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9장의 가시나무처럼 권력과 자기 유익만 좇아 성도에게 상처를 주는 지도자가 아니라,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처럼 본분을 다하며 기쁨을 전하는 좋은 목회자들을 지금까지 많이 만났습니다.
영적 지도자의 따뜻한 돌봄과 섬김 속에 신앙생활을 해온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커다란 축복이자 은혜입니다. 가시나무 같은 그늘이 아닌,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신 목자들을 기억하며 순종과 사랑과 기도로 목회자를 잘 섬기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가야했던 올바른 방향에서 조금 벗어났던 기드온의 오차가 시간이 흘러 엄청난 거리로 벌어져 버린 것을 봅니다. 아버지 기드온이 말로는 그렇지 않다고 했지만 누렸던 왕의 특권이 바알이라는 우상에서 나온 은으로 형제를 죽이는 죄를 범하고 왕을 참칭하는 아들이라는 비극으로 폭발해버린 것 같습니다. 어제와 오늘의 묵상을 통해 저 자신을 매일 돌아보고, 아주 작은 균열이라도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잡아가길 소망합니다.
사람이 가진 힘은 연약한 자를 보호하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내가 가진 힘을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몰아내기 위해 사용하고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해 쓴다면 그것은 악한 결과를 낳을 뿐이다. 내가 가진 힘도 결국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 가장 존귀한 왕이신 예수님도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스스로 낮아져 이 땅에 오셨다.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사람들이 꺼려하는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시는 섬김의 모습이다. 나 또한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섬김의 길로 나아가는 자가 되길 소망한다.
아비멜렉은 스스로 왕이 되려 하였고 그 헛된 욕망이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의 자리를 벗어나 내 욕망에만 사로잡힌 모습의 결과는 결국 스스로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일뿐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스스로 더 높아지려고 하는 마음이 눈덩이 같이 불어나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보게 되는 일은 순식간임을 봅니다. 나도 조금만 더 안정된 삶, 조금만 더 편안한 집,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살아온것 같아 회개합니다. 내가 누려온 모든것이 다 주님의 은혜임을 잊지 않길 기도합니다.
기드온은 아비멜렉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지 못했고 그의 자녀에게 욕망이 투사되었습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부모로 비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의 삶에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세상의 성공이나 타이틀이 아닌 오직 믿음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지 돌아보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나의 결심과 열심만으로는 부모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길, 그리하여 아이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줄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다스려달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부탁을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며 기드안은 거절합니다. 하지만 말과 달리 기드안은 전리품을 모으고, 많은 아내를 두고, 아들의 이름을 아비멜렉이라고 이름 붙여주었습니다. 믿음과 행동이 어긋난 것 같은 기드온을 봅니다. 제 믿음과 행동이 일관성있게 오롯이 주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길 소망합니다.
기드온은 성막과 대제사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고향에 에봇을 두고 그 곳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고 영적으로 착각을 합니다. 그는 평안한 삶을 살았지만 이 하나님의 질서를 벗어난 그의 모범되지 못한 모습은 다음 세대를 곧바로 바알숭배로 가게합니다. 아이들에게 타협 없는 온전한 믿음의 본을 보여주는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겠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의 착각처럼 그것이 쉽지 않음도 봅니다.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며 깨어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드온에게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다"고 말하는 백성들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가장 경계하셨던 결말인 것 같습니다. 군대를 줄이실 때 알려주신 하나님의 의도와 달리, 점점 사람의 힘과 감정 위주로 흘러간 전쟁의 끝엔 사람의 이름이 남았고, 그가 죽고 남은 자리는 바알이 차지했습니다.
하나님만 왕이신 것을 아는 기드온이 금 에봇을 만든 건 선한 의도였을 것 같아 고민이 됩니다. 선한 영향력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나의 선한 영향력을 묵상하고 키워가는 것보다, 예수님의 영향력 아래 선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입술의 고백보다 중요한것은 삶으로 살아내는 것임을 묵상합니다. 기드온의 고백은 하나님만을 높이며 은혜롭지만 그의 행동과 삶은 전혀 달랐기에 결국 불순종과 우상숭배로 이어집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이 매일의 묵상도 다르지 않음을 봅니다. 묵상하고 깨닫게 하신것을 삶에서 적용하지 못한다면 기드온이 만든 에봇과 다를바가 없을것입니다. 오늘도 주신 말씀을 깊이 마음에 새기고 살아낼 수 있는 은혜를 구합니다.
입술의 고백과 실제 삶은 다를 수 있다. 겉으로는 믿음 좋은 척해도 속에서는 은근슬쩍 하나님의 자리를 밀어내고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려는 죄의 유혹이 찾아온다. 나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향해 있지 않으면 말로는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어도 행동은 죄의 길로 나아간다. 믿음 좋은 척만 하지 말고 진짜 믿음이 좋은 자로 거듭나야 한다. 나의 입술의 고백과 실제 삶이 일치하게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자가 되길 소망한다.
기드온은 백성들의 왕이되어달라는 요구를 거절했지만 그 이후에 왕과 다름없는 부귀와 권력을 추구하는 행보를 보여줍니다.
저 또한 삶 속에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겠다’, ‘내려놓았다‘라는 말로 나를 겸손히 포장한 채, 실제로는 나의 고집대로 상황을 통제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주인 되어 쥐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주님이 내 삶의 왕이 되시도록 그 주도권을 다시 주님께 올려드리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확신을 찾던, 하나님께 계속 묻던 조심스러운 모습은 간데 없고, 패배한 적을 쫓으며 동족에게 모질고 가혹한 언행을 하는 기드온의 모습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넘겨 주신 적인데, 기드온은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승리에 취했는지.. 열심을 내지만 그 열심이 온전치 않아보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하심에 제 열심이 잘 정렬되기를 소망합니다.
미디안연합군의 왕들을 죽이는 것은 자신을 높이면서 보복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형제들과 민족을 위해 시작한 하나님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자마자 이런 사적인 보복과 자기과시를 시작합니다. 에브라임 지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 초기에는 가만히 있다가 승세가 기울자 전리품이 아쉬운지 기드온을 비난합니다. 어려울때 간구는 쉽지만 풍요로울때 하나님의 영광만을 높이는 것은 어렵습니다. 오직 연약한 나를 써주신 은혜에 감사만 올려드리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승리뒤에 찾아오는 교만은 고난중에 깨닳은 소중한 진리를 한순간에 잊게 만드는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성공 뒤에 초심을 잊지 않고 겸손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능력임을 압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것이 아님을 묵상합니다. 고난도 승리도 온전히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입술과 마음으로 선포하고 스스로 높이며 교만해지지 않도록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연약함을 용납하셨다. 그의 두려움을 아시고 계속해서 요청하는 표적도 보여주셨다. 하나님께 용납받은 기드온은 힘이 생기자 점점 그 은혜에서 멀어진다. 에브라임은 12지파 중에 하나로 큰 족속이다. 에브라임의 요구는 잘 들어주던 기드온이 더 작은 성읍인 숙곳과 브니엘 사람에게는 모질게 대한다. 강한 자에게는 관용을 베풀고 약한 자에게는 분을 내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그들의 태도가 매정하고 이기적이었을지라도 그럼에도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품고 용서하는 것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는 길이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사람은 져도 망하고 이겨도 망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드온은 승리에 대하여 은근히 자기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요청이 거절당할 때에는 거절한 상대에게 분노하고 큰 악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승리의 때에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찬양하고, 실패하거나 거절당할 때에는 그것 또한 허락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동요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드온이 승리 후 자신을 드러냈듯,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허락하시고 성취하신 일들에 나도 모르게 내 의가 높아질까 두렵습니다. 일이 잘 풀릴 때 하나님을 잊고 내 판단을 앞세우기 쉬운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걸음마다 일하시는 주님을 깊이 경험하는 은혜를 누리길 원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교만에 빠지지 않고 매 순간 주님의 인도하심을 묻는 겸손한 가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어제 말씀과 오늘 말씀을 이어 묵상합니다. 결국 모든 일은 주께서 계획 하시고 이루어 가심을, 단지 기드온의 손으로 그 뜻을 행하셨음을 생각합니다. 붙들어 주시고, 확신을 주시며 이끌어 주시는 가운데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내 손이 했다.' 는 교만과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의심하고 불안에 떨던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용기를 주시고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불가능할것 같던 삼백용사를 이끌고 미디안을 무찌릅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은 내 불안보다 내 걱정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크고 놀랍습니다. 내 상황과 초라한 현실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나아가 승리후에 안정속에서 주님을 잊고 교만해지지 않도록 더욱 낮아지고 부인하는 삶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모든것이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어제 수업 때 內卷化에 대해 배웠다. 학문을 연구할 때 자기 학문만 생각하고 다른 연결된 학문을 보지 않으면 결국 발전도 없고 학문 자체가 쪼그라든다는 내용이다. 믿음도 비슷한 것 같다. 물론 내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군대를 세 대로 나누고 나팔과 항아리, 횃불을 준비하는 것은 내 몫이다. 하지만 내 일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보다 더 크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시선을 나에게 두면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없다. 나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되 나보다 먼저 일하시는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는 자가 되자.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하면서도 그 속엔 내 수고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드러나지 않는 자리보다 드러나는 쪽을 좇았던것 같습니다. 이제는 오직 하나님만 높여지는 자리에서 섬기기를 소망합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 앞에서 나의 행동이 아닌 하나님만 드러나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시작하고 주님이 다 이루신 일임을 알면서도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되면 결국 나의 공로와 수고로 돌려버리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작은 성취라도 나의 공을 먼저 세는 교만을 조심해야겠습니다. 먼저 영광과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기드온의 삼백용사가 주는 의미를 묵상하며 내 삶 가운데도 하나님께서는 대개 내 생각과 다르게 역사하실 때가 많았음을 돌아봅니다. 기드온처럼 불안한 마음이 가득한 나를 살피시는 주님의 배려일것입니다. 삼백용사조차 사실 승리를 위해 필요한 정예요원을 남겨두신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은혜가 됩니다. 계획대로 순조롭게 인생이 풀렸던 어린시절도 있었지만 그때는 하나님을 찾지않고 교만함으로 가득한 비참한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시고 또 낮추시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게 히시고 오늘도 그 은혜안에 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직접 싸우시고 이기게 하시는 것을 명백히 하기 위해 군대를 비현실적으로 축소하는 장면이 재밌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작고 약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더 밝히 보이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작게 하실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군대가 준비된 후, 하나님은 기드온의 두려움을 이해하시고 책망 대신 도움을 주십니다. 말씀만 믿고 나아가라 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상황을 꾸며주시는 장면에서, 많은 자녀를 맞춤형으로 키우시는 아버지의 자상함이 느껴집니다. 이런 아버지가 내게 계셔서 나를 보시고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하시고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내 손에 쥔 것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게 하신다. 그리고 나의 불안한 마음을 나보다도 더 잘 아신다. 꿈을 꾼 사람은 기드온이 진영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환상을 본 게 아니라 자고 있을 때 꿈을 꾼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기드온이 두려워하고 있던 그 때에도 이미 일하고 계셨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사람의 수도 인간의 나약함도 아니다. 주님밖에 이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믿음의 고백과 주 앞에 엎드리는 겸손을 원하신다. 나를 두렵게 하는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나보다 먼저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