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이사야 32:1–20
今日默想:以賽亞書 32:1–20
제목 : 영을 우리에게
어제 본문에서 하나님은 앗수르가 사람의 칼이 아닌 것으로 무너지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위협을 없애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자리에 무엇을 세우실지를 오늘 본문이 보여 준다.
사 32:1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한 왕이 나온다. 그리고 그가 공의로 다스린다. 이 왕이 누구인가를 두고 학자들은 대체로 이렇게 정리한다. 히스기야가 당대에 이 예언을 어느 정도 이루었으나 그는 그리스도의 예표였고, 온전한 성취는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2절이 그 왕이 어떤 분인지를 그린다. 광풍을 피하는 곳이요 폭우를 가리는 곳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고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다고 한다. 어제 본문을 떠올려 보라. 유다는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했다. 그런데 참된 그늘은 여기 있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3절과 4절에서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린다.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하고 듣는 자의 귀가 기울여지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한다고 한다. 앞서 29장에서 그들의 눈이 감기고 책이 봉해졌는데, 이 왕의 나라에서는 그것이 열린다.
그리고 5절이 흥미롭다.
사 32:5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부르지 아니하겠고 우둔한 자를 다시 존귀한 자라 말하지 아니하리니
여기 나오는 낱말들을 보면 뜻이 살아난다. 어리석은 자로 번역된 말은 나발인데, 사무엘상에 나오는 그 나발과 같은 이름이다. 시편에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그 어리석은 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존귀한 자로 번역된 말은 나디브인데, 너그럽고 마음이 열린 사람을 뜻한다. 한 주석가는 그를 두고 자기 소유 전부에 '나와 온 인류를 위하여'라고 써 놓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또 우둔한 자로 번역된 말은 인색한 자를 뜻하는데, 풍족한 가운데서도 재산이 줄까 두려워 자기조차 굶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구절이 왜 중요한가. 한 학자는 이 장면이 이사야가 사역을 시작할 때 만났던 그 장면과 정확히 반대라고 지적한다. 5장에서 사람들이 악을 선이라 하고 선을 악이라 하던 그 상황 말이다. 그리고 다른 주석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전 통치자들 아래서는 옳고 그름의 판단이 뒤집혀 있어서, 원칙 없는 사람들이 아첨의 대상이 되었고 그들에게 없는 미덕이 그들의 것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왕의 통치 아래서는 그렇지 않다. 사물이 제 이름으로 불린다. 아첨이 사람에게 없는 자질을 붙여 주지 못한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그림 다음에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다.
사 32:9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안일한 자들을 향한 경고다. 그리고 그 결과가 13절과 14절에 나온다. 그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고, 즐거워하던 성읍의 행복한 집들이 무너지며, 궁전이 버려지고 인구 많던 성읍이 적막해진다. 요새와 망대가 굴혈이 되어 들나귀가 즐기는 곳이 된다.
여기서 학자들이 이 단락의 자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영적 갱신이 오기 전에, 하나님은 어려움을 사용하셔서 안일한 자들을 깨우시고 참된 애통으로 이끄신다는 것이다. 곧 이 황폐는 목적 없는 파괴가 아니다.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는 시간이다.
그리고 15절에서 이 장이 뒤집힌다.
사 32:15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여기 '마침내'라는 말과 '위에서부터'라는 말을 함께 보아야 한다. 마침내라는 말은 그 황폐가 끝나는 지점이 있다는 뜻이고, 위에서부터라는 말은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려 준다. 한 주석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성령의 부으심은 낮아짐 뒤에야 오며, 사람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흘러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메마르고 황폐했던 것이 생명과 열매로 가득해진다.
그러자 16절과 17절에서 무엇이 자라는지를 보라.
사 32:16-17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17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정의와 공의가 다시 나온다. 이 두 낱말을 우리는 5장, 포도원의 노래에서 보았다. 하나님이 포도원에 정의를 바라셨더니 포학이었고 공의를 바라셨더니 부르짖음이었다고 하셨다. 사람이 끝내 맺지 못한 그 열매가, 여기서는 성령이 부어진 결과로 자라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18절에서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한 쉴 곳에 있으리라고 하신다. 앞서 하나님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는데 그들이 원하지 아니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그 조용함을 친히 주신다.
오늘 본문을 통해 나 자신을 반성한다. 안일한 자들이 깨어지고, 성읍이 무너지고, 요새가 굴혈이 되고, 그러고 나서야 영이 부어진다는 것이다. 그래 무너짐이 먼저였다. 그리고 그것이 우연한 배치가 아니라는 것을 학자들도 지적한다. 그 이유는 낮아짐 뒤에 부으심이 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돌아보면 내 삶도 그랬다. 무언가 잘되고 있다고 여길 때 나는 하나님을 그리 절실히 찾지 않게 된다. 오히려 계획이 어긋나고 애쓴 일이 무너졌을 때, 그때 더 많이 무릎을 꿇는다. 그렇기에 그 무너짐이 항상 나를 낮추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기억해야 할 것은 광야가 밭이 되는 것은 내가 애써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에서부터 부어 주셔야 한다. 그러니 오늘 나는 내 힘으로 밭을 일구려 하기보다, 위에서 부어 주시는 성령을 의지하여야 한다. 그렇기에 오늘도 성령을 의지하여 한 걸음 나아가는 자가 되길 기도한다.
題目:將靈澆灌我們
昨日的經文中,神說亞述將被非人的刀所毀滅。然而神的旨意並不止於此。祂不僅僅除去威脅,今日的經文向我們顯明,祂要在那地方建立什麼。
賽 32:1 看哪,必有一王憑公義行政,必有首領藉公平掌權
一位王要出現,他要憑公義治理。關於這位王是誰,學者們大致有這樣的看法:希西家在當時某種程度上應驗了這預言,但他只是基督的預表,真正完全的應驗在於基督。
接著第2節描繪了這位王是怎樣的一位。他如避風港,如避暴雨的隱密處,又如乾旱之地的溪水,又如疲乏之地的磐石陰影。回想一下昨天的經文,猶大想要躲在埃及的蔭下,然而真正的蔭庇卻在這裡。
接下來的第3、4節中,眼睛開了,耳朵開了。經上說,能看的人眼不再昏矇,能聽的人耳必得聽聞,性急人的心必明白知識,結巴人的舌必說話流利。先前在第29章,他們的眼被閉,書卷被封住,但在這位王的國度裡,這一切都要打開。
而第5節則格外有意思。
賽 32:5 愚頑人不再稱為高明,吝嗇人不再稱為大方
若細看這裡出現的字詞,其意義便活了起來。「愚頑人」原文是「拿八」(נָבָל),與撒母耳記上出現的那位拿八同名,也是詩篇中所說「心裡無神」的那愚頑人。而「高明」(或譯「尊貴」)的原文是「拿迪夫」(נָדִיב),意指寬宏大量、心胸開闊的人。有位注釋家形容這樣的人,是在自己所擁有的一切上都寫著「為我也為全人類」的人。另外,「吝嗇人」原文指的是即便在富足中,也因害怕財產減少而甚至苛待自己的人。
那麼這節經文為何重要?有位學者指出,這個場景與以賽亞開始事奉之初所遇到的情形恰恰相反,正是第5章中人們稱惡為善、稱善為惡的那種情況。另一位注釋家則如此解釋:在先前那些統治者之下,是非的判斷完全顛倒了,毫無原則的人反成了阿諛奉承的對象,本不屬於他們的美德竟被稱作是他們所有的。然而在這位王的治理之下卻不再如此,萬物都要按其本名被稱呼,阿諛奉承再也無法將人所沒有的品格強加於人。
然而,在這幅美麗的畫面之後,氣氛忽然一轉。
賽 32:9 安逸的婦女啊,起來聽我的聲音!無慮的女子啊,側耳聽我的言語!
這是對安逸之人的警告。而其結果記載在第13、14節:那地必長荊棘和蒺藜,歡樂城中所有快樂的房屋也必如此;宮殿必被撇棄,人煙稠密的城必被撤空;山岡望樓永為洞穴,作野驢所喜樂的地方。
在這裡,學者們如此解釋這段經文的位置:在屬靈的更新來臨之前,神使用苦難來喚醒安逸之人,引導他們進入真實的哀慟。也就是說,這樣的荒涼並非毫無目的的毀壞,而是那本該傾覆之物傾覆的時刻。
而在第15節,整章經文出現了逆轉。
賽 32:15 等到聖靈從上澆灌我們,曠野就變為肥田,肥田看似樹林。
這裡的「等到」與「從上」這兩個詞,必須一同來看。「等到」表明那荒涼終有結束之時,而「從上」則告訴我們那更新從何而來。有位注釋家如此解釋:聖靈的澆灌只在人謙卑降卑之後才臨到,並非靠人的努力所能獲得,而是從天上湧流而來。到那時,曾經乾旱荒蕪之地,將充滿生命與果實。
接著在16、17節中,讓我們看看那裡生長出了什麼。
賽 32:16-17 那時,公平要居在曠野,公義要居在肥田。公義的果效必是平安,公義的效驗必是平穩,直到永遠。
「公平」與「公義」再次出現。這兩個詞我們曾在第5章葡萄園之歌中見過——神盼望祂的葡萄園結出公平,得到的卻是強暴;盼望結出公義,得到的卻是冤聲。人始終未能結出的那果子,如今卻要因聖靈的澆灌而結出來。
而在第18節,神說:我的百姓必住在平安的居所、安穩的住處、寧靜的安歇之地。先前神曾說,唯有歸回、安靜方能得救,然而他們卻不願意。如今,神親自將那份安靜賜下。
透過今日的經文,我反省自己。安逸之人被打破,城邑傾覆,堡壘變為洞穴,然後才有靈的澆灌。是的,傾覆先於一切。而學者們也指出,這並非偶然的安排,原因就在於澆灌總是緊隨著降卑而來。回想我自己的生命,也是如此。當我以為事情順利時,便不再那樣迫切地尋求神;反倒是計畫落空、努力付諸東流時,我才更多地跪下禱告。因此,那些傾覆的時刻,始終是使我謙卑降卑的時光。然而在此我們也必須再次記住,曠野變為肥田,並非靠我自己的努力所能成就,而必須是從上澆灌下來。所以今天,與其憑自己的力量去耕耘那片田地,我更當倚靠從上澆灌而來的聖靈。因此,我願今日也成為倚靠聖靈、向前邁進一步的人,如此禱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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