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한 줄 묵상나눔

    한 줄 묵상나눔

    일상 속 짧은 깨달음·기도제목·감사를 나누고, 서로 ❤️ 좋아요로 격려해요. 한국어/중국어 편한 언어로 작성하시면 자동 번역됩니다.

    이지연·

    레위 사람은 지도자의 위치에 있어야 함에도 뒤로 숨으며 본을 보이지 못합니다. 아마도 일행을 구하기 위해 아내 한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합리적이고 지혜롭다고 스스로 합리화 했을것입니다. 하지만 희생은 남에게 강요할것이 아닌 본인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해야하는 것임을 본문을 통해 묵상해봅니다. 나도 대의라는 명분 뒤에 숨어 남의 희생만을 강요하며 살아온건 아닌지 돌아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사랑을 본받아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약자의 편에 서고 죄악과 강자앞에서 비굴해지지 않는 성도가 되길 기도합니다.

    那利未人本該站在領導者的位置上,卻躲在後面,沒有做出榜樣。他大概自我合理化,認為為了救同行的人而犧牲一個妾,是合理又明智的做法。但透過這段經文,我默想到:犧牲不是強加在別人身上的,而是應當由自己甘心樂意去承擔的。我也反省自己,是不是一直躲在「大局」的名義背後,只要求別人犧牲。禱告求主讓我效法耶穌在十字架上的犧牲與愛,像主那樣站在弱者這一邊,在罪惡和強權面前也不卑躬屈膝,成為這樣的聖徒。

    서혜원·

    강한 자를 지키기 위해 약한 자를 내어주고, 자기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내어주는 것은 폭력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신이 인간을 대신해 죽으신 놀라운 희생과 죄가 없는 영원히 의로우신 분이 죄인을 위해 죽으신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셨다. 아무리 좋은 명분을 가져와도 그 안에 내가 손해보기 싫어서 다른 사람을 그 손해와 고통의 자리에 밀어넣은 것은 옳지 않다. 나에게도 그런 점이 있었다면 회개하자. 그리고 언제나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기억하며 나도 그런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자가 되길 소망한다.

    為了保護強者而交出弱者,為了保全自己而交出別人,這就是暴力。耶穌從來沒有向我們展現這樣的樣子。祂向我們顯明的,是神替人而死的奇妙犧牲,是那位毫無罪、永遠公義的主為罪人而死的奇妙之愛。無論拿出多麼好聽的理由,只要其中是因為我不想吃虧,就把別人推到那吃虧和痛苦的位置上,這就是不對的。如果我身上也有這樣的地方,就讓我們悔改吧。也願我時常記念耶穌所顯明的愛,成為一個也能施予這樣的愛的人。

    이원미·

    레위인은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안전을 위해 첩을 밖으로 내보내는 이기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내 생각, 내 기분, 세상의 기준이 삶의 판단 기준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나만 아는 이기적인 마음과 책임 회피를 버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신 것처럼 사랑과 책임감을 다 할수 있길 소망합니다.

    利未人在危急的時刻,為了自身的安全,竟把妾推到門外,做出了自私的舉動。我回頭省察,自己是不是也以我的想法、我的心情、世界的標準作為生活的判斷依據。在日常生活中,我需要操練以神的話語為準則。願我能拋棄只顧自己的自私心態與逃避責任,像耶穌為我們捨己那樣,盡心付出愛與責任。

    한경우·오늘의 묵상 AI 한 줄 요약

    형식은 남고 말씀을 잃은 세대에서 샬롬의 땅은 소돔이 되었다. 오늘 다시 말씀 앞에 서서, 형식보다 말씀의 본질을 붙드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한다.

    在只剩形式、失去話語的世代裡,平安之地成了所多瑪。今天我再次站在話語面前,禱告我們能成為一個不拘泥於形式、緊緊抓住話語本質的群體。

    사사기 19:27

    송찬의·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의 힘을 생각하게 됩니다. 기브아 사람들은 레위인을 자기 집으로 맞이 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무관심이라 생각했는데, 22절의 '오늘 저녁 이 집으로 들어간 남자를' 이라는 대목에서 모두가 이 레위인을 지켜보고 있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 집으로 초대하지 못한 이유는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뒤를 따랐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믿음이 있을 때 비로소 공동체는 더 나은 길을 선택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透過今天的話語,我開始思考信心的力量。基比亞的人並沒有接待那位利未人到自己家中。起初我以為這只是冷漠,但讀到第22節「今晚進到這家的那個男人」這句話時,我想到,或許所有人其實都在暗中觀察這位利未人。接著我又想到,他們之所以沒有邀請他到自己家裡,可能是因為他們早已知道接下來會發生什麼事。我體會到,唯有當人對神懷有正確的信心時,群體才能真正選擇走上更好的道路。

    이근행·

    선교는 스스로 낯선 땅의 나그네가 되어 하나님이 예비하신 상한 심령을 찾아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안에서 함께 회복을 누리는 것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두 사람의 만남은 이런 아름다운 만남같아보이지만 하나님의 주권이 빠진 이런 사적인 선의는 오히려 폭력앞에서 더 연약한 제 3자를 희생시키는 파국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나그네의 태도와 노인의 환대로 세상을 섬기되 그 중심에는 항상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는 교제를 하기를 소망합니다.

    宣教,或許就是親自成為異鄉之地的寄居者,尋找神所預備、心靈破碎之人,向他們傳揚福音,並在神裡面一同享受恢復。今天話語中這兩個人的相遇,乍看之下似乎是美好的相遇,但缺乏神主權的這種個人善意,反而在暴力面前,以犧牲更為軟弱的第三者的悲劇收場。願我們以寄居者的態度和老人的款待來服事世界,但在其中心,始終要以基督為中心來建立團契。

    이지연·

    기브아 사람들에게는 없는 환대가 자신도 나그네였던 노인에게서만 나타납니다. 아마도 노인이 처음 기브아에 왔을때 느꼈던 마음이 떠올랐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환대를 받았던 따뜻함일수도 그 반대로 환대받지 못한 서글픔일수도 있지만 그 마음이 다른 나그네를 환대해주고 영접하는 선한 결과로 나타난것 같습니다. 우리가정도 처음 대만에 왔을때 이 노인과 같이 환대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따뜻한 기억을 잊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먼저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가정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基比亞的人身上看不到的款待,卻唯獨出現在這位曾經也是異鄉客的老人身上。我想,這或許是因為他想起了自己初到基比亞時的心情。無論是曾受到款待的溫暖,還是相反地未被款待的悲傷,這份心情似乎都化為了款待與接待其他異鄉客的美好結果。我們一家剛到台灣的時候,也遇到許多像這位老人一樣款待我們的人。願我們不忘記那份溫暖的記憶,成為一個能夠毫不猶豫地向有需要的人伸出援手的家庭,這是我的禱告。

    이원미·

    기브아 사람들은 환대를 하지않고 외면했지만 나그네를 맞아준 사람은 그곳에 거주하던 외지인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제 안에도 마음의 문을 닫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들이 있었음을 돌아봅니다. 처음 이 교회에 왔을 때 받았던 따뜻한 환대 덕분에 잘 적응할 수 있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새롭게 찾아오는 이들과 도움이 필요한 지체들에게 먼저 손 내밀어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基比亞的人沒有款待,反而視而不見,但接待旅人的卻是住在那裡的外地人。看到這一幕,我也反省自己是否曾經關閉心門,無意間從需要幫助的鄰舍身邊走過。 我不會忘記剛來到這間教會時所受到的溫暖款待,正是因為那份恩典,我才能順利融入這裡。我盼望自己也能成為先伸出手的人,向新來的人和需要幫助的肢體傳遞神的愛,成為恩典流通的管道。

    서혜원·

    나그네를 대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사사 시대에 주어진 것도, 그 이후에 주어진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주어진 말씀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자 주의 말씀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렇게 행하지도 못한다. 그럼 이웃과의 관계도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이 주신 새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사랑 받은 자며 주의 말씀을 받은 자로서 그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야 한다. 내게로 집중되었던 시선을 이제 남에게 돌려 그들을 환대하는 자가 되자.

    款待旅客、愛鄰舍的話語,並非士師時代才頒布的,也不是那之後才頒布的。而是以色列進入迦南地之前就已經賜下的話語。當與神的關係破裂時,人就不明白主的話語是什麼,也無法照著行。那麼與鄰舍的關係也必然隨之破裂。耶穌所賜下的新誡命是:要彼此相愛,正如我愛你們一樣。我是蒙神所愛的人,也是領受主話語的人,理當將那份愛流向鄰舍。讓我們將原本聚焦在自己身上的目光,如今轉向他人,成為款待他們的人吧。

    여하은·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 역시 대학 때부터 고향을 떠나 해외에서 지내며 오랫동안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백성이다. 나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으로서 믿지 않는 이들을 환대하고 복음을 나누며, 삶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가? 오늘도 내 삶을 돌아보며, 단순히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默想今天的話語,讓我重新回顧了自己的人生。我自己也是從大學時期開始離開故鄉,在海外生活,長久以來過著如同客旅一般的生活。 但是我們是屬於神國度的子民。身為神國度的公民,我是否正在款待那些還不信主的人、與他們分享福音,並透過生活與行動彰顯出神的樣式呢? 今天也藉著回顧自己的生命,禱告自己不只是單純成為一個更好的人,而是能夠活出神子民應有的樣式。

    한경우·오늘의 묵상 AI 한 줄 요약

    하나님 백성의 성읍에서도 나그네에게 문을 열어준 이는 타향살이하던 노인뿐이었다. 우리도 나그네였음을 기억하며 먼저 문을 여는 공동체가 되기를.

    即使在神百姓的城中,願意為旅人開門的,也只有一位客居異鄉的老人。願我們記得自己也曾是旅人,成為一個率先敞開大門的群體。

    사사기 19:20-21

    이근행·

    따뜻하고 후한 대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떠나야 할때와 머무를 때를 분별하지 못하게 하는 무책임한 지연이 나타납니다. 하나님보다 우선되는 친교, 육신의 편안함과 나의 기준을 우선시해서 결단할 타이밍을 놓치고 영적 긴장감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됩니다.

    看似溫暖豐盛的款待,實際上卻可能是一種無法分辨該離開或該停留的時機、不負責任的拖延。這讓我反思自己是否因為把優先於神的交誼、肉體的安逸與自己的標準擺在首位,而錯失了當下決斷的時機,漸漸失去了屬靈的警醒與張力。

    송찬의·

    오늘 말씀은 비극으로 들어가는 무대 설정, 사건의 서두입니다. 레위인, 첩, 음행, 주저앉음, 뒤늦은 출발..이 각각 혹은 합쳐서 크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발단이 가져올 커다란 결과를 알면 상대적으로 작게 보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담담한 오늘의 말씀에서, 작게 보이는 균열들이 때로는 커다란 댐을 붕괴시킬 수 있음을 느끼고, 저의 삶 속에서도 신앙의 작은 균열들을 경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今天的話語是進入悲劇的舞台佈置,是事件的開端。利未人、妾、淫行、停留、延遲出發……這些無論是個別來看,或是合在一起看,都可能顯得很大;但若知道這個開端將帶來多麼巨大的後果,相對來說,它們似乎又顯得微小。從某個角度來看,在今天這段平淡敘述的話語中,我感受到看似微小的裂縫,有時也能使巨大的水壩崩塌。願我也能在自己的生命中,警惕信仰裡那些微小的裂縫。

    이지연·

    한 레위 남자가 보여주는 삶에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르받은 사람이 자신의 뜻대로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도의 삶이 하나님께 이끌림 받지 않고 내 뜻대로만 살아간다면 맡은바 사명을 소홀히 했던 이 레위 사람처럼 점점 더 수렁으로 빠지게 될 것이 뻔합니다. 오늘도 나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 맡겨주신 사명을 살아내고 있는지 점검해 보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이 성도로써 내 첫 사역지이며 공동체라는 것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從一個利未人所展現的生活中,我們看到一個蒙召要做神的工作的人,卻只按照自己的意思生活的樣子。信徒的生活若不被神引導,只照自己的意思過日子,就必然會像這位疏忽所託付使命的利未人一樣,漸漸陷入更深的泥沼。今天我也願意反省自己的生活,省察自己是否正在活出神所交託的使命。願我不忘記神所賜的家庭,就是身為信徒的我的第一個事工禾場和群體,並禱告自己能按照神的旨意去服事。

    서혜원·

    안락함에만 머물고 내 마음의 즐거움에만 집중하면 내게 맡겨진 사명을 잊고 나태해질 수 있다. 머무를 때와 나아가야 할 때를 잘 분별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주의 말씀을 기준삼아 행하고 내 마음의 즐거움이 아닌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일을 하도록 기도하자.

    如果只停留在安逸之中、只專注於自己內心的快樂,就可能忘記託付給我的使命,變得懈怠。我們必須好好分辨該停留的時候,以及該前進的時候。願我們以主的話語為準則來行這一切,不是追求自己內心的快樂,而是禱告求行神所喜悅的事。

    이원미·

    레위 사람은 하루만 더, 조금만 더 라는 머뭇거림에 가야할 길을 알면서 미루었습니다. 나의 삶 속에도 순종의 자리를 미루게 만드는 유혹과 핑계가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지금 당장의 편안함과 타협하려는 마음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걸음을 더디게 만듭니다. 내 안의 주저함과 핑계를 내려놓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기를 소망합니다.

    利未人因「再一天就好、再等一下就好」的猶豫,明知該走的路卻一再拖延。我也反省自己的生命中,是否也有讓我拖延順服之路的誘惑與藉口。想與眼前的安逸妥協的心,會使我歸向神的腳步變得遲緩。願我能放下心中的猶豫與藉口,渴望走上主所喜悅的道路。

    여하은·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히려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할 때 더 생각하고 조심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편하게 말하기 쉽지만, 내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한 번 더 생각하며 말해야겠다.

    默想今天的話語時,反而讓我覺得對最親近的家人或朋友說話時,更應該多加思考、小心謹慎。越是親密的關係,越容易隨便說話,但我應該更進一步思考自己的話會對對方造成什麼影響,再開口說話。

    한경우·오늘의 묵상 AI 한 줄 요약

    말씀을 맡은 자의 진실함은 강단이 아닌 가장 가까운 이의 마음에 말하는 자리에서 드러난다.

    承擔話語之人的真實,不是在講台上,而是在對最親近之人說話的場合中顯露出來。

    사사기 19:1-10

    송찬의·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멀어진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악에 물들 수 있는지 엿봅니다. 미가가 만들어 낸 우상, 신상을 목숨을 걸고 다시 찾으려고 하고, 목숨으로 위협하며 빼앗아 가려합니다. 인간이 만든 헛된 우상에 불과하고 심지어 다시 만들 수도 있는 나무조각, 돌조각에 불과한데..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근본을 깨닫지 못하고, 이를 떠받들며 침략 후 신으로 세우고 섬깁니다. 위대한 선지자 모세의 손자도 이 일에 동참하는 점도 많은 걸 느끼게 해줍니다. 홀로 거룩하신 참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찬미합니다. 아멘

    透過今天的話語,我們窺見了遠離神的人們是多麼愚昧,又多麼容易被惡所沾染。他們拚了命也要奪回米迦所造的偶像、神像,甚至不惜以性命相逼來搶奪。那不過是人手所造的虛妄偶像,甚至可以再次重新製作,不過是木頭雕刻、石頭雕刻罷了……他們卻沒有看清這是人所造的根本事實,反而膜拜它,在侵略之後將其立為神明來敬奉。連偉大先知摩西的孫子也參與了這樣的事,這一點也讓人感觸良多。願我們只敬拜讚美那獨一聖潔的真神。阿們

    이근행·

    미가는 내가 만든 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아가면 어떻게 하냐고 따집니다. 삶을 살면서 만들어내는 우상이나 기준들은 결국에는 사라지지만 하나님을 유일한 기업으로 삼은 사람은 비록 모든것이 사라지더라도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힘입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나의 푯대가 이런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라질 우상을 쫓고 있는지 돌아보는 하루를 보내겠습니다.

    米迦質問,如果有人搶走他所造的神像和祭司,該怎麼辦呢?我們在生活中所打造出來的偶像或各種標準,終究會消失,但那以神為唯一產業的人,即便一切都消逝了,也能憑藉著無人能奪走的永恆生命重新站立起來。我要度過這一天,省察自己的目標究竟是朝向這樣的神,還是在追逐終將消失的偶像。

    이지연·

    미가도 단 지파도 하나님께 여쭙지 않고 신상과 에봇으로, 그들이 세운 젊은 제사장으로 침략과 살인을 정당화하며 거리낌 없이 악행을 이어갑니다. 말씀을 떠나 하나님께 여쭙지 않는 사람의 삶은 이렇듯 자신과 공동체를 죄악으로 물들게 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구하기 보다 빠른 답을 얻기 위해, 또는 내가 정해놓은 방법과 결과를 위해 말씀을 도구삼아 그릇된 길로 가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신상과 에봇을 만들고 젊은 제사장을 세운것처럼 나도 말씀 묵상을 내 도구로 그릇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겠습니다.

    米迦和但支派都沒有求問神,而是藉著神像和以弗得,以及他們所立的年輕祭司,將侵略與殺人合理化,毫無顧忌地繼續行惡。離開話語、不求問神的人生,就是這樣使自己和群體都沾染罪惡。我也反省自己,是否曾為了得到快速的答案,或是為了達成自己預先設定的方法與結果,而非真心尋求神,把話語當作工具走上了偏差的道路。就像他們製造神像和以弗得、設立年輕祭司一樣,我也該檢視自己是否把話語默想錯誤地當作自己的工具在使用。

    서혜원·

    하나님이 삶의 중심에 있지 않으면 우상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다른 이를 위협하고 더 좋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폭력을 행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대러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지도 않으면서 겉으로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교회 안에서의 신분과 직위를 드러내도 소용없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원하고 더 사랑했던 것들을 내려놓자. 남의 것을 빼앗는 자가 아니라 남에게 베푸는 자가 되고, 폭력과 위협이 아니라 사랑과 긍휼을 베푸는 자가 되자.

    如果神不在生命的中心,人就會為了守護偶像而爭鬥,為了威脅他人、佔有更好的東西而施加暴力。若不照著神的話語生活,也不以神為我的主人,即使表面上呼求耶和華的名、在教會裡展現身分與職位,也毫無用處。讓我們放下那些曾經比神更渴望、更愛的東西吧。不要做搶奪別人東西的人,而要成為施予他人的人;不要施加暴力與威脅,而要成為施行愛與憐憫的人。

    고은비·

    미가와 단지파의 행보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들 중에서 믿음과 순종이 사라지고 형식과 말만 남았을 때의 종착지가 어딘지 보여줍니다. 자기 뜻대로 신상을 만들어 여호와라 하고 하나님이 명하신 바와 비슷하게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세우고 에봇과 드라빔을 준비한 미가도, 그것이 좋아보여서 그 형식과 준비물들을 훔쳐가는 단지파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완전히 떠났음을 알지 못 했을 것 같아 두렵습니다. 믿음을 흉내내는 사람이 되지 않고, 매 순간 정직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를 원합니다. 그 길을 벗어나려 할 때마다 께닫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米迦與但支派的行徑,向我們顯明了當神所吩咐的事當中,信心與順服消失殆盡、只剩下形式與言語時,最終會走向何處。米迦按自己的意思製造神像,稱之為耶和華,模仿神所吩咐的方式立利未人為祭司,並預備以弗得和家中神像;而但支派看見這一切覺得不錯,便偷走了那形式與這些器具——我害怕的是,他們恐怕都不知道自己早已完全離開了神。我不願成為只是模仿信心的人,願每一刻都誠實地愛神、事奉神。求神在我每次偏離這條道路時,都使我省悟過來。

    이원미·

    단 자손은 원하던 땅을 정복하고 신상까지 빼앗아 거창하게 자신들의 성읍을 세웠습니다. 원하는 목적지에 마침내 도착한 것처럼 보였으나, 그 길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욕망과 우상을 따른 길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이 얻은 성공은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삶에서 어디에 도달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길에서 누구를 따라 걸어왔는가 입니다. 눈앞의 성공이 아닌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겸손히 순종하며 걸어가는 우리 가정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但支派征服了他們所渴望的土地,甚至奪取了神像,氣派地建立了自己的城邑。看起來他們似乎終於到達了渴望的目的地,但那條路並非神的旨意,而是隨從慾望與偶像的道路。最終,他們所獲得的成功卻使他們遠離了神。 在人生中,比起到達了何處,更重要的是在那條路上跟隨誰而行走。願我們的家庭不是追求眼前的成功,而是正確地信靠神、謙卑順服地走這條路。

    여하은·

    하나님께 기업을 받은 단 지파가 자신들의 신을 세우는 모습을 보며, 저도 제 삶의 우상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나도 모르게 자존심, 사람, 시간, 관계, 물질 등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도 하나님을 내 삶의 가장 첫자리에 모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看見從神領受產業的但支派,竟為自己立起偶像的樣子,我也重新省察自己生命中的偶像。 我是否在不知不覺中,把自尊心、人、時間、關係、物質等,看得比神更重要了呢? 願今天也能讓神居於我生命中最首要的位置,並禱告求主幫助我放下那些神所不喜悅的事物。

    한경우·오늘의 묵상 AI 한 줄 요약

    성공과 결과는 하나님의 뜻을 증명하지 않는다. 물어야 할 것은 '잘되었는가'가 아니라 '말씀 앞에 서 있었는가'이다.

    成功與結果並不能證明神的旨意。我們該問的不是「順利與否」,而是「是否站立在話語面前」。

    사사기 18:31

    이근행·

    한 가정과 한 지파의 제사장 자리에서 미련 없이 더 큰 규모를 택했던 레위인의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되묻게 합니다. 세상은 영향력의 크기를 척도로 삼지만 하나님 나라는 나의 평범한 일상의 자리에서 말씀 앞에 얼마나 신실하게 머무는가를 바라보십니다. 사람을 높이시고 낮추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나의 욕심을 선한 영향력으로 포장하며 마땅히 지켜야 할 사명과 신의를 저버리지 않도록 오늘 내게 허락하신 자리에서 정직과 거룩함으로 지내기를 소망합니다.

    那位毫不留戀地離開一個家族與一個支派的祭司職位,轉而選擇更大規模的利未人形象,讓我們重新反思神國度的標準究竟在哪裡。世上以影響力的大小為衡量標準,但神的國度看的卻是:在我平凡的日常崗位上,我在話語面前有多麼忠心地堅守。我承認,使人升高或降卑,唯獨在神的手中。願我不要將自己的貪心包裝成良善的影響力,也不背棄理當堅守的使命與信實,而是在今日神所賜給我的崗位上,以正直與聖潔度日。

    송찬의·

    말씀을 통해 자기 좋을 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미가와 레위인이라는 작은 범위의 문제가 지파라는 더 큰 범위에서 번져나감을 느낍니다. 나 하나의 문제가 나 하나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음을 생각하며, 묵상하고 말씀을 읽어 자신을 돌아보아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 서길 소망합니다.

    我透過這段話語,思想了那些隨己意而行的人會變得如何。我感受到米迦和利未人這個小範圍的問題,是如何蔓延擴大到整個支派的範圍。想到我一個人的問題,可能不會只停留在我一個人身上而已,便盼望透過默想與閱讀話語來省察自己,好讓我能在所愛的人們和神面前站立得住。

    이지연·

    사사시대에 왕이 없어서 각자 유익을 따라 움직였던 모습을 보며 나의 마음을 돌아봅니다. 나도 분명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그의 뜻을 따라 살기 원하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상은 그렇지 못할때가 많고 단 지파처럼 인간적인 합리성과 잔머리를 굴리며 고심하고 선택할때가 많습니다. 요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고심하게 되고 기도하게 되니 참 감사합니다. 말씀을 묵상하지 않던 때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이것이 주님의 크신 은혜임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걸어가길 기도합니다.

    看見士師時代沒有王,各人任意而行的樣子,讓我反省自己的內心。我自己雖然也清楚宣告願意以神為我的王、順服祂的旨意而活,但實際上卻常常做不到,像但支派一樣,常常憑著人的理性和小聰明來思考、選擇。最近因著默想話語,開始思考神的旨意是什麼、也因此更多禱告,真的很感恩。回想起過去沒有默想話語的日子,再次體會到這都是主莫大的恩典。願今天這一天也能照著神的旨意而行,獻上禱告。

    서혜원·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면 그것을 내놓는 자판기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 말씀 앞에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내가 듣기 좋은 말만 골라듣지 말고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그 뜻이 무엇인지 깨닫는 자가 되자. 그러기 위해 말씀 앞에 가까이 서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神不是一台自動販賣機,只要我說出想要的東西,祂就會把它吐出來。所謂聆聽神的話語,就是即使與我的想法不同,也要在那話語面前放下自己的想法,順服於主。不要只挑自己愛聽的話來聽,而要成為一個能明白神如何說話、祂的旨意是什麼的人。為此,願我能親近話語、不斷禱告,成為一個與神同行的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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