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속한 자는 빛에 행하나 죄인은 빛을 보면 숨어버린다. 나도 사실 요즘 나의 연약함이 드러나고 나의 죄가 드러나는 게 무서워 자꾸 도망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너무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의 연약함을 드러내시는 건 나를 강하게 하여 하나님만 섬기는 자로 거듭나게 하려는 것이지 나를 조롱하기 위함이 아니다. 하나님은 내가 죄인되었을 때부터 나를 사랑하셨다. 더 이상 빛에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숨지 말고 나의 연약함을 다 주께 토로하고, 나의 연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강함이 드러나는 통로가 되길 기도하자.
오늘 이사야 본문을 묵상하며 이 땅에서 순례자로 살아가는데 헛된 것을 의지하고 움켜쥐며 살고 있음을 돌이켜 봅니다. 마지막 때에 내가 의지하고 우상으로 만들었던 모든 것이 다 없어질 것을 알면서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내 자신을 회개합니다. 말씀 없이는 한순간도 바로 서 있을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히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내 모습은 마치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실때 한시도 깨어 있을 수 없냐고 책망받았던 제자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날마다 넘어지지만 그렇기에 더 주님의 은혜로만 오늘도 살길 원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대신 은금과 병거라는 세상 우상을 의지하다 영적으로 눈이 멀었던 것처럼, 저 또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때에 인맥과 사람들의 칭찬을 갈망하는 우상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잦은 이주로인해 지친마음 그리고 이젠 친밀한 인맥도 없어 때로는 서글프기도 하지만 주님과 나만의 관계에만 깊이 집중할 수 있는 지금이 귀하고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내 안의 헛된 은금과 병거를 내려놓고 오직 영원한 소망이신 하나님 한 분만을 신뢰하며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여호와의 빛을 비추는 자녀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내 안의 불순물, 나의 우상은 나 자신인 것 같다. 내 생각, 내 감정이 더 중요하고 상처받기 싫어서 꽁꽁 싸매고 하나님이 그것을 벗기실 때 싫다고 떼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억지로 내 상황에 끼워 맞추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온 나를 단련시키기 위한 순간이 지금인 것 같다. 요즘 내가 얼마나 교만하고 무지하고 사랑이 없고 남을 쉽게 미워하기만 했는지 깨달았다. 단순히 깨닫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오늘 하루 내가 미워했던 자를 위해 더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생각하여 주님의 뜻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유다가 처음부터 타락한 성읍은 아니었지만 정의와 공의가 사라지고 지도자들이 타락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몰락하는 모습을 보며 반면교사로 삼습니다. 성도란 어찌보면 모두 세상에서 영적 지도자와 같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신분으로써 성도의 타락은 곧 지도자의 타락으로 성읍 전체의 몰락을 이끌었던 유다와 다를바 없다는 부담감을 항상 지니며 살아야겠습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기준삼고 성령이 이끄시는데로 또한 양심껏 살아내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 마음 한구석에도 여전히 비워내지 못한 세상의 욕심이 가득하진 않은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또한 나의 삶에서 단 한 번이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히 정의롭고 공의로웠던 적이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항상 적당히 타협했던 마음을 돌이키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안의 불순불들이 깨끗하게 씻겨 나가기를 소망합니다.
이사야가 활동한 시대는 유다가 완전히 멸망하기 전이었으나, 멸망 이후의 선지자들과 내용이 동일하다. 하나님은 여전히 악을 버리고 선행과 정의를 행하라고 말씀하신다. 시대가 지나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는 동일하며 성경은 오늘날 나에게도 역사한다. 그러므로 형식적인 예배를 회개하고 나를 쳐서 진정한 삶의 예배를 드리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야 한다. 이웃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정의롭다 착각하지 말고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기도하는 자가 되자.
이사야 1:17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
이사야 선지자가 본 이상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나의 삶의 산제사를 원하시지 주일날만 가면을 쓰고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를 원하시지 않는다는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17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을 요구하시지 꾸며진 의식을 원하시는게 아님을 봅니다.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도 정의를 구현하려 애쓰는 모습이 있길 기도합니다.
주일예배를 드리는 내모습이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모습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계속드리는 예배는 믿음을 지속할수는 있어도 삶과 분리된 예배는 나의 삶을 바꾸거나 순종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것은 내 진실된 마음과 깊은 관계일것입니다.
내삶에 반복되는 행동과 마음의 중심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하루를 보내야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하나님은 무수한 잘못을 지적하시고, 처참한 결과를 상기시켜 주시지만, '이리 와서, 함께 이 문제를 놓고 상의해 보자'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여 진홍 같이 붉은 죄를 눈송이 처럼 하얗게 씻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엄하지만 자상하신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순종으로 섬겨 정결하고 고요한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시편 15편, 요한1서)
시편 15편의 완벽한 기준 앞에서 한없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요한1서에서 말씀하시길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있기에 그 십자가 은혜에 기대어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를 할 수 있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며칠간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텐데 그 만남들 한가운데서도 저의 지혜나 어떠함이 아닌 제 안에 계신 하나님의 빛을 조용히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최근에 가정 예배를 드리다 신앙 생활에 관해 이야기를 했는데 엄마가 나에게 이제 말씀과 예배라는 신앙의 기초가 잡혔으니 그것을 삶에 적용해야 하며,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에 맞는가와 예수님이 그 일을 하셨는가를 생각하고 그것에 맞는 삶을 살라고 했다. 하나님의 성품과 예수님의 사역을 요약하면 사랑이다. 이미 나에게 사랑을 주셨으니 핑계할 것이 없다. 나에게 주신 사람들, 공동체를 섬기며 사랑하여 함께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사랑을 매일 나의 삶에서 조금씩 실천해 나가는 자가 되길 기도한다.
다윗은 하나님앞에 설수있는 자의 조건에 대해 말하고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마음에 머무를때에 말과 행동이 변화되고 달라질수 있다.
감사하게 믿음의 선배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안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지에 대해 보고 배울수 있었다. 나는 아직 갈길이 멀고 여전히 내실속을 먼저챙기는 행동을 반복할때가 많지만 지금까지 값었이 받은 사랑과 은혜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배자의 삶은 일상에서 드러나야함을 본문을 통해 묵상하게 됩니다. 며칠전 마이클잭슨의 삶을 그린 영화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어린시절 교회에서는 그의 겉모습을 평판하며 소위 악마로 비유하던 어른들을 많이 보며 자랐던지라 편견이 깨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었는지 믿지 않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의 삶을 보면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 이웃을 향한 사랑과 나눔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봅니다. 나의 삶도 이렇듯 교회에 다녀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드러나는 태도가 참된 성도의 모습이고 예배자의 삶이되길 기도합니다
나는 어디에 머무르며, 어디에 살고 있는가? 하나님께 살고 세상에 잠시 머물러야 함에도 영원히 세상에 사는 냥, 최선을 다해 세상을 살아가는 나, 내 모습 하나님 보고 계시죠? 왜 그렇게 살아가는지...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자의 모습이 내게 있는가? 그런 마음의 방향 갖고 있지만, 현실의 회계적 결산은 늘 그에 반하는 모습이 더 많이 남아 있음을 돌아본다. 하나님! 하루의 영적 결산이 하나님으로 이익이 되는 날 되세 하옵소서. 주의 가르침이 내게 살아 꿈틀거리게 하소서...
(시편14편, 요한복음19-21)
시편 14편은 다 치우쳐 더러운 자가 되었다며 모두가 하나님을 떠난 절망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의 영적 상태도 이처럼 참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무너진 그를 다시 찾아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며 끊어진 사명과 존재를 온전히 회복시켜 주십니다. 나의 선한 행함이 결코 내 안의 의지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깊이 깨닫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회복의 은혜와 능력으로만 매일을 살아갈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믿으면 죄에 이르고 마음으로 하나님이 하늘에서 나를 감찰하심을 믿는다면 의에 이른다. 어리석은 자는 죄악을 행하느라 바쁘다. 하나님은 의인의 세대에 계시고 나를 기다리신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 근거해 바쁘게 살아도 그 결과는 부패와 가증이며 두려움이다. 나를 언제나 기다리시며 구원하시기 위해 기다리시는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찬양의 고백처럼 주님이 찾으시는 자가 되길, 주 은혜로 이 자리에 서 있노라 시인하며 말씀에 근거하고 하나님께 기도로 물으면서 나의 인생길을 나아가는 자가 되자.
다윗의 기도를 통해 성도가 마땅히 드려야 할 기도를 배웁니다. 내 고난에만 머물러 있는것이 아닌 열방을 향한 아픔과 중보가 있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나이가 들고 해가 거듭될수록 기도도 성숙해져야 할텐데 어린아이처럼 나만을 위해 간구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발견합니다. 너무 내 자신애게만 집중되어 있던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이타적인 성도의 기도로 변화되길 원합니다. 오늘도 그 작은 한걸은부터 내딛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세상이 어둡고 악하다고 하기전에 과연 나는 입술로만 믿음을 말하며 고통받는 이웃과 약한 자들을 외면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주변이 아무리 어둡고 불의해 보일지라도 세상이 왜 이럴까 원망하기 전에 내가 서 있는 삶의 자리에서 먼저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하겠습니다. 일상 속에서나만의 안위를 구하지 않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