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사사기 20:29–48
今日默想:士師記 20:29–48
제목 : 화가 미친 줄 알지 못하였더라
어제 읽은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두 번 무너진 뒤에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라고 물었다. 하나님은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고 대답하셨다. 오늘은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승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뒤에 이어지는 한 걸음이 마음에 남는다.
이스라엘은 기브아 주위에 군사를 매복하고 전과 같이 전열을 갖춘다. 거짓으로 물러나 적을 성에서 꾀어낸 뒤, 복병이 성을 점령해 불을 놓는다. 그 연기를 신호로 돌아서서 공격하는 전술이다. 여호수아가 아이 성을 무너뜨릴 때 썼던 바로 그 방식이다. 그때 상대는 가나안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형제 지파 베냐민이다. 가나안을 정복할 때 쓰던 전쟁의 방식이 형제를 향하고 있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사사기의 이스라엘이 얼마나 깊이 영적으로 무너져 내려왔는지가 보인다.
그런데 베냐민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삿 20:32 베냐민 자손이 스스로 이르기를 이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패한다 하나 이스라엘 자손은 이르기를 우리가 도망하여 그들을 성읍에서 큰 길로 꾀어내자 하고
베냐민은 두 번 이긴 경험을 믿었다. 이번에도 ‘처음과 같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순간, 이스라엘은 바로 그 확신을 이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화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삿 20:34 온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택한 사람 만 명이 기브아에 이르러 치매 싸움이 치열하나 베냐민 사람은 화가 자기에게 미친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여기서 ‘화’로 번역된 말은 이 장 앞부분에 나온 ‘악’과 원문에서 같은 말이다. 이스라엘은 베냐민에게 기브아의 불량배들을 넘겨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거하여 버리게 하라’고 요구했다(13절). 그러나 베냐민은 그 악을 감쌌다. 이제 베냐민이 제거하기를 거부한 악이 재앙이 되어 돌아온다. 그들은 성읍의 연기가 하늘에 닿는 것을 보고서야 ‘화가 자기들에게 미친 것을 보고 심히 놀라’게 된다(41절). 지난 두 번의 승리가 다가오는 재앙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이다.
본문은 이 전쟁의 결과를 이렇게 기록한다.
삿 20:3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이만 오천백 명을 죽였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이 장에서 이스라엘은 모이고, 맹세하고, 묻고, 싸웠다. 하나님은 그동안 말씀으로 응답하셨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본문은 이 전투를 하나님의 일로 기록한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베냐민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다. 기브아의 악을 감싼 베냐민을 심판하신 것이다. 앞선 두 전투에서 사만 명을 잃은 이스라엘도 이 고통 밖에 있지 않았다. 한 성읍의 죄로 이스라엘 모두가 아파야 했다. 이때 하나님이 치신 대상은 ‘칼을 빼는 자’, 곧 전쟁에 나선 군사들이었다.
베냐민 사람 육백 명은 광야의 림몬 바위로 도망해 그곳에서 넉 달을 지냈다(47절). 전투는 거기서 끝났다. 하지만 본문에는 한 절이 더 남아 있다.
삿 20:48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은 모두 다 불살랐더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터를 떠나 베냐민의 성읍들로 향한다. 칼이 향하는 대상도 바뀐다. ‘칼을 빼는 자’에서 ‘만나는 자를 다’로, 군사에서 성읍과 사람과 가축으로 넓어진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명령이 없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베냐민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시는 것이었고, 그 약속은 35절에서 이미 이루어졌다. 48절의 주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스라엘 사람’이다. 처음에는 기브아의 불량배들만 넘겨 달라고 했던 사람들이 이제 한 지파 전체를 지우고 있다. 가나안 족속에게 행해야 했던 진멸은 끝내 이루지 못하더니, 그 칼을 형제에게 돌린 것이다.
율법은 처벌이 죄의 크기를 넘지 않게 하라고 가르쳤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말씀은 보복을 부추기는 말씀이 아니라 보복에 한계를 두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서는 그 한계가 보이지 않는다. 시작은 정의였다. 하나님은 그 정의에 승리로 답하셨다. 그런데 승리를 얻은 사람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정당한 심판도 사람의 분노를 만나면 이렇게 쉽게 복수로 넘어간다. 이스라엘은 다음 장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21:3)라며 통곡한다. 화가 자기에게 미친 줄 몰랐던 것은 베냐민만이 아니었다. 이스라엘도 자기 칼이 무엇을 베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다고 해서, 승리한 사람이 그다음에 하는 모든 일까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멈추신 자리에서 함께 멈추는 것. 오늘 이스라엘은 그것을 하지 못했다.
48절을 읽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두 번의 전투에서 쓰러진 동료들의 원수를 갚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승리를 주셨지만, 승리에 도취한 순간 하나님의 심판은 어느새 그들 자신의 보복이 되어 버렸다. 바로 하루 전 벧엘에서 울며 금식하고, 하나님께 묻고, 응답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눈물과 응답을 잊은 채 이성을 잃고 복수에만 매달린다.
나 역시 그런 때가 있지 않았을까 돌아본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응답을 받고도, 일이 풀리기 시작하면 그 은혜를 잊곤 했다. 마음 깊이 남아 있던 서운함과 억울함이 고개를 들면, 하나님이 멈추신 자리를 지나 내 감정이 원하는 데까지 가 버리곤 했다. 시작은 하나님 앞에서였는데 끝은 내 분노였던 적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 나는 하나님이 주신 승리 앞에서 다시 멈춰 선다. 울며 드렸던 기도와 그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을 다시 기억한다. 무너지려는 마음을 하나님 앞에 붙들어 맨다. 그리고 공동체와 함께 기도한다. 주님, 주께서 멈추신 자리에서 우리도 멈추게 하시고, 우리의 상처가 주님의 이름을 빌린 복수가 되지 않게 하시며, 무너지는 마음을 다시 붙잡고 오늘도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標題:卻不知道災禍臨到自己
在昨天讀的經文中,以色列人接連兩次潰敗之後,才求問:「我們可以去還是不可以去?」神回答說:「你們當上去,因為明日我必將他們交在你們手中。」今天,正是這應許成就的場景。然而故事並沒有在勝利中結束,接下來的那一步,深深留在我心裡。
以色列人在基比亞四圍設下伏兵,又像先前一樣擺陣。他們假裝退卻,把敵人從城裡引出來,伏兵隨即占領城邑、放火焚燒,再以那煙為信號,回身攻擊。這正是約書亞攻陷艾城時所用的戰術。那時的對手是迦南人,如今卻是弟兄支派便雅憫。征服迦南時所用的戰法,竟然轉向了自己的弟兄。單憑這一幕,就能看出士師時代的以色列,在屬靈上已經崩壞到何等地步。
然而便雅憫人卻沒有察覺。
士 20:32 便雅憫人說:「他們仍舊被我們打敗,像初次一樣。」但以色列人說:「我們不如逃跑,引誘他們離開城到大路上。」
便雅憫人倚靠兩次得勝的經驗,以為這次也會「像初次一樣」。但就在同一刻,以色列人正籌劃著要利用他們這份自信。作者這樣記載:
士 20:34 有以色列人中的一萬精兵,來到基比亞前面,戰勢甚是猛烈,便雅憫人卻不知道災禍臨近了。
這裡譯作「災禍」的字,在原文中與本章前面出現的「惡」是同一個字。以色列人曾要求便雅憫人交出基比亞的匪徒,「好從以色列中除掉這惡」(13節)。但便雅憫人卻包庇了那惡。如今,便雅憫人拒絕除掉的惡,成了災禍反撲回來。直到他們看見城中的煙氣沖天,才「見災禍臨到自己,就甚驚惶」(41節)。先前兩次的勝利,使他們看不見正在逼近的災禍。
經文這樣記載這場戰爭的結果:
士 20:35 耶和華使以色列人在以色列人面前殺敗便雅憫人。那日,以色列人殺了便雅憫人二萬五千一百名,都是拿刀的。
在這一章裡,以色列人聚集、起誓、求問、爭戰,神也一直用話語回應他們。然而到了關鍵時刻,經文將這場戰役記為神的作為。神照祂所應許的,將便雅憫交在以色列人手中,審判了包庇基比亞之惡的便雅憫。在前兩場戰役中損失四萬人的以色列,也沒有置身於這痛苦之外。因著一座城的罪,全以色列都要一同受痛。此時神所擊打的對象是「拿刀的」,也就是上陣的軍兵。
便雅憫人中有六百人逃往曠野的臨門磐,在那裡住了四個月(47節)。戰事到此結束。但經文還剩下一節。
士 20:48 以色列人又轉到便雅憫地,將各城的人和牲畜,並一切所遇見的,都用刀殺盡,又放火燒了一切城邑。
以色列人離開戰場,轉向便雅憫的各城。刀鋒所指的對象也改變了:從「拿刀的」變成「一切所遇見的」,從軍兵擴大到城邑、百姓和牲畜。這裡沒有神的命令。神所應許的,是將便雅憫交在以色列人手中,而這應許在35節已經成就了。48節的主詞從頭到尾都是「以色列人」。起初只要求交出基比亞匪徒的人,如今卻要抹去整個支派。對迦南各族本該施行的滅絕,他們終究沒有完成,卻把那刀轉向了自己的弟兄。
律法教導,刑罰不可超過罪的大小。「以眼還眼,以牙還牙」這句話,不是鼓動報復,而是為報復設下界限。然而在以色列人身上,卻看不見這界限。起初是公義,神也以勝利回應了那公義。但得勝的人並沒有就此停下。正當的審判一旦遇上人的怒氣,就這樣輕易地越界成了復仇。到了下一章,以色列人痛哭說:「耶和華以色列的神啊,為何以色列中有這樣缺了一支派的事呢?」(21:3)不知道災禍臨到自己的,不只是便雅憫。以色列人也不知道自己的刀正在砍向什麼。
神賜下勝利,並不代表得勝的人接下來所做的一切都成了正當的。在神停下的地方,一同停下——今天的以色列,沒有做到這一點。
讀48節時,以色列人看起來像是要為兩場戰役中倒下的同伴報仇。神賜給他們勝利,但在陶醉於勝利的那一刻,神的審判不知不覺竟成了他們自己的報復。就在前一天,他們還在伯特利哭泣禁食、求問神、領受回應;如今卻忘了那眼淚和回應,失去理智,一心只想復仇。
我回頭省察,自己是否也曾如此。在神面前俯伏禱告、蒙了應允,可是一旦事情開始順利,就往往忘記了那恩典。心底深處的委屈與不平一抬頭,我就越過神停下的地方,一路走到自己情緒想去的地方。我不能說,自己從來沒有過起初在神面前、結局卻是自己怒氣的時候。所以今天,我在神所賜的勝利面前再次停下腳步,再次記念那些含淚獻上的禱告,以及應允那些禱告的神。我把那快要崩塌的心,緊緊繫在神面前,並且與群體一同禱告:主啊,求祢使我們在祢停下的地方也停下;不讓我們的傷痛成為假借祢名的復仇;求祢幫助我們重新抓住那崩塌的心,今天也與祢同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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