은 나의 연약함조차 하나님께 돌아오게 할 도구로 사용하신다.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허락하신 시험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그 결과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내가 주님을 잊을 때도 주님은 나를 잊지 않으신다. 나는 넘어지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어쩌면 오늘도 답답하고 화나는 상황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때도 주님을 바라보자. 마음의 어려움을 내려놓고 주님의 마음을 구하며 주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臨到我的困難,不是跌倒的地方,而是使我仰望神的地方。神甚至使用我的軟弱,作為使我歸向祂的工具。在神允許的試探中,若是為了不讓我忘記神,而我卻忘了神,那麼結果就必須由我自己承擔。然而,即使我忘記主,主也不會忘記我。我雖然跌倒,但靠著神的幫助能夠再次站起來。也許今天也會遇到令人鬱悶、生氣的情況。但即使在那樣的時刻,也讓我們仰望主。願我們放下心中的重擔,尋求主的心意,靠著主的幫助,成為得勝的一天。
이스라엘은 삶이 평안해지자 여호와를 잊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삶이 비교적 평탄하고 문제가 없을때 영적으로 느슨해지기 쉽습니다. 매일의 일상속에서 묵상, 성경읽기, 기도, 감사하기를 매일 실천하며 편안함이 영적무관심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야겠습니다.
以色列在生活安逸之後便忘記了耶和華,去事奉巴力和亞舍拉。當生活比較平順、沒有難處的時候,我們很容易在靈裡鬆懈下來。我要在每天的日常生活中持續實踐默想、讀經、禱告與感恩,堅定心志,不讓安逸演變成屬靈上的冷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백성들은 결국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가나안을 쫒아내지 못한 대가를 대대 후손에까지 죄악으로 물들임을 봅니다. 내 안의 바알과 아세라가 무엇이었는지 묵상해 봅니다. 결국 내가 끊어내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했던 양심의 문제들, 물질과 건강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며 살아오지 않았는지 회개합니다. 자녀에게 신앙의 본을 보이지 못했던 삶이 앞으로 다가올 자녀의 미래에 안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하고 하나님 앞에서 순결한 모습으로 서 있길 기도합니다.
我看見不事奉神的百姓,最終事奉了巴力和亞舍拉,而未能趕出迦南人的代價,竟使罪惡浸染到世世代代的子孫身上。我默想著自己心中的巴力和亞舍拉究竟是什麼。我悔改自己那些始終無法斬斷、總是妥協將就的良心問題,悔改自己是否活在比起神更信賴財物與健康的生活中。我禱告求主幫助我,不要讓自己未能在信仰上為子女立下榜樣的生命,對將來子女的未來帶來不好的影響,願我能更加謹慎,在神面前站立成為純潔的樣式。
우상을 섬긴 결과는 종살이였고 여호와께 돌아온 자리엔 평온이 있었다. 여호와를 섬김은 자유를 뺏는 종살이가 아니라 모든 종살이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事奉偶像的結果是為奴,回到耶和華面前的地方卻有平安。事奉耶和華並非奪走自由的奴役,而是脫離一切奴役的唯一道路。
사사기 3:7-8
오늘 말씀의 이스라엘 민족은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렸습니다. 배신한 백성이 신음하자, 하나님은 귀 기울여 주시고 구해 주셨습니다. 사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느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저를 붙잡아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今天話語中的以色列民族崇拜偶像,背棄了神。背叛的百姓發出呻吟時,神側耳傾聽並拯救了他們,差派士師前來。從今天的話語中,我感受到神浩大的憐憫。祈求慈愛的神緊緊抓住我。
이스라엘은 주를 떠났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기다리신다. 그들은 우상을 섬기지만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위해서도 사사를 세우신다. 하나님이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나를 붙들어주시고 구원해주시고 기다리신다는 게 얼마나 큰 은혜이고 사랑인가. 세상엔 나의 마음을 빼앗는 것이 너무나 많다. 심지어 그게 내 바알인지도 모른채 나는 하나님만 섬기고 있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나도 알지 못했던 바알을 깨닫고 몰아내도록 기도하자. 찬양의 고백처럼 우린 돌아서도 변치 않으시는 여호와께, 우린 넘어져도 영원하신 사랑의 하나님께 돌아가자.
以色列離開了主,但神仍在等待他們。他們雖然事奉偶像,神卻仍為他們興起士師。神扶持一再跌倒的我、拯救我、並且等待我,這是何等大的恩典和愛啊。世上有太多東西會奪去我的心。甚至有時候,我不知道那就是我的巴力,還誤以為自己只單單事奉神。讓我們禱告,求神讓我們察覺並趕走那連自己都不知道的巴力。如同讚美詩的告白一樣,讓我們回到那位即使我們轉身離開也永不改變的耶和華那裡,回到那位即使我們跌倒也有永恆之愛的神那裡。
이스라엘은 필요에 따라 바알과 아스다롯을 하나님 곁에 두었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우상으로 향했습니다. 이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예배와 기도를 드리지만, 제 삶의 중심에는 주님보다 가족의 안정과 자녀가 잘되는 것을 더 높이 두었습니다. 주님을 알아가기보다 세상에서의 안위와 가족들의 잘되기를 원해 하나님을 도구로 삼아온 것은 아닌지 회개합니다. 제 마음의 중심을 온전히 주님께 두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가정이 이곳에서 주님과 날마다 동행하며 쓰임 받을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以色列按照自己的需要,把巴力和亞斯她錄放在神的身邊,背棄了施憐憫的神的恩典,轉向偶像。這樣的景象並不陌生。雖然我獻上敬拜和禱告,但在我生命的中心,卻把家人的平安與兒女的順利看得比主更重要。我懺悔,自己是否為了追求世上的安逸與家人的順遂,而不是真正認識主,把神當作了達成目的的工具。我盼望能將心的中心完全獻給主。願我們一家在這裡,能夠天天與主同行,被主所使用,我如此禱告。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며 하나님 앞에서 범죄합니다. 그들의 유익을 위해 몰아내지 않은 가나안이 결국 하나님을 가장 진노하시게 하는 우상숭배로 이어진것입니다. 약탈과 고통 가운데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이러한 반복적인 죄악은 진정한 돌이킴이 있는 회개가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지나온 나의 삶을 돌아볼때 본문의 아스라엘과 너무 닮아 있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긴다고 하면서 동시에 다른 수많은 우상숭배를 해왔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완전하게 돌이킬 수 있도록 그분의 은혜를 간절히 구합니다.
以色列事奉巴力和亞斯她錄,在神面前犯罪。為了他們自己的利益而沒有趕出的迦南人,最終導致了最令神發怒的拜偶像行為。在掠奪與痛苦之中,他們再次向神呼求,但也僅止於當下而已。這種反覆的罪惡顯明了他們並沒有真正悔改、真正回轉的心。 回顧自己走過的人生,發現自己竟與經文中的以色列如此相似。腦海中浮現出自己一邊說著敬拜、事奉神,一邊卻同時做著無數拜偶像之事的模樣。如今,我懇切祈求祂的恩典,使我能夠完全地回轉歸向祂。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버린 적 없다 생각했지만 그 옆에 바알을 두었을 뿐이었고, 하나님은 그것을 배신으로 여기신다. 오늘 나도 하나님 옆에 무엇을 나란히 두었는지 돌아본다.
以色列以為自己從未離棄耶和華,卻只是把巴力擺在祂旁邊,而神視此為背叛。今天我也反省,自己在神的旁邊放了什麼。
사사기 2:11-23
단 한 세대 만에 구원을 경험한 세대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로 전락해 버린 비극 앞에 책임감을 느낍니다. 신앙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로 계승되지 않습니다. 부모 세대인 우리가 일상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지 못하고 구별된 거룩함 대신 세상의 타협과 요령을 따르는 모습을 보인다면 다음 세대는 하나님을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만날 수 없습니다. 관념과 형식에 머무는 신앙을 버리고 내 삶의 구체적인 자리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언하는 신실한 믿음의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面對僅僅一個世代之間,經歷過救恩的世代竟淪為完全不認識神的另一個世代,這樣的悲劇,我深感責任重大。信仰的傳承並非單靠知識的傳遞就能完成。身為父母世代的我們,若在日常生活中無法信靠神的主權,反而追隨世俗的妥協與手段,而非活出分別為聖的聖潔,下一代就無法在頭腦與心靈中真實地遇見神。願我能拋棄僅止於觀念與形式的信仰,成為在生活中具體的處境裡,見證神真實同在的信實信仰管道,我懇切地如此禱告。
하나님의 사자가 결국 오셔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찌하여 너희가 그와 같이 하였느냐?' 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소리 높여 울고, 보김에서 여호와께 희생 제물을 바칩니다. 이 모습에서 저를 엿보는 것 같습니다. 어떤 언행 뒤에 오는 불편함이 하나님의 말씀, 가르침과 맞지 않아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제 생각과 기준에 맞지 않아서 오는 것인지 잘 구분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의 회개가 마음 속 불편함을 덜어내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 돌이켜 제 생각과 언행을 다시 조정하는 돌이킴이 되길 소망합니다.
神的使者最終降臨,對以色列民說:「你們為何這樣行呢?」以色列百姓放聲大哭,在波金向耶和華獻上祭物。看到這個景象,我彷彿看見了自己的影子。我想我需要好好分辨清楚:某些言行之後所產生的不安,究竟是因為與神的話語、教導不符而來的,還是僅僅因為不合我自己的想法和標準而來的。我盼望我的悔改,不是為了減輕心中的不安,而是能夠在話語面前真正回轉,重新調整自己的想法與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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