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고린도전서 9:1-23
今日默想:哥林多前書 9:1-23
어제 묵상한 8장에서 바울은 강한 자에게, 약한 자를 위해 네 자유를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9장은 바로 그 자신의 주장에 대한 예화이고 대답이다. 그래 바울은 자기가 가르친 것을 자기 삶으로 증명한다.
바울에게는 분명한 권리가 있었다. 사도로서 먹고 마실 권리, 함께 사역하는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 교회의 부양을 받을 권리. 사실 이것은 그가 억지로 우겨서 만든 권리가 아니다. 다른 사도들도, 게바도 다 누리던 권리였고, 무엇보다 주께서 친히 "복음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살라"고 명하신 권리였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인정하신 정당한 권리다. 그런데 바울은 그것을 쓰지 않았다.
왜? 첫째 이유는 분명하다. 복음에 장애가 될까 봐 그랬다. 누군가는 '저 사람도 결국 돈 때문에 전하는구나'라고 하는 의심을 할 수 있다. 그 작은 의심 하나가 복음의 길을 가로막을 수 있다. 바울은 그 가능성조차 끊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더 깊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로는 자랑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왜 자랑할 게 없겠는가? 그런데 그 일이 부득불, 즉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자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 바울은 알고 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그를 붙드셨고,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임할 만큼 그를 몰아가셨다. 그러니 그가 한 사역은 그의 공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끄신 것이고, 자신이 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값없이 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고전 9: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그래 이게 핵심이다. 부득불 해야 하는 일 위에, 그가 자유롭게 더 얹어 드린 것. 그것이 권리를 내려놓는 일이었다. 받을 수 있는데 받지 않는 것. 누릴 수 있는데 누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오히려 그 길이 바로 자신의 상이었다고 고백을 한다. 왜 그랬을까?
고전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그래 그의 상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려야 하는 그 모든 권리보다 더 큰 상... 바로 영혼을 얻는 상이다. 그렇기에 바울의 권리에 대한 포기와 낮아짐에는 목적이 있던 것이다. 바로 사명이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한다. 그런데 그 분이 가신 길은 십자가의 길이다. 모든 권리를 가지신 분,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 그 권리를 움켜쥐지 않고 종의 형체로 자기를 비우신 분을 증거한다. 그렇기에 바울은 그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먼저 가신 그 길을 따라간 것뿐이다. 그렇기에 권리를 내려놓는 그 자리, 거기에 십자가가 있다.
사실 나도 항상 이 원리로 달려왔다고 말해 왔다. 그런데 오늘 정직하게 묻는다. 정말 그랬을까? 혹시 나는 누군가에게 내 권리를 주장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내가 옳으니 내 말이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내가 이만큼 수고했으니 이 정도 대우는 당연하다고, 마음 깊은 곳에서 그렇게 셈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입으로는 내려놓는다 하면서, 손으로는 여전히 움켜쥐고 있지는 않았는가? 그래서 오늘 본문 앞에서 나의 모습이 솔직히 부끄럽다. '권리를 내려놓는다'는 그 말조차 어느새 또 하나의 내 자랑이 되어 있었는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나의 삶을 다시 점검한다. 그리고 다시 십자가를 본다. 그리고 나는 내 입술로 전하는 것을 내 삶으로 실천하고 있는지를 점검한다. 그래서 오늘도 내 손에 쥔 권리를 펴서 다시 내려놓고, 십자가의 낮아짐을 따라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을 섬기며 나아가길 소망한다.
昨日默想第8章時,保羅對那些「剛強的人」說:要為軟弱的人放下你的自由。而第9章,正是他為自己這番主張所舉的例證與回應。保羅用自己的生命,印證了他所教導的真理。
保羅擁有明確的權利:作為使徒,他有吃喝的權利,有帶著同工的妻子同行的權利,也有接受教會供養的權利。這並非他強詞奪理、自行主張的權利,而是其他使徒、包括磯法都在享用的權利;更重要的是,這是主親自吩咐的權利——「傳福音的,靠著福音養生」。這是神所認可的正當權利。然而,保羅卻選擇不用。
為什麼?第一個理由十分清楚:怕成為福音的攔阻。有人可能會懷疑:「這個人傳道,不過也是為了錢吧。」就是這樣一個小小的疑惑,便可能攔截福音前行的道路。保羅要將這種可能性徹底斬斷。
然而,還有更深的理由。保羅認為,單單傳福音這件事本身,並沒有什麼可誇的。
林前 9:16 我傳福音原沒有可誇的,因為我是不得已的。若不傳福音,我便有禍了。
為何沒有可誇的?正因為這是「不得已」——非做不可的事,所以無從誇口。保羅深知:神握住了他,為的就是這件事;若不傳道,禍患便要臨到——神就是這樣催逼著他。因此,他所做的事工並非他自己的功勞,而是神引領他、也是他為了自己得以存活而必須走的路。所以保羅是「白白地傳」。他如此說道:
林前 9:18 既是這樣,我的賞賜是甚麼呢?就是我傳福音的時候,叫人不花錢得福音,免得用盡我傳福音的權柄。
這正是核心所在。在那「不得已」必須做的事之上,他自由地額外獻上的——就是放下權利。能接受卻不接受,能享用卻不享用。而保羅反倒坦言,這條路正是他自己的賞賜。這是為什麼?
林前 9:19 我雖然對眾人是自由的,卻甘心作了眾人的僕人,為要多得人。
因為他有另一份更大的賞賜。比他所應得的一切權利都更珍貴的賞賜——就是贏得靈魂的賞賜。正因如此,保羅放棄權利、甘願降卑,是有其目的的,那就是使命。
保羅向人見證耶穌。而主所走的路,是十字架的路。保羅所見證的這一位,是擁有一切權利的那一位、與神同等的那一位,卻沒有強奪這權利,反而取了僕人的形象,倒空了自己。因此,保羅所走的,正是跟隨那條十字架的路——只不過是跟隨耶穌已先走過的那條路而已。所以,在放下權利的那個地方,十字架就在那裡。
其實,我也一直說自己是按著這個原則奔跑的。但今天,我誠實地問自己:真的是這樣嗎?我是否曾向某人主張過自己的權利?在內心深處,是否曾這樣盤算:「我是對的,所以我的話應該被接納」;「我付出了這麼多,受到這樣的對待是理所當然的」?是否口中說著放下,手卻仍緊緊握住?站在今日這段經文面前,我坦白地說,我為自己的樣子感到慚愧。因為我突然意識到,「放下權利」這句話本身,或許早已不知不覺地成了我另一種自誇。
所以今天,我要重新審視自己的生命,再次仰望十字架,也再次省察:我是否正以自己的生命,活出我口中所傳的信息。願我今天再次攤開緊握著權利的手,放下它,跟隨十字架的降卑,去服事我們群體中的每一位肢體,繼續前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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