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목록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고린도전서 14:20–40

    今日默想:哥林多前書 14:20–40

    Kyoung Woo Han··조회 46

    제목 : 품위 있게, 질서 있게

    어제 우리는 '알아들음'이라는 잣대 앞에 섰다. 화려한 일만 마디보다 알아듣는 다섯 마디가 낫다는 것...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알아듣게 하라는 그 사랑이, 이제 예배의 '질서'라는 모습으로 구체화된다.

    26절을 보면 초대교회 예배가 눈에 그려진다. 각 사람이 찬송시도, 가르치는 말씀도, 계시도, 방언도, 통역도 가지고 모인다. 성령이 이끄시는 열린 예배의 모습이다. 바울은 이 예배의 다양함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모든 은사에 하나의 잣대를 건다. 즉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어제의 그 '덕 세움'이 오늘도 그대로 기준이 된다.

    그래서 바울은 구체적인 규칙을 준다. 방언은 둘이나 셋이 차례로, 통역과 함께 하라고 말하고, 예언도 둘이나 셋이 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하라고 명한다. 곁에 앉은 사람에게 계시가 임하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근거를 이렇게 이야기 한다.

    고전 14:32-33 32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참된 성령의 감동은 사람의 자기 통제를 빼앗지 않는다. 그래. 멈출 수 있다. 통제 불가능한 황홀경을 영성의 증거로 떠받들던 고린도 사람들에게, 바울은 정반대를 말하는 것이다. 성령은 무질서가 아니라 절제로 나타난다. 교회 안에 질서로 나타난다. 그런데 바울은 이 모든 규칙을 어디에 뿌리내리는가. 바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둔다.

    이것이 중요하다. 질서는 밖에서 강요된 규율이 아니다. 화평의 하나님, 질서의 하나님, 즉 그 하나님의 성품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혼돈이 아니라 평화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배의 질서는 사람을 옥죄는 통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일이다. 이어서 바울이 예배 자리의 또 다른 무질서를 다루는 대목(33절 하반절 이하)은 그 구체적 적용을 두고 오늘까지 견해가 갈리기에 다음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도 바울의 관심은 한결같다. 화평의 하나님을 닮은 질서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바울은 자기를 신령하다 여기는 자들을 향해, 이것이 자기 의견이 아니라 주의 명령임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14장 전체를, 나아가 은사를 다룬 12–14장 전체를 한 문장으로 맺는다.

    고전 14: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두 단어 '품위 있게'와 '질서 있게'를 함께 이야기 한다. 앞의 말은 '합당한 품격을 갖추어, 보기에 아름답게'라는 뜻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백성이 드리는 예배에는, 나아가 그 백성의 삶에는, 화평의 하나님을 닮은 질서와 함께 그분께 어울리는 품격이 배어 있어야 한다. 바울은 방언을 금하지도 예언을 억누르지도 않는다. 다만 그 모든 것이 화평의 하나님을 닮은 질서와 품위 안에서 흘러야 한다고 명령하는 것이다.

    오늘 묵상에서 '품위 있게' 이 한 단어가 오래 남는다. 지난주 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것을, 왕자와 공주의 품위를 입은 자라는 것을 나눴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그 품위를 가정에서, 교회에서, 세상에서 실제로 살아내고 있는가? 하나님 나라의 왕자와 공주라 외치고 돌아온 집에서, 정작 품위 없이 짜증을 부리지는 않았는가. 사람들 앞에서 내 말과 표정과 태도는 그 신분에 어울렸는가. 그래. 나는 솔직히 부끄러운 날이 더 많다. 안다. 품위는 내가 애써 차려입는 겉옷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데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나의 신분을 망각하지 않고, 그 신분에 어울리는 품위를, 가정과 교회에서 그리고 세상과 열방까지 드러내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길 기도한다.

    中文 AI翻譯

    題目:端莊而有序

    昨天,我們站在「使人明白」這把尺前。比起華麗的一萬句話,讓人聽懂的五句話更有價值……然而在今天的經文中,保羅又向前邁進了一步。那份「使人明白」的愛,如今以敬拜「秩序」的具體面貌呈現出來。

    看第26節,初代教會的敬拜景象躍然眼前。每個人帶著詩歌、教導、啟示、方言、翻譯來聚集。這是聖靈引領下開放敬拜的樣貌。保羅並不說這種敬拜的多元是錯誤的。只是對一切恩賜立下一個標準——凡事都當為造就人而行。昨天那把「造就人」的尺,今天依然是基準。

    因此保羅給出具體的規範。他說方言要兩個人或三個人,按著次序,並要有人翻譯;先知講道也當兩個人或三個人,其餘的人要分辨。若旁邊坐著的人得了啟示,先說話的就當閉口不言。他如此說明這樣做的根據:

    林前 14:32-33 32先知的靈是受先知支配的;33因為 神不是叫人混亂,乃是叫人安靜。

    真正聖靈的感動,不會奪去人自我管控的能力。是的,可以停下來。對那些將無法自控的狂喜視為屬靈憑據的哥林多人,保羅說的恰恰相反。聖靈不以混亂顯現,而以節制顯現,在教會中以秩序顯現。那麼,保羅將這一切規範植根於何處?正是植根於神是怎樣的一位神。

    這一點至關重要。秩序不是從外部強加的規條,而是從和平之神、秩序之神——那位神的性情中流淌出來的。因為神自己不是混沌,而是平和。因此,敬拜中的秩序不是束縛人的管控,而是效法神性情的過程。接下來,保羅處理敬拜場合另一種失序的段落(第33節下半節以後),由於具體的應用至今仍有不同見解,或許日後有機會再行探討。但在那段經文中,保羅的關懷始終如一——是效法和平之神的秩序。

    因此,在最後,保羅向那些自以為有靈性的人明確宣告,這不是他個人的意見,而是主的命令。並以一句話總結第14章全章,乃至論及恩賜的第12至14章整個段落:

    林前 14:40 凡事都要規規矩矩地按著次序行。

    他將「規規矩矩」與「按著次序」兩個詞並列而論。前者意指「具備恰當的品格,看來美好端莊」。因此,神的子民所獻上的敬拜,乃至這子民的生命,都應當浸透著效法和平之神的秩序,以及與祂相稱的品格。保羅既不禁止方言,也不壓制先知講道,只是命令一切都當在效法和平之神的秩序與端莊之中流動。

    在今天的默想中,「規規矩矩」這一個詞久久縈繞心間。上週我分享了我們是神的後嗣,是披戴王子與公主尊貴的人。然而,我開始反問自己:我真的在家庭裡、在教會裡、在世界中活出了那份尊貴嗎?高呼著神國王子與公主的身分回到家後,是否反而失了風度,任意發著脾氣?在人前,我的言語、表情與態度,是否與那身分相稱?是的,說實話,令我慚愧的日子更多。我明白——尊貴不是我刻意穿上的外衣,而是從知道自己是誰這件事中流淌出來的。因此,今天我也禱告,願自己不忘記這身分,在家庭與教會中,乃至向這世界與萬邦,活出與那身分相稱的尊貴。

    댓글 / 留言 (0)

    로딩 중...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留言需要先登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