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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 이사야 21:1-17

    今日默想:以賽亞書21:1-17

    한어부··조회 74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부르심

    이사야 21장에서는 바벨론과 두마, 그리고 아라비아를 차례로 다룬다. 이미 13-14장에서 바벨론의 교만과 멸망을 말씀하셨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그 멸망의 순간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밤'이라는 이미지다. 바벨론에게는 멸망의 밤이 찾아오고, 두마에게는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이다. 결국 이 말씀은 단순히 열방의 멸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둠 가운데 있을 때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사21:1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네겝 회오리바람 같이 몰려왔도다"

    여기서 말하는 '해변 광야'는 바벨론을 가리킨다. 유프라테스강과 수많은 수로와 습지로 둘러싸여 있던 바벨론은 당시 가장 강력하고 화려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화려한 제국을 '광야'라고 부르신다. 사람의 눈에는 번성하고 견고해 보이는 곳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전혀 다를 수 있다. 바벨론은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곳을 향해 심판의 바람을 보내고 계셨다.

    사21:2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

    바벨론은 다른 나라를 속이고 약탈하면서 제국을 세웠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행했던 일이 자신들에게 돌아온다. 엘람과 메대가 바벨론을 공격하고, 오랫동안 바벨론의 압제 아래 신음하던 사람들의 탄식이 그치게 된다. 하나님은 악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신다. 때로는 너무 오랫동안 악이 계속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때가 오면 반드시 그 악을 끝내신다. 그런데 이사야의 반응은 우리의 예상과 다르다.

    사21:3-4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해산이 임박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나를 엄습하였으므로 내가 듣고 놀랐으며 보고 떨었도다 내 마음이 어지럽고 두려움이 나를 놀라게 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바벨론은 유다를 괴롭힌 원수였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멸망은 유다에게 해방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사야는 그것을 보고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스러워하고 떤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 심판을 바라보는 태도일 것이다. 악이 무너지는 것은 기뻐할 일이지만, 그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멸망을 보며 "잘됐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시지만 죄인의 멸망 자체를 기뻐하시는 분은 아니다. 이어지는 장면은 바벨론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다.

    사21:5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성 밖에서는 심판의 군대가 다가오고 있는데 성 안에서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제국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장면을 보면서 다니엘 5장의 벨사살 왕의 잔치를 떠올랐다. 바벨론이 무너지는 바로 그 밤에도 왕과 귀족들은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사람은 때로 위험이 가까이 와 있는데도 자신이 안전하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심판은 반드시 찾아온다.

    사21:9 "보소서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두 번 반복되는 이 말씀은 바벨론의 멸망이 확실하고 철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벨론이 자랑하던 군사력과 성벽도, 그들이 섬기던 신상도 아무것도 지켜주지 못한다. 바벨론이 무너진 것은 단순히 강한 나라가 더 강한 나라에게 패배한 사건이 아니다. 인간이 쌓아 올린 제국이 하나님의 통치 앞에서 얼마나 연약한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리고 10절에서 갑자기 대상이 바뀐다.

    사21:10 "내가 짓밟은 너여 내가 타작한 너여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 대로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지만,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은 아니었다. 타작은 곡식을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알곡을 얻기 위한 과정이다. 이스라엘에게 고난의 시간이 있었지만 그 시간에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놓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어려움을 허락하실 때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지금은 내가 짓밟히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도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다듬고 깨뜨리시면서도 여전히 자기 백성으로 붙들고 계신다. 11-12절에서는 분위기가 다시 바뀐다.

    사21:11-12 "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도다 파수꾼이 이르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하더라."

    에돔 사람이 파수꾼에게 묻는다. "밤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이 질문은 참 현실적이다. 지금의 고난이 언제 끝나는지, 이 어둠이 언제 지나가는지를 묻는 것이다. 우리도 어려움을 당하면 가장 먼저 같은 질문을 한다. "언제 끝날까?" "얼마나 더 견뎌야 할까?" 그런데 파수꾼의 대답은 우리가 기대하는 대답과 조금 다르다.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아침이 온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밤도 다시 온다고 말한다. 잠깐의 평안이 찾아온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다시 어둠이 찾아올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중요한 말이 붙는다.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결국 중요한 것은 밤이 언제 끝나는지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향해 돌아가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은 질문하는 것을 막지 않으신다. 그러나 단순히 상황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사21:13-15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라 드단 대상들이여 너희가 아라비아 수풀에서 유숙하리라 데마 땅의 주민들아 물을 가져다가 목마른 자에게 주며 떡을 가지고 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 그들이 칼과 뺀 칼과 당긴 활과 전쟁의 어려움을 피하여 도망하였음이니라."

    평소 무역을 통해 부를 누리던 드단 사람들이 이제는 수풀에 숨어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데마 사람들에게는 도망쳐 온 사람들에게 물과 떡을 주라고 명령한다.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사람을 향한 책임을 말씀하신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이 누구인지 따지기 전에,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고 도망하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냉혹한 복수와 다르다. 그 가운데에서도 약한 사람을 돌아보고 서로를 돌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게달의 영광이 쇠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사21:16-17 "주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기한 같이 일 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게달 자손 중 활 가진 용사의 남은 수가 적으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게달 사람들은 활을 잘 쏘는 강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의 힘도 영원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오면 그들의 영광도 쇠하게 된다. 결국 이사야 21장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하나다. 세상에서 아무리 강해 보이는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바벨론도 무너지고, 에돔도 밤을 지나야 하며, 아라비아의 영광도 쇠한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특히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라는 질문이 마음에 남는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같은 질문을 한다. "하나님, 이 밤은 언제 끝납니까?" "이 상황은 언제 바뀝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괜찮아집니까?"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 질문에 단순히 "곧 끝난다"고 대답하지 않는다.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그리고 이어서 말씀한다.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밤이 언제 끝나는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밤을 지나면서 내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벨론처럼 내가 의지하던 것이 무너질 수도 있다. 내가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사람과 환경도 변할 수 있다. 내가 붙들고 있던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 묻고 계신다.

    "너는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느냐?"

    밤이 끝나는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밤 가운데서도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침이 올 때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다시 밤이 찾아올 때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오늘도 내 삶의 밤이 언제 끝날지 계산하기보다, 그 밤 가운데서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겠다. 세상의 바벨론이 무너져도, 내가 의지하던 것들이 흔들려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피난처이시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할 일은 밤의 길이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中文 AI翻譯

    神呼召我們回轉

    以賽亞書21章依次論及巴比倫、度瑪,以及亞拉伯。雖然在13-14章中已經宣告了巴比倫的驕傲與滅亡,但今天的經文更加生動地描繪了那滅亡的時刻。

    特別是在讀今天的經文時,映入眼簾的是「夜晚」這個意象。巴比倫將迎來滅亡之夜,度瑪則有人問道:「夜裡如何?」而對這個問題的回答是:「早晨將到,黑夜也來。」歸根結柢,這段話並非單純在講列國的滅亡,而是在問我們:當我們身處黑暗之中時,應當仰望何處。

    賽21:1「論海旁曠野的默示:有仇敵從曠野,從可怕之地而來,好像南方的旋風猛然掃過。」

    這裡所說的「海旁曠野」指的是巴比倫。巴比倫被幼發拉底河及無數的水道與濕地環繞,是當時最強盛、最華麗的城市之一。然而神卻稱這座華麗的帝國為「曠野」。在人眼中看似繁榮堅固之處,在神眼中卻可能完全不同。巴比倫自認為安全無虞,但神其實早已向那裡吹送審判之風。

    賽21:2「令人痛心的異象已默示於我:詭詐的仍行詭詐,毀滅的仍行毀滅。以攔哪,前去吧!瑪代啊,圍困吧!我使一切歎息止息了。」

    巴比倫靠著欺騙他國、擄掠他國而建立了帝國。然而如今,他們曾對別人所做的事,如今臨到自己身上。以攔與瑪代前來攻打巴比倫,長久以來在巴比倫壓迫下呻吟的人們的歎息終將止息。神絕不會對惡視而不見。有時惡似乎持續了太久,但當神的時候一到,祂必終結那惡。然而以賽亞的反應卻與我們的預期不同。

    賽21:3-4「所以我滿腰疼痛,痛苦將我抓住,好像產難的婦人一樣;我疼痛甚至不能聽,我驚惶甚至不能看。我心慌張,驚恐威嚇我;我所羨慕的黃昏,反成為我的顫驚。」

    巴比倫曾是折磨猶大的仇敵,因此巴比倫的滅亡對猶大而言意味著解放。然而以賽亞看到這一切,並不感到喜樂,反倒像臨產的婦人一樣痛苦顫抖。這或許正是懷抱神心意之人面對審判時應有的態度。惡的傾覆固然值得歡喜,但看著身陷其中之人的滅亡而說「活該」,卻是另一回事。神審判罪惡,但祂並不以罪人的滅亡本身為樂。接下來的場景描繪了巴比倫最後的景象。

    賽21:5「他們擺設筵席,派人守望,又吃又喝。首領啊,起來吧,抹亮盾牌!」

    城外審判的大軍已步步逼近,城內卻正大擺筵席。他們並不認為自己的帝國即將傾覆。看到這幅景象,讓人想起但以理書5章伯沙撒王的筵席。就在巴比倫傾覆的那一夜,君王與貴族們仍在設宴狂歡。人有時明明危險已近在咫尺,卻仍誤以為自己安全無虞。然而神所宣告的審判必定會臨到。

    賽21:9「看哪,有一隊軍兵騎著馬,一對一對而來。他就回答說:『巴比倫傾倒了!傾倒了!他一切雕刻的神像都打碎在地上了。』」

    「傾倒了!傾倒了!」這句話重複兩次,顯明巴比倫的滅亡是確定且徹底的。巴比倫所誇耀的軍力與城牆,以及他們所敬拜的偶像,沒有一樣能夠保全他們。巴比倫的傾覆並非單純是強國敗於更強之國的事件,而是彰顯人所建立的帝國在神的統治面前是何等軟弱的事件。而在第10節,對象忽然轉變。

    賽21:10「我被打的禾稼,我禾場上的穀啊,我從萬軍之耶和華以色列的神那裡所聽見的,都已傳給你們了。」

    神雖藉巴比倫管教了以色列,卻並未棄絕以色列。打場並非為了消滅穀物,而是為了獲得穀粒的過程。以色列雖經歷苦難的日子,但即使在那段時間裡,神也未曾放開自己的百姓。當神容許困難臨到我們的生命中時,也可能是同樣的道理。此刻或許感覺自己正被踐踏,但這並不代表神已經棄絕了我。神有時一邊雕琢、擊碎我們,卻仍然將我們緊緊抓住,視我們為祂的百姓。到了11-12節,氛圍再次轉變。

    賽21:11-12「論度瑪的默示:有人聲從西珥呼問我:『守望的啊,夜裡如何?守望的啊,夜裡如何?』守望的說:『早晨將到,黑夜也來。你們若要問,就可以問;你們可以回轉再來。』」

    以東人向守望者發問:「夜還剩多久?」這個問題十分真實。它問的是:現在的苦難何時結束?這黑暗何時過去?我們遭遇困難時,也常常最先問同樣的問題:「什麼時候結束?」「還要撐多久?」然而守望者的回答,與我們所期待的答案略有不同:「早晨將到,黑夜也來。」他並非只說早晨會來,也說黑夜還會再來。片刻的平安臨到,並不代表所有問題都結束了。若沒有根本性的改變,黑暗仍可能再度來臨。而在最後,附上了一句重要的話:「你們若要問,就可以問;你們可以回轉再來。」

    歸根結柢,重要的不是計算黑夜何時結束,而是要轉向何處。神並不禁止我們發問,但祂並非要我們單單等候情況好轉,而是呼召我們回轉歸向祂。

    賽21:13-15「論亞拉伯的默示:底但的行商啊,你們必在亞拉伯的樹林中住宿。提瑪地的居民哪,你們拿水來迎接口渴的人,拿餅來迎接逃難的人;因為他們逃避刀劍——就是已出鞘的刀、上弦的弓,並戰爭的艱難。」

    平日靠貿易享受富足的底但人,如今卻淪落到必須躲藏在樹林中的地步。而神吩咐提瑪人,要拿水和餅接待逃難而來的人。即使在審判之中,神仍宣告人對他人所負的責任。在追究誰陷入困境之前,應當先給口渴的人水喝,給逃難的人食物吃。神的審判並非冷酷無情的報復;在其中依然彰顯出神的心意——顧念軟弱之人,彼此相顧。最後,神宣告基達的榮耀將要衰微。

    賽21:16-17「主對我這樣說:『一年之內,照雇工的年數,基達的一切榮耀必歸於無有;基達人中弓箭手所餘剩的勇士必稀少。』這是耶和華以色列的神說的。」

    基達人素以善於射箭、驍勇善戰而聞名,然而他們的力量也並非永恆。當神所定的時候一到,他們的榮耀也將衰微。歸根結柢,以賽亞書21章反覆彰顯的道理只有一個:世上無論看似多麼強大之物,都不是永恆的。巴比倫傾覆,以東也必須經過黑夜,亞拉伯的榮耀也將衰微。

    默想今天的經文時,「夜裡如何?」這個問題特別縈繞在心頭。我們在生活中也常常向神提出同樣的問題:「神啊,這黑夜何時結束?」「這處境何時改變?」「再稍微忍耐一下,是不是就會好轉?」然而今天的經文並沒有單純回答「很快就會結束」,而是說:「早晨將到,黑夜也來。」接著又說:「你們可以回轉再來。」

    或許神想要我們明白的,並非黑夜何時結束,而是要我們在經過黑夜的過程中,確認自己正仰望著何處。如同巴比倫一樣,我所依靠的事物也可能傾覆;我曾以為安全的人與環境也可能改變;我所堅持的計畫也可能無法如願實現。然而就在那時,神正在問我們:

    「你現在正仰望著哪裡?」

    比起黑夜何時結束,更重要的是,即使身處黑夜之中,仍要轉向神。當早晨來臨時仰望神,當黑夜再度來臨時也仰望神。今天,與其計算我生命中的黑夜何時結束,不如仰望那在黑夜中呼喚我的神。即使世上的巴比倫傾覆,即使我所依靠的一切動搖,神仍然是我的避難所。因此,今天我要做的,不是計算黑夜的長度,而是轉向神、歸回祂那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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