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여러 증인들처럼 직접 보지 못했으나 그것이 믿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미 오래 전에 약속하신 말씀을 예수님을 통해 이루시고 또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나도 주님의 일에 함께 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 또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하자.
부활하신 주님이 있기에 오늘도 소망을 갖고 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없다면 내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을것을 압니다. 복음의 진리와 핵심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합니다. 하지만 이제것 나의 삶은 복음을 믿고 구원 받은것에 만족하며 전하는 삶에는 소극적이고 게을렀음을 반성하고 회개합니다.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애써 전하지 못함을 합리화 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런 태도가 익숙함이 되어 부담조차 느끼지 않는 삶이 되어 있음에 회개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말씀을 보며 제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동안 세상의 유익한 지식이나 다른 정보들은 가족들에게 열정적으로 소개하고 전파하면서도, 정작 부활의 복음은 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본질이 아닌 것만 열심히 나누었던 지난날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너무 당연시 여겼던 부활의 복음을 잊지않는 그리고 전하는 제가되길 소망합니다
(고린도전서 14:20–40, 사도행전14-15)
고린도전서와 사도행전의 말씀을 통해 참된 영적 질서는 율법주의가 아닌 화평을 위한 십자가 안에서의 배려에 있음을 묵상합니다. 타인을 품기 위해 나의 익숙함을 기쁜 마음으로 양보해야 하지만 그 배려가 복음의 본질마저 훼손한다면 결단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이 원리를 일상에서 현명하게 잘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4:20,40
형제자매 여러분, 생각하는 데는 아이가 되지 마십시오. 악에는 아이가 되고, 생각하는 데는 어른이 되십시오.
모든 일을 적절하게 하고 질서 있게 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리스도인 다운 모습은 무엇일까? 머리속으로 그려봅니다. 때때로 믿지 않는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은 아니 오히려 더한 내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워집니다. 또한 본이 되지 못하는 교회 모습을 뉴스에서 접할때마다 답답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 말씀하신 마태복음 5장 13-16 말씀을 다시 마음에 새겨봅니다.
예배는 믿는 자뿐만 아니라 믿음이 연약한 자와 믿지 않는 자들까지도 품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로 나만 말하고 나만 드러나는 것이 아닌 모든 이가 질서있게 말하고 품위있게 드러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예배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니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세워져서 하나님만 드러나는 공동체가 되도록 기도하자.
(고린도전서14:1-19, 사도행전11-13)
어떠한 은사도 나를 높이기 위함이 아님을 배웁니다. 날카로운 지식과 화려한 언변을 가졌을지라도 그것이 사랑으로 영혼을 세우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교회를 세우는 데 쓰이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사도행전의 유대인들은 지식을 가지고 메시아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졌음에도 복음을 영접하여 기뻐하는 이방인들을 사랑으로 품기는 커녕 시기하여 바울을 박해합니다. 이런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아 나의 모든 능력이 진정 무엇을 위해 쓰여야 하는지 끊임없이 점검하겠습니다.
청년부 모임을 준비할 때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을 생각해가는데,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내가 한 말이 정답이 되고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형태가 돼서 고민이 됐다. 나에게는 은혜가 있고 말씀에 대한 감사가 있지만 그것이 흘러가지 않는다면 공동체의 덕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리더는 나 혼자 잘 되려고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세워지기 위해 섬기는 사람이다. 주님께서 나를 리더로 세우신 그 사명에 순종하며, 내가 신앙적으로 연약하지 않더라도 그 자리까지 나아가 그들을 얻고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자가 되어야 겠다.
가정과 공동체에서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을 세워주기 위한것인지 점검해야겠습니다. 제 의견을 주장하기보다 상대방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나누는것을 실천하는 한주가 될길 원합니다. 또한 기도할때 감정적인 뜨거움에 집중하는것이 아니라 마음의 생각을 담아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기도하며 말씀을 읽을때 깊이 묵상하고 깨닫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4:1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신령한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특히 예언하기를 열망하십시오.
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을 위해 흘려보내라고 권면합니다. 은사도 결국 남을 위해 사용할때 그 가치가 더해지고 그것이 곧 사랑이라고 알려줍니다. 언제나 주님은 나를 향해 마음을 쓰시고 나를 위해 죽으셨듯이 나 또한 남을 위해 내가 받은 은사를 사용하며 남의 유익을 구할때 그것이 곧 주님 가르쳐주신 사랑을 실천하는 것임을 배웁니다. 나만 알고 살아왔던 지난 날들을 회개하고 이제는 남에게 유익이 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은 나의 ‘두 번째 생일‘이에요. 즉 세례를 받은지 만 6년이 되는 날이에요. 이런 기념일에 사랑과 관련된 묵상을 읽을 수 있어서 좋고 묘해요. 6월 21일 다가올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봐요. 자신의 영적 삶을 검점해 보고, 내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어요. 요즘 행할 때 하나님아니라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을 실천하는 삶으로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래요.
바울이 말하는 사랑의 정의에는 감정의 단어가 없다. 참는다, 성내지 않는다 같은 태도를 이야기한다.
누군가를 대할때 내 기분을 따르지 않고 이 상황에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생각하고 의지적으로 훈련을 해야겠다.
비록 나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믿음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께 공급받는 사랑을 잘 흘려보낼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내가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사랑으로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 없이 일 하는 것이다. 주님의 사랑이 나를 살렸으니 나도 사랑으로 다른 이를 섬겨야 같은 생명 안에 거하게 된다. 항상 기도할 때 사랑을 구하지만 정작 내가 기도한 대로 살아가지 못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 하려고 하지만 그 안에 사랑은 없고 열심만 있었음을 회개한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너무 답답하고 속상한 일들이 많이 있지만 나도 하나님과 다른 이들의 사랑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음에 기억하며, 그 모든 관계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되자.
고린도전서 13:13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고 모든 관계를 회복시키고 모든 은사를 은사되게 하는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임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나는 사랑보다 믿음을, 능력을, 지식을, 부요를, 건강을.. 추구해 왔던것 같습니다. 모든 은사는 사람마다 맞게 골고루 나누어 주셨지만 사랑은 동일하게 우리 모두에게 주셨는데 그 가장 귀한 은사를 잊고 살았던 날들이 많았음을 회개합니다. 주님께 받은 사랑을 온전히 흘려보내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고린도전서 12:12-31, 사도행전 7-8)
바울이 선언한 것처럼 성령께서는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인이라는 장벽을 허물고 우리를 한 몸으로 부르셨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멸시받던 사마리아 사람과 에티오피아 내시가 세례를 받고 교회의 지체로 편입됨을 봅니다. 이곳에 모인 우리 역시 서로 다른 배경과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그 다름이 흩어짐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묵상합니다. 오직 한 성령 안에서 진정한 하나 됨을 이루어가기 위해 먼저 다가가는 삶을 살겠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한 사람이 여러 지체를 맡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하나의 지체만을 담당한다. 그저 그 지체의 역할이 다를 뿐이다. 역할이 많다고 내가 잘난 것으로 착각하거나 역할이 적다고 내가 필요없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교회의 몸은 그리스도이고 우리는 그 몸에 있는 각 지체들이다. 예수님께서 이미 모든 지체를 품으셨는데 그걸 어찌 사람의 기준으로 판단하겠는가. 내가 부족하고 연약한 지체라고 생각이 들 땐 이런 나를 품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많은 역할로 인해 수고한다면 주를 섬길 수 있음에 감사하는 자가 되자.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언어생활이나 삶의 매순간에 보이지않게 이른바 “급나누기”를 하는 영향이 있는 내 악한 모습이 있는 편이다. 그 부족하고 치졸한 그 세미한 감정을 깨트려 부수는 말씀이었다.
조금 더 비우고 조금 더 줄여가라는 말을 평생 들어왔음에도 오늘 하루 조금 더 쓴 뿌리를 뽑아내어보는 하루를 살아가야겠다.
고린도전서 12: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따로 따로는 지체들입니다.
모두가 주님 안에서 한 몸이고 모두 다 주님의
피값으로 사신 귀한 지체임을 묵상합니다. 내 안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차별하였던 나쁜 마음을 회개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멀리 했던 지난 날들을 돌아보고 다르기 때문에 더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겸손한 마음을 부어주시길 구합니다.
지금까지 내 자신을 공동체 안에서 가치 있게 여기지 못했거나, 내 시간과 영역을 지키고 싶어서 한 발짝 물러서 있길 원했던적이 많습니다.
내 편안함보다 주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옳다는 마음을 주시지만 온전히 기쁨으로 순종하는 내가 되지못함이 답답할때가 있지만 이 또한 제 믿음이 자라가는 과정이라 믿습니다. 공동체와 모든 관계안에서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기도로 제 역할을 기쁘게 감당할수 있길 원합니다.
그동안 내가 가진 작은 재능, 경험, 환경들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자랑거리로 삼지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타인을 내 기준에서 너무 쉽게 판단하는 본성을 버리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그 자리에 두신 뜻과 이유를 먼저 헤아리고 존중해야겠습니다.
남을 탓하거나 비교할 것 없이, 오직 나 자신이 말씀 안에서 끊임없이 단련되어 내가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함을 매일 깨닫습니다.
내게 주신 은사를 가족과 이웃, 공동체에 잘 사용하는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