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3:1-15, 마가복음 8-9)
죄악은 결코 묻어둘 수 없으며 철저히 끊어내야 한다는 마가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을 결단하고 책임을 짊어지는 창세기의 유다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면 되겠지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나를 위해 가장 선한 길을 예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굳게 신뢰하며 마침내 모든 것을 내어놓고 바른길을 선택한 야곱처럼 정직한 순종의 삶을 살겠습니다.
내 것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고백했던 에스더처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던 다니엘의 친구들처럼, 또 자식을 잃으면 잃으리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던 야곱처럼 내게 가장 중요한 것 심지어 나의 생명조차 하나님께 맡겨드리며 하나님의 임재를 구할 때 우리에게 더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보게 하실 것이다.
(창세기 41:18-38, 마가복음 6-7)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복음을 받지 않는 곳에서는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하셨듯이 요셉 또한 형제들의 죄와 그에 대한 심판과 용서를 모두 하나님께 맡겨드립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심판의 영역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음은 큰 안도감을 줍니다. 내가 통제하려는 헛된 수고를 멈추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긴 채 말씀이 이끄시는 대로 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42:18-38, 마가복음 4-5)
창세기의 요셉 가족들, 그리고 마가복음에서 거센 풍랑과 질병 앞에서 두려워 떨던 사람들처럼 저 역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할 때 큰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땅에 심겨진 작은 씨앗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라나 큰 나무가 되게 하시는 분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주십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모든 일이 막혀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어둠 속에서도 생명을 길러내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굳게 신뢰하며 믿음으로 나아가겠습니다.
형들은 양식을 사러 갔다가 정탐꾼으로 몰려 감옥에 갇혔습니다. 억울했을지 모르지만, 그 갇힌 시간 속에서 총리 앞에서 무심코 내뱉은 “동생 하나는 없어지고” 라는 말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요셉을 애굽에 팔고 시간이 흘러 형들은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양심은 잊혀져 갔습니다. 그러나 감옥 안에서는 도망칠 곳이 없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원치 않게 갇혔지만, 하나님은 그 사흘을 낭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랫동안 덮어두었던 죄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시고, 진정한 회개와 화해를 가능케 하셨습니다.
(창세기 42:1-17, 마가복음 1-3)
병 고침을 바라는 무리를 뒤로하고 더 큰 사명을 위해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신 예수님처럼 요셉 역시 당장의 양식을 구하러 온 형제들에게 무작정 다가가기보다 진정한 회복을 계획하며 지혜롭게 거리를 둡니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요셉의 모습 속에서 당장 내 눈앞의 상황이 형통하거나 막히는 모든 과정이 결국 하나님의 더 큰 목적을 향해 있음을 깨닫습니다. 삶의 성취나 부족함 앞에서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오직 완전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신뢰하며 오늘 하루도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가족에게 버려지고 외국으로 팔려온 노예 출신이자 감옥에 갇힌 죄수 요셉의 처지는 제가 감히 공감한다고 말할 수 있는 선을 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런 요셉과 함께 하시고, 요셉도 그 사실을 온전히 믿으며 삶을 지켜 가니,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바로와 신하들에게까지 자신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요셉의 영광은 그가 결국 총리가 되었다는 데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한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개인적인 상처도 공감하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 참 좋고 감사합니다. 오늘도 그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모든 인생은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가 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상황과 환경이 그를 어렵게 하고 지치게 하여도 빚어 가심을 신뢰하며 나아간다.
요셉의 인생 목적은 총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살리고, 이를 통해 열방에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시고자 함이었다.
오늘도 나에게 임하실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을 기대한다.
사람은 앞을 향해 나아가길 원하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때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하나님께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사랑은 그저 요셉의 옆에 서서 그와 함께하며 요셉이 무너지지 않게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힘든 일이 있거나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앞에 닥쳐도 하나님이 옆에 계신다는 믿음으로 고난을 헤쳐 나아가길 원합니다.
(창세기 41:25-36, 로마서 14-16)
애굽과 요셉을 통해 이루실 일들의 때를 정확히 정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크신 계획 속에는 로마서 말씀처럼 주님의 종들이 넘어지고 일어서는 세밀한 삶의 과정까지 모두 담겨 있음을 봅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친히 세워가시는 하나님의 완벽한 주권 앞에서 감히 같은 종 된 형제들을 판단했던 저의 교만을 깊이 반성합니다. 저 역시 그저 은혜로 서 있는 한 명의 종에 불과함을 기억하며, 판단의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 41:1-24, 로마서 11-13장)
로마서 11장에서 유대인의 실족을 통해 이방인이 믿음의 자녀로 접붙임 받는 것을 보며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부요하심과 크신 계획을 바울은 찬양합니다. 요셉의 기다림 또한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순종했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제 삶의 좌절과 기다림 그리고 깊은 낙담 모두가 결국 저를 자녀로 빚어내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 모든 과정을 허락하신 주님께 온전한 감사와 순종을 올려드립니다.
요셉이 있는 곳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아버지가 되셔서 자녀들을 돌보시는 것이 감동적입니다. 그 사랑때문에 감옥과 같은 곳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말할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을 믿습니다.
(창세기 40장, 로마서 8-10장)
억울한 옥살이 중에도 타인의 꿈을 해석하며 순종했던 요셉의 시간이 훗날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기근에서 건져내는 회복의 첫걸음이 되었음을 봅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회복이 공동체를 살리듯, 로마서 8장의 말씀은 죄 아래 신음하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온전히 나타나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구원은 선물이자 내 죄악과 방황의 끝이지만, 동시에 내 주위의 사람들과 세상을 살리는 새로운 시작임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도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