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지파는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둔 길을 가면서 형식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었고, 레위 청년은 더 큰 이익을 기뻐하며 따라갔습니다. 저도 이미 마음을 정해놓고 하나님께 맡겼다며 마음을 편하게 생각했던적이 있습니다. 이미 답을 정해둔 내 길에 성경 구절을 찾아 명분을 만들고, 내 마음이 기뻐하는 일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진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승인을 확인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좋게 여기시는지 묻고 듣는 정직한 기도를 드려야겠습니다.
오늘의 묵상을 읽고 다시 한번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었다.
항상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고 고백하지만, 가끔은 하나님의 뜻이 내 뜻과 비슷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우리에게도 각자 원하는 것이 있지만, 이런 마음이 들 때면 과연 내가 하나님의 종인지, 아니면 오히려 하나님을 나의 종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오늘부터 다시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높이고, 나 자신을 내려놓으며 살아가자.
어머니의 은을 훔쳤다가 저주가 두려워 회개 없는 고백을 하고, 그 가족은 그들만의 입맛에 맞추어 하나님을 기복의 도구로 섬깁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던 그 시대의 비극은 오늘날 내 신앙의 자리에도 거울처럼 비칩니다. 참된 신앙의 척도는 그럴듯한 포장이나 거짓 확신이 아니라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성경앞에 정직하게 나를 비추며 말씀을 읽고 온전히 따르는 순종의 삶에 더욱 힘쓰기를 소망합니다.
사사기 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
미가와 그의 어머니의 모습속에서 말씀 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위험하고 위태로운지 잘 보여줍니다. 말씀이 없는 열심과 신앙은 미가의 집안과 같이 하나님을 오해하고 나아가 그의 뜻과 반대로 행하는 죄를 범하게 합니다. 거룩한 주일을 맞아 말씀앞에 더욱 겸손히 나아갈 수 있게 하시고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호6:3, 개역한글]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주께서 허락하신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과 소통하며 전생애 속에서 하나님을 힘써 알며 우리의 소견과 내 손에 쥔 것을 내려놓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미가와 어머니는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도 자신의 욕망만 채우는 기복신앙에 빠졌습니다. 말씀을 기준 삼지 않고 자기 편의대로 제사장을 세우며 복을 받을 것이라 착각했습니다.
저의 신앙이 단지 복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는 신앙이 되길 원합니다. 단순히 교회 출석과 봉사에 안주하지 않고, 매일의 삶에서 말씀대로 순종하는 참된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저와 모든 진리교회 한어부 성도들이 주님의 뜻 안에 바로 서길 기도합니다.
미가는 여호와를 알고 있었고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하나님을 잘못 알았고 그 이름을 망령되이 불렀다. 내가 하나님 위에 올라가 꼭두각시처럼 만들고 있다면 그것 또한 우상숭배다. 하나님을 바알처럼 섬기지 말자.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말씀을 읽어야 한다. 나는 성경을 적지 않게 읽었지만 그것을 깨닫고 그대로 살아가냐고 물으면 사실 그렇지 않다. 이제는 나의 입술로만 여호와를 공경하는 자가 아닌 마음이 하나님께 가까워지기를, 사람의 계명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며 살아내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삼손의 삶을 묵상하면 끝까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의 모습도 다르지 않아 낙심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이 변함없이 이끄시고 역사하시기에 삼손의 연약함도 강한 그의 두 팔로 붙드셨듯 나의 연약함 모습도 받으시는 주님 앞애 오늘도 겸손히 나아가기 원합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절 말씀처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기 소망합니다. 수련회 가운데 역사하실 주님을 기대합니다.
삼손은 자기눈에 좋은대로 마음이 원하는대로 계속 살아가다가 눈이 멀었고 안타깝게 그제서야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자신밖에 몰랐던 삼손이 다시 힘을 달라고 기도하고 응답받았듯이 하나님은 항상 부족한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사용하십니다. 그의 의와 나라를 구하는 기도가 아니였어도 하나님은 저에게 항상 좋은것만 주셨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은혜를 부어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살아갈수 있도록 주님을 바라보며 기쁘게 순종하는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사람의 연약함이 주님의 영광을 훼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스스로 영광을 드러내시고 스스로 신실하심을 나타내신다. 다른 민족이 자기네 신을 높이고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조차 하나님을 떠났지만 주님은 그 속에서도 스스로 나타내셨다. 부르짖지 아니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일하시는데 주님께 진정으로 부르짖는 자에게는 얼마나 큰 임재가 있겠는가. 오늘 수련회가 시작된다. 하나님이 아닌 나를 위해 살았던 교만한 마음이 깨지고 나의 힘 되신 여호와를 바라보는 시간이 되길, 하나님만 왕으로 임하는 수련회가 되길 소망한다.
15장이 삼손이 20년동안 사사로 지냈음을 알리며 마치는거에 무색하게 16장의 시작은 블레셋 땅, 그것도 기생의 집에서 나오는 삼손으로 시작합니다. 탁월한 은사에 비해 미성숙한 인격은 주변과 내면에서 흔히 발견되는 연약함입니다. 하지만 그 불일치를 대수롭지 않게 방치하면 삼손과 같이 죄의 경계선이 무너지며 결국에는 무감각해지는 것을 봅니다. 일상의 자리에서도 인격을 십자가에 매어놓는 순종을 연습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삼손을 보고 조금씩 타협하는 생활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최근..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너무 힘들다는 핑계로.. 말씀을 읽는 양이 줄었습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에도, 하나님을 찾고 드리는 기도보다는 어제 붙잡고 있던 문제가 먼저 떠오르고는 합니다. 이해해 주시겠지.. 라는 자기 위안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려 합니다. 회개하여 주께 오롯이 돌아서길 소망합니다. 아멘
죄는 은밀하게 숨어서 오지 않는다. 대놓고 나를 유혹하고 흔든다. 영적인 눈이 어두울 땐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이정도는 괜찮겠지하며 조금씩 죄와 타협하기 시작한다. 안 괜찮다! 하나님은 내가 타협할 대상이 아니다. 나의 모든 기준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나는 쉽게 넘어지는 자다. 그리고 내 힘으로는 다시 일어날 수 없다. 나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내게 손 내밀어주시는 예수님이 필요하다.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이 필요하다. 죄가 아니라, 죄에 걸려 넘어진 내가 아니라 그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삼손은 나실인이자 사사였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블레셋 사람들보다도 더욱 불신자 같은 생활을 이어갑니다. 사실 나를 비롯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평가를 받고 살아가는것 같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써 살아가지만 모범이 되기는커녕 날마다 조금씩 타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마치 삼손이 들릴라에게 거짓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위태로운 모습과도 같습니다. 삼손의 최후를 알기에 더욱 위기감을 느낍니다. 오늘 당장 내가 끊어내야 할 불순종을 가르쳐 주시고 돌이킬 힘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삼손은 늘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 길을 묻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기도 역시 이러한 삼손의 모습과 비슷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이 내 삶을 인도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가 마음속으로 정해놓고 하나님께 승인만 원했습니다. 기도를 통해 주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뜻을 통과시키려 한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제가 어떤 방향으로 가길 원하시는지 묻는 순종의 기도를 드리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망나니 같던 삼손마저 극심한 갈증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나 당시 이스라엘은 회개의 부르짖음조차 잃어버렸음을 봅니다. 현대의 인본주의적 시선으로 구약시대 사람들의 흠결을 판단하며 도덕적 우월감에 현대인들이 저들보다는 낫지라 생각하지만 정작 하나님과의 본질적인 관계에서는 예전과 비슷하게 절박하게 부르짖지도 않는 안일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겉모습의 정돈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의 결핍을 주님 앞에 솔직히 내려 놓고 구하는 참된 갈망을 회복하기를 소망합니다.
자신의 정욕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것, 모든 일에 남 탓만 하는 것, 잘 된 일은 다 내 공으로 여기는 것, 필요할 때만 기도하는 것 등 삼손이 보여준 많은 모습이 나에게도 있다. 삼손은 사사로서 사명을 감당하지도 않았으며 우리가 보기에 너무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엉망진창인 사람을 붙들고 주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은 엉망진창인 나를 붙드신다. 나를 주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나의 행위가 아니라 주님의 신실하심이다. 오늘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과 복수를 위해 주저하지 않고 사용합니다. 나실인으로 사사로 부름받았지만 전혀 구별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삼손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더욱 오해없이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실 나의 능력이나 심지어 신실함마저도 필요하지 않으신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나도 삼손처럼 주께 받은 은혜를 내 공으로 돌리기 십상이고 남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할 은혜를 내 안위만을 위해 낭비하기 때문입니다. 삼손의 모습속에 보이는 나의 교만함을 주님께 내려놓고 회개합니다.
삼손은 자기 마음대로 힘을쓰고 교만한데도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그는 ‘내가‘ 라는 말만 가득했고 갈증을 느끼고서야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교만한 삼손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불편했지만 이내 그모습이 제 모습인것을 깨닫게되었습니다. 일이 잘풀릴땐 내힘으로 해낸것처럼 착각하지만 작은일로 바로 무너지고 그때야 하나님을 찾기때문입니다. 매일 비유로 저를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모든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항상 기억해야겠습니다. 한계에 부딪혀 주님을 찾는것이아니라 항상 주님을 의지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다른 사사들과는 달리 자신의 연약함을 자각하며 다듬어질 기회 없이 삼손은 거저 주어진 초월적 힘에 취해 방자하게 살아갑니다. 영적 성숙이 결여된 은사는 교만으로 이어지며, 영혼을 파멸로 이끄는 덫이 됩니다. 한편 그 빗나간 교만도 구원 섭리를 이루는 도구로 바꾸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도 보게 됩니다. 주신 은사와 기도를 내 힘으로 착각하는 교만을 경계하며 날마다 주권자 하나님 앞에서 저를 복종시키는 청지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삼손이 행한 일련의 결정들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저의 모습을 봅니다. 처음에는 삼손을 보며 마치 저의 못난 모습을 성경을 통해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지만.. 매일 매일 이렇게 기도하고, 말씀에 비춰 스스로를 돌아보며..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소망을 품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성화'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아멘
인간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강함을 숨길 수 없고 인간의 죄악이 주님의 선하심을 감출 수 없다. 삼손의 정욕과 감정적인 행동마저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셨다. 그렇다고 악한 마음과 나의 유익을 위해 행한 것이 잘한 행동은 아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내가 그렇게 선택했던 것을 바꿀 수 없듯이 이미 내게 부어주신 주님의 은혜도 나에게서 앗아갈 수 없다. 내 욕심을 따라 한 선택조차도 선하게 사용하시는 주님께 감사한다. 이제는 하나님께 멱살잡혀 끌려가는 은혜도 좋지만 주님과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자로 거듭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