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고린도전서 10:14-11:1
今日默想:哥林多前書 10:14–11:1
오늘 본문은 8장부터 다룬 그리스도인이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먹어도 되는가? 신전에서 열리는 잔치에 가도 되는가? 시장에 나온 그 고기는 또 어떤가? 라는 질문에 대해 마침내 결론을 내리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결론이 묘하다. 바울은 한편으로는 "피하라"고 단호하게 못 박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먹어도 된다"고 자유를 활짝 열어 준다. 마치 모순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단락을 읽을 때 우리는 두 축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 하나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것이고(14-22절), 다른 하나는 사랑 안에서 누리는 자유다(23절-11:1).
고전 10: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먼저 첫째 축, 타협할 수 없는 것, 그것은 바울은 신전 잔치에 들어가 우상 앞에서 먹는 일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한다. 사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8장에서 분명히 말했었다. 그래 우상이 표상하는 그 '신'은 실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예배 행위 뒤에는 실재하는 영적 어둠, 곧 귀신이 있다. 그래서 신전에서 제물을 먹는 것은 단순히 고기를 씹는 일이 아니라 그 어둠에 참여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고전 10: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두 상에 동시에 앉지 말라고 명한다. 주의 상에 앉은 사람이 귀신의 상에 함께 발을 걸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엔 흥정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둘째 축은 사뭇 느낌이 다르다.
고전 10: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시장에서 파는 고기는 그냥 사서 먹으라고 한다. 양심을 위해 묻지도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땅에 속한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음식 자체는 더럽지 않다. 불신자 친구가 차려 준 밥상도 그냥 먹으면 된다. 다만 누군가 "이건 제사 음식이야" 하고 굳이 알려 주면, 그때는 그 사람의 양심을 위해 내려놓으라고 한다. 내 자유보다 그의 영혼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래, 자유는 있되 사랑이 그 자유를 다스린다. 그렇다면 이 두 축, 절대 안 되는 것과 마음껏 누려도 되는 것은 어떻게 하나로 묶이는가? 바울의 대답은 한 구절에 다 들어 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것이 열쇠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진리에는 단호해야 한다. 타협할 수 없다. 그러나 이웃을 섬기는 일에는 유연하다. 그런데 그 단호함도 그 유연함도 결국 한 곳을 향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 그래서 바울은 마지막에 자기 자신을 본으로 내민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같이 나를 본받으라고(11:1). 그만큼 자신의 삶의 기준이 명확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이 두 가지를 구별하는 일이 참 어렵다. 어떤 때는 너무 엄격해서, 하나님이 자유롭게 열어 두신 것을 내가 율법으로 묶어 지체들의 양심을 짓누르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너무 느슨해서, 공동체가 결코 허락해서는 안 되는 것을 슬그머니 눈감아 주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 무엇을 끝까지 지켜야 하고 무엇을 사랑으로 내려놓아야 하는지, 그 경계를 분별하는 지혜가 내겐 늘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히 사도바울처럼 나를 본받으라 말할 수는 없다.
아마 우리 공동체의 많은 지체들도 비슷할 것이다. 이 땅 대만에서 가족과 이웃의 拜拜 문화 한가운데를 매일 살아간다. 가족의 제사상 앞에서, 명절 차례 자리에서, 직장 회식과 술자리에서, 믿지 않는 식구와의 신앙 차이 앞에서,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서부터가 타협인지 그 질문 앞에 선다. 그래서 나는 소망한다. 우리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 곧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진리를 아는 일만은 굳게 붙들면서, 그 외의 자리에서는 서로를 향해 사랑으로 섬기는 자유를 누릴 수 있길... 그래서 오늘도 그 분별의 지혜를 구하며,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 하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나와 우리 공동체가 되길 기도한다.
今天的經文,是從第八章延伸而來的一系列問題的最終結論——基督徒可以吃祭過偶像的肉嗎?可以參加神廟裡舉行的宴席嗎?那些在市場上販賣的肉又該怎麼辦?然而,這個結論卻耐人尋味。保羅一方面斬釘截鐵地說「要逃避」,另一方面卻又大方地說「可以吃」,為人敞開自由之門。乍看之下,似乎自相矛盾。因此,讀這段經文時,我們必須同時把握兩條軸線:一條是絕對不能妥協的事(14–22節),另一條是在愛中所享有的自由(23節–11:1)。
哥林多前書 10:14 我所親愛的人哪,你們要逃避拜偶像的事。
首先是第一條軸線——絕對不能妥協的事。保羅明確指出,進入神廟、在偶像面前吃祭物,是絕對不允許的。誠然,在第八章他已清楚說明,偶像本身算不得什麼,偶像所代表的「神」並不真實存在。然而,在那拜祭的行為背後,卻有著真實存在的屬靈黑暗,就是鬼魔。因此,在神廟中吃祭物,並非單純地吃一塊肉,而是在參與那黑暗的力量。所以保羅說:
哥林多前書 10:21 你們不能喝主的杯,又喝鬼的杯;不能吃主的筵席,又吃鬼的筵席。
他命令我們,不可同時坐在兩張桌子旁。坐在主的桌旁之人,不能腳踏兩條船,也涉足鬼的桌旁。在這件事上,沒有任何討價還價的餘地。
然而,第二條軸線的氛圍卻截然不同。
哥林多前書 10:25 凡市上所賣的,你們只管吃,不要為良心的緣故問什麼。
保羅說,市場上賣的肉,只管買來吃,不必為良心的緣故追問來歷。原因是地上所有的一切都屬於主。食物本身並不污穢。就連不信主的朋友為你擺上的飯桌,也可以坦然享用。只是,若有人特意告知「這是祭拜過的食物」,那時,就要為那人的良心著想而放棄自己的權利。因為他的靈魂比我的自由更重要。是的,自由是有的,但愛要駕馭這份自由。
那麼,這兩條軸線——絕對禁止之事與可以盡情享有之事——如何合而為一?保羅的回答,盡在一節經文之中:
哥林多前書 10:31 所以,你們或吃或喝,無論做什麼,都要為榮耀神而行。
這就是關鍵所在。在事奉神、堅守真理上,必須剛強不妥協;在事奉鄰舍上,則要靈活變通。然而,那份剛強與那份靈活,終究指向同一個方向——為了神的榮耀。因此保羅最後以自己為榜樣,說:「你們該效法我,像我效法基督一樣」(11:1)。這說明他生命的準則是何等清晰明確。
說實話,我深感分辨這兩者之難。有時,我過於嚴格,擔心自己是否把神本已賜下的自由,反而以律法捆綁,壓制了弟兄姊妹的良心;有時,我又過於寬鬆,擔心是否對群體中絕不該容許之事睜一隻眼閉一隻眼。我始終感到,分辨何事當持守到底、何事當以愛放手——這樣的智慧,在我身上實在不足。因此,我實在不敢像使徒保羅那樣說「你們該效法我」。
或許,我們群體中許多肢體也有同感。我們每天活在台灣這片土地上,生活在家人與鄰居的拜拜文化之中。面對家人的祭桌、節日的祭祀場合、職場聚餐與飯局,面對與不信主的家人之間的信仰差異——我們不斷叩問:哪裡是愛的界線,哪裡又是妥協的起點?因此,我有一個盼望:願我們能緊緊抓住那絕對不能讓步的一件事——就是向神的敬拜與對真理的認識;同時,在其他的場合中,彼此以愛相待,享有那服事人的自由。所以,今天我仍要求那分辨的智慧,並為自己與我們的群體禱告:無論吃喝,無論做什麼,都單單仰望神的榮耀,一往直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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