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시대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어쩌다 나타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 죄를 감당하시고 하늘로 올라 가신 후에는 성령이 모든 믿는 자에게 내주 하신다.
두려움 앞에서 항상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믿고 나아 가기에 언제나 든든함이 있다.
오늘도 그 성령님을 믿으며 나아갑니다.
(창세기 45:16-28, 마태복음 1-4)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이 예수님을 각기 다르게 맞이했듯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의 소식을 듣고 의심에서 확신 찬 기쁨으로 나아간 야곱의 모습 속에서 구원의 참된 의미를 돌아봅니다. 결국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경외하는 자들에게 예수님과의 만남은 온전한 기쁨이 됨을 깨닫습니다. 벧엘로 도망치던 야곱을 친히 찾아가 만나주셨던 그 은혜를 기억하며 제 안의 모든 연약함과 의심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크신 은혜만을 온전히 붙들겠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왔다는 소문에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기뻐하고 요셉에게 그의 가족들을 모셔오라고 했다. 그것도 빈손으로 보내지 않고 수레와 선물과 양식을 같이 보내면서 그렇게했다. 노예로 팔려와 감옥에서도 오랜 시간을 보내며 결국 총리의 자리에 오른 요셉이 애굽에서 얼마나 귀하게 여김을 받는 사람이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요셉 한사람을 통해 애굽과 그의 가족들이 구원을 받고 기뻐하였듯 나를 통해 나의 가족과 친구들, 내 주위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을 누리며 기뻐하는 그런 통로가 되길 소망한다.
요셉의 형제들이 왔다는 소문에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기뻐하고 요셉에게 그의 가족들을 모셔오라고 했다. 그것도 빈손으로 보내지 않고 수레와 선물과 양식을 같이 보내면서 그렇게했다. 노예로 팔려와 감옥에서도 오랜 시간을 보내며 결국 총리의 자리에 오른 요셉이 애굽에서 얼마나 귀하게 여김을 받는 사람이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요셉 한사람을 통해 애굽과 그의 가족들이 구원을 받고 기뻐하였듯 나를 통해 나의 가족과 친구들, 내 주위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을 누리며 기뻐하는 그런 통로가 되길 소망한다.
20년 동안이나 잃어버린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야곱의 모습에서 한 영혼을 찾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된다.
20년의 세월동안, 교만했던 요셉은 낮아지는 훈련을 받았고, 형제를 팔아 넘기던 형들은 형제를 위해 종이 되기를 자처하는 사랑을 배운다. 또 야곱은 잃어버린 아들을 찾았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된다.
내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이 나보다 먼저 일하시고 나를 주님의 뜻대로 훈련시키심에 감사하며, 나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족하도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자가 되자.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젊은 총리 요셉을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신하들이 없었다.
형들이 왔다는 소식에 모두 기뻐해 주었고 바로는 기꺼이 온 가족이 애굽땅에 와서 살도록 모든 편의를 베풀었다.
이방인 노예 신분이던 그가 하루 아침에 총리가 되었건만 모두가 그를 사랑한 것을 알수 있다.
나 역시 요셉처럼 살기 어렵겠지만 앞으로의 삶이 요셉처럼 겸손하고 지혜롭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오늘의 목상을 읽어 보니, 요즘 직장에서 겪은 일을 생각나요. 지금 기간제 교사로서 중학교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두 학기 가르쳐 보니, 힘든 느낌이 자주 들어요. ‘이 일은 제가 은퇴까지 진심으로 계속 하고 싶은가‘이런 생각이 자주 나요. 또한, 자꾸 트집을 잡거나 이간질을 하는 상황이 많고, 사내정치가 너무 심해서 일하기도 힘들어요. ‘보낸 이는 형들이 아니다. 바로 하나님이셨다.’라는 말을 읽을 때, ’아마 하나님이 저를 이 일자리에 두는 의미, 뜻을 계속 탐구해 봐야겠다‘ 생각이 내 마음에 몰려들어요.
(창세기 45:1-15, 마가복음 15-16)
형제들을 향한 요셉의 조건 없는 용서는 자신의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신뢰했기에 가능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지 못했던 제자들의 연약함을 거울삼아 저 역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완벽한 인도하심을 굳게 믿기를 원합니다. 내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함으로 주님 안에서 참된 용서와 기쁨을 누리는 하루가 되겠습니다.
한 집안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들로 살아오던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의 선택. 그것을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신 일이라고 고백하는 요셉은 어떤 마음일지 헤아려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신 게 그 형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형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기 위해서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도취되어 하나님께서 이사람, 저사람, 모두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그 마음에 공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억울함에만 매몰되면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를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사 여기까지 왔음을 고백하고 또 형제들을 용서할 때 고난이 기쁨이 되고 단절된 공동체가 용서와 사랑으로 하나될 수 있다. 나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하나님이 살리고자 하는 생명들을 품으며 그들을 사랑하는 자가 되자.
때로 인생에 고난이 찾아 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른 길을 내시기 위한 방법이라 볼수 있다.
고난을 이겨 나가는 시간은 힘들지만 지나고 나면 하나님의 뜻을 읽을수 있다.
요셉의 인생 가운데 여러번의 고난이 있었지만 하나님 뜻 안 안에서 돌파하려 했기에 가족과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귀한 도구로 삼아 주셨다.
그래서 고난을 만날때에도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정금처럼 단련되는 시간이므로...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상처도 받고, 공감하는 법도 몰라 상대방의 마음에 깊게 생각을 못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위로하길 원하십니다. 이제는 변명으로 사랑을 주기를 거부하는 자가 아닌 예수님을 따라 거룩한 사명을 지키기를 원합니다.
(창세기 44:18-23, 마가복음 14장)
베냐민을 대신해 스스로 종이 되기를 간구하는 유다의 헌신과 인류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신 예수님의 대속을 묵상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의 이면에는 진정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저를 살리신 그 크신 사랑을 기억하며 저에게 허락하신 삶의 자리와 공동체를 주님의 마음으로 깊이 사랑하고 섬기겠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역시 이해한다.
유다는 육신의 아버지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자신의 희생으로 더 이상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 한다.
이 마음이 자신뿐 아니라 형제들 간의 화목, 가족의 화목...나아가서 인류의 화목을 이끄는 조상이 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사랑에 감사하는 하루를 묵상한다.
(창세기 44:1-17, 마가복음 12-13)
요셉의 시험이 형제들의 숨은 죄를 끄집어내고, 종교 지도자들의 여러 시험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빛과 과부의 진실한 믿음이 드러난 것을 묵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허락하시는 위기와 시험은 결코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님을 보게됩니다. 그것은 내 안의 감춰진 동기를 비추고 가장 진실한 믿음을 끌어내기 위한 은혜의 도구임을 기억하겠습니다.
요셉의 시험은 20년 전의 형들의 모습이 남아 있는지를 보기 위함 이었다.
이들은 변화 되었으며 함께 옷을 찢었다.
이렇게 하나 되는 것이 중요하다.
회개는 가족을, 공동체를, 사회를 하나되게 한다.
특히 우리 공동체에 분열의 모습이 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회복하고 품어 주자.
(창세기43:16-34, 마가복음 10-11)
요셉이 베푼 은혜앞에서도 자루 속 돈 때문에 두려움에 떤 형제들이나 값 없이 주시는 은혜임에도 재물때문에 구원을 포기한 마가복음의 부자가 대비됩니다. 거저 주시는 은혜안에서 충분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데도 오히려 더 가지려는 욕심에 엵매여 참된 평안을 잃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어제의 로마서 말씀과 더불어 오직 나를 살리신 은혜로만 만족하며 참된 자유를 누리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