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고린도전서 11:2-16
今日默想:哥林多前書 11:2-16
제목 : 서로가 없이는 존재하지 않기에
솔직히 고백하면 이 본문은 읽을 때마다 조심스럽다. 머리를 가리라느니, 가리지 말라느니, 머리털이 어떻고 천사들이 어떻고… 한 절 한 절이 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 본문을 두고 경건한 학자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많이 갈린다. '머리'가 권위를 뜻하는지 근원을 뜻하는지, 여기서 말하는 덮음이 실제 천이었는지 머리 모양이었는지, '천사들 때문에'가 무슨 의미인지 — 어느 것 하나 한 가지로 못 박기 어렵다. 그래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하면 부끄럽지만 "나도 잘 모른다"라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오늘 나를 멈춰 세운다. 이렇게 논쟁의 여지가 많은 본문 한복판에서, 바울이 끝내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툼이 아니다. 바울은 이 까다로운 이야기를 길게 풀다가, 한가운데서 갑자기 방향을 튼다.
고전 11:11-12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그러나." 이 한마디가 본문 전체의 무게중심이다. 앞에서 창조의 질서를, 구별을 말했지만, 바울은 그것이 한쪽이 다른 쪽 위에 군림하는 이야기로 굳어지지 않게 곧바로 붙든다. 주 안에서는 누구도 혼자 서지 못한다. 여자는 남자에게서 났고, 그 후로는 모든 남자가 여자에게서 났다. 그리고 결국 —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개혁주의 전통이 늘 강조해 온 대로, 이 '머리'라는 말은 누가 더 낫고 누가 못하냐를 가르는 등급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아버지와 본질에서 조금도 덜하지 않으신 채로 아버지를 '머리'라 부르시듯이, 머리와 머리 아래의 관계는 존재의 우열이 아니라 사랑 안의 질서를 가리킨다(이건 본문이 직접 말하기보다, 3절의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에서 우리가 읽어내는 신학적 결이다).
이 흐름은 사실 앞 장들과 한 줄로 이어진다. 8장에서 10장까지 바울은 줄곧 "네 자유를 어떻게 쓸 것인가, 그 자유로 형제를 다치게 하지 말라"고 말해 왔다. 여기서도 같다. 옳음을 무기로 휘둘러 공동체를 찢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 단락을 이렇게 닫는다.
고전 11:16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압도하는 논증으로 상대를 짓누르며 끝내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이런 관례가 없다.' 다툼을 관례로 삼는 교회는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하고자 하는 메시지인지 모른다. 다투지말고 사랑으로 하나되라. 이는 진리를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다. 오히려 진리 안에 있기에, 그것을 두고 서로를 이기려 다투지 않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마지막 한 절이 나의 묵상을 이끈다. 솔직히 나도 이기고 싶은 사람이다. 특별히 토론이 벌어지면 내 견해가 맞다는 걸 보이고 싶고, 누군가 다른 해석을 들고 오면 속으로 먼저 방어할 말을 고른다. 그런데 안다. 그렇게 이겨서 남는 게 무엇인가. 논쟁에서 이기고 형제를 잃는다면, 나는 무엇을 얻은 것인가.
그래서 나는 우리 공동체가 진리를 추구하되 다투지 않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아마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 가운데도, 신앙의 여러 질문 앞에서 생각이 다른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각자 배운 신학도 다르고, 살아온 자리가 다르니 보는 관점도 다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된다. 좋은 질문이 다툼으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우리가 주 안에서 서로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한 몸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진리를 단단히 붙들면서도 서로를 부드럽게 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이기려 하기보다 함께 진리 앞에 서는 사람으로, 다툼이 아니라 사랑을 관례로 삼는 공동체가 되길 기도한다.
題目:因為沒有彼此,便無法存在
坦白說,每次讀到這段經文,我都感到戰戰兢兢。要蒙頭、不要蒙頭、頭髮如何、天使如何……每一節都不容易理解。事實上,就連虔誠的學者之間,對這段經文的詮釋也大相逕庭。「頭」究竟指的是權柄還是源頭?這裡所說的遮蓋,是實際的布料還是髮型?「為了天使的緣故」又是什麼意思?——沒有一個問題能給出唯一確定的答案。所以若有人問我,我只能慚愧地說:「我也不太清楚。」
然而,正是這一點,讓我今天在此駐足思想。在這段充滿爭議的經文正中央,保羅始終緊緊抓住的,究竟是什麼?那不是爭論本身。保羅在長篇論述這個棘手的話題之後,忽然在中間轉了方向。
林前 11:11-12 然而,在主裏,女人不能沒有男人,男人也不能沒有女人。因為女人是從男人而來,男人也是藉著女人而生,並且萬事都是出於神。
「然而。」這兩個字,是整段經文的重心所在。保羅前面談到了創造的秩序與分別,但他隨即緊緊把住,不讓這話語僵化成一方凌駕於另一方之上的論調。在主裏,沒有人能獨自站立。女人從男人而出,此後每一個男人又從女人而生。而最終——萬事都出於神。所以,我們沒有彼此,便無法存在。
因此,正如改革宗傳統一貫所強調的,這裡的「頭」並非用來區分誰優誰劣的等級。正如基督與父在本質上毫無差別,卻稱父為「頭」,頭與頭以下的關係,指的不是存在上的高低,而是愛中的秩序(這與其說是本段經文的直接陳述,不如說是我們從第三節「基督的頭是神」所讀出的神學脈絡)。
這個脈絡,其實與前幾章一脈相承。從第八章到第十章,保羅一再說:「你要如何使用你的自由?不要用你的自由傷害弟兄。」這裡也是一樣。不要把真理當作武器揮舞,將群體撕裂。因此,保羅以這樣的話結束這個段落:
林前 11:16 若有人想要辯駁,我們卻沒有這樣的規矩,神的衆教會也是沒有的。
他並非以壓倒性的論證擊潰對方作結。「我們沒有這樣的規矩。」意思是,沒有哪間教會是以爭吵為慣例的。或許,這正是保羅想對哥林多教會說的信息:不要爭論,要在愛中合而為一。這並非輕看真理,恰恰相反,正因為我們活在真理之中,我們才不會為了真理而彼此爭勝。
就我個人而言,這最後一節經文引領著我今日的默想。說實話,我也是個想要贏的人。尤其當討論展開時,我想證明自己的看法是對的;當有人提出不同的詮釋,我心裡已在暗自尋找反駁的話。然而我知道,這樣贏了之後,剩下的是什麼?若在辯論中勝了,卻失去了弟兄,我究竟得到了什麼?
因此,我渴望我們的群體成為一個追求真理、卻不互相爭競的群體。在我們當中,面對信仰上的諸多問題,想法不同的肢體想必不在少數。各人所受的神學訓練不同,走過的生命歷程不同,看事情的角度自然也不同。這讓我有些擔心,因為好的問題變成爭吵,往往只在一瞬之間。然而我相信,只要我們記得:在主裏,我們是沒有彼此便無法存在的一個身體,我們就能在緊緊持守真理的同時,也溫柔地彼此接納。因此,今天我也禱告:願我們不是急著爭贏的人,而是一同站在真理面前的人;願我們的群體,不以爭吵為慣例,而以愛為慣例。
댓글 / 留言 (0)
로딩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