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는 소명을 다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을 뵈옵지 못할까 봐 애통하며 기도했습니다. 반면에 저는
주께서 제게 맡기신 사명이 있을텐데 그것을 외면하고 주님 오실 날만을 기다리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죽음 앞에서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함을 기억하소서"라고 고백했던 히스기야처럼, 저도 남은 삶 동안 주께서 주신 사명을 발견하고 기쁨으로 감당하며 마지막에 담대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신실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위해 친히 싸우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진정으로 인정한다면 내 삶의 주도권 역시 온전히 주님께 의뢰하는 믿음이 뒤따라야 함을 배웁니다. 상황을 해결하려 억지로 이리저리 끼워 맞추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완벽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굳게 신뢰하기 원합니다. 얄팍한 편법이 아닌 주님이 나를 지으신 목적에 합당한 방식으로만 순종하며 나아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산헤립이 뭇 나라 백성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로 위세를 떨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계획 아래에 있을 뿐입니다. 높아짐도, 낮아짐도 다 하나님의 크신 계획아래에 있는 줄로 압니다. 높아질 때에 교만해지지 않고, 낮아진다고 낙담하지 않는 제가 되길 바라며, 창조와 운행을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도 들으시고, 앗수르의 교만한 말도 들으신다. 하나님은 나의 말에 주목하신다. 말에는 그 사람의 생각이 담겨있다. 내가 진정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기도와 간구가, 하나님을 멸시한다면 교만이 튀어나온다. 나의 말과 생각이 주님이 보시기에 기뻐할만한 것인가 돌아보자. 주님은 나를 아시고 나를 지켜보시는 분이시다. 내가 주님 앞에 바르지 못한 말을 한다면 막아주시길 기도하자. 또 나의 약함이 주님이 일하시는 통로가 됨에 감사하고 여호와의 열심으로 역사하시는 주님만 의지하는 자가 되자.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루셨습니다. 전투 한번 없이 산헤립은 끝이 납니다. 전부 다 하나님의 계획하심 아래 이루어졌음을 봅니다. 그것을 알고 순종했던 히스기야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왕으로써 군대를 준비하고 전쟁을 도모할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잠잠히 기다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게도 이러한 분별력과 지혜가 따르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마땅히 있어야할 곳에서 마땅히 해야할 것을 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내가 무엇을 바꿀 수 있다는 착각을 내려놓기 원합니다.
히스기야가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교만한 말과 마음은 꺾이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 주님께서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나는 어떤 말과 행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님께서 내 모든 상황을 다 아시겠지 라고 생각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했던 저의 습관을 고쳐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신다 할지라도 기도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주님의 열심이 제 삶을 이루어 가실것을 믿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당장의 위기 모면이나 생존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세상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보게 되기를 구합니다. 이는 인간의 예측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굳게 신뢰했기에 가능한 고백입니다. 문제 해결에만 급급했던 좁은 시야를 돌아봅니다. 이제는 저의 제한된 사유를 뛰어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의 완벽한 통치를 온전히 인정하기 원합니다. 내 삶의 모든 자리에서 지으신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더 큰 목적만을 높여드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히스기야 왕의 기도로부터 많은 것을 느낍니다. 제가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 제가 간구하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다 보면 어느덧 기도가 기도가 아닌 것 처럼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제가 생각한 인간의 지혜가 어떤지 여쭙는 모양새가 되곤 합니다. 오늘 본문의 히스기야 왕 처럼, 제가 처한 상황을 담담히 고백하고, 오롯이 주님만을 신뢰하길 소망합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위협이 담긴 편지를 받자마자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 그것을 하나님 앞에 펴놓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고백하는 것으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히스기야의 행동과 믿음은 신앙인의 참된 표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내 앞에 마주한 현실과 문제의 크기에 압도되어, 하나님을 작게 여겼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럴 때일수록 시선을 문제에서 주님께로 돌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이사야37:16 말씀을 기억하며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고백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는 지금 당장 내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얼마나 높고 위대하신지 알아가는 시간이다. 하나님께 가장 먼저 달려갔음에도 상황이 더 심각해질 때조차 더 큰 영광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헛된 우상이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참되고 유일한 신임을 배우는 시간이다. 나의 억울함과 두려움 때문에 분노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이 능욕당한 것에 분노하기를, 나에게 집중하기 보다는 나를 지으시고 나를 보호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기도를 올려드리자.
히스기야 왕이 의지했던 하나님과 앗시리아의 왕이 의지했던 자신의 힘과 부와 군사적인 능력이 대조됩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고 있는지 세상의 방법으로 성벽을 쌓으며 안도감을 찾으려 하고 있는지를 돌아봅니다. 또한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는 히스기야를 본받길 소망합니다. 내 방법으로 다 해보고 벼량끝에서 어쩔수 없는 절박한 마음이 들때 하나님을 찾고 기도했던 지난날들을 회개합니다. 교만이 하나님 없이 사는것이듯 겸손은 곧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을 인정함에서부터 시작되는것을 잊지 않길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앗수르의 유다 침략에 대한 내용입니다. 히스기야 왕과 유다 백성을 향해 랍사게는 조롱을 이어갑니다. 유다 백성들이 믿는 구석들이 쓸모없음을 하나하나 나열하는데, 가장 현실적이었던 애굽에서부터 마지막에는 하나님에까지 다다릅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며 제가 스스로에게 랍사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고난이 찾아와서 제가 준비한 세상의 방법들이 무너져도,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랍사게가 하나님을 조롱하며 히스기야를 무시하고 그럴싸해 보이는 논리와 언변으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회유하고 쉽게 정복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대응하지 말고 침묵으로 맞서게 하십니다. 정의 앞에 침묵하고 권리를 포기하면 비겁하다고 조롱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것 같지만 때로는 맞서지 않고 묵묵히 건뎌내는것이 성도의 길일수도 있음을 묵상해봅니다. 세상의 논리를 세상의 방법으로 반박하려한들 답이 없기 때문일것입니다. 오늘도 내 논리와 사고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서있길 기도합니다.
세상의 기준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이 미련해 보인다고 말합니다. 해야 할 일이 많고 시간이 부족했을때 주변에서 그럴 때가 아니다 라고 했지만, 더욱 교회 모임과 봉사의 자리를 지켰고 큰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시간 여유가 많아 묵상하고 성경을 읽기에 좋은 환경이지만,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바쁠 때나 한적할 때나, 함께할 때나 홀로 있을 때나 내 마음의 중심이 주님을 향해 있는지 돌아봅니다.
환경과 상관없이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예배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신앙과 타협하길 바라는 문제들,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이게 진짜 주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을 언급한다는 이유로 모든 말이 다 하나님의 뜻인 것은 아니다. 교묘하게 나와 주님의 위치를 바꾸어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진 않은가? 세상에서, 가정과 교회에서 들려오는 말에 일일이 다 반응하고 감정적으로 괴로워지는 것조다 그 문제를 조용히 주님 앞에 가져가는 자가 되자. 말씀을 기준으로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 내 욕망에서 나온 것인지 잘 분별하여 주의 음성을 따라 나아가는 자가 되자.
첫 절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라는 말씀이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이 말씀의 성취가 역사적 포로 귀환인지 예수님의 초림인지 종말론적 완성인지는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제게 와닿는 것은 아직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은 여전히 메마른 땅의 현실 속에서도 그 약속을 굳게 믿고 미리 기뻐하는 믿음입니다. 아직 눈에 보이는 성과나 회복이 없는 오늘 하루일지라도 약속하신 주님을 신뢰함으로 참된 기쁨을 살아내겠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미래는 두려움과 막막함밖에 없다. 그럴 때일수록 더 주님을 찾아야 하는데 자꾸 다른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할 때, 신실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나아갈 것을 굳게 믿을 때 나의 두려움은 기쁨이 되고 나의 막막함은 감사가 될 것이다. 언제 어디에서나 내 길을 주님께 기도하며 묻는 자가 되자. 그리고 너무너무 불안할 때 하나님께 내 감정을 아뢰며 주로 인해 기뻐할 수 있는 자가 되도록 간구하자.
하나님은 백성들의 회복을 위해 광야에 거룩한길을 내어주셨습니다. 아무런 자격 없는 저에게도 그 은혜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그 길은 때로 많은 것을 참아야 하고 나의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기에 답답하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편함에 집중하여 은혜의 길을 포기하지 않아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길을 걷는 연습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길 원합니다.
자격없는 나에게 예수님이 친히 찾아오셔서 구원의 대로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 은혜로 살아가지만 때로는 현실의 어려움 가운데 지치고 낙망하며 넘어지기 일쑤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그런 나에게 소망이 되시는 주님을 다시 바라보고 회복되어서 새 힘을 낼 수 있게 하시는 복음의 말씀임을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목표를 잊고 살아가지 않도록 오늘도 큰 길이 되신 주님만을 바라보며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8절을 묵상하며 억울하게 얽힌 문제와 세상의 불의를 궁극적으로 심판하시고 바로잡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복잡하게 얽힌 타인의 상황을 곁에서 지켜보며 무의식중에 내 잣대로 판단하고 결과를 계산하려 했던 교만을 내려놓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회복하시는 주님의 주권에 결과를 온전히 맡겨드립니다. 스스로 재판관이 되려던 교만을 벗어버리고 오늘 제게 허락된 하루의 사명에만 잠잠히 충성하는 참된 자유를 누리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주 여호와 하나님의 에돔을 향한 분노입니다. 분노와 폐허에 대한 내용이어서 이해하기 난해했습니다. 에돔이 '하나님을 알만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 분을 떠난 사람의 대표' 라는 목사님의 설명을 보고 다시 읽으니, 그 뜻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몰라서 그랬다'라는 변명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부족하게나마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된 만큼.. 그 말씀에서 떠나지 않고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돌이키는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말씀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정의가 있고, 사랑이 있고,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 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다름아닌 바로 나에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나도 에돔과 같았고, 심판받을 열국과 같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자로서 더 죄에 경각심을 느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자. 지금의 내 상황과 감정이 죄를 짓는 것을 정당화 할 수 없다. 주의 말씀을 잘 깨닫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가 되길, 죄의 유혹 앞에 심판받을 자처럼 넘어지지 말고 말씀으로 승리하는 자가 되길 소망한다.
세상의 성공과 불의한 권력이 아무리 영원할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님께 심판받습니다. 세상의 방식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어야겠습니다.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가까이하며, 그 말씀이 내 삶을 이끌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말씀이 교훈하시듯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공의와 정의, 평등의 하나님이 항상 지켜보시는것을 알고 불의에서 멀어져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심판만 있다면 두려움에 떨며 살겠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바른길로 인도하시고 구원을 배풀어 주시니 날마다 넘어지더라도 속죄하고 돌이켜서 다시금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품안에 거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