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세상 앞에서 우리의 안정은 땅의 터에 있지 않고, 하늘의 보좌에 계신 하나님께 있다. 은혜 가운데 머물러 있을 때 정직함이 서고, 그렇게 선 자가 마침내 그 얼굴을 뵈올리는 것이다.
在這崩塌的世界面前,我們的安穩不在於地上的根基,而在於坐在天上寶座上的神。當我們住在恩典之中,正直才得以站立;如此站立的人,終將得見祂的面。
시편 11:1-7
무너지는 세상 앞에서 우리의 안정은 땅의 터에 있지 않고, 하늘의 보좌에 계신 하나님께 있다. 은혜 가운데 머물러 있을 때 정직함이 서고, 그렇게 선 자가 마침내 그 얼굴을 뵈올리는 것이다.
在這崩塌的世界面前,我們的安穩不在於地上的根基,而在於坐在天上寶座上的神。當我們住在恩典之中,正直才得以站立;如此站立的人,終將得見祂的面。
시편 11:1-7
(시편 11편, 요한복음 9,10장) 세상의 잣대로 보면 시편 기자의 삶의 터전은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견고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요한복음에서도 예수님을 증거하다 유대 사회에서 출교당한 맹인을 주님은 직접 찾아가 만나주시고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심을 선포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언제든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지만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를 보게 됩니다. 항상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실 것을 굳게 믿고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저를 직접 찾아오시는 그 말씀을 더욱 단단히 붙드는 삶을 살겠습니다.
(詩篇第11篇、約翰福音第9、10章) 用世界的標準來看,詩篇作者的生命根基彷彿已完全崩塌,然而神卻成為他堅固的避難所。在約翰福音中,那位因見證耶穌而被逐出猶太會堂的盲人,主親自去尋找他、與他相遇,並宣告自己是我們善良的牧人。世上的一切隨時都可能動搖、崩塌,但我們看見了永不懼怕的理由。我要堅定相信祂必引領我走向常青的草場,在這動盪的世界中,緊緊抓住那親自來尋找我的話語,以此過每一天的生活。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일에 무관하고 신경을 안 쓰신다 여기며, 약한 자와 가여운 자를 핍박하는 악인이 종횡하는 세상과 그러한 세상을 하나님께서 바로잡아 주시기를 기원하는 기도인 것 같습니다. 세상을 종횡하는 악에 휘둘리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을 행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今天的話語,似乎是一篇描述這樣一個世界的禱告——在這個世界裡,惡人橫行,欺壓軟弱與可憐的人,以為神對世間之事漠不關心、毫不在意;同時也是祈求神來匡正這樣的世界。願我們這一天,不被橫行世間的惡所左右,只因信心而行善——為此禱告。
시편 10편의 세상처럼 오늘날도 가난하고 연약한 자가 짓밟히고 악이 거침없는 부조리한 세상이다.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 주저앉아 원망하기보다, 시인과 하박국처럼 주님께 문제를 가져가 도우심을 구하며 씨름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미 악의 종말과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할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는 나만을 위한 기도보다는 세상의 악이 무너지고 연약한 자들이 보호받으며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기를 기도하자. 또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자가 되기를 소망하자.
如同詩篇第10篇所描繪的世界,今日依然是一個貧窮軟弱者遭受踐踏、邪惡橫行無阻的不公義世界。當神似乎沉默不應允時,我們不要灰心坐下、心存抱怨,而要像詩人與哈巴谷一樣,將問題帶到主面前,尋求祂的幫助,與神摔跤、竭力爭求。神已經應許,邪惡終必滅亡,耶和華的榮耀必充滿全地。因此,今天讓我們不只為自己禱告,更要為世上的惡得以傾倒、軟弱者得蒙保護、神的公義得以彰顯而禱告。在艱難困苦的時刻,也讓我們因神而喜樂,立志成為以善勝惡的人。
살다보면 정말 선한 논크리스챤들을 만나기도 하고 반대로 정말 악한 크리스챤들을 만날때도 많은것 같습니다. 그럴때마다 저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렸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드는 의문은 과연 내가 생각하는 악인이 하나님 보실때도 악인일까?라는 것입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닌 경우가 적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이제는 내가 스스로 재판장이 되었던 교만함을 내려놓고 다윗처럼 철저하게 하나님을 재판장으로 삼는 인생이 되길 소망합니다.
生活中,我們有時會遇到真正善良的非基督徒,反過來,似乎也常常遇到真正邪惡的基督徒。每當這種時候,我也像大衛一樣,等待著神的審判。 然而,今天在默想話語時,心中浮現了一個疑問:我所認為的惡人,在神眼中也是惡人嗎?雖然無法確定,但我心裡覺得,並非如此的情況應該不在少數。 如今,我渴望放下那自以為是審判官的驕傲,像大衛一樣,徹底以神為審判者,活出這樣的人生。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답답함과 질문을 토로하고 있지만 결국 기도를 통해 문제에 집중하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립니다. 때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마음이 답답한 일들을 마주하지만,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를 보고 계시며, 듣고 계시고, 일하고 계시는 주님께 우리의 온 마음을 쏟아 놓으며 기도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大衛向神傾訴內心的鬱悶與疑問,但最終透過禱告,將原本聚焦於問題的目光轉向了神。 有時我們會面對令人完全無法理解、內心深感鬱悶的事,但我們所當專注的,並不是問題本身。願我們能將整顆心傾倒在那位此刻仍看顧著我們、聆聽我們、並在我們生命中動工的主面前,以禱告親近祂。
주께서는 보고 계신다. 온 세상이 무너져 보일 때도 하나님의 왕되심은 영원하며, 약한 자를 향한 구체적인 정의로 나타난다.
主正看顧著。即使整個世界看似崩塌,神的王權永遠長存,並具體彰顯為對弱者的公義。
시편 10:16
(시편 10편, 요한복음 7,8장) 시편의 악인과 요한복음의 바리새인들을 보며 지식과 굳어진 사상이 얼마나 눈을 멀게 하는 덫이 될 수 있는지 봅니다. 자신들의 틀에 갇혀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한 채 오히려 밀어냈습니다. 나나 다른사람의 어떠함이나 높낮이라는 잣대를 내려놓고 항상 하나님 안에 머물며, 진리만이 주실 수 있는 참된 자유와 안식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詩篇第10篇、約翰福音第7、8章) 看著詩篇中的惡人與約翰福音中的法利賽人,我深刻體會到,知識與根深蒂固的思想,是如何成為遮蔽眼睛的陷阱。他們困在自己的框架裡,耶穌就在眼前,卻認不出祂,反而將祂推開。我渴望放下以自己或他人的狀態、地位來衡量一切的標準,常常住在神裡面,享受唯有真理才能賜予的真自由與安息。
내가 하나님께 너무 피해자 코스프레로 포장된 삶을 살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면 내가 피해자라면 가해자가 있게 마련이고, 내 입장과 상황이 늘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하나님께 나만 억울한 냥, 내 원수를 물리쳐 달라며, 내 사정을 읍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 경우엔 내가 가해자의 입장이 되어 내가 타인의 원수가 되고 그들이 하나님께 변론과 송사를 맡긴 대상이 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돌아보니 그런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억울한 상황도 싫지만, 타인의 삶에 해가 되는 상황도 안 만들도록 하나님 인도하소서.
我開始思考,自己是否在神面前活出了一種過度包裝成「受害者姿態」的人生?因為如果我是受害者,必然就有加害者存在。我的立場與處境總是站在受害者的角度,向神訴說只有我委屈,求祂擊退我的仇敵、為我申冤——若真是如此,事情或許還簡單些。但在某些情況下,我其實是站在加害者的位置,成為別人的仇敵,而他們才是將辯護與訴訟託付給神的那一方。不,回顧過去,這樣的情況其實並不少。委屈的處境固然難受,但求神引導我,也不要讓自己成為傷害他人生命的存在。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제 사정을 변호해 주시는 분이시자, 동시에 공정하고 의로운 재판관이라고 하십니다. 오늘도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찾아뵙습니다. 부디 하나님과의 관계가 두터워져 오롯이 믿고 의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今天的話語說,神是為我申訴辯護的那一位,同時也是公正而公義的審判者。今天也藉著默想,前來尋見神。衷心盼望與神的關係能夠更加深厚,使我能全心信靠、倚賴祂。
오늘 본문은 의인을 변호하시는 하나님과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의인을 일으키시는 주님과 스스로 걸려 넘어지는 악인, 하나님을 잊어버린 악인과 하나님이 잊지 않으시는 의인 또 그 모든 것으로 즐거워하는 의인과 두려워하는 악인의 모습이 대조된다. 나는 지금 어떤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가? 하나님이 나를 기억해주시는 것으로 기뻐하고 있는가? 아니면 심판 받을 날이 다가옴에 두려워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으니 날마다 그리스도로 옷입어 주님께 삶의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길, 주님으로 인해 기뻐하며 승리하는 자가 되길 소망한다.
今天的經文對比了為義人辯護的神與審判惡人的神、扶起義人的主與自己絆倒跌落的惡人、忘記神的惡人與神不忘記的義人,以及因這一切而歡喜快樂的義人和心存懼怕的惡人。我現在所遇見的是哪一位神?我是否因神記念我而心中喜樂?還是因審判的日子將近而心存恐懼?神已拯救了我,願我每天以基督為衣,成為向主獻上生命敬拜的人;願我成為因主喜樂、得勝有餘的人——這是我心中的渴望。
다윗의 시편을 묵상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쉽게 이해가 되어 그렇기도 하지만 그의 삶을 볼때 지난주일에 목사님이 말씀하신 삶 자체가 예배가 되는 모범적인 모습이 큰 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수 많은 죄악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크게 들어 쓰신 이유가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다윗의 삶을 닮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큰 죄악은 멀리하려 노력하지만 삶의 작은 부분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단 내 힘으로 해쳐나가려 하는 교만함을 회개합니다.
默想大衛的詩篇,心裡就感到平靜與安慰。一方面是因為詩篇對神的描繪極為細膩,讓人能輕易理解神是怎樣的一位神;另一方面,看到大衛的生命本身,正如上主日牧師所講的「生活本身成為敬拜」的榜樣,這讓我深受恩典。這也讓我明白,為何神能大大使用大衛,儘管他有許多的罪惡與軟弱。 我渴望效法大衛的生命,現實中卻往往力不從心。我努力遠離重大的罪惡,但在生活的每一個細節裡,我卻不倚靠神,反而想憑自己的力量闖過去——我為這份驕傲悔改。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에도 늘 함께해 주신다. 그것을 잘 아는 다윗은 고난이 다 지나가기 전에도 먼저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찬양했다. 내 삶에 당장 어려움이 닥쳤을 때, 불평하기보다 지금까지 내 삶을 인도해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겠다. 또한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 의지하지 않고 나의 약함을 인정하며 하나님만을 나의 요새로 삼는 겸손한 삶을 살아야 겠다.
神在任何處境中都始終與我們同在。深知這一點的大衛,甚至在苦難尚未過去之前,就先記念神所行的作為,獻上讚美。當困難突然臨到我的生命時,我不應該抱怨,而應記念神直到如今引領我生命的恩典,並心存感謝。此外,我也要不倚靠所處的環境,承認自己的軟弱,單以神為我的避難所,過一個謙遜的生活。
세상이 잊어도 하나님은 궁핍한 자를 잊지 않으신다. 우리 손이 약할 때 우리를 붙드시는 그분의 손이 우리를 놓지 않으신다.
世界或許會遺忘,但神不會忘記貧窮軟弱的人。當我們的手軟弱無力時,祂緊握著我們的手,永不放開。
시편 9:10, 9:18
(시편 8편, 요한복음 5,6) 시편을 통해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통치를 봅니다. 반면 요한복음 에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무리가 예수님을 세상의 왕으로 삼으려 하자 이를 미련 없이 떠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통치는 단지 우리의 육신을 먹이고 입히며 세상의 필요를 채워주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썩어질 양식을 넘어선 영생의 말씀으로 우리 삶을 다스리십니다. 나의 신앙은 세상을 바라보고있는지 아니면 그 영생의 말씀을 붙드는 제자의 길을 걷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詩篇第8篇、約翰福音第5、6章) 透過詩篇,我們看見神統治萬物的榮耀主權。另一方面,在約翰福音中,我們看到當經歷了五餅二魚神蹟的群眾想要立耶穌為世上的王時,耶穌毫不留戀地離開了他們。真正神的統治,並非止步於餵養我們的肉身、為我們遮風避雨、滿足世上的需求,而是以超越必朽糧食的永生話語,來掌管我們的生命。這讓我反思:我的信仰是否仍在仰望世界,還是正走在緊握那永生話語的門徒之路上?
광대하고 아름다운 창조 세계에 비해 나는 초라한 죄인처럼 느껴지며, 발전하는 세상 속에서 나는 비루하고 미련해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령을 불어 넣으시고 영화와 존귀로 지으셔서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다. 또한 가장 연약한 어린아이의 입에 권능을 세워 원수를 이길 힘을 이미 부여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초라해질 때는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교만해질 때는 피조물의 한계를 기억하며 겸손해야 한다. 결국 온 땅에 울려 퍼져야 할 이름은 여호와이심을 기억하며 그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자가 되자.
面對廣大美麗的受造世界,我有時感覺自己像個渺小的罪人;在不斷進步的世代中,我有時也顯得卑微愚拙。然而,神向我們吹入了生命的氣息,以榮耀尊貴造就了我們,使我們能治理萬物。祂更在最軟弱的嬰孩口中立下能力,早已賜予我們勝過仇敵的力量。因此,當我感到渺小時,要想起顧念我的神;當我感到驕傲時,要記得受造物的有限,謙卑自己。最終,讓我們記住:當響徹全地的名字是耶和華,並成為一個為能參與這事工而感恩的人。
천지를 창조하신 장엄한 하나님, 인간을 사랑하사 은혜를 베푸신 사랑의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그 크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주님께서 주신 오늘도 주님의 뜻에 맞게 살기를 소망합니다.
讚美那創造天地、威嚴榮耀的神,也讚美那愛人類、施予恩典的慈愛之神。感謝祂如此廣大的恩典,並盼望在主所賜的今天,能活出符合主旨意的生命。
다윗의 시를 묵상하고 있자면 하나님이 다윗을 얼마나 기뻐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마음과 생각과 입술은 여호와를 찬양하고 드높이는것에만 진심이었음을 봅니다. 눈을 떠서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매우 섬세하고 진정성 있게 하나님을 묵상하고 찬양하는 그 모습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그 목적에 가장 부합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며 반면 내 모습과 너무 대비되어 부끄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이불킥 속에서도 저 또한 자격이 아닌 은혜로 살아가는 성도이기에 오늘도 부족한 모습마저 기쁘게 받아주실 주님을 찬양하며 나아갑니다.
默想大衛的詩篇時,心中不禁想著,神究竟有多喜悅大衛。我看見他的心思、意念與嘴唇,都真誠地獻給讚美與高舉耶和華這件事。從睜開眼到入睡,他如此細膩而真摯地默想、讚美神的樣子,正是神創造人類之目的最完美的體現。反觀自己,對比之下,不禁感到慚愧。然而,即便在那無數次懊悔輾轉之中,我也是一位靠著恩典而非資格活著的聖徒,因此今天也要讚美那位願意喜悅接納我不足之處的主,繼續向前行。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 사람이 무엇이길래 주께서 생각하시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망각하며 하루하루를 이어가는데...내가 무엇을 했다고...그저 부끄러운 존재로만 생을 이어가는데, 내게 영화와 존귀의 면류관까지 씌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금까지 내게 베풀어 준 삶, 그 안에 얼기설기 엮여있는 많은 삶의 인연들을 들추어 보며, 모든 것이 그의 생각이고, 모든 것이 그의 돌보심이었음 찬양합니다.... 여호와 그 이름이 온 땅에 아름답도다. 아멘
用祢的手指所造的祢的諸天,並祢所陳設的月亮星宿,人算什麼,祢竟顧念他⋯⋯在忘卻何為美麗的日子裡一天天度過⋯⋯我又做了什麼⋯⋯不過是以羞愧的姿態延續著生命,祢卻將榮耀尊貴的冠冕戴在我頭上,讚美這樣的神。回顧祢賜給我至今的人生,以及其中交織纏繞的許多生命中的緣分,一切都是祢的心意,一切都是祢的看顧,我要讚美祢⋯⋯耶和華-我們的主,祢的名在全地何其美!阿們
하나님은 광활한 우주의 티끌 같은 나를 기억하시고, 구원하시며, 돌보아 주시지만 그 놀라운 은혜를 너무 자주 잊고 살아갑니다. 주님은 우리를 세상의 그 무엇보다 존귀하게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받은 자녀답게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神記念著在浩瀚宇宙中如塵埃般渺小的我,拯救我、看顧我,然而我卻常常忘記這份奇妙的恩典。 主造我們,使我們比世上任何事物都更加尊貴。願我們能活出蒙神榮耀的兒女樣式。
연약한 나를 기억하고 관을 씌우신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완성되며, 그 형상을 회복해주신 그분 안에서 나는 계속해서 한 걸음씩 나아간다.
神記念軟弱的我、並賜冠冕予我的恩典,在耶穌基督裡得以完全成就;在那位為我恢復形象的祂裡面,我繼續一步一步地向前行。
시편 8:1-9
(시편 7편, 요한복음 3,4) 시편에서 말하는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과 요한복음에서 사마리아 여인의 감추어진 과거를 보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주님께서 저의 죄와 부끄러움을 빛 가운데로 드러내시는 것은 정죄와 심판을 위함이 아님을 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수치가 드러난 순간 비로소 참된 구원을 알게 된 것처럼 나의 죄가 더 더럽고 크게 다가올수록 나를 품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훨씬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 크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詩篇第7篇、約翰福音第3、4章) 在詩篇中,我看見那位鑒察人心與良心的公義之神;在約翰福音中,我看見耶穌洞悉撒馬利亞婦人隱藏已久的過去。我看見,主將我的罪與羞恥顯露在光中,並非為了定罪與審判。就像撒馬利亞婦人的羞恥被揭露的那一刻,她才真正認識了救恩——我的罪越顯得污穢深重,神包容我的恩典就越發顯得廣大無比。為著那莫大的恩典,我獻上感謝。
믿음의 조상들은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으로 하루를 보낸다. 자신의 행위이든,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든 모두 하나님과 결부시켜 감정을 표하고, 해결을 모색한다. 지금의 나는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의 내주하심을 인식하지 않고, 내 경험, 전문가, 심지어 ai에게 나를 결부시켜 하루를 시작하고 끝을 내고 있다.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도전 주는 것은 내 시작과 마무리가 다시 하나님으로 환치되어 내 경험과, 도움의 손길조차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내주하심 가운데 더욱 온전해지길 소망한다. 내가 더욱 하나님께 민감하게 하소서. 아멘.
信心的先祖們以神為起點,也以神度過每一天。無論是自己的行為,還是關係中所產生的問題,他們都將一切與神聯結,向祂傾訴情感,尋求解決之道。而現在的我,在許多方面都未曾意識到神的內住,反而將自己的經驗、專家的意見,甚至 AI,作為我一天的起點與終點。藉著話語再一次給我挑戰——願我的開始與結束重新歸回神,使我的經驗與所得的幫助,都在神的掌管與內住中變得更加完全。求讓我對神更加敏銳。阿們。
하나님께서는 재판장이시며, 방패라고 하십니다. 마음이 올바른 자를 구하시고, 악인을 향해 진노하시는 분이라고 하십니다. 의로운 주님을 찬미하며, 그 분의 은혜로움으로 말미암아 보시기 좋은 하루를 살기를 희망합니다.
神是審判者,也是盾牌。祂拯救心地正直的人,向惡人發出憤怒。願我們讚美這位公義的主,藉著祂的恩典,活出祂眼中看為美好的每一天。
시인은 욥과 같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항변하지만 또 어느새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나열한다. 나는 고통 속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고난 뒤에 올 영광의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는가?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의 질서를 정하신 크고 위대한 하나님이 그저 괴로워 부르짖는 연약한 나를 바라보시고 도와주시려고 하는지를 알면 그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영광인가. 나는 날마다 넘어지는 자이지만 하나님은 그런 나를 대장부처럼 일으켜 세우시고 주의 길로 나아가게 하신다. 늘 하나님을 기억하며 주님을 붙들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한다.
詩人如同約伯一般,主張自己的清白並為自己申辯,卻又不知不覺地開始述說神是怎樣的一位神。我在苦難中,眼目所注視的是什麼?我是否想到了苦難之後將要來臨的榮耀之神?創造天地、定立世界秩序的那位偉大崇高的神,竟然俯視著只是在痛苦中呼求的軟弱的我,並願意伸手幫助我——當我明白這一點,這是何等大的喜樂與榮耀。我雖是每天跌倒的人,但神卻要將這樣的我如勇士般扶起,使我行走在主的道路上。我盼望每天記念神、緊緊抓住主,活出得勝的生命。
삶에서 뜻하지 않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나는 과연 다윗처럼 그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 앞에 쏟아놓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과 마음을 모두 통찰하시는 분이시기에, 가장 공정하게 상황을 바라보시고 판단해 주신다. 다윗을 괴롭히던 수많은 억울한 일들과 무성한 소문들은 결국 다 사라졌지만, 그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오직 진실했던 다윗의 기도뿐이었다. 사람에게 변명하고 감정을 쏟아내기보다, 내 모든 억울한 마음을 오직 주님께 온전히 맡기며 잠잠히 무릎 꿇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在生命中遭遇意想不到的委屈時,我是否真能像大衛一樣,將那份心情完全傾倒在神面前?因為神洞察我們的內心與思想,祂能最公正地看待每一個處境並為我們申辯。那些曾經壓迫大衛的無數委屈與紛紜謠言,終究都一一消散;然而在這一切之中,最終留存下來的,唯有大衛那真誠的禱告。我深切渴望,不再向人辯解、宣洩情緒,而是將心中所有的委屈,單單全然交託給主,成為一個靜默俯伏、屈膝禱告的人。
시편 7:17 나는 주님의 의로우심을 찬송하고 가장 높으신 주님의 이름을 노래하련다. 다윗은 능력있고 권력을 가졌던 인물이지만 그런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때론 인생의 위기가 찾아오고 억울함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럴때는 의지할곳이 없어 주님을 찾지만 오히려 평탄할때 주님을 잊고 살아가는 내 모습이 두렵습니다. 평틴할때 주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며 고난 가운데서 철저히 엎드려 주의 도우심을 구한 다윗처럼 기쁠때나 슬플때나 주님과 동행하는 모습이 되길 소망합니다. 또한 정의로운 성도가 되길 기도합니다.
詩篇 7:17 我要稱謝耶和華,因為祂是公義的;我要歌頌至高者耶和華的名。 大衛雖是一位有能力、有權勢的人物,卻不倚靠這些,而是單單倚靠神而活。人生有時會遭遇危機、蒙受冤屈,在那樣的時刻,因為無處可依,才來尋求主;然而,反觀自己在平順時卻忘記主的樣子,令我感到懼怕。我渴望自己能像大衛那樣——在平坦時讚美主、將榮耀歸給祂,在苦難中徹底俯伏、尋求主的幫助——無論喜樂或悲傷,都與主同行。同時,我也禱告自己能成為一個活在公義中的聖徒。
세상 법정은 증거 부족하면 진실을 놓치지만,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는 의로우신 재판장 앞에서는 악이 자기 손으로 판 웅덩이에 스스로 빠진다.
世上的法庭因證據不足而錯失真相,但在鑑察人心與良知的公義審判者面前,惡人必自陷於親手所挖的坑中。
시편 7:9
(시편 6편, 요한복음1,2) 짙은 어둠 속에서 탄식하는 다윗을 보며 세상의 어떠한 지식이나 지혜로도 씻어낼 수 없는 죄의 무거운 현실을 봅니다. 다윗조차 비껴갈 수 없었던 이 캄캄한 절망을 찢고 요한복음의 주님은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동시에 이 구원의 은혜는 저 혼자만 누리고 간직하라고 주신 것이 아님을 봅니다. 나만 가지고 있는 복음의 테두리를 넘어서서 이 생명의 빛을 주변의 영혼들에게 온전히 비추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詩篇第6篇、約翰福音第1、2章) 看見大衛在深沉的黑暗中哀嘆,我看到了罪的沉重現實——那是任何世間的知識或智慧都無法洗滌的。約翰福音中的主,衝破了連大衛也無法倖免的這片漆黑絕望,以「照亮所有人的真光」來到我們中間。我為神這深厚的憐憫深深感恩。同時,我也看見:這救恩的恩典,並不是只賜給我一人獨享、珍藏的。我渴望能跨越只屬於自己的福音框架,將這生命之光完全照耀在周圍靈魂的身上,如此地活下去。
복음을 읽어가며, 제가 얼마나 그릇된 죄인인가를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제가 저지른 죄를 주워 삼기듯 회개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런 잘못을 했고, 또 저런 잘못을 했고... 오늘 묵상 말씀을 통해 참회, 회개의 기도의 첫 자리는 하나님의 은혜 구함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넘어지고, 같은 때에 다시 같은 잘못을 범하는 제가 조심스레 하나님의 헤세드를 구합니다.
在閱讀福音書的過程中,我逐漸意識到自己是多麼悖逆的罪人。我曾像是將自己所犯的罪一一撿拾起來般,獻上悔罪的禱告——犯了這樣的錯,又犯了那樣的錯……透過今天默想的話語,我明白了懺悔、悔罪之禱告的首要位置,乃是尋求神的恩典。在同樣的地方跌倒、在同樣的時刻再次犯下同樣過錯的我,如今小心翼翼地尋求神的慈愛(he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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