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미련하고, 약하고, 멸시받는 저희를 부르셔서 교회에 기둥이 되게 하여 주시고, 항상 주님의 말씀을 잊지 않게 해주세요. 아무것도 없는 저를 지금까지 살게 해주시고, 배울 수 있게 해주심은 제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해졌음을 고백합니다.
(고린도전서 1:18-31, 누가복음 2-3)
지극히 낮고 천한 구유로 오셨지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참 기쁨을 허락하신 누가복음의 예수님을 묵상합니다. 세상의 미련하고 약한 것들을 택하여 부르신 고린도전서의 말씀 역시 결국 가장 낮은 자리로 임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라는 하나님의 초대임을 깨닫습니다. 높아지려 하기보다 낮은 곳에서 사랑으로 섬기며 주님을 온전히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당시 대단한 지성을 가졌던 바울이 세상의 지혜를 변으로 여기며 버리려 했던것을 잘 알고 있다.
그 바울이 고린도에 와서 물질과 지혜, 헛된 것들로 자랑을 삼으려 하는 것을 지적한다.
바울의 지적이 오늘 내 가슴 속에도 깊은 울림이 있어 하나님, 주님, 성령의 지혜로 살아내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고린도전서 1:10-17, 누가복음 1장)
예수님을 예비하기 위해 요한이 왔고 고린도 교회를 세우기 위해 여러 사람의 섬김이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시고 친히 공동체의 모퉁이돌이 되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러한 우리의 다름은 결코 분열을 이끌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가복음의 사가랴의 찬양처럼 구원의 역사를 위해 쓰임 받는 것임을 봅니다. 이 사실을 참된 기쁨으로 여기며,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섬기는 삶을 살겠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셨고 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부활하신 기쁜 소식은 변하지 않는 진리이며 유일한 복음이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연약하여 하나의 복음을 받아들였음에도 여러 개의 분쟁이 생기기도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되게 하시려고 복음을 주셨음을 기억하고 서로 사랑으로 섬기며 하나될 수 있는 공동체가 되도록 기도하자.
교회에서 분쟁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는 바울의 권면은 오늘날에도 동일한 중요성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했으니, 사랑과 화합이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분명한 의무임을 늘 기억해야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사랑하고 협조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한 분 그리스도 예수 아래에서 우리 교회가 하나 된 모습, 나아가서 지역의 교회들이 하나 된 모습, 결국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 된 선한 모습으로 주께 영광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고린도전서 1:1-9, 마태복음27-28)
마태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복음의 지경을 넓혀 제자들을 모든 민족에게로 파송하십니다. 고린도전서를 통해 바울은 그 순종의 결과로 세워진 교회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증거해 나가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곳에서도 우리를 흩어진 개인으로 두지 않으시고 하나의 교회로 모아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부르신 이 자리에서 위대한 지상명령을 잊지 않고 삶으로 복음을 살아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고린도전서 1:1-9
고린도 교회처럼 문제 많고 부족한 모습일지라도 그들을 성도라 부르며 끝까지 소망을 품었던 바울의 마음을 이제부터 조금이라도 닮아가는 삶을 살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지식과 능력을 앞세워 상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빚어가고 계심을 신뢰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인내하는 성도가 될수있길 원합니다.
창세기 50:15-26
악한 상황조차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자신의 감정과 환경을 초월했던 요셉의 성숙한 믿음을 닮고 싶습니다. 단순히 나에게 상처 준 이를 용서하는 단계에 머물지 않고, 그들의 두려움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위로와 실질적인 배려까지 베풀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갖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도와 성도로 부르셨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증거로 우리를 견고하게 하신다. 또 우리가 예수님과 교제하게 하신다. 이 모든 것은 내 힘과 능력으로 얻은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거저주신 은혜이고 은사이다. 내 힘과 능력으로 얻은 것으로 착각하다 은혜를 놓치고 그것에 얽매여 삯으로 여기지 말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감사와 기쁨으로 주를 섬기는 자가 되자.
(창세기 50:15-26, 마태복음25-26)
하나님의 계획을 온전히 신뢰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신을 판 형제들을 용서하고 그들과 그 가족들을 품었던 요셉이나 겟세마네 동산의 고통스러운 기도 속에서도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받아들이신 예수님 모두 아버지의 계획에 대한 온전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신뢰는 반드시 순종으로 이어지며 그 순종은 나를 완전히 내려놓을 때 비로소 가능하기에 유독 어렵게 느껴집니다. 내 뜻을 꺾고 주님의 계획과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리며 살고 싶습니다.
내가 지은 죄에 마음의 가책을 느끼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좋으나, 너무 죄책감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용서를 의심하는 것은 좋지 않다. 나에게도 요셉의 형들과 같은 모습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죄인되었을 때 이미 나를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그 죄를 진심으로 뉘우쳐 더 이상 그 죄를 짓지 않아야 하며, 그러한 나조차도 품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심없이 믿으며 주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가 되자.
(창세기 49:29-50:14, 마태복음 23-24)
마태복음의 선한 종의 비유를 통해 야곱의 삶을 다시 바라봅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이기적이고 기만하는 허물이 많은 모습이었지만 하나님은 복을 향한 그의 큰 열망을 아시고 그를 택하여 선한 종으로 훈련시키셨습니다. 그 열망으로 하나님의 사람답게 빚어지고 자신이 받은 축복을 후대에 남겨주는 야곱의 마지막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저 또한 주님의 훈련하심에 순종하며 생명을 흘려보내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야곱은 험난한 인생을 살았지만 그 길 가운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야곱의 삶의 여정은 다했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생애를 끝까지 함께 하시며 은혜를 주시고 각 사람의 삶을 통해 역사하신다. 나의 삶도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역사하시는 귀한 시간이 되도록 간구해야겠다.
나의 고향에는 증조부, 증조모, 조부, 조모, 그 형제들을 위한 묘까지 함께 되어 있다.
나의 원래 고향은 하늘나라 이지만 이 땅에서의 고향은 아버지께서 정하여 둔 그 자리가 있다.
험악한 세월을 보냈던 야곱이 하나님의 손길 아래 멋진 여행을 마무리 지은 것처럼 나도 그런 인생으로 축복하여 주시길 간구한다.
야곱은 살아있는 동안 평생을 나그네로 살았지만, 죽어서는 약속의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땅은 잠시 머무는 곳이지만 이곳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안주하려 애쓰고 살아왔습니다. 때론 나그네와 같은 삶을 원망하며 평안만을 좇았던것이 떠올라 부끄러워졌습니다.
이곳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집착하지않고 돌아갈 본향을 기억하며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가야겠습니다.
(창세기 49:16-28, 마태복음 21-22)
야곱은 자녀들을 축복하는 중에 불쑥 여호와의 구원에 대한 깊은 갈망을 고백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나무를 저주하시며 참된 열매를 요구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이와 깊이 연결됨을 봅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취를 얻기 위해 애쓰는 일상이지만 궁극적으로 내 삶에 맺혀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참된 열매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다.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나에게 맞는 은혜를 부어주시는 분이시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어떤 사람은 많이 축복받고 어떤 사람은 적게 축복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적게 받았다고 하나님이 덜 사랑하시고 많이 받았다고 더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축복의 정도, 그릇의 모양은 중요하지 않다. 그 모습이 어떠하든 내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귀한 그릇이 되도록 주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는 자가 되자
주님, 제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축복에는 한계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야곱이 마지막에 주의 구원을 기다렸던 것처럼, 저 또한 내 힘으로 자녀를 지키려는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제 손이 닿지 않는 그곳에 주님의 손이 임하여 주소서. 자녀의 앞날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심을 신뢰하며, 오늘도 그 구원을 기다리는 기도의 자리를 지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