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고린도전서 11:17–34
今日默想:哥林多前書 11:17–34
제목 : 평등의 식탁인 성찬
고린도전서 11장 전반부에선 바울은 예배 때의 머리 가림 문제를 다루었다(11:2–16). 그리고 오늘 본문에선 또 다른 '함께 모임'의 문제로 넘어간다. 그 문제가 다름 아닌 주의 만찬, 곧 성찬과 관련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앞 단락과 달리 이번에는 아예 칭찬할 수 없다고 말한다. 너무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랬다. 그 시절 성찬은 애찬(공동 식사) 안에 들어 있었는데, 경제적, 시간적 여유 있는 지체들은 모임에 먼저 와서 자기 음식을 배불리 먹고 취하기까지 했지만, 일을 마치고 늦게 오는 가난한 지체들은 남은 음식이 없어 굶주린 채 남았다. 그래서 본래 한 몸으로 묶어 주어야 할 식탁이, 도리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갈라놓았다. 한 떡을 떼며 우리가 한 몸임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그들은 그 한 몸을 찢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고전 11: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그래서 바울이 '주의 몸을 분별하라'고 할 때, 그것은 신학 지식이 모자라다는 책망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우리가 서로 잇대어 있고 서로에게 기대어 산다는 사실을, 곧 그 일치와 상호의존성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곁의 형제가 굶주린 것을 보지 못한 채 두고, 나만 배불리 먹는다면, 나는 떡을 분별하기 전에 이미 그 형제를, 한 몸의 지체를 분별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한 몸을 피로 사신 주님의 죽으심까지 모욕하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본문에서 '합당하지 않게 먹는다'는 말은 '내가 성찬에 참여하기에 합당한 사람이냐'를 따지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자격이 아니라 애찬을 먹는 태도를 가리킨다. 그러니 이 말씀은 나를 자책으로 식탁에서 밀어내려는 빗장이 아니라, 어떻게 곁을 분별하며 나아오느냐를 묻는 부르심이다.
고전 11: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그래서 바울이 내놓는 해법은 아주 단순하다. 바로 '서로 기다리라'는 것이다. 결국 '각각 자기 것을 먼저 갖다 먹는' 것의 반대는, 곁의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한 몸의 상호의존성은 바로 그 기다림을 통해서 공동체 식탁 위에 실제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공동체는 이와 다른 벽이 존재할 수 있다. 처음 대만에 왔을 때, 말이 서툴러 인사 한마디 건네기가 두려웠고, 알아듣지 못해 웃기만 하던 자리들이 있었다. 그 어색함이 사람을 얼마나 외롭게 하는지, 나는 안다. 그런데 정작 우리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또 익숙한 언어의 무리 곁에 머문다. 말이 통하는 자리가 편하니까. 그래서 늘 같은 공간에 앉아 있으면서도 서로 인사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한 지체들이 많다. 그러니 우리 공동체에서 곁을 내어준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그 어색함을 견디는 것이다. 서툰 한국어, 중국어로라도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말이 막히면 웃음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고, 통역을 기다리는 그 느린 침묵에 끝까지 함께 머무는 것이다. 한 몸을 잇는 끈은 같은 언어가 아니라 한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말이 트이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오늘, 그 한 사람 곁에 머물면 된다. 오늘도 언어의 벽 너머 그 한 사람을 한 몸의 지체로 분별하며, 익숙한 자리에 먼저 앉지 않고 주변의 다른 이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가는 공동체가 되길 기도한다.
題目:平等之桌——聖餐
在哥林多前書第十一章的前半部分,保羅處理了聚會時蒙頭的問題(11:2–16)。而在今天的經文中,他轉向另一個「聚集在一起」的問題,那便是主的晚餐,也就是聖餐。因此,保羅與上一段落不同,這一次他開門見山地說,他無法稱讚他們。因為這是一個極其重要的問題。
問題是這樣的:在那個年代,聖餐是包含在愛筵(共同用餐)之中的。經濟寬裕、時間充裕的肢體們提早來到聚會,將自己帶來的食物吃得酒足飯飽;而做完工才晚到的貧窮肢體,卻因剩下的食物所剩無幾,只能忍飢挨餓。於是,這張本應將眾人連結為一個身體的桌子,反倒將有餘的與匱乏的分隔開來。在那個本當擘餅、宣告我們同為一個身體的場合,他們卻在撕裂那個身體。因此保羅說:
林前 11:29 因為人吃喝,若不分辨是主的身體,就是吃喝自己的罪了。
所以,當保羅說「要分辨主的身體」時,這並非是在責備他們神學知識不足。而是說,我們必須認識到:在作為基督身體的教會之中,我們彼此相連、彼此倚靠而活——也就是那份合一與相互依存。若是看見身旁的弟兄忍飢受餓,卻視而不見,只顧自己吃飽,那麼在分辨餅之前,我就已經沒有分辨那位弟兄、沒有分辨同一身體的肢體了。而這,更是在羞辱那位以寶血買回、在基督裡合而為一之身體的主的死。因此,經文中「不按理吃」這句話,並非在追問「我是否是配得領受聖餐的人」。它指的不是人的資格,而是領受愛筵的態度。所以這段話語,不是將我以自責推離桌席的門閂,而是一個呼召——問我們是否以分辨身旁之人的心前來。
林前 11:33 所以我弟兄們,你們聚會吃的時候,要彼此等待。
因此,保羅給出的解方極為簡單,就是「彼此等待」。說到底,「各人先吃自己食物」的反面,就是等候身旁的人。身體的相互依存,正是透過那份等待,在團契的桌席上成為真實。
或許在我們的群體中,存在著另一種不同的隔牆。剛來台灣的時候,語言生疏,連開口問候一聲都感到害怕,也曾有過聽不懂只能傻笑的時刻。那種尷尬使人何等孤單,我深有體會。然而在我們的群體之中,我們卻依然習慣停留在語言相通的人群旁邊——因為說得來的地方令人自在。於是,明明同處一個空間,卻有許多肢體彼此連一聲招呼都未曾好好打過。所以在我們的群體中,「為人騰出空間」並不是什麼了不起的大事,而是願意忍受那份尷尬——用生澀的韓語或中文彼此呼喚對方的名字,說不下去時就帶著微笑再靠近一步,在等待翻譯的那段緩慢的沉默中,始終陪伴在旁。因為將一個身體連結在一起的紐帶,不是共同的語言,而是同一位聖靈。所以我們不必等到語言流利了才行動。今天,只需停留在那一個人身旁就夠了。願我們今天也能越過語言的藩籬,將那一個人分辨為同一身體的肢體,不急著坐進熟悉的位置,而是向身邊另一個人邁出一步——成為這樣的群體,為此禱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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