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이사야 31:1–9
今日默想:以賽亞書 31:1–9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같이
오늘 본문에서 다시 애굽의 문제를 다룬다. 이사야에서 애굽의 대한 경고가 벌써 세번째이다. 그만큼 유다가 그 길에서 돌아서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 31: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여기서 이스라엘이 애굽을 통해서 의지한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나온다. 말과 병거와 마병이다. 애굽은 좋은 말이 많은 나라였고 병거로 이름난 나라였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군사력을 의지하려 한 것이다. 많은 주석가들은 이 대목에서 신명기 17장의 한 명령을 떠올린다. 왕이 말을 많이 두려고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건져 내신 그 땅으로 말을 구하러 다시 내려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왜 그럴까?
1절 후반부에 군사력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를 설명한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본문이 반복해서 쓰는 말이 '의지하다'와 '구하지 아니하다'인 것을 보라. 곧 이것은 외교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신뢰하느냐의 문제다. 한 주석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피조물을 신뢰하는 마음이 곧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을 낳고, 기도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일을 소홀히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이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시다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당연한 말인데, 여기서는 뼈가 있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애굽과 손잡는 것이 현실적이고 영리한 선택이라 여겼다. 그러니 하나님이 이렇게 되받으시는 셈이다. 그것이 정말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생각하냐? 이 세상의 주관자 여호와 하나님이 참된 지혜이신데 그 지혜를 왜 의지하지 못하냐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사 31: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이 절에서 두 쌍의 대조가 나온다. 애굽은 사람이지 신이 아니고, 그 말들은 육체이지 영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 육체라는 말은 연약하고 스러지는 것을 가리킨다. 곧 그들이 그토록 믿고 의지한 말이란, 아무리 강해 보여도 결국 죽고 쓰러지는 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손을 펴시면 돕는 자와 도움을 받는 자가 함께 넘어진다고 하신다. 결국 애굽도 유다도 함께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4절과 5절이 두 그림으로 보여 준다. 그런데 이 두 그림이 서로 아주 다르다.
먼저 4절은 사자다. 사자가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 목자들이 떼로 몰려와 소리를 지르고 소란을 피워도 사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렇게 시온 산에 강림하여 싸우신다고 하신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힘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말씀하신다.
사 31:5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
즉 새가 둥지 주위를 날며 지키듯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지키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그림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두고 주석가들의 견해가 갈린다. 어떤 이들은 사자의 사나움과 새의 돌봄이 대조를 이룬다고 보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두 그림이 같은 것을 표현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 유대 주석가는 사자가 하나님의 힘을 나타내고 새는 그 신속함을 나타낸다고 했다. 왜냐하면 실제로 새도 자기 새끼를 지킬 때는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다. 위를 맴돌다가 무언가 다가오면 곧바로 뛰어나가 막는다. 이처럼 어느 쪽으로 읽든 요지는 같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지키신다는 것이고, 그 지키심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절에 '뛰어넘어 구원하리라'라고 표현하는 것도 원어를 보면 이 말이 유월절 사건을 묘사할 때 쓰인 것과 같은 어근의 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애굽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집을 넘어가시며 멸하는 자가 그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던 그 구원의 밤을 연상하게 하는 말이라고 이야기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그렇기에 지금 비록 그들은 애굽에게 도움을 구하러 내려가고 있는데, 하나님은 애굽에서 그들을 건지시던 그 방식으로 다시 지키시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이 보호 앞에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이렇게 말씀한다.
사 31:6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그리고 7절에서 그 날에 사람마다 자기 손으로 만든 은 우상과 금 우상을 던져 버리리라고 하신다. 곧 신앙은 결단이 필요하다. 그저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으면 안된다. 붙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돌아서야 하는 것이다. 애굽을 의지하는 마음을 버리고, 손으로 만든 우상을 던져 버리고, 그분께 돌아서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8절이 다시 그들이 애굽을 의지해야 했던 이유로 돌아간다.
사 31:8 앗수르는 칼에 엎드러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칼에 삼켜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 그의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이라
그래 이스라엘이 애굽을 의지한 이유는 앗수르에 대한 두려움과 그 공격을 막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그 앗수르가 무너진다. 그런데 사람의 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즉 유다가 그토록 애써 얻으려던 것이 무엇이었는가. 말과 병거와 마병이었다. 사람의 칼이었다. 그것을 가지고 앗수르를 이기려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의지하는 것 없이 앗수르를 무너뜨리신다. 그들이 광야를 건너 보물을 실어 보내며 사려 했던 그 힘이, 예루살렘을 구원하는 데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나는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하게 된다. 내가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 내가 의지하는 것은 무엇인가? 즉 나에게 애굽은 무엇일까. 이스라엘에게 애굽은 눈에 보이는 힘이었다. 말이 있고 병거가 있고 마병이 있었다. 손에 잡히는 것이었고 계산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광야를 건너 보물을 실어 보내면서까지 붙들려 했다. 어쩌면 나에게도 그런 것이 있을 것이다. 준비해 둔 계획, 쌓아 온 경험,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이다. 물론 이것들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붙드는 사이에 하나님을 앙모하고 구하는 일이 뒤로 밀린다면, 그것이 나의 애굽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거기서 돌아오라고 말씀한다. 손에 든 것 즉 내가 의지하던 것을 던져 버리고 돌아서라고 한다. 그러니 오늘 나는 내가 붙들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움켜 쥐었던 그 손을 펴고 하나님께로 돌아서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내가 기대했던 것이 아닌 방식으로 일하시고, 살아계심을 보여주시는 그 하나님을 경험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
如鳥展翅覆雛
今天的經文再次談到埃及的問題。這已經是以賽亞書中第三次針對埃及發出警告了。這也意味著猶大始終沒有從那條路上回轉過來。
賽31:1 禍哉!那些下埃及求救,倚靠馬匹,倚仗甚多的車輛,並倚靠強壯的馬兵,卻不仰望以色列的聖者,也不求問耶和華的!
這裡具體指出了以色列透過埃及所倚靠的究竟是什麼——馬匹、戰車和馬兵。埃及是一個盛產良馬、以戰車聞名的國家。以色列想倚靠的正是埃及的軍事力量。許多注釋家在這裡會聯想到申命記十七章的一條誡命:王不可為自己加添馬匹,也不可使百姓回埃及去,好加添他的馬匹。神既然已經把他們從那地救出來,就不要再下去尋求馬匹。這是為什麼呢?
第1節後半段解釋了不可倚靠軍事力量的原因:因為他們不仰望以色列的聖者,也不求問耶和華。請留意經文反覆使用的詞——「倚靠」與「不求問」。這其實不是外交政策的問題,而是信靠對象的問題。有位注釋家這樣說:倚靠受造之物的心,本身就會滋生出不信靠神的心,並使人疏於藉禱告向神求助。當我們倚靠眼睛所能看見的,就無法信靠那看不見的神——這一點在此表露無遺。
於是神在第2節如此說:耶和華也是有智慧的。乍聽之下這似乎是理所當然的話,但這裡其實話中有話。以色列認為與埃及結盟是現實且明智的選擇。於是神彷彿反問:你們真的認為那是明智的選擇嗎?這世界的掌權者耶和華神才是真正的智慧,你們為何不倚靠這智慧呢?
接著第3節這樣說:
賽31:3 埃及人不過是人,並不是神;他們的馬不過是血肉,並不是靈。耶和華一伸手,那幫助人的必絆跌,那受幫助的也必跌倒,都一同滅亡。
這一節出現了兩組對比:埃及是人,不是神;他們的馬是血肉,不是靈。這裡的「血肉」指的是軟弱且會消逝的東西。也就是說,他們如此信賴倚靠的馬匹,無論看起來多麼強壯,終究不過是必死、必倒的軀體。而神一伸手,幫助者與受幫助者就一同跌倒。最終埃及與猶大都要一同傾覆。
那麼,神究竟是怎樣的一位呢?第4節與第5節用兩幅圖畫向我們展示。而這兩幅圖畫彼此截然不同。
第4節是獅子的形象。獅子抓住獵物咆哮的時候,就算一群牧人聚來大聲喧嚷,獅子也不會因此驚慌。萬軍之耶和華必如此降臨錫安山爭戰,那是無人能擋的大能。
接著再次這樣說:
賽31:5 雀鳥怎樣搧翅乎雛,萬軍之耶和華也要照樣保護耶路撒冷。他必保護拯救,要越門保守。
也就是說,如同鳥兒在巢邊盤旋守護一般,神也如此守護耶路撒冷。然而該如何理解這兩幅圖畫,注釋家們的看法並不一致。有人認為獅子的兇猛與鳥的看顧形成對比,也有人說這兩幅圖畫其實表達的是同一件事。有位猶太注釋家則說,獅子代表神的大能,鳥則代表神的迅速。因為事實上,鳥在保護幼雛時也絕不退縮——牠們在空中盤旋,一旦有東西靠近,便立刻俯衝阻擋。無論怎麼解讀,要點都是一樣的:神必保護耶路撒冷,且無人能阻擋祂的保護。
而這一節中「越門保守」這個詞,若查考原文,會發現這與描述逾越節事件時所用的字根相同。因此有些神學家指出,這句話讓人聯想到那個拯救之夜——耶和華在埃及越過以色列人的房屋、不容滅命的使者進入其中的那個夜晚。因此,儘管此刻他們正下到埃及去求助,神卻要用當初在埃及拯救他們的那種方式,再次保守他們。
那麼,面對這樣的保護,他們當做的是什麼呢?經文如此說:
賽31:6 以色列人哪,你們深深地悖逆耶和華,現今要歸向他。
接著第7節說,到那日,各人必將親手所造、陷自己於罪中的金偶像、銀偶像盡行拋棄。也就是說,信仰需要決斷。不能只是袖手旁觀,而必須放下一直緊握的東西,轉身回轉。要放下倚靠埃及的心,丟棄親手所造的偶像,轉向那一位。
最後第8節又回到他們當初為何倚靠埃及的原因:
賽31:8 亞述人必倒在刀下,並非人的刀;有刀要將他吞滅,並非人的刀。他必逃避這刀,他的少年人必成為服苦役的。
原來以色列倚靠埃及的原因,是懼怕亞述、想抵擋亞述的攻擊。然而那亞述卻要傾倒。而且並不是被人的刀所傾覆。也就是說,猶大那樣費盡心力想要得到的——馬匹、戰車、馬兵——不過是人的刀而已,他們想靠這些戰勝亞述。然而神卻在以色列毫無倚靠之物的情況下,親自使亞述傾覆。他們不惜跨越曠野、運送財寶去購買的那股力量,其實對拯救耶路撒冷來說根本不是必需的。
因此,藉著今天這段話語,我再次向自己發問:我所懼怕的、以及為了勝過那懼怕而倚靠的,究竟是什麼?換句話說,對我而言,什麼是我的「埃及」呢?對以色列來說,埃及是看得見的力量——有馬匹、有戰車、有馬兵,都是能握在手中、可以計算的東西。所以他們甚至不惜跨越曠野、運送財寶,也要緊緊抓住。也許我心中也有這樣的東西:早已擬定的計畫、累積多年的經驗、可能對我有幫助的人脈。當然,這些東西本身並非全然不好。只是,若在緊抓這些東西的過程中,仰望神、求問神的心被擠到了後面,那麼這些就成了我的「埃及」。然而今天的經文卻呼召我們從那裡回轉——放下手中緊握、一直倚靠的東西,轉身歸向神。因此,今天我願意一一省察自己所緊抓不放的事物,鬆開那緊握的手,轉向神。也願今天成為這樣的一天:讓我經歷那位不按我所預期的方式行事、卻用祂的作為向我顯明祂是活神的那一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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