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법정에서 형제들끼리 이겨 보려고 붙은 송사는 서로 진 것이다. 그래서 서로 진것으로 여기고 세상 법정에서는 더 이상 송사하지 말아야 함을 알려준다. 서로 송사하는 것은 더 이상 이기려 하는 것이 아니기에 어떻게 하여야 이길수 있는 것인지 깊이 상고해 보아야 한다.
在世上的法庭中,弟兄彼此相爭、試圖勝訴的官司,其實雙方都是輸家。 因此,要認識到彼此都已輸了,在世上的法庭中不應再繼續打官司。 彼此相告,不再是為了爭贏,所以應當深深思考:究竟如何才能真正得勝。
세상 법정에서 형제들끼리 이겨 보려고 붙은 송사는 서로 진 것이다. 그래서 서로 진것으로 여기고 세상 법정에서는 더 이상 송사하지 말아야 함을 알려준다. 서로 송사하는 것은 더 이상 이기려 하는 것이 아니기에 어떻게 하여야 이길수 있는 것인지 깊이 상고해 보아야 한다.
在世上的法庭中,弟兄彼此相爭、試圖勝訴的官司,其實雙方都是輸家。 因此,要認識到彼此都已輸了,在世上的法庭中不應再繼續打官司。 彼此相告,不再是為了爭贏,所以應當深深思考:究竟如何才能真正得勝。
고린도전서 6:7,9-10 예수님의 당하심으로, 고통 받고 죽으심으로 나는 은혜입어 구원받았음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 은혜를 도리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데에만 활용하였음을 반성합니다. 주님 보시기에 내가 죄의식조차 없이 지나치는 일상속에서의 잘못들이나 내가 남에게 큰 잘못이다! 판단하며 정죄하였던 것들이 다르지 않았음을 돌아봅니다.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마태복음 7:3 말씀을 다시 묵상해 봅니다. 손해보고, 져주고, 속아주는 성도의 삶이 주님 가르쳐 주신 사랑일터인데..
哥林多前書 6:7, 9-10 我記念,因著耶穌所承受的一切——祂的苦難與死亡,我得蒙恩典、領受了救恩。然而,我反省自己竟將那份恩典,反倒只用在論斷他人、定罪他人之上。回想在主眼中,我在日常生活中毫無罪惡感地一帶而過的過失,與我對他人高聲指控「這是大錯!」並加以定罪的事,其實並無二致。我再次默想馬太福音 7:3 的話語:「你看見你弟兄眼中有刺,卻不想自己眼中有梁木呢?」吃虧、退讓、甘願被欺——這樣的聖徒生命,才是主所教導我們的愛啊……
이미 하나님이 사랑으로 품으신 자를 나의 생각, 판단, 욕심으로 그들에게 분노하고 용서하지 못한 모습이 많았다. 여전히 나는 억울하고 화가 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들을 용서하고 품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도 나를 위로하시고 그들과 더욱 더 연합하게 하실 줄 믿는다.
對於那些已被神以愛所懷抱的人,我卻常常以自己的想法、判斷和私慾,向他們發怒、無法饒恕。我相信,即使我仍感到委屈與憤怒,當我記念神的愛、選擇饒恕並懷抱他們、為他們禱告時,神也必安慰我,並使我與他們更加合而為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엔 어떻게든 손해를 보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왔습니다. 나의 권리를 찾으며 애썼던 모습 속에는 예수님이 없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항상 기억하며,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在信靠耶穌的同時,活在這世界中,我卻一直竭力避免自己吃虧受損。 在那努力爭取自身權益的樣子裡,根本沒有耶穌的位置。 願我時刻記念耶穌在十字架上為我們捨去一切的愛,並以真正神兒女的身分活出生命。
형제와 다투며 이기려는 마음 자체가 이미 영적 패배다. 거저 건짐받은 우리는 한 치도 손해 보지 않으려 하기보다 서로를 용서하고 품어야 한다.
與弟兄爭執、想要勝過對方的那顆心,本身就已經是屬靈的失敗。我們這些白白蒙恩得救的人,與其分毫不願吃虧,更應當彼此饒恕、彼此包容。
고린도전서 6:7
(고린도전서 5:1-13,누가복음12-13)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듯 내 안의 작은 교만이 영혼과 공동체를 병들게 함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위선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고 바울은 순전함의 떡으로 살라 권면합니다. 겉모습만 그럴듯한 신앙은 벗어버리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오직 주님의 은혜 안에서 진실하고 겸손하게 섬기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哥林多前書 5:1-13,路加福音 12-13) 正如一點點酵母能使整團麵發起來,我深刻體認到,內心小小的驕傲足以使靈魂與群體陷入病態。主提醒我們要警惕虛偽的酵母,保羅則勸勉我們要以誠實無偽的無酵餅度日。願我脫去那只注重外表的信仰,藉著與神的交通,在主的恩典中,過一個真實而謙遜地事奉的生命。
죄는 너무 쉽고 빠르게 우리를 전염시킨다. 잘못한 줄 알았다면 즉시 끊어내야지 이정도쯤은 괜찮다고 방치하면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하나님이 거룩하니 우리에게도 거룩하라고 하셨다. 내 죄와 다른 사람의 죄도 우리에게서 끊어낼 수 있도록 서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서로 권면하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기를 간구해야겠다.
罪惡太容易、太迅速地感染我們。若已知道自己做錯了,就應該立刻切斷;若以為「這點程度無所謂」而放任不管,它就會蔓延到無法收拾的地步。神是聖潔的,所以祂也呼召我們要聖潔。我們應當迫切祈求,成為一個彼此關心、彼此禱告、彼此勸勉的聖潔群體,使我自己的罪與他人的罪都能從我們當中被切斷。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과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말씀 없이는 빠르게 본성으로 돌아가는 죄인일 뿐입니다. 말씀읽기를 즐겨 하며 항상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주님이 기뻐 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성도가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값 없이 받은 구원을 항상 기억하며 구원 받은 사람답게 살기를 기도합니다.
我雖然過著與相信耶穌之前截然不同的生活,但若沒有神的話語,我不過是個會迅速回歸本性的罪人。我渴望成為一位樂於讀經、時常思考「主會怎麼做?主所喜悅的是什麼?」的聖徒。我禱告,願自己常常記念藉著耶穌的恩典白白所得的救恩,並活出一個蒙恩得救之人應有的樣式。
묵은 누룩은 내 삶에서 철저하게 배제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내 삶이 문제가 있더라도 철저하게 분별하여 하나님께 속한 삶, 사탄에 속한 삶을 구별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삶을 철저하게 따라사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舊有的酵母必須從我的生命中徹底排除。 因此,即使我的生命存在問題,我也渴望能夠徹底分辨,區別出屬於神的生命與屬於撒旦的生命。 我願成為一個徹底跟隨、活出屬於神之生命的人。
고린도전서 5:5 여러분은 그러한 자를 당장 사탄에게 넘겨주어서, 그 육체는 망하게 하고 그의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해야 할 것입니다. 누룩이 전체에 퍼져서 불어나듯이, 편안함이 나태함이 되고 나태함이 교만이 되어 주님 주신 참 자유가 아닌 육체의 자유만을 추구하였던 자신을 돌아봅니다. 주님이 걸으신 길은 평탄이 아니고 십자가의 길이었음을 다시 기억합니다. 주님 맡기신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지 묵상해 봅니다.
哥林多前書 5:5 你們要把這樣的人交給撒但,使他的肉體滅亡,讓他的靈魂在主的日子得以得救。 就像酵母滲透全團使其膨脹一樣,我回顧自己曾讓安逸變為懈怠,懈怠變為驕傲,所追求的不是主所賜的真自由,而只是肉體的自由。我再次記起,主所走的道路不是平坦之路,而是十字架的道路。我默想:主所託付給我的十字架,究竟是什麼?
죄를 외면하는 교만함이 공동체 전체를 거룩함에서 멀어지게 한다. 참된 사랑은 차가운 심판이 아니라 회복을 향한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漠視罪的驕傲,使整個群體遠離聖潔。真正的愛,不是冷酷的審判,而是一顆永不放棄、朝向復原的心。
고린도전서 5:6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였다. 그리고 세상의 자랑이 될 만한 모습이 아닌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낮고 비천한 모습에 처한 자신을 본받으라고 한다. 바울의 그러한 모습은 예수님을 본받은 것이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다. 예수님이 먼저 그 길을 가셨고, 성경 속 믿음의 사람들도 나아갔다. 나도 그 길을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고 무너지지 않게 잡아주실 갓이다. 세상을 본받지 말고 주님을 본받아 주와 함께 동행하는 자가 되길 바란다.
保羅將自己的處境與哥林多人作了比較。他說,要效法的不是那種足以在世上誇耀的樣式,而是自己所處的那種卑微低下、無人願意走的樣式。保羅這樣的樣式,正是效法耶穌的結果。沒有十字架,就沒有榮耀。耶穌已先走了這條路,聖經中那些有信心的人也走了這條路。我若也踏上這條路,神必與我同在,並扶持我使我不至傾倒。願我們不要效法世界,乃要效法主,成為與主同行的人。
고린도전서 3:16-4:5 분열되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 살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이 모습들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로 깨어있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고린도전서 4:6-21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께 은혜로 받은 재능과 믿음조차 마치 자기 노력의 결과처럼 자랑했습니다. 반면 바울과 사도들은 고난 속에서도 인내와 사랑으로 예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삶을 살았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임을 기억하며, 유일한 진리인 말씀 앞에서 늘 겸손히 배우고 다듬어지는 제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哥林多前書 3:16–4:5 深刻感受到我們正活在一個分裂、混亂的世界之中。這一切景象,相信並非主所願見的。越是在這樣的時刻,我越渴望成為一個定睛仰望神、在禱告中儆醒的信徒。 哥林多前書 4:6–21 哥林多的信徒,甚至將神白白賜予的恩賜與信心,視為自己努力的成果而誇口。相較之下,保羅與使徒們即便身處苦難,仍以忍耐與愛心活出耶穌的品格。願我時刻記得凡事皆是恩典,在獨一真理的話語面前,始終謙遜地學習、被雕塑琢磨——這是我迫切的禱告。
(고린도전서 4:6-21, 누가복음 10-11) 바울이 보여준 낮아짐과 누가복음 속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 자기 희생과 낮은 곳에서의 섬김을 가리킵니다. 교회에서 평생 들어 익숙한 진리지만 막상 삶에서 실천하기란 어렵습니다. 때로는 은연중에 내가 높아지려는 마음으로 섬길 때도 있고 반대로 육신이나 영적으로 지칠때는 섬김 자체가 버겁게 느껴집니다. 결국 무슨 일을 하든 나를 비우고 오직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으실 때 비로소 내가 낮아져 감추어지고 주님께만 영광 돌리는 참된 섬김이 됨을 생각해봅니다.
(哥林多前書 4:6-21,路加福音 10-11) 保羅所展現的謙卑,以及路加福音中耶穌的話語,都指向自我犧牲與在卑微之處服事他人。這是在教會裡聽了一輩子、早已熟悉的真理,然而真正在生活中實踐卻並不容易。有時我們在不知不覺中,懷著想要抬高自己的心去服事;有時又因肉體或靈性的疲憊,連服事本身都感到難以承擔。最終,無論做什麼事,唯有倒空自我、讓神獨得尊榮,才能真正隱藏自己、將一切榮耀歸於主——這才是真實的服事。
바울의 비움은 자기 비움이요, 주님의 영광의 충만이었다. 바울은 나를 본 받으라 한다.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을 자신의 낮아짐을 통하여 다시 살리게 하기 위함임을. 바울은 이렇게 자기를 낮추어 만인들을 살리려 노력하였다.
保羅的倒空,是自我的倒空,也是主榮耀的充滿。 保羅說:要效法我。 為的是藉著自己的降卑,使哥林多信徒從驕傲中得以復甦。 保羅就是這樣謙卑自己,努力使萬人得生命。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모욕을 축복으로 갚는 십자가의 능력이다.
神國度的能力,不是世界的成功,而是在卑微之處,以祝福回應羞辱的十字架能力。
고린도전서 4:20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다. 성전이 거룩한 이유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면 내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기준을 들이대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 내가 하나님의 자리를 가로채게 된다. 하나님이 주인이기에 거룩한 성전이, 내가 주인이 되면 분열과 다툼의 장소가 되어버린다. 내가 자랑할 것은 성전의 주인되신 하나님이시고, 주님께서 나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셨으니 그 일에 끝까지 충성하는 자가 되어야겠다.
聖殿是神所居住的地方。聖殿之所以聖潔,是因為神在其中,因為神是主人。若我是神的聖殿,那就是承認神是我的主人。然而,當我以世界的標準去評斷他人時,我便奪取了神的位置。以神為主人而聖潔的聖殿,一旦我成為主人,就會變成分裂與紛爭之所。我所當誇耀的,是作為聖殿之主的神;主命令我們彼此相愛,因此我要成為在這件事上忠心到底的人。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바울은 선포한다. 그러므로 맡겨진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실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때가 이르러 주님께서 심판하러 오실때에 기쁨으로 나설수 있는 자가 되길 기도한다. 그러한 자로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屬於神的人都是基督的,而基督是神的——保羅如此宣告。 因此,受託之人所被要求的,就是展現忠心。 禱告盼望,當那日主來審判之時,自己能以喜樂之心坦然而立。 求主使我成為這樣的人,能夠站立在祢的面前。
분당은 거룩한 성전을 찢는 일이다. 다름을 존중하고 그 안에서 하나 된 성전으로 서는 것, 그것이 청지기의 충성이다.
分裂是撕裂神聖殿宇之事。尊重彼此的不同,並在其中合一成為一座聖殿——這才是管家的忠心。
고린도전서 3:16
(고린도전서 3:1-15, 누가복음,6-7) 고린도 교인들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아 세상의 지혜나 사람을 자랑하기에 바빴습니다. 반면 누가복음 7장의 여인은 사람들의 손가락질 속에서도 오직 예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과 헌신을 올려드립니다. 바울이 말한 불 시험을 견디는 참된 공적이란 결국 이 여인처럼 십자가 은혜에 감격하여 쏟아내는 순전한 사랑인것 같습니다. 반석 되시는 십자가의 은혜만을 굳게 붙들 때 제 삶에도 비로소 불타지 않는 참된 열매가 맺힐 줄 믿습니다.
(哥林多前書 3:1-15,路加福音 6-7) 哥林多的信徒在靈命上如同嬰孩,忙於誇耀世上的智慧和人物。相較之下,路加福音第7章的那位女人,即使在眾人的指指點點中,仍將對耶穌真誠的愛與獻身毫無保留地呈獻於祂面前。保羅所說的能經得住火煉的真實功德,我想終究就像這位女人一樣——是被十字架恩典深深感動而傾瀉而出的純全之愛。我相信,當我緊緊抓住作為磐石的十字架恩典時,在我的生命中也必將結出不被火燒盡的真實果子。
이전 공동체에서 누린 큰 은혜와 기억 때문에, 마음의 벽을 높이고 이곳에서 그동안 소극적으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내가 우리 공동체에 어떤 재료를 쌓고 있었는지 돌아봅니다. 이제는 소극적인 태도를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 위에 말씀과 기도, 그리고 진정한 배려를 하나씩 쌓아가는 일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因為在以前群體中所經歷的豐盛恩典與美好回憶,我在心中築起了一道高牆,這段時間以來一直消極地停留在這裡。藉此,我回顧自己究竟為我們的群體積累了什麼樣的材料。如今,我渴望放下消極的態度,成為一個在耶穌基督這根基之上,將話語、禱告,以及真誠的關懷一磚一瓦堆砌起來的工人。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세워져야 하고 각자의 섬김과 사역으로 드러날 분도 오직 머리되신 예수님이시다.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고 하는데, 내가 속한 공동체는 그 열매가 시기와 분쟁인가 사랑과 섬김인가? 우리 교회와 청년부의 머리가 예수님인 것을 고백하고 오직 예수만 드러나길 바란다. 또 세상의 가치관과 유혹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공동체이자 하나님이 일하시는 밭,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 되기를 기도해야겠다.
教會群體必須建立在基督這個根基之上,透過各人的服事與事工所彰顯的,也唯有身為頭的耶穌。聖經說憑著果子就可以認出那棵樹——我所屬的群體,它的果子是嫉妒與紛爭,還是愛與服事?我要承認耶穌是我們教會與青年團契的頭,並祈願唯獨耶穌得到高舉。也要禱告,願我們成為一個在世界的價值觀與誘惑中仍屹立不搖的信仰群體,成為神所耕耘的田地、神所居住的家。
늘 나에게도 한가지 결함이 있었다. 고린도 교인들 처럼 교만이 있어 남들을 아프게 할때가 있었다. 지금은 많이 치유 되었다고는 하지만 늘 한 켠에는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다. 그것이 이후에 불로 연단을 받을때 남을지 탈지는 모르겠지만... 목사님의 말씀 나눔처럼 늘 부담으로 와 닿는다.
我自己也始終有一個缺點。 就像哥林多的信徒一樣,我心中有驕傲,有時會傷害別人。雖然如今已經得到了許多醫治,但它仍像一個沉重的擔子,留在心中的某個角落。 不知道那樣東西在將來經過火煉的時候,究竟會留下來還是被燒盡…… 就像牧師分享話語時所說的,這始終是壓在心上的一份負擔。
교회를 세우는 일꾼들의 사역도 궁극적으로는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서만 의미가 있으며, 성도들의 구원은 일꾼의 솜씨가 아니라 그 반석에 달려 있다.
建造教會的工人們的事工,最終也只有在作為磐石的基督之上才有意義;聖徒們的救恩,不在於工人的技巧,而在於那磐石。
고린도전서 3:11
율법에 능했던 사울이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계획을 깨닫지 못했을 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였지만, 성령의 역사가 임하자 죽기까지 충성하며 예수님을 위해 살아간 바울이 되었다. 사람의 지혜로 말씀을 읽으면 그저 텍스트가 되어 그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오히려 나를 자랑하는 자가 되지만, 성령의 역사로 말씀을 읽으면 그 안에 숨겨진 천국의 비밀들을 깨닫고 하나님을 자랑하게 된다. 나는 지금 사울인가, 바울인가? 내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精通律法的掃羅,在尚未領悟話語中神的愛以及藉由耶穌基督所成就的救恩計畫時,不斷逼迫信奉耶穌的人;然而當聖靈的工作臨到他,他便成為了保羅——為耶穌而活,至死忠心。用人的智慧來讀話語,話語不過是一段文字,不僅無從領悟,反而成為自我誇耀的人;但藉著聖靈的工作來讀話語,就能明白其中隱藏的天國奧秘,進而以神為誇耀。我現在是掃羅,還是保羅?我渴望成為一個懷抱基督心腸、靠著聖靈幫助而活的人。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 자신의 영만이 알 수 있는 것이라는 바울의 가르침이 와 닿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지혜를 버리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가르침을 늘 받기 원합니다. 나의 일과 일상의 만남들 가운데에도 성령께서 나타나시고 선한 일을 이루시는 것을 내가 보고 성실히 참여하고 싶습니다.
保羅的教導深深觸動了我——神的智慧,唯有神自己的靈才能明白。因此,我渴望放下自己的智慧,時時領受住在我心中聖靈的教導。在我的工作與日常的每一次相遇中,我也盼望能看見聖靈的彰顯、成就美善的事工,並忠心地參與其中。
(고린도전서 2:1-16, 누가복음4-5) 성령과 말씀의 능력으로 광야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과 자신의 지혜가 아닌 오직 성령의 나타나심을 의지해 십자가를 전했던 바울을 묵상합니다. 삶의 크고 작은 유혹과 시험 앞에서도 내 힘과 경험이 아닌 오직 진리의 성령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기 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성령께서 제 걸음을 친히 인도하시고 말씀으로 승리하게 하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겠습니다.
(哥林多前書 2:1-16,路加福音 4-5) 默想以聖靈與話語的大能勝過曠野試探的耶穌,以及不倚靠自己的智慧、單單倚靠聖靈的顯現來傳揚十字架的保羅。在生活中大大小小的誘惑與試煉面前,我渴望不靠自己的力量與經驗,只全然倚靠真理的聖靈。今天這一天,我也要活在聖靈親自引導我腳步、使我藉著話語得勝的恩典之中。
성령의 지혜를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하늘의 비밀을 열어줄 열쇠를 주셨고 이를 따르게 하심에도 감사드립니다. 바울은 육에 속한 사람과 성령에 속한 사람을 나누는데 우리는 성령에 속한 사람들로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영은 오직 성령의 은혜로만 알아갈 수 있는 길임에 또한 감사하는 하루가 될 것입니다.
感謝祢賜下聖靈的智慧,使我們得以明白。 感謝祢將開啟天上奧秘的鑰匙賜給我們,並引領我們遵行。 保羅將屬肉體的人與屬聖靈的人加以區分——我們作為屬聖靈的人,已蒙恩得著基督的心。 今天也將是充滿感恩的一天,因為神深邃的靈,唯有藉著聖靈的恩典,才能使我們一步步認識與領會。
세상 권력과 돈을 좇는 고린도 시대와 같은 오늘날 화려한 사람의 지혜가 아닌 오직 십자가의 능력과 성령의 일을 분별하는 성도와 부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在這個如同哥林多時代般追逐世間權力與金錢的今日,願我們能成為懂得分辨——不倚靠華麗的人類智慧,而只倚靠十字架的能力與聖靈的作為——的聖徒與父母,為此獻上禱告。
성령의 지혜는 말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삶, 희생과 섬김으로 드러난다.
聖靈的智慧,不是用言語誇耀,而是透過跟隨十字架之路的生命——以犧牲與服事彰顯出來。
고린도전서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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