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 사람은 지도자의 위치에 있어야 함에도 뒤로 숨으며 본을 보이지 못합니다. 아마도 일행을 구하기 위해 아내 한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합리적이고 지혜롭다고 스스로 합리화 했을것입니다. 하지만 희생은 남에게 강요할것이 아닌 본인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해야하는 것임을 본문을 통해 묵상해봅니다. 나도 대의라는 명분 뒤에 숨어 남의 희생만을 강요하며 살아온건 아닌지 돌아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사랑을 본받아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약자의 편에 서고 죄악과 강자앞에서 비굴해지지 않는 성도가 되길 기도합니다.
강한 자를 지키기 위해 약한 자를 내어주고, 자기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내어주는 것은 폭력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신이 인간을 대신해 죽으신 놀라운 희생과 죄가 없는 영원히 의로우신 분이 죄인을 위해 죽으신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셨다. 아무리 좋은 명분을 가져와도 그 안에 내가 손해보기 싫어서 다른 사람을 그 손해와 고통의 자리에 밀어넣은 것은 옳지 않다. 나에게도 그런 점이 있었다면 회개하자. 그리고 언제나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기억하며 나도 그런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자가 되길 소망한다.
레위인은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안전을 위해 첩을 밖으로 내보내는 이기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내 생각, 내 기분, 세상의 기준이 삶의 판단 기준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나만 아는 이기적인 마음과 책임 회피를 버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신 것처럼 사랑과 책임감을 다 할수 있길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의 힘을 생각하게 됩니다. 기브아 사람들은 레위인을 자기 집으로 맞이 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무관심이라 생각했는데, 22절의 '오늘 저녁 이 집으로 들어간 남자를' 이라는 대목에서 모두가 이 레위인을 지켜보고 있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 집으로 초대하지 못한 이유는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뒤를 따랐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믿음이 있을 때 비로소 공동체는 더 나은 길을 선택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선교는 스스로 낯선 땅의 나그네가 되어 하나님이 예비하신 상한 심령을 찾아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안에서 함께 회복을 누리는 것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두 사람의 만남은 이런 아름다운 만남같아보이지만 하나님의 주권이 빠진 이런 사적인 선의는 오히려 폭력앞에서 더 연약한 제 3자를 희생시키는 파국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나그네의 태도와 노인의 환대로 세상을 섬기되 그 중심에는 항상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는 교제를 하기를 소망합니다.
기브아 사람들에게는 없는 환대가 자신도 나그네였던 노인에게서만 나타납니다. 아마도 노인이 처음 기브아에 왔을때 느꼈던 마음이 떠올랐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환대를 받았던 따뜻함일수도 그 반대로 환대받지 못한 서글픔일수도 있지만 그 마음이 다른 나그네를 환대해주고 영접하는 선한 결과로 나타난것 같습니다. 우리가정도 처음 대만에 왔을때 이 노인과 같이 환대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따뜻한 기억을 잊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먼저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가정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기브아 사람들은 환대를 하지않고 외면했지만 나그네를 맞아준 사람은 그곳에 거주하던 외지인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제 안에도 마음의 문을 닫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들이 있었음을 돌아봅니다.
처음 이 교회에 왔을 때 받았던 따뜻한 환대 덕분에 잘 적응할 수 있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새롭게 찾아오는 이들과 도움이 필요한 지체들에게 먼저 손 내밀어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그네를 대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사사 시대에 주어진 것도, 그 이후에 주어진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주어진 말씀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자 주의 말씀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렇게 행하지도 못한다. 그럼 이웃과의 관계도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이 주신 새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사랑 받은 자며 주의 말씀을 받은 자로서 그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야 한다. 내게로 집중되었던 시선을 이제 남에게 돌려 그들을 환대하는 자가 되자.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 역시 대학 때부터 고향을 떠나 해외에서 지내며 오랫동안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백성이다. 나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으로서 믿지 않는 이들을 환대하고 복음을 나누며, 삶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가?
오늘도 내 삶을 돌아보며, 단순히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오늘 말씀은 비극으로 들어가는 무대 설정, 사건의 서두입니다. 레위인, 첩, 음행, 주저앉음, 뒤늦은 출발..이 각각 혹은 합쳐서 크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발단이 가져올 커다란 결과를 알면 상대적으로 작게 보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담담한 오늘의 말씀에서, 작게 보이는 균열들이 때로는 커다란 댐을 붕괴시킬 수 있음을 느끼고, 저의 삶 속에서도 신앙의 작은 균열들을 경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한 레위 남자가 보여주는 삶에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르받은 사람이 자신의 뜻대로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도의 삶이 하나님께 이끌림 받지 않고 내 뜻대로만 살아간다면 맡은바 사명을 소홀히 했던 이 레위 사람처럼 점점 더 수렁으로 빠지게 될 것이 뻔합니다. 오늘도 나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 맡겨주신 사명을 살아내고 있는지 점검해 보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이 성도로써 내 첫 사역지이며 공동체라는 것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레위 사람은 하루만 더, 조금만 더 라는 머뭇거림에 가야할 길을 알면서 미루었습니다. 나의 삶 속에도 순종의 자리를 미루게 만드는 유혹과 핑계가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지금 당장의 편안함과 타협하려는 마음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걸음을 더디게 만듭니다. 내 안의 주저함과 핑계를 내려놓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멀어진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악에 물들 수 있는지 엿봅니다. 미가가 만들어 낸 우상, 신상을 목숨을 걸고 다시 찾으려고 하고, 목숨으로 위협하며 빼앗아 가려합니다. 인간이 만든 헛된 우상에 불과하고 심지어 다시 만들 수도 있는 나무조각, 돌조각에 불과한데..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근본을 깨닫지 못하고, 이를 떠받들며 침략 후 신으로 세우고 섬깁니다. 위대한 선지자 모세의 손자도 이 일에 동참하는 점도 많은 걸 느끼게 해줍니다. 홀로 거룩하신 참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찬미합니다. 아멘
미가는 내가 만든 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아가면 어떻게 하냐고 따집니다. 삶을 살면서 만들어내는 우상이나 기준들은 결국에는 사라지지만 하나님을 유일한 기업으로 삼은 사람은 비록 모든것이 사라지더라도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힘입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나의 푯대가 이런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라질 우상을 쫓고 있는지 돌아보는 하루를 보내겠습니다.
미가도 단 지파도 하나님께 여쭙지 않고 신상과 에봇으로, 그들이 세운 젊은 제사장으로 침략과 살인을 정당화하며 거리낌 없이 악행을 이어갑니다. 말씀을 떠나 하나님께 여쭙지 않는 사람의 삶은 이렇듯 자신과 공동체를 죄악으로 물들게 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구하기 보다 빠른 답을 얻기 위해, 또는 내가 정해놓은 방법과 결과를 위해 말씀을 도구삼아 그릇된 길로 가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신상과 에봇을 만들고 젊은 제사장을 세운것처럼 나도 말씀 묵상을 내 도구로 그릇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이 삶의 중심에 있지 않으면 우상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다른 이를 위협하고 더 좋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폭력을 행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대러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지도 않으면서 겉으로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교회 안에서의 신분과 직위를 드러내도 소용없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원하고 더 사랑했던 것들을 내려놓자. 남의 것을 빼앗는 자가 아니라 남에게 베푸는 자가 되고, 폭력과 위협이 아니라 사랑과 긍휼을 베푸는 자가 되자.
미가와 단지파의 행보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들 중에서 믿음과 순종이 사라지고 형식과 말만 남았을 때의 종착지가 어딘지 보여줍니다. 자기 뜻대로 신상을 만들어 여호와라 하고 하나님이 명하신 바와 비슷하게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세우고 에봇과 드라빔을 준비한 미가도, 그것이 좋아보여서 그 형식과 준비물들을 훔쳐가는 단지파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완전히 떠났음을 알지 못 했을 것 같아 두렵습니다. 믿음을 흉내내는 사람이 되지 않고, 매 순간 정직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를 원합니다. 그 길을 벗어나려 할 때마다 께닫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단 자손은 원하던 땅을 정복하고 신상까지 빼앗아 거창하게 자신들의 성읍을 세웠습니다. 원하는 목적지에 마침내 도착한 것처럼 보였으나, 그 길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욕망과 우상을 따른 길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이 얻은 성공은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삶에서 어디에 도달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길에서 누구를 따라 걸어왔는가 입니다. 눈앞의 성공이 아닌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겸손히 순종하며 걸어가는 우리 가정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기업을 받은 단 지파가 자신들의 신을 세우는 모습을 보며, 저도 제 삶의 우상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나도 모르게 자존심, 사람, 시간, 관계, 물질 등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도 하나님을 내 삶의 가장 첫자리에 모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한 가정과 한 지파의 제사장 자리에서 미련 없이 더 큰 규모를 택했던 레위인의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되묻게 합니다. 세상은 영향력의 크기를 척도로 삼지만 하나님 나라는 나의 평범한 일상의 자리에서 말씀 앞에 얼마나 신실하게 머무는가를 바라보십니다. 사람을 높이시고 낮추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나의 욕심을 선한 영향력으로 포장하며 마땅히 지켜야 할 사명과 신의를 저버리지 않도록 오늘 내게 허락하신 자리에서 정직과 거룩함으로 지내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통해 자기 좋을 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미가와 레위인이라는 작은 범위의 문제가 지파라는 더 큰 범위에서 번져나감을 느낍니다. 나 하나의 문제가 나 하나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음을 생각하며, 묵상하고 말씀을 읽어 자신을 돌아보아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 서길 소망합니다.
사사시대에 왕이 없어서 각자 유익을 따라 움직였던 모습을 보며 나의 마음을 돌아봅니다. 나도 분명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그의 뜻을 따라 살기 원하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상은 그렇지 못할때가 많고 단 지파처럼 인간적인 합리성과 잔머리를 굴리며 고심하고 선택할때가 많습니다. 요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고심하게 되고 기도하게 되니 참 감사합니다. 말씀을 묵상하지 않던 때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이것이 주님의 크신 은혜임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걸어가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면 그것을 내놓는 자판기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 말씀 앞에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내가 듣기 좋은 말만 골라듣지 말고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그 뜻이 무엇인지 깨닫는 자가 되자. 그러기 위해 말씀 앞에 가까이 서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