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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고린도전서 9:24–10:13

    今日默想:哥林多前書 9:24–10:13

    Kyoung Woo Han··조회 29

    오늘 본문은 9장 끝에서는 운동선수가 달리고 권투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10장으로 넘어가면 갑자기 광야의 이스라엘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둘은 하나로 이어진다. 그 의미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의 앞뒤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본문 앞뒤를 살펴 보면, 8장에서 바울은 지식 있는 '강한 자'들에게, 양심이 약한 형제를 위해 우상 제물을 먹을 자유를 내려놓으라고 했다. 9장에서는 바울 자신이 그 본보기가 되어, 사도로서 받을 권리조차 스스로 포기한 이야기를 길게 했다. 그리고 9장 끝에 가서 그 자발적 절제를 운동선수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이다. 경기에서 이기려는 선수가 먹고 자는 것까지 모든 것을 절제하듯, 신자의 자유도 절제 없이는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도 몸을 쳐 복종시킨다고 말한다. 왜? 남에게 복음을 전한 자기가 도리어 실격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9:27).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전하는 자라고 안전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절제하지 않고 자유만 마음껏 누리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에 대한 대답이 바로 10장에서 보여준 광야 세대의 모습이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특권이 없어서 망한 게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들은 다 구름의 인도를 받았고, 다 바다를 건넜고, 다 같은 만나를 먹고 같은 반석의 물을 마셨다. 받을 건 다 받았다. 그런데도 그 특권을 믿고 방심하다가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흘러가 광야에 쓰러졌던 것이다. 이건 옛날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세례 받았고 예배드리니 이쯤은 괜찮다'고 여기던 사람들을 향한 거울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경고한다.

    고전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섰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선 것은 다르다. 자기 확신 그 자체가 위험하다. 그래서 바울이 강조하려는 것은 내가 받은 특권이 있다고 방종하지 말고, 깨어 근신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 무거운 경고를 절망으로 끝내지 않는다. 바로 뒤에, 숨 돌릴 틈처럼 위로를 둔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게 있다. '피할 길'은 시험이 사라지는 출구가 아니다. 본문은 그 길을 두고 '능히 감당하게' 하는 길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니까 시험 밖으로 도망치는 문이 아니라, 그 시험 한가운데를 끝까지 통과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 그리고 그 힘은 내 의지가 아니라 '미쁘신', 곧 신실하신 하나님에게서 온다. 즉 내가 스스로 시험을 견디는 게 아니라, 미쁘신 분이 감당할 수 있게, 견딜 수 있게 도우신다고 하신다.

    그리고 바울은 곧바로 이어서 말한다. "그런즉…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10:14). 그러니까 하나님이 내시는 '피할 길'은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길이 아니다. 시험의 자리에서 단호히 돌아서는 발걸음으로 이어진다. 그분의 미쁘심을 신뢰하는 것과, 그 미쁘심이 낸 길로 한 걸음 떼는 것은 결국 하나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스스로를 돌아 본다. 특히 나의 기도를 반성한다. 나는 자주 하나님께 시험을 없애 달라고 기도했다. 사역의 무게가 버거울 때, 그냥 이 자리에서 좀 빼내 달라고... 강단에서 성도들에게 견디라고 말하는 내가, 정작 견딜 힘이 바닥날 때가 있다. 솔직히 그렇다. 그런데 그때마다 나를 붙든 건 내 각오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그 상황에서 빠져나갈 문이 아니라, 그 자리를 통과할 힘이었다. 그 하나님을 오늘도 신뢰한다. 그러니 이 한 주간도 미쁘신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붙들고, 같은 자리에 선 우리 공동체 지체들과 함께 견디며 나아갈 수 있길 기도한다.

    中文 AI翻譯

    今天的經文,在第九章末尾出現了運動員賽跑與拳擊的比喻,進入第十章後,筆鋒一轉,突然出現了曠野中的以色列人。然而,這兩段其實是一脈相連的。要真正理解其中的意義,必須掌握前後文的脈絡。

    縱觀前後文,在第八章,保羅對那些有知識的「強壯者」說:為了良心軟弱的弟兄,要放下吃祭偶像之物的自由。第九章,保羅以自身為榜樣,詳述了他如何連身為使徒本可享有的權利也甘願放棄。到了第九章末尾,他以運動員來比喻這種自願的節制——正如一心求勝的選手連飲食睡眠都加以節制,信徒的自由若沒有節制,也難以守住。因此,保羅說他攻克己身,叫身服我。為什麼?因為他懼怕自己傳福音給別人,自己反而被棄絕(9:27)。保羅要說的是:傳道之人並非就此高枕無憂。

    然而,若不加節制、只顧盡情享用自由,將會如何?第十章所呈現的曠野世代,正是對這個問題的回答。有一點必須說清楚:曠野中的以色列人並非因為缺乏恩典而滅亡,恰恰相反。他們都在雲柱的引領下行走,都過了紅海,都吃了同樣的嗎哪,都喝了同樣從磐石流出的水。該得的都得了。然而,他們仗著這些特權而鬆懈,最終陷入拜偶像與淫亂,倒斃在曠野之中。這不是遙遠的古人故事,而是一面鏡子——照向那些心想「我們已受洗、也參與敬拜,這點小事沒關係」的人。

    因此,保羅發出警告:

    哥林多前書 10:12 所以,自己以為站得穩的,須要謹慎,免得跌倒。

    「以為」站立,與實際上站立,是兩回事。自我確信本身,就是一種危險。保羅要強調的是:不要因為所蒙受的特權而放縱,要儆醒謹守。然而,保羅並沒有讓這沉重的警告以絕望作結。緊接其後,他像是留下一處喘息的空間,給予了安慰:

    哥林多前書 10:13 你們所遇見的試探,無非是人所能受的。神是信實的,必不叫你們受試探過於所能受的;在受試探的時候,總要給你們開一條出路,叫你們能以忍受。

    然而,這裡有一個容易產生的誤解。「出路」並非試探就此消失的出口。經文說,那條路是使人「能以忍受」的路。換句話說,那不是逃離試探的門,而是讓人能夠從試探當中一路走到底、得以通過的路。是的,就是這樣。而那力量不是來自我自己的意志,而是來自那位「信實的」神。也就是說,不是我憑自己的力量忍耐試探,而是那位信實的神幫助我們,使我們能夠承擔、得以支撐。

    緊接著,保羅說:「所以……你們要逃避拜偶像的事」(10:14)。由此可見,神所開的「出路」,不是讓人安坐等候的路,而是引向從試探之處毅然轉身的腳步。信靠祂的信實,與循著那信實所開的路邁出第一步,到頭來本是同一件事。

    默想今天的經文,我回頭審視自己,尤其是反省自己的禱告。我常常求神除去試探。當事工的重擔難以承負時,我會祈求祂讓我從那處境中脫身……在講台上勸勉會眾要忍耐的我,自己有時也會力竭到底。坦白說,確實如此。然而,每當那樣的時刻,托住我的不是我自己的決心,而是神所賜下的恩典。而神所賜的恩典,不是讓我從那處境中脫逃的門,而是使我得以穿越那處境的力量。今天,我仍然信靠這位神。因此,願我們在這一週,緊緊抓住信實之神所開的路,與站在同一處境中的肢體們,一同忍耐、一同前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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