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의 대명사인 요셉을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에 찬양을 드립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 정치범 감옥 속에서도 총리로서의 자질을 만들어 가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며 때로 어려움이 오히려 나를 빚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창40:1-23)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 모든 일이 두 관원장의 꿈 해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7절을 보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요셉이 그 감옥에 있는 다른 이들의 얼굴빛을 살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두 관원장의 얼굴에서 '근심의 빛'을 보고서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묻고 우리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고 희망의 빛을 건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이런 일을 원하십니다. 어둠에 다가가 예수님의 빛을 비추기 위하여 주위 사람들의 얼굴과 마음을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창세기 39장, 로마서 4-7장)
로마서가 보여주는 아담의 죄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풍성한 은혜가 대조되듯, 창세기의 요셉 역시 억울한 누명이라는 절망 앞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오히려 형통한 삶을 누렸음을 묵상합니다. 오늘 하루도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머물며 주님이 허락하시는 평안으로 승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창세기 38장, 로마서1-3장)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철저히 죄 아래 있다는 바울의 급진적인 선언은, 창세기 38장에 드러난 유다 가문의 추악한 모습 속에서 쉽게 증명됩니다. 그러나 그 부끄러운 죄의 역사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 때문임을 생각해봅니다. 자격 없는 유다를 긍휼로 품으셨듯, 여전히 죄 가운데 넘어지고 한없이 부족한 저마저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주님의 선한 도구로 사용해 주시는 그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창세기 37:18-36, 고린도후서 10-13장)
바울이 자신의 가장 깊은 아픔인 '육체의 가시'를 고백했을 때 오히려 그 약함 속에서 능력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듯이, 요셉의 가족들이 빚어낸 끔찍한 비극과 연약함조차도 결국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됨을 봅니다. 우리 삶의 실패와 누구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부족함 속에서도 주님의 역사는 결코 멈추지 않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나의 철저한 약함 가운데서도 언제나 신실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며, 오늘 하루도 주어진 자리에서 담대하게 나아가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