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이사야 33:1–24
今日默想:以賽亞書 33:1–24
제목 :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오늘 본문으로 여섯 번의 화 선언이 마무리된다. 그런데 이 장은 읽기가 쉽지 않다. 앗수르 이야기가 나오다가 기도가 나오고, 참담한 현실이 그려지다가 갑자기 아름다운 회복이 나온다. 그래서 마치 순서가 뒤엉킨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이 장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알고 봐야 한다. 사실 이 장의 이야기는 하나다. '두려워하던 것이 사라지고 참된 왕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것을 머리에 두고 본문을 읽어 보자.
먼저 이전의 두려움의 대상이 무너진다.
사 33:1 너 학대를 당하지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이고도 속임을 당하지 아니하는 자여 화 있을진저 네가 학대하기를 그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
앞에서 선포된 다섯 번의 화는 모두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했다. 그런데 이 마지막 화는 앗수르를 향한다. 유다가 그토록 무서워하던 그 제국이다. 그들은 앗수르가 두려워서 애굽까지 내려갔다. 광야를 건너 보물을 실어 보내며 도움을 사려 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앗수르에게 화를 선포하신다.
그리고 10절에서 하나님께서 일어나신다. 이제 '내가 일어나며 이제 내가 나를 높이며 이제 내가 지극히 높아지리라'고 하신다. 그러자 11절과 12절에서 앗수르가 겨를 잉태하고 짚을 낳으며, 불에 타는 가시나무같이 된다. 그토록 무서웠던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가시나무 한 줌이었던 것임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 장의 방향이 바뀐다. 앗수르가 타는 것을 보고 정작 예루살렘 안에서 비명이 터진다.
사 33:14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
이 절을 잘 봐야 한다. 이제 이스라엘이 무서워하는 대상이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앗수르였다. 그런데 그 앗수르를 한순간에 태워 버리는 불을 보고 나니, 이제 그 불이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그 불이 누구인지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매튜 헨리는 그의 주석에서 이 장면을 이렇게 설명한다. 시온의 죄인들이 몰래 다른 신들을 섬겨 이 하나님을 노엽게 한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에, 그토록 거대한 군대를 가시처럼 태운 그 불 앞에서 누가 살 수 있겠느냐고 부르짖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헨리가 한 가지를 더 짚는다. 죄인들이 심판을 말로만 들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정작 눈앞에서 그것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반대편 극단으로 달려가 도움받을 소망마저 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물음에 답하신다. 아무도 설 수 없다고 하지 않으신다.
사 33:15-16 오직 공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16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의 요새가 되며 그의 양식은 공급되고 그의 물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이 문답이 시편 24편과 같은 형식이다. 누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것인가 묻고,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한 자라고 답하는 그 시편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 장의 강조점이 드러난다. '두려움의 방향이 바뀌면 안전의 근거도 바뀐다'는 것이다. 이전에 앗수르를 두려워하던 사람은 애굽을 찾아 내려갔다. 그런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견고한 바위가 요새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엇을 두려워하느냐가 어디에 피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자 17절부터 그렇게 남은 자들이 무엇을 보게 되는지가 나온다.
사 33:17 네 눈은 왕을 그의 아름다운 가운데에서 보며 광활한 땅을 눈으로 보겠고
눈에 보이는 것이 바뀌었다. 전에 그들의 눈에 들어오던 것이 무엇이었는가. 18절이 그것을 회상한다. 조공을 계산하던 자, 세금을 저울질하던 자, 성벽의 망대를 헤아리던 자다. 즉 앗수르 관리들이었다. 늘 그들의 눈앞에 있던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왕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절에서 시온을 흔들리지 아니하는 장막이라 하신다.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하며 줄이 하나도 끊어지지 아니한다고 하신다. 애굽과 맺은 조약은 끊어졌지만, 이 장막의 줄은 끊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22절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사 33:22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이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
세 가지가 나란히 놓인다. 재판장이시고, 율법을 세우신 이시고, 왕이시다. 나라를 이루는 세 기능이 다 하나님께 있다는 선언이다. 유다가 애굽에게 기대하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힘 있는 왕이 지켜 주기를 바랐고, 그 나라의 보호 아래 안전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24절이 이 장을 닫는다. 거기 사는 자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하며, 그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고 하신다. 앗수르가 사라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의 죄까지 다루어지는 것이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모습을 본다. 그래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율법을 세우신 이요 우리의 왕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유다가 어디서 찾으려 했는가? 그들은 애굽으로 내려갔다. 힘 있는 왕이 지켜 주기를 바랐고, 조약을 맺어 안전을 보장받으려 했다. 곧 자기들의 왕과 법과 판단을 애굽에 맡기려 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그 자리에 내가 있다고... 우리들도 항상 이런 실수를 반복한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나를 지켜 줄 무언가를 찾는 것이다. 사람을 찾고 방법을 찾고 대책을 세운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동안 내 삶의 왕이 누구인지가 흐려진다. 판단도 내가 하고 기준도 내가 세우고 안전도 내가 마련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매 주 주일에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시라고 찬양도 하고 고백도 한다. 그런데 정작 삶에서는 그것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이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다시금 나를 돌아 보게 하신다. 그래 나를 판단하시는 분도, 내 삶의 기준을 세우시는 분도, 나를 다스리시는 분도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오늘, 아니 한 주간은 나는 그 자리를 하나님께 돌려 드리고 싶다. 내가 왕 노릇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우리의 왕이신 그분 앞에 서는 한 주를 잘 살아가길 기도한다.
題目:耶和華是我們的王
今天的經文結束了六次「禍哉」的宣告。然而這一章讀起來並不容易。亞述的故事出現後接著是禱告,慘澹的現實描繪出來後又突然出現美麗的復興。因此看起來彷彿順序錯亂了一般。
正因如此,我們必須先了解這一章想要傳達的是什麼,再來看內容。事實上這一章的主題只有一個,就是「所懼怕的事物消失,真正的王顯現出來」。讓我們帶著這個主軸來讀這段經文。
首先,先前所懼怕的對象崩潰了。
賽 33:1 禍哉!你這毀滅人的,自己倒不被毀滅;行事詭詐的,人倒不以詭詐待你。你毀滅罷休了,自己必被毀滅;你行完了詭詐,人必以詭詐待你。
前面宣告的五次「禍哉」都是針對猶大和耶路撒冷的。然而這最後一次「禍哉」卻是針對亞述。那正是猶大如此懼怕的那個帝國。他們因懼怕亞述而下到埃及,越過曠野送去財寶,想藉此買到幫助。然而神卻向那亞述宣告了禍患。
到了第10節,神起身了。祂說:「現在我要起來,現在我要興起,現在我要受尊崇。」於是在第11、12節,亞述就懷的是糠秕,生的是碎稭,像燒著的荊棘一般。這是要顯明那如此可怕的東西,在神面前不過是一把荊棘罷了。
而在這裡,這一章的方向轉變了。看見亞述被焚燒之後,耶路撒冷城內反而發出了驚叫。
賽 33:14 錫安中的罪人都懼怕,不敬虔的人被戰兢抓住。他們說:「我們中間誰能與吞滅的火同住?我們中間誰能與永火同住呢?」
這一節要仔細看。此時以色列所懼怕的對象改變了。不久之前,他們懼怕的是亞述。然而看見那瞬間就把亞述焚燒殆盡的火之後,如今變成懼怕那火了。並且他們心裡明白那火究竟是誰。
因此馬太·亨利在他的注釋中這樣解釋這個場景:錫安的罪人自己心裡知道,他們曾暗中事奉別的神明,惹動了這位神的怒氣,所以在那將如此龐大的軍隊像荊棘一樣燒盡的火面前,誰還能站立得住呢,他們因此呼喊出來。亨利還進一步指出:罪人在只是聽聞審判之時,往往不當一回事;然而當親眼看見審判真實發生時,卻又走向另一個極端,連求助的盼望都放棄了。
然而神回答了這個問題。祂並沒有說沒有人能站立得住。
賽 33:15-16 行事公義、說話正直、憎惡欺壓的財利、擺手不受賄賂、塞耳不聽流血的計謀、閉眼不看邪惡之事的人,16 他必居高處,他的保障是磐石的堅壘,他的糧必不缺乏,他的水必不斷絕。
這段問答的形式與詩篇24篇相同——問誰能登耶和華的山,回答是手潔心清的人,正是那篇詩篇所說的。
而在這裡,這一章的重點顯明出來了:「懼怕的方向若改變,安全的根基也隨之改變。」先前懼怕亞述的人下到埃及去尋求幫助;但對懼怕神的人來說,堅固的磐石就是他的保障。因此,你懼怕什麼,就決定了你會逃往何處。
於是從第17節開始,經文描述那些存留下來的人將看見什麼。
賽 33:17 你的眼必見王的榮美,必見遼闊之地。
眼中所見的事物改變了。此前映入他們眼中的是什麼呢?第18節回想了那些事——計算貢銀的人、稱量賦稅的人、數點城樓的人,也就是亞述的官員們。這一直是他們眼前的懼怕來源。然而如今這些都消失了,取而代之的是他們開始看見了王。
到了第20節,神稱錫安為不動搖的帳幕,說它的橛子永不拔出,繩索一根也不折斷。與埃及所立的條約已經斷絕,但這帳幕的繩索卻不會斷絕。
到了第22節,便做出這樣的結論。
賽 33:22 因為耶和華是審判我們的,耶和華是給我們設律法的,耶和華是我們的王,他必拯救我們。
三件事並列在一起:祂是審判者,是設立律法者,是王。這是宣告:構成一個國家的三種功能全都在神那裡。這正是猶大期盼從埃及得到的東西——盼望有強大的王來保護他們,盼望在那國的庇護之下得到安全。然而神說,那個位置本就是屬於祂的。
最後第24節為這一章畫下句點。經上說,城內居民必不說「我病了」,那裡的百姓,罪孽都必蒙赦免。這章並不是以亞述的消滅作結,連他們的罪也一併被處理了。
默想這段經文時,我看見了我們自己的樣子。是的,耶和華是我們的審判者、設立律法者、我們的王。然而猶大想要從哪裡尋求這三樣呢?他們下到埃及去,盼望有強大的王來保護他們,想藉著立約來獲得安全的保障——也就是說,他們想把自己的王、律法和判斷都交託給埃及。然而神說:那個位置,是屬於我的……我們也常常重複這樣的錯誤。遇到困難時,便去尋找能保護自己的東西,尋找人、尋找方法、擬定對策。然而在這樣做的過程中,誰才是我生命中的王,便漸漸變得模糊。判斷由自己來下,標準由自己來立,安全也想靠自己來預備。然而,我們每個主日都歌頌並宣告神是我們的王,可是在實際生活中卻一再忘記這件事。透過今天的經文,神再次讓我省察自己——是的,審判我的那一位,為我的生命立下標準的那一位,治理我的那一位,正是耶和華神。因此,今天,不,這一整週,我願意把那個位置歸還給神。願我放下想要作王的心,好好度過站在我們的王面前的這一週,我如此禱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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