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베트남에서 6개월 넘는 코로나 봉쇄로 지쳐갈 때, 다윗처럼 어느 때까지입니까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는 듯했습니다. 너무 사랑했던 하노이를 떠나야 했지만, 주님은 우리를 한국과 캐나다를 거쳐 지금의 대만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상황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으나 변치 않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소망이 있습니다. 언제나 좋은 것만 주시는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참된 평안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나는 매일의 시작을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는가? 아침에 묵상을 한 것으로 퉁치고 있진 않은가? 나는 묵상을 하고도 시간이 지나면 내 감정에 사로잡혀 자꾸 죄인의 길로 가는 연약한 사람이다. 내가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인 것을 하나님도 아신다. 그래서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의 성전으로 가야 한다. 죄가 나를 유혹하고 공격할 때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되자. 나는 비록 부족하게 시작하였을지라도 나의 그 부족한 부분을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채워주실 것이다. 주님이 채우실 사랑에 감사하며 주로 인해 기뻐하는 하루로 마무리하자.
나는 아침에 눈을뜨자마자 무엇을 가장먼저 떠올리는고 하는가? 해야할 집안일, 준비할음식, 일정들, 습관적으로 sns를 들어가서 시간소비... 이런것들에 마음을 뺏겨 하루를 시작하기보다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모든것을 맡겨드리고 하루를 시작해야 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예배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의 기도에는 탄식과 신음도 있지만 끝내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경배하는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겸손히 주님앞에 나아가는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제사임을 묵상합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말씀처럼 상황과 신분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주님 앞에서 바로 서 있는지가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방패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삶의 자리에서 언제나 겸손한 예배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시편4편, 디모데후서)
순교를 앞둔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굳건한 신뢰와 충직한 청지기로서의 다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큰 고난 가운데서도 바울이 누렸던 이 평안은 시편 4편에서도 볼 수 있는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에서 비롯된 것임을 봅니다. 지금 나의 평안이 진정 어디에서 오고 있는지 깊이 점검해 보고 오직 주님 안에서 안식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가엾게 여기셔서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합니다. 의의 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죄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 두려움 마음으로 회개 기도를 올립니다. 오직 주님만이 저를 평안하게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을 되뇌며 기쁨으로 가득한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하루의 긴장을 풀고 평안히 잠드는 밤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지만 요즘은 무더위와 호르몬의 변화로 잠 못 드는 날이 많아 육체의 연약함과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 그러나 참된 평안은 내 환경이나 몸 상태가 완벽할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한계 속에서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찾아옴을 깨닫는다. 내가 깨어 있을 때나 잠들 때나, 주께서 나를 항상 지키시고 돌보아 주심을 믿습니다.
나의 기쁨의 근원은 세상인가 하나님인가? 나를 너그럽게 하시는 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나에게 선을 보이시는 하나님, 내 마음에 기쁨을 두시는 하나님, 나를 안전하게 살게 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이며 구원자이며 아버지되시는 분이신 것에 감사하며 오직 주로 인하여 기뻐하는 자가 되자.
시편 4:7 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 주신 기쁨은 햇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에 누리는 기쁨보다 더 큽니다. 8 내가 편히 눕거나 잠드는 것도, 주님께서 나를 평안히 쉬게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성숙한 믿음이 놀랍습니다. 삶의 위기 가운데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모습과 잘나갈때 누리던 것들이 주지 못했던 참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위기의 순간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은혜가 됩니다. 다윗처럼 넘어졌을때도 주님 주신 기회를 바로 알고 전화위복의 열매를 누리는 인생이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은 나의 방패이시며, 내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감사하게도 아이의 고등학교 공식 합격 소식을 받았습니다. 문득 우리는 눈에 보이는 안전한 방패를 쌓기 위해 참 애쓰며 살아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학교나 안정적인 환경이 영원히 아이를 지켜줄 것 같지만, 세상의 조건은 순식간에 변하거나 사라질 수 있습니다.
아이가 앞으로 마주할 학교나 환경을 의지하기보다, 삶의 방패가 되어 주시고 붙들어 주실 주님만을 더 깊이 신뢰하는 믿음의 자녀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다윗이 아들을 피해 도망하게 된 것은 자신의 범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윗은 심판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나를 사랑하시기에 바른 길로 인도하시려 벌도 내리시는 것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분노 속에서도 나를 놓지 않고 지켜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나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어려움이 하나님께서 나를 주만 의지하도록 훈련시키시는 과정이라고 믿으며 감사함으로 주만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겠다.
시편 3:8 구원은 주님께만 있습니다. 주님의 백성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
다윗이 연약함과 죄악으로 무너졌을때 오히려 그의 믿음이 빛을 발하는 것을 봅니다. 성도의 모습은 이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 또한 날마다 넘어지고 죄악 속에 방황하지만 다윗처럼 주님의 손을 놓지 않고 구원하실 그분께만 의지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평탄함 가운데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고난 가운데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건지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묵상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저의 방패이시고, 영광이시고, 저의 머리를 들어주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저의 믿음이 부족하여 아직도 삶과 믿음을 분리하여 두려움 속에서 스스로의 능력으로 제 앞의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여 조금의 두려움 없이 담대하고 강건하게 지내길 소망합니다.
(시편 2:1-12, 히7-10)
두려운 마음으로 주를 섬기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뻐하라는 시편의 말씀이 히브리서에 나와 있는 우리의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을 통해 다가옵니다. 죄로 인해 두려워할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그리스도를 통해 맺으신 새 계약으로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서 10장은 이 기쁨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얼마나 더 큰지를 보여줍니다. 심지어 고통을 당하거나 재산을 빼앗기더라도 오히려 기쁨으로 받는다고 말합니다. 이 큰 은혜 앞에서 순종을 배우고 그 안에서 주시는 기쁨을 매 순간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드는 생각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편에 선다는 것은 어떻게 매번 확신 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그것을 잘 분별하고 있는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입니다. 학창 시절 속해있던 단체에서 되뇌였던 ’백문일답’이란 것이 떠오릅니다. 모든 질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답하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어린 시절 가정에 방문했던 선교팀이 선물해준 티셔츠에 적혀 있던 ‘WWJD’ 라는 문구도 기억납니다. What would Jesus Do?. 오늘의 본문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속에서 살아가면서 붙잡을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今天在默想話語時,心中浮現的問題是:站在神所喜悅的那一邊,我每一次究竟能有多大的把握?我真的有好好地分辨這件事嗎?這讓我想起學生時代所屬團契中反覆背誦的「百問一答」——用「耶穌基督」來回答所有問題。我也想起了更小的時候,造訪家中的宣教團隊送給我的一件T恤上所印的「WWJD」這句話。What would Jesus Do?(耶穌會怎麼做?)。就像今天的經文所描述的,活在這混亂的時代中,我們唯一能緊緊抓住的,就是耶穌基督!
초신자였던 청년시절 하나님을 믿던 친구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떠났을 때, 충격과 원망으로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고 싶었다. 그분 없는 자유를 찾아 몇 번이나 방황했고, 내 힘으로 내 인생을 채워보려 애쓰며 반항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나를 단 한 번도 놓지 않으셨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넓은 사랑을 느꼈다.
나의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내 삶에 온전히 그분의 자리를 내어드리기를 원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이 내 삶에서 마음껏 일하시도록 기쁘게 동행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비행기를 타면 매우 높은 건물이라도 개미만큼 작아보인다. 그보다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하나님은 어떻겠는가. 세상이 꾸미는 일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비웃을 수 밖에 없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 할 대상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하지만 단순히 두려워함으로 끝나지 않고 여호와를 즐거워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나의 요새이시고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창조 세계를 통해 교훈을 받고, 공부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말씀을 통해 지혜를 얻으며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사용하고 공동체와 함께 즐기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시편 1:1-6, 히브리서1-6)
시편 1편이 그려내는 완전한 의인의 모습이 히브리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봅니다. 내 안에는 시편의 의인처럼 살아갈 능력이 없지만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분이 계시기에 소망이 있음을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오늘도 나의 연약함을 덮으시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않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다 하지만 말씀안에 살고있지 않으면 죄의 본성을 가진 우리는 이 반대로 돌아가게 된다.
지금 내가 따르고있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봐야겠다. 매일 깨어서 주님을 따르며 말씀에 뿌리를 내리는 제가 되길 기도합니다.
시편 1:2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복 있는 사람과 악인을 구별하는 시편의 저자는 말씀에 초점을 두었음을 봅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던 그때도 말씀 묵상을 통해서였음을 기억합니다. 또한 의인의 형통한 삶이 모든일이 다 잘되고 어려움이 없다는 뜻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성도가 말씀안에 거할때 비록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것마저 다 주님의 뜻이요 계획하심으로 믿고 마음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얻을 수 있음을 압니다.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죄인의 길은 높임 받는 법, 섬김 받는 법, 부유해지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율법은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준다. 사랑은 내가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닌 낮은 자리에 앉는 것을 가르치며, 내가 섬김 받는 것이 아닌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것을 가르치고, 내가 가진 물질적•영적 자원을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에게 베푸는 것을 가르친다. 나는 지금 어떤 길로 나아가려고 하는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또 그것을 즐거워하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기쁜 일인지 깨달았으니 늘 주께 감사하며 주의 길로 나아가는 자가 되자.
(고린도전서 16:13-24, 디도서, 베드로전서)
고린도전서와 디도서, 베드로전서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교회가 바르게 서기를 바랐던 사도들의 간절함을 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돌로 삼아 공동체의 중심을 잡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헌신과 질서가 다름 아닌 사랑으로 채워지기를 원했던 베드로와 바울의 마음이 깊이 와닿습니다. 이 귀한 마음을 본받겠습니다. 속한 모든 공동체를 더욱 깊이 아끼며 사랑으로 섬기는 자리에 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