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은 장성하자 하나님보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았습니다. 눈에 좋아보이는것을 따라갈수록 하나님에게서는 멀어집니다. 나의 삶의 기준을 다시한번 점검해보게 됩니다. 제 눈에 좋아 보이는 욕망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눈에 옳은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내 뜻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길 기도합니다.
나실인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던 삼손은 안타깝게도 걸맞은 약속의 삶을 살지 못한것 같습니다. 원하는데로 먹고 원하는 것을 취하며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삼손을 통해 그의 뜻을 이루십니다.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계획과 행실은 실수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고 그의 계획을 이루신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감사히 나아갑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은혜를 곡해했던 마노아를 말씀의 약속으로 붙잡아준 아내의 분별력은 위기 속에서 공동체가 서로에게 어떤 영적 안전망이 되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녀의 세속적 고집에 단호하게 선을 긋지 못하고 끌려다닌 부부의 유약함은 온정주의에 갇힌 공동체의 한계도 보여줍니다. 불안 속에서는 은혜를 상기시켜 주는 건강한 동역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네가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이름'과 마노아의 아내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낍니다. 교회에 나가고, 목사님 설교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으면서도 먼저 '이해'해 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명민하지 못하지만, 그리 좋지 않은걸 알면서도.. 주로 머리가 먼저 나갑니다.. 그럼에도 점점 '네가 이해할 수 없는 놀라움'을 조금씩 깨달아 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놀라움은 저의 이해밖이라 때때로 확신없음, 낯설음.. 때로는 두려움이 되는 때도 있습니다. 마노아의 아내처럼 주의 놀라움을 은혜로 받길 소망합니다. 아멘
마노아는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대접하기 원하고 이름을 물어보지만 그의 아내는 천사를 보내신 하나님을 바라본듯 합니다. 이렇듯 내 삶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도울자를 보내주시고 그들의 호의를 통해 은혜를 부어주실때가 많았던것 같습니다. 그럴때마다 단지 사람을 바라보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감사를 돌리기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마노아가 음식을 준비하려고 한 것과 이름을 물어본 것은 어쩌면 그에겐 좋은 동기로 행한 것이다. 하지만 그 동기가 하나님께로 향해 있지 않으면 그것을 거부하신다. 나에게 좋은 것이 다 하나님께도 좋은 것은 아니다. 내 뜻에 하나님을 맞추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춰야 한다. 또한 마노아는 하나님을 보고 죽을까봐 두려워했지만 그의 아내는 주님의 은혜를 바라보았다. 하나님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결과를 단정짓지 말자. 나의 생각에 매몰되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주의 은혜를 바라보는 자가 되자.
마노아처럼 눈앞의 상황과 두려움에 집중하면 불안해지기 쉽지만, 그의 아내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남편의 마음을 평안하게 가라앉혀 주었습니다. 살아가다 예측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 흔들리고 마음이 힘들때, 마노아의 아내처럼 비난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하며 마음을 안심시켜 주는 지혜가 저에게도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가족과 공동체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전하는 선한 동역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통해, 오늘 날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삼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각으로, 입으로 하나님의 백성되기를 원한다고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며 어긋나는 제 자신을 반성합니다. 진정으로 돌이켜 삼가야 할 것을 삼가는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회개조차 잊어버린 시대의 부모에게 자녀를 나실인으로 키우라 하셨고, 부모는 아이를 구별하여 키우지만 아이는 결국 그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하며 자라납니다. 부모는 연약하여 자녀의 모든 순간을 지켜주지 못해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 자녀를 기르지 않으시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자녀를 끝까지 다루어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주님의 주권적인 손길에 믿음으로 아이들을 맡겨드리는 부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세상에서 구별된 나실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묵상해 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가정에서 믿는 부모님의 돌봄 아래 자라게 하시고 또한 장성하여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하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또한 믿음의 부모로써 마땅히 희생하고 실천해야 할 말씀의 길을 온전히 걸어오지 못한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회개합니다. 자녀가 장성하여 부모를 떠나기까지 온전히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기 소망하며 훗날 더 나은 믿음의 가정을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나의 주어진 하루를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어날 삼손이 아닌 어머니에게 먼저 거룩과 절제의 삶을 요구하셨던 것처럼, 자녀의 믿음은 부모인 나의 순종에서 시작됨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자녀에게 말로만 신앙을 강요하는 부모가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제 삶으로 먼저 보여주는 지혜롭고 신실한 부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연약하고 부족함이 많으니, 날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바른 기준과 분별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이다. 나만 구별된 삶을 산다고 기고만장해져서도 안 되고 남에게만 그 삶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삼손의 어머니에게도 절제를 요구하신 것처럼 나도 다른 이를 위해 욕망을 절제하며 살아야 한다. 또 마노아가 기도했을 때 동일한 말씀을 주셨다. 말씀은 변하지 않으니 나는 그저 그것을 따르면 된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 살아갈 수 없고 여전히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날마다 주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저절로 구별된 삶이 될 것이다. 이 구별된 삶이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기쁨의 시간이 될 줄 믿는다.
입다는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셔서 전쟁에 승리케 하시고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우셨는데 승리뒤에는 모든 은혜를 잊은듯합니다. 어쩌면 승리에 너무 도취되어 입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그의 행실은 은혜입은 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자비와 긍휼은 찾아볼 수 없고 잔인함만 남아 있는듯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웃을 대하는 나의 마음을 점검해보기 원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묵상하며 은혜입은 자다운 모습으로 겸손히 이웃을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입다는 암몬을 물리쳤지만 자신의 잘못된 서원으로 딸을 잃었다. 이미 감정이 요동치는 중에 에브라임 사람이 찾아왔다. 싸움을 돕지도 않은 이들이 오히려 공을 뺏어가려 하고 딸을 잃은 자에게 너희 집을 불사르겠다는 소리를 하면 얼마나 황당한가. 에브라임은 그에 모자라 길르앗 사람들까지 도망자라며 모욕한다. 다른 이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채우려 하며 남을 모욕하는 악한 모습이 나에게는 없는가? 나의 입은 주님을 찬양하고 다른 이를 축복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분쟁을 일으키는 자가 아니라 사랑을 행하는 자가 되자.
쉽볼렛 이라는 발음 하나로 동족을 편 가르고 배척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여러나라에 살면서 지역, 소득, 인종 등 저마다의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선을 긋는 세상의 모습을 보며 씁쓸할 때가 많았습니다. 자신에게 유익하지 않은 사람들을 은연중에 배척하려 했던 이기심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은 다름으로 상대를 품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주는 사랑입니다. 내 마음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나만의 기준을 내려놓고 판단 대신 주님의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제가되길 소망합니다.
긴 외교적 논쟁이 실패한 후에야 비로소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는 선언이 나옵니다. 참된 승리는 지혜보다는 하나님의 영으로 확증됨을 봅니다. 그러나 그 크신 은혜앞에서도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입다의 서원은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끝내 내 손으로 승리를 보장받으려는 저의 일상의 부끄러운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거저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계산하기를 내려놓기를 결단합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도무지 맹세하지 말고, '예'라고 할 것은 '예'라고 하고, '아니오'라고 할 것은 '아니오'라고 말하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 대단한 것을 드려 간절히 바라는 것을 구하려는 마음은 알겠지만..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듭니다. 거래 같은 맹세가 아니라..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할 것들을 말씀에 비추어 잘 지키고, 순종의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서원을 해서 여호와의 영이 임한 게 아니라 영이 임했기에 승리하였다. 주의 은혜는 이미 내게 임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불안한 마음에 자꾸 하나님께 조건을 거는 모습이 나에게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물질적인 것을 드리기에 기뻐하는 분이 아니시다. 아무 것도 드릴 게 없어도 하나님을 향한 그 마음을 원하신다. 내가 했던 서원이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면 그래도 서원은 반드시 지켜야지라며 그것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나의 무지를 고백하고 잘못에서 돌이키는 것이 용기다. 조건을 걸지말고 이미 나에게 임한 성령을 믿고 나아가는 자가 되자.
입다가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지만 승리를 얻기위해 세상의 방식을 따라갔습니다. 내 삶이 하나님의 기준에 서있지 않으면, 세상의 그릇된 가치관을 수용하게 됩니다. 입다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지 않으신 서원을 했지만, 그의 딸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 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간증 영상들을 볼때 ‘정말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소중한 것을 바쳐야 하는구나, 서원은 함부로하는것이 아니네’ 라고 오해를 했습니다.
서원을 통해 내 뜻과 욕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묻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명확한 논리적 근거로 메세지를 명확히 전달하는 입다의 모습에서 강건함도 한편으로는 완고함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것과 별개로 입다는 결국 누가 옳은지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심판자로서 판단해 주실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제 길을 인도하신다고 믿고, 하루하루 빚어주신 모습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입다는 암몬 왕의 부당한 요구를 여러 근거를 들어 반박한다. 입다가 이런 것들을 알지 못했다면 땅을 빼앗겼거나 바로 전쟁이 시작됐을 수도 있었다. 아는 것은 힘이 된다. 다양한 것을 배우며 여러 지식을 쌓는 것은 반드시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지식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주님을 더 열심히 알아야 한다. 말씀을 알고 주님의 뜻을 알고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인지 알아야 한다. 학생으로서 열심히 공부를 하되 말씀을 게을리 하지 말자. 내가 배운 것들이 말씀과 만나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될 날을 소망한다.
입다는 싸움에 능했지만 먼저 사람을 보내 대화를 시도했고, 자신의 주장을 설명한 뒤 승패의 결정은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습니다. 억울하거나 부당한 일을 당하면 감정을 쏟아내거나 논리적인 반박으로 이기려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내가 결과를 다 통제하려 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실 영역을 열어드려야 합니다. 판단과 결과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기억하며, 온전히 내어드리는 태도를 가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